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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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출근길이 힘들 때 꺼내 읽는 인터뷰
용기 있게 자신의 일을 해내는 여성들의 존재에 주목합니다. 남성이 다수인 곳에서 스스로 영역을 개척하고, 세상이 ‘길이 아니다’라고 말해도 묵묵히 확신의 발걸음을 내딛는 이들이 있습니다. 나의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 진짜 나의 일을 찾은 것인지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지치고 혼란스러운 출근길에 이들이 이야기가 응원이 되길 바랍니다.


[출근하는 여자들] 여성 페인터 서슬기씨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아파트 신축 현장. 주차장 초입에서부터 페인트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이날 서울의 오후 3시 기온은 34도. 가만히 있기만 해도 옷 안쪽으로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이곳은 여성 페인터 서슬기씨(30)가 7달째 출근하고 있는 일터다.

슬기씨를 알게 된 건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슬기로운 뺑끼 생활>을 통해서였다. ‘뺑끼’는 페인트의 일본식 표현. 그러니까 이 채널의 주제는 한마디로 ‘페인터 서슬기의 하루’다. 작업 현장 브이로그부터 친구들의 오토바이를 도색해 주는 일상, 페인터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까지. 건설현장 기술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궁금해 할 정보들이 빼곡하다.

‘중년 남성’이 대부분인 건설 현장에서 ‘젊은 여성’은 호기심의 대상이다. “왜 노가다를 하려 하냐”는 질문을 받는 것도 일상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에 흔들림이 없다. 어릴 때부터 블루칼라 노동을 동경했다는 그는 “주변에서 여성이 이쪽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정보가 부족했다. 진입장벽이 높다”며 “장점이 많은 직업인만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들을수록 궁금해졌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직업을 추천하려면 그 일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 걸까. 대체 페인터라는 직업의 어떤 면이 그를 매료시킨 걸까. 지난달 23일 그를 일터에서 만났다. 퇴근 후엔 카페로 자리를 옮겨 페인터 된 계기와 직업에 대한 생각을 자세히 들어봤다.

지난달 23일 페인터 서슬기씨를 만나 페인터가 된 계기와 직업에 대한 생각을 자세히 들어봤다. 그는 “몸쓰고 땀 흘리며 돈을 버는 자신이 멋있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그중에서도 젊은 여성들이 건설 현장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사진 이아름 기자 .

지난달 23일 페인터 서슬기씨를 만나 페인터가 된 계기와 직업에 대한 생각을 자세히 들어봤다. 그는 “몸쓰고 땀 흘리며 돈을 버는 자신이 멋있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그중에서도 젊은 여성들이 건설 현장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사진 이아름 기자 .

‘노가다’라는 단어는 나에겐 ‘자부심’


요즘 그가 하는 일은 입주 전 A/S다. 현관이나 창틀 긁힌 부분에 새김질(붓질)을 하는 것이다. 매일 아침 현장 매니저가 적어둔 작업 지시 사항을 읽고, 아파트 이층 저층을 오가며 손봐야 할 곳을 부분을 찾는다. 페인트를 들고, 섞고, 바르는 손길이 능숙했다.

“원래는 2인 1조 작업인데 오늘은 같이 일하는 아저씨가 사정이 생겨서 혼자 일해요. 같이 일하는 것의 장점은 심심하지 않다는 거요. 둘다 운동을 좋아해서 그런 이야기할 땐 재미있어요. 그러다 문득 ‘얼른 돈 많은 집에 시집가서 이런 일 그만하고 편하게 살아야지’ 하시면 그냥 ‘아 네…’ 하는 거죠.”

제 키의 3분의 2가 넘는 사다리를 나르면서 슬기씨가 웃었다.

-젊은 여성 페인터가 드물잖아요. 어떻게 이런 직업을 갖게 됐는지 궁금해요.

“우리나라에선 정해진 길이 있잖아요. 대학교 가고, 취업 준비하고, 회사 들어가는…. 그런데 주변에 먼저 취업한 친구들을 보니, 하나같이 출근하는 걸 힘들어하는 거예요. 나는 저렇게 일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흘러가듯이 하는 일이 아니라, 재미있고 의미도 찾을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어요.”

-지금의 일을 찾기까지는 오래 걸렸나요?

“2014년 6월에 대학 졸업해서 2019년 봄에 이 일을 시작했으니 5년 정도 걸렸네요. 원래는 해외 선교를 가고 싶어서 1~2년 정도 준비를 했었어요. 그러다 개인 사정으로 꿈을 접게 됐고, 그러면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기 시작한 거죠. 배달부터 헬스 트레이너까지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돈을 벌기 위해 한 일이었을 뿐 이게 내 ‘직업’이라는 생각은 없었어요.”

요즘 그가 하는 일은 입주 전 A/S다. 매일 아침 현장 매니저가 적어둔 작업 지시 사항을 읽고, 아파트 이층 저층을 오가며 손봐야 할 곳을 부분을 찾는다. 페인터와 각종 도구로 가득 찬 카트를 끌고 작업을 위해 이동하는 슬기씨의 모습. 사진 이아름기자

요즘 그가 하는 일은 입주 전 A/S다. 매일 아침 현장 매니저가 적어둔 작업 지시 사항을 읽고, 아파트 이층 저층을 오가며 손봐야 할 곳을 부분을 찾는다. 페인터와 각종 도구로 가득 찬 카트를 끌고 작업을 위해 이동하는 슬기씨의 모습. 사진 이아름기자

-그래도 건설 현장 기술직을 선택지로 떠올리는 자체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제가 체대를 나왔는데, 남자애들이 방학 때 건설 현장에서 ‘노가다’를 하고 큰돈 버는 걸 보긴 했어요.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하고 싶은데, 왜 여자는 그런 기회조차 없지, 불만이 어렴풋이 있었어요.”

-블루칼라 노동에 대한 편견은 없었나 봐요.

“‘노가다’ 하면 떠오르는 마초적인 이미지가 있잖아요. 저는 그 이미지가 싫지 않았어요. 여자는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그 일을 하는 제가 멋있을 것 같았죠. 회사를 위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노동한 만큼 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어요. 지금도 ‘노가다’라는 단어는 저에겐 자부심의 표현이에요.”

"내일부터 나올 수 있냐, 보통 그런 식이에요"



-취업준비가 긴 편인데 불안하진 않았나요.

“평소의 저였다면 불안하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 이 시간에도 의미가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문득 ‘어, 나 이 나이 먹도록 뭐하고 있지’ 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우울증인가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월수금은 역사 내 카페, 화목은 역사 위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너무 더우니 체력이 떨어지고, 입맛이 없어지고, 살이 빠지니 체력이 더 떨어지고… 이러다 죽을 것 같아 운동을 시작했더니 조금씩 나아졌어요.”

고민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이 길이 내 길’이라 생각한 후엔 뒤돌아보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있기보단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고 싶었고, 은퇴나 경력단절 없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부모님은 ‘그런 일 할 바에는 시집이나 가라’고 했지만, 그는 ‘혼자서도 잘 살려고 이 일을 하려는 것’이라고 맞섰다.

-건설 현장이 워낙 ‘남초’잖아요. 여성으로서 차별받을까 하는 걱정은 없었나요?

“그런 걱정은 없었어요. 대학교 때도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과였으니 그런 건 익숙했어요. 제일 마음에 걸렸던 건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할지’였어요.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정해진 길이 있는 것도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알아봐야 했어요. 용기가 필요했죠.”

페인터 서슬기씨가 페인트를 칠하기 전 스크래퍼로 이물질을 제거하고 있다. 그는 혼자서도 잘 살기 위해 이 일을 선택했다. 사진 이아름기자

페인터 서슬기씨가 페인트를 칠하기 전 스크래퍼로 이물질을 제거하고 있다. 그는 혼자서도 잘 살기 위해 이 일을 선택했다. 사진 이아름기자

-많은 기술직 중에서도 왜 하필 페인터였어요?

“외국에 살고 싶어서 기술직을 선택한 것도 있었어요. 서구권은 장판과 마루 대신 타일을 깔거나 페인트로 인테리어 마감을 하잖아요. 그래서 처음에 타일을 하려고 알아보니 현장에서는 ‘타일은 무거워서 힘들거다’라고 하는 거예요. 대신 타일과 타일 사이를 메꾸는 줄눈(메지) 작업을 추천하더고요. 여자들이 많이 하는 작업이라 해봤는데, 단순 반복 작업이라 재미가 없더군요. 그래서 페인트를 선택하게 됐죠.”

-맨 처음 일은 어떻게 구했나요?

“일단 ‘인기통(인테리어기술자통합모임)’이라는 네이버 카페에 가입을 했어요. 검색을 해보니 기술직 커뮤니티 중에서는 제일 큰 곳이라고 해서요. 운 좋게도 며칠 전쯤 ‘초보 페인트, 배우면서 일할 사람’이라는 글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아직 사람 구하시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내일부터 나올 수 있냐’고 답이 오더군요. 보통 그런 식이에요. 일단 내일부터 나오라고.(웃음)”

첫 현장은 홍대의 두 동짜리 건물 증축 현장이었다. 여자 둘, 남자 셋 뿐인 작은 현장이었다. 50대 초반의 젊은 반장이 작업의 기초부터 체계적이고 친절하게 알려줬다. 슬기씨는 이때를 돌이켜 “운이 좋았다”고 했다.

-실제로 해보니 기대만큼 적성에 맞던가요.

“네. 제가 처음 한 일이 사포질이었어요. 가루가 엄청 날리고 얼굴까지 하얘져서, 페인터들이 제일 하기 싫어하는 일 중 하나거든요. 그런데도 저는 되게 재미있었어요. 매끈한 벽을 만들려면 뾰족 튀어나온 곳은 깎고 움푹 들어간 데는 주변을 전체적으로 완만하게 만들어야 하거든요. 작업의 결과물이 바로 보이니 보람이 있었어요.”

건설 현장의 ‘여성 일꾼’으로 산다는 것



건설 노동이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건설업 임시 및 일용 근로자 중 여성의 비율은 10%(6만8576명)다. 현장 노동자 10명 중 한 명은 여성인 셈이다. 슬기씨가 경험한 현장에선 여자 비율이 더 높았다. “현장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남자가 7이면 여자가 3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대부분이 중장년 한국 여성이거나 젊은 외국인 노동자다.

지금 일하고 있는 개포동 현장에도 여성 페인터는 슬기씨를 포함해 3명이다. 나머지 2명은 동갑내기인 50대 여성이다.

-생각보다 건설 현장에 여자가 많네요.

“저도 처음엔 그래서 놀랐어요. 여자들이 없으면 안 되더라고요. ‘여자 일’이 있거든요.”

건설 현장이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페인터 일은 여자 일과 남자 일이 분업되어 있다. 롤러질은 남자가, 섬세한 붓질은 여자가 한다. 요즘 그가 일하는 개포동 건설 현장 업무는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현관이나 창틀의 긁힌 부분에 새김질(붓질)을 하는 입주 전 A/S 업무를 하고 있다. 사진 이아름 기자

건설 현장이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페인터 일은 여자 일과 남자 일이 분업되어 있다. 롤러질은 남자가, 섬세한 붓질은 여자가 한다. 요즘 그가 일하는 개포동 건설 현장 업무는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현관이나 창틀의 긁힌 부분에 새김질(붓질)을 하는 입주 전 A/S 업무를 하고 있다. 사진 이아름 기자

-여자 일과 남자 일이 나눠져있는게 신기해요.

“같은 도장 안에서도 힘이 필요한 롤러질은 남자가 하고, 섬세함이 필요한 붓질은 여자가 해요. 일당은 남자 일이 2만원 정도 더 높고요. 사실 남자 일도 여자들이 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남자들이 더 많으니 굳이 여자에게 맡기지 않는 거예요. 제 입장에선 조금 불만이죠.”

-남자 일을 경험해본 적은 없었어요?

“건설 현장은 아니고 인테리어 현장에서 롤러나 에어리스 뿌리는 일을 해봤어요. 롤러가 무겁긴 해요. 남자들도 롤러질 하는 날엔 밥을 거의 1.5배 정도 더 먹을 정도로 체력 소모가 커요. 하지만 어렵지는 않은 일이고, 여자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여자·남자를 떠나 그냥 한 명의 일꾼으로서 할 수 있는 범위를 점점 넓혀가는게 목표에요.

-주변에서 여성임을 자각하게 하는 말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서른이 넘었으니 어르신들 보기엔 결혼 적령기잖아요. ‘좋은 집에서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애들 보고 살림이나 하라’는 말을 덕담처럼 해주세요.”

일용직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세대 차이가 있다는 게 슬기씨의 생각이다. 먹고살기 위해 떠밀리듯 일을 시작한 윗세대와 달리 자신은 적극적으로 이 직업을 ‘선택’한 점이 다르다고 했다.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있지만, 자식들은 조금 더 ‘나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사실 대부분이에요. ‘서울에서 좋은 대학 나왔는데 왜 이런 일을 하는지’도 정말 많이 궁금해하죠. 그래도 선택의 이유를 듣고나선 ‘오히려 네가 똑똑한 걸 수도 있겠다’고 말씀해 주세요.”

페인터 서슬기씨는 먹고 살기 위해 떠밀리듯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 직업을 ‘선택’했다. 사진은 그가 일할때 쓰는 카트. 붓과 페인트, 마스킹 테이프, 롤러 등 업무도구. 군데군데 페인터로 얼룩진 바지에 대해 질문했더니 일할 때 입는 옷들은 한달 쯤 입고 더 이상 입을 수 없으면 교체한다고 했다. 사진 이아름 기자

페인터 서슬기씨는 먹고 살기 위해 떠밀리듯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 직업을 ‘선택’했다. 사진은 그가 일할때 쓰는 카트. 붓과 페인트, 마스킹 테이프, 롤러 등 업무도구. 군데군데 페인터로 얼룩진 바지에 대해 질문했더니 일할 때 입는 옷들은 한달 쯤 입고 더 이상 입을 수 없으면 교체한다고 했다. 사진 이아름 기자

페인터가 느끼는 ‘보람’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커리어 고민도 조금씩 생긴다. 페인터들은 보통 한 현장에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씩 일을 한다. 지금까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두 곳, 그 이후엔 지인이 소개해 준 회사를 통해 세 곳의 현장을 경험했다. 회사와는 보통 한달 단위로 용역 계약을 맺는데, 솜씨 좋고 성실한 일꾼들에겐 회사에서 먼저 연장 제의를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안정적으로 일감을 얻을 수 있어 좋았지만, 요즘은 지방 출장이 잦아지면서 재계약을 고민 중이다.

-근무 시간은 어떻게 돼요?

“오전 7시에 전체 작업자 회의가 있어서 6시30분까지 출근해요. 그리고 오후 4시쯤 퇴근하죠. 주 6일 근무가 기본이고, 공휴일에도 일을 해요. 6월에는 나흘 쉬었는데 야근까지 계산하면 한 달에 28일 정도를 일한 셈이네요.”

-페인터의 단점이 있다면요.

“일단 일찍 출근하는 게 힘들고요. 요즘 크게 느껴지는 건 날씨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다는 거예요. 더울 땐 일하기가 힘들고, 추울 땐 일 구하기가 힘들어요. 특히 혹한기에는 건설 현장이 올 스톱이에요. 물을 섞어 쓰는 수성 페인트를 주로 쓰는데, 페인트가 얼었다가 녹으면서 벗겨지곤 하거든요.”

-위험하진 않아요?

“크고 작은 위험은 있죠. 건물이 지어지는 초기엔 자재들도 여기저기 널려있고, 바닥에 철근 같은 것도 뾰족 튀어나와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사다리 올라갔을 때 낙상 위험을 많이 느껴요. 안전 수칙 상으로는 사다리 최상단을 밟지 못하게 되어있는데, 일을 하다 보면 더 높은 사다리를 가져오는게 쉽지 않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인터로 일하는 이유를 하나만 꼽아달라고 하자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보람 있기 때문”이라 답했다. “내가 배운 이 기술을 다른 사람을 돕는데 사용할 수 있잖아요. 가까이는 저희 집 가구나 친구 오토바이를 도색해 줄 수도 있고, 멀게는 집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요.”

서슬기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슬기로운 뺑끼생활> 캡처. 위 사진은 서슬기씨가 도색 작업 전 오염이나 손상을 막기 위해 보양작업을 하는 장면, 아래는 쉬는날 친구 오토바이를 도색해주는 장면이다.

서슬기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슬기로운 뺑끼생활> 캡처. 위 사진은 서슬기씨가 도색 작업 전 오염이나 손상을 막기 위해 보양작업을 하는 장면, 아래는 쉬는날 친구 오토바이를 도색해주는 장면이다.

-유튜브를 시작한 것도 건설현장 기술직에 관심이 있는 또래 여성들에게 정보를 주기 위해서라고요.

“현장에서 젊은 여자들을 더 많이 보고 싶었어요. 저도 이모들처럼 일도 같이 구하고 불만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짝꿍’을 찾고 싶거든요. 요즘 ‘취업난이 심하다’ 하지만 이런 진로도 있다는 걸 아예 생각조차 못 하는 사람들. 혹은 생각을 해도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제가 먼저 부딪히며 그 길을 가봤기 때문에 전해줄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사람에게 페인터를 추천하고 싶나요?

“몸쓰는 직업이다 보니 체력이 약한 사람들은 맞지 않을 거예요. 불규칙한 소득과 일자리를 힘들어하는 사람도요. 저처럼 활동적인 일을 찾는 사람, 눈에 보이는 결과물에 만족감을 느끼고 싶은 사람, 그리고 해외 취업을 염두에 두는 사람에게는 추천해요. 일반 사무직 연봉보다는 높기 때문에 돈 많이 벌고 싶은 여성에게도 추천해요.”

여성·블루칼라·청년 노동자라는 드문 정체성을 가지고 건설 현장의 벽을 조금씩 깨나가고 있지만, 페인터 서슬기는 ‘투사’라기보다 한 명의 ‘직업인’이다. 블루칼라 노동을 얕잡아보는 세상의 시선에도 초연했다.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있는 사람 특유의 여유와 단단함이 그에게는 있었다. 사진 이아름 기자

여성·블루칼라·청년 노동자라는 드문 정체성을 가지고 건설 현장의 벽을 조금씩 깨나가고 있지만, 페인터 서슬기는 ‘투사’라기보다 한 명의 ‘직업인’이다. 블루칼라 노동을 얕잡아보는 세상의 시선에도 초연했다.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있는 사람 특유의 여유와 단단함이 그에게는 있었다. 사진 이아름 기자

여성·일용직·청년 노동자라는 드문 정체성을 가지고 건설 현장의 벽을 조금씩 깨나가고 있지만, 그는 ‘투사’라기보다 한 명의 ‘직업인’이다. 블루칼라 노동을 얕잡아보는 세상의 시선에도 초연했다.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있는 사람 특유의 여유와 단단함이 그에게는 있었다.

-‘블루칼라 노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편견이 있어요.

“편견은 아니에요. 기술만 배운다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겸손해야 하고, 성실해야 하고, 용기도 있어야 하죠.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어요.”

인터뷰 내내 그는 “배울 수 있는 직업이라 좋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페인트 종류도 많고 작업의 방식도 다양한 만큼 자신이 어디까지 배울 수 있을지가 기대된다고 했다. “경력 많은 기술자분들도 ‘배우는데 끝이 없다’고 하거든요. 어떤 직업이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끝인 것 같아요.”

“페인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페인터 서슬기씨의 업무 도구들  사진 이아름 기자

“페인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페인터 서슬기씨의 업무 도구들 사진 이아름 기자


심윤지 기자 sharpsim@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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