유리천장 박살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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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박살 프로젝트 1회



1년 후 한국 상장기업의 이사회 풍경이 바뀐다. ‘자본시장법 임팩트’다.

내년 8월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는 이사회의 등기이사를 특정 성으로만 선임할 수 없도록 하는 개정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시행된다. 50·60대 남성이 기본값인 기업 이사회에 적어도 한 명의 여성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견고한 유리천장에 균열을 내기 위한 입법적 시도다. 법 시행을 1년 앞두고 각 기업들은 앞다퉈 여성 임원 영입에 나서고 있다.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152개 상장사가 94명의 여성 임원을 새로 선임했다.

유리천장 없다고? 상장사 10곳 중 6곳은 임원진 '전원 남성'[플랫]

자본시장법 도입 1년 앞둔 일터, 지금은 성평등할까



여성가족부가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의뢰해 2021년 1분기 기준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상장사 2246개의 성별 임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국내 상장사의 여성 임원 수는 1668명이었다. 2020년 1395명에서 1년 만에 273명(20%)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전체 임원 3만2005명 중 여성은 5.2%에 불과하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6%의 5분의 1 수준이다.

상장사 노동자 대비 임원 비율의 성별 격차는 6배 이상이다. 여성 임원 1668명은 상장사 여성 노동자의 0.4%에 그친다. 남성 노동자 대비 남성 임원 비율이 2.6%임을 감안하면 남녀 간 격차는 6.3배에 이른다. 시작된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기업의 별’이 되는 일은 멀고 험하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 165조의 20(이사회의 성별 구성에 관한 특례)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주권 상장법인의 경우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의 이사로 구성하지 아니하여야 한다.(2020·8·5 시행, 2년 경과 조치)

경향신문은 여성의 대표성을 상징하는 여성 임원 조사와 별개로, 전체 상장사를 대상으로 국내 성차별 노동의 핵심지표인 성별임금격차 실태도 조사했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2167개 기업이 금융감독원에 신고한 2020년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세계 최악의 성별 임금격차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 지난해 전체 상장사에서 남녀 직원의 임금차를 뜻하는 ‘페이갭’은 28.60%에 이른다. 매출액 기준 100대 기업 중에선 KT(12.2%) 한 곳만 페이갭이 OECD 평균인 12.5%보다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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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세계를 조망한 책 <2030 축의 전환>에선 새로운 부와 힘을 탄생시킬 8가지의 거대한 물결 중 하나로 여성의 힘을 꼽는다. 2030년엔 전 세계 부(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55%가 넘을 것이며 여성 노동력을 적극 활용하는 국가가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매번 OECD 꼴찌라는 한탄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불평등한 현실을 드러내는 것은 현실을 개선하는 작업의 출발점이다. 경향신문은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을 1년 앞두고 일터의 성차별 실태를 집중 조명했다. 전체 상장사의 여성 임원 비율과 성별 임금격차를 분석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 나의 아내가 다니는 회사, 나의 딸이 다니고 싶은 회사는 과연 얼마나 평등한가.

상장사 10곳 중 6곳, 여성임원 단 한 명도 없었다



상장사의 여성 임원이 급격히 늘고 있지만, 여성 임원이 한 명조차 없는 기업도 1431개에 달했다. 전체 상장사 2246개 중 63.7%다. 여성이 임원을 꿈꿀 수도 없는 곳이 국내 상장사 10곳 중 6곳 이상이란 얘기다. 나머지 815곳(36.3%)은 여성 임원이 1명 이상으로 남녀 임원이 모두 있는 기업이다. 남성 임원이 없는 기업은 전무했다. 남성 임원이 기본값인 현실이다. 여성 임원 비율이 50% 이상인 ‘성평등 기업’은 8개에 불과했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65조의 20 적용 대상인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은 전체 152개 중 118개(77.6%)가 여성 이사를 선임했다. 특히 법이 규정한 여성 등기임원을 1명 이상 선임한 기업은 152개 중 85개(55.9%)로 법 적용 대상의 절반 이상이 법 기준에 부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자본시장법은 일명 ‘유리천장 깨기 법’으로 불린다. 신설된 제165조의 20 이사회 성별 특례조항이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은 특정 성으로만 이사회를 구성할 수 없게’ 하는 내용이어서 적어도 여성 1명이 이사회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법 시행이 아직 1년 남았고 위반 시 페널티도 없지만 기업들은 발빠르게 규정 준수에 나서고 있다. 여성 등기임원은 법 통과 이전인 2019년 31명에서 올해 97명으로 3배 이상 폭증했다. 막강한 제도의 영향력이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통과 이후 여성 등기임원은 법 통과 이전보다 3배 이상 폭증했다. 그러나 개별 기업으로 들어가면 갈 길이 멀다. 여성 임원 수 상위 20대 기업 중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여성 임원 평균(25.6%)을 넘는 곳은 대교(9명, 34.6%), LF(11명, 31.4%), 한미약품(13명, 26.0%) 등 3곳에 불과했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통과 이후 여성 등기임원은 법 통과 이전보다 3배 이상 폭증했다. 그러나 개별 기업으로 들어가면 갈 길이 멀다. 여성 임원 수 상위 20대 기업 중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여성 임원 평균(25.6%)을 넘는 곳은 대교(9명, 34.6%), LF(11명, 31.4%), 한미약품(13명, 26.0%) 등 3곳에 불과했다.

그러나 개별 기업으로 들어가면 갈 길이 멀다. 이번 여성가족부 조사에서 삼성전자 여성 임원은 60명으로 숫자로는 가장 많지만 여성 임원 비율은 5.6%밖에 안 된다. 여성 임원 수 상위 20대 기업 중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여성 임원 평균(25.6%)을 넘는 곳은 대교(9명, 34.6%), LF(11명, 31.4%), 한미약품(13명, 26.0%) 등 3곳에 불과했다. 자산 2조원 이상 기업 중 여성 임원 비율이 OECD 평균을 웃도는 기업은 7명의 임원 중 여성이 2명(28.6%)인 카카오가 유일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입된 ‘여성임원 1명’ 의무화, 핵심은?



내년 8월 개정 자본시장법의 본격 시행으로 한국 사회도 유리천장 깨기의 제도적 첫걸음을 내딛게 됐다. 지난해 초 자본시장법 개정의 출발은 세계 10위권 경제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2%대에 머문 여성 임원 비율이었다. 여성 임원 비율 50% 목표를 향하고 있는 선진국들의 상황을 전하며 변화를 호소한 세계여성이사협회(WCD)의 목소리에 해당 상임위인 국회 정무위 의원들이 여야 할 것 없이 공감했다.

그러나 법안 통과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처음 발의된 내용은 ‘이사회 3분의 1 이상을 여성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이었지만, ‘현실성’을 이유로 3분의 1이 최소 1명으로 줄어들었고, 전체 상장사 대상도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기업으로 축소됐다. 기업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중간에 권고사항으로 바뀌었던 조항은 막판에 2년 유예를 두되 의무화하는 수정안으로 최종 통과됐다.

“직장에서 롤모델이 없었던 막막한 여성 노동자들에게 동기부여를 했다.” “어느 기업을 가든 여성 임원을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당시 법안 통과에 쏟아졌던 환영 메시지들이다. 법안 통과를 위해 누구보다 동분서주했던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은 “여성 임원의 숫자 자체보다 성평등한 조직문화, 기업문화가 확산되며 성평등이 경영적인 성과와 함께 남녀 모두에게 이로운 윈윈의 결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내 브랜드 파워 50대 기업의 인적·문화적 파이프라인 구축 실태 등을 조사한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여성 임원의 존재 자체보다 여성 임원을 보는 기업의 인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국내외의 여성 임원과 기업의 성과에 관한 여러 연구결과를 보면 긍정과 부정이 혼재한다고 했다. 사례 연구에서 기업의 실질적 성과에 결정적인 부분은 여성 임원의 존재 자체보다 ‘다양성이 기업에 도움이 된다’는 기업의 인식이었다.

윤 교수는 “기업 스스로 여성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상생하려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여성 임원의 성장을 위한 파이프라인 구축을 해법으로 들었다. 파이프라인이란 여성 임원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려는 기업 문화와 노력을 말한다. 여성 임원 선임이라는 외부 수도꼭지만 틀어서는 성공적인 결과가 절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골드만삭스 “여성 이사 없는 기업은 IPO 안한다” 선언



지난 1월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하반기부터 다양성을 충족하는 이사가 없는 기업의 기업공개(IPO) 업무를 맡지 않겠다고 밝혔다. 특히 다양성의 초점은 여성 이사라고 콕 집어 말했다.

미국 나스닥은 상장사들이 이사진에 최소 1명의 여성과 1명의 소수인종 또는 성소수자를 포함할 것을 의무화하는 제안서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했다. 앞으로 모든 나스닥 상장사는 이사진의 다양성에 관한 통계를 공개해야 한다. 다양성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 기업은 그 이유를 설명해야만 나스닥 퇴출을 면할 수 있다.

중동의 금융허브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모든 상장사에 여성 임원을 최소 한 명 이상 두도록 의무화하는 조항을 발효했다. 최근 몇 달간 외신에 등장한 뉴스들이다. 앞서 2018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여성 이사가 2명 미만인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19년 골드만삭스가 발행한 우머노믹스(Womenomics) 5.0 보고서

2019년 골드만삭스가 발행한 우머노믹스(Womenomics) 5.0 보고서

한국은 최근에야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며 기업의 여성 대표성에 주목했지만 세계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이사회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방안을 마련했다. 덴마크는 2000년 국유기업부터 이사의 30%를 여성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민간기업에 대한 방안으로는 2003년 노르웨이가 상장사의 여성 임원 비율을 최소 40%로 의무화하는 할당제를 도입한 게 시작이었다.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에 기업 내 여성 이사 비율을 30~40%까지 맞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 내에서 상대적으로 남녀 격차가 심한 독일도 10여년의 논의 끝에 지난해 말 여성임원할당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사회 임원이 3명 이상, 직원 2000명 이상의 상장사는 임원 중 3분의 1을 반드시 여성으로 채워야 한다. 미국도 ‘이사회다양성연합체(ABD)’를 설립하고, 캘리포니아주는 상장사가 여성 이사를 두도록 법제화했다. 이스라엘·인도·캐나다 퀘벡주 등에서도 여성임원할당제가 법으로 정해져 있다.

소비자도 투자자도 달라졌다, 이제는 성평등이 표준이다



기업들이 이사회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위해선 다양성이 필수적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여성 임원들의 존재가 기업의 실질적 성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잇따르고 있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가 올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경영진의 성 다양성 수준이 상위 25%인 기업들은 하위 25%인 기업들보다 평균 이상의 수익을 낼 가능성이 25% 높았다.

국내 상장사 170개를 대상으로 분석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에서도 5년간 여성 관리자가 늘어난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이 비교 기업보다 평균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골드만삭스는 2019년 ‘우머노믹스(Womenomics) 5.0 보고서’에서 한국의 노동시장에 남녀의 동등한 참여가 이뤄진다면 국내총생산(GDP)의 14.4% 증가가 예상된다고 했다.

최근 기업에 환경·사회·지배구조를 의미하는 ESG 책임경영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여성 임원 선임은 기업의 실제 성과뿐 아니라 소비자와 투자자들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투자사들이 여성 임원을 투자 결정의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하게 됐고, 국가 연기금들도 여성 이사가 없는 기업에 반대표를 던지고 여성 경영 참여가 높은 기업에 대한 투자 확대를 선언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개정 자본시장법을 여성 배려 법인 것처럼 보는 일부의 시각도 있는데, 전혀 아니다”라며 “이사회의 생명인 다양성·독립성·전문성 중 너무나도 한쪽으로 치우쳐 절대적으로 부족한 다양성의 보강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특별취재팀 |
송현숙 논설위원 song@khan.kr
오경민 사회부 기자 5km@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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