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 박살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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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유리천장 박살 프로젝트 3화



지난해 한국의 임금노동자 2044만6000명 중 여성은 908만5000명이었다. 이 중 비정규직이 409만1000명이었다. 전체 정규직 노동자 1302만명 중 여성 비중은 38.4%였다. 여성 5명 중 1명(22%)은 고용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했다. 10명 미만으로 확대하면 40%다.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는 전체 여성노동자 중 9.6%였다. 남성노동자 중 5명 미만,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율은 각각 14.3%, 16.1%였다. 모든 세대에서 여성들은 임금차별을 겪었다. 지난해 가장 임금 차이가 작은 20~24세 구간에서 여성들은 남성 임금의 93.8%를 받았고, 50대에선 남성의 절반 수준만 받았다.(이상 2020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엄마보다 더 배워도, 경력단절 없어도… 딸의 임금차별은 그대로였다[플랫]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보다 앞선 지 12년이 지났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일터에서 어머니 세대와 같은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경향신문이 만난 20~60대 일하는 여성 5명은 모두 저마다의 성차별 경험을 이야기했다. ‘가부장적 일터’라는 거대한 자장(磁場) 속에서, 이들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은 비슷한 이유로 닮은꼴 궤적을 그려가고 있었다.

청소·돌봄노동 주변부만 맴도는 고령 여성들



요양보호사와 청소노동자. 고용노동부에서 50대 이상을 위해 운영하는 취업알선사이트 ‘장년워크넷’에 접속하면 가장 먼저 찾아볼 수 있는 채용공고다. 요양보호사의 평균연령은 60세(서울시, 2019년 서울시 요양보호사 처우개선 방안 연구)다. 청소노동자 평균연령도 59.5세(고용노동부, 2020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다. 가정에서 가사와 돌봄노동을 제공하던 고령 여성들은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려 청소나 돌봄노동을 선택한다.

고용노동부에서 50대 이상을 위해 운영하는 취업알선사이트 ‘장년워크넷’에 접속하면 가장 먼저 찾아볼 수 있는 채용공고는 요양보호사와 청소노동자다. 가정에서 가사와 돌봄 노동을 제공하던 고령 여성들은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려 청소나 돌봄노동을 선택한다. 장년 워크넷 캡처

고용노동부에서 50대 이상을 위해 운영하는 취업알선사이트 ‘장년워크넷’에 접속하면 가장 먼저 찾아볼 수 있는 채용공고는 요양보호사와 청소노동자다. 가정에서 가사와 돌봄 노동을 제공하던 고령 여성들은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려 청소나 돌봄노동을 선택한다. 장년 워크넷 캡처

1955년생 김인자씨(66)는 2010년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면서 지역 요양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11년차인 그는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환자들의 정신적인 문제까지 보살펴야 하는 등 아주 전문적인 일이지만 어제 자격증을 딴 사람이나 11년 된 저나 임금이 똑같다”며 “안정적이지도 않고 대단한 직업도 아니라 일자리가 필요한 고령의 여성들이 마지못해 일하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한 달동네에서 태어난 김씨는 “동네에서 중학교에 들어간 여자는 둘뿐”이라며 “다들 청계천 피복 공장, 출판 제본 공장에 다녔다. 어머니는 가난했지만 딸이라도 가르치려고 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공단 등에서 일하던 그는 결혼해 아이를 낳고는 10여년 일을 쉬었다. 그는 “우리 때는 아이를 낳으면 보낼 데가 없었다”며 “남편과 사별하고 나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유통사업에 뛰어들었던 김씨는 14년 전 사업을 정리하고 청소노동을 시작했다. 55세에 퇴직한 뒤에는 요양보호사가 됐다.

1965년생 손모씨(56)는 경리, 커피숍 서빙 직원 등을 거쳐 청소노동자가 됐다. 손씨는 연년생인 첫째 오빠를 뒷바라지하느라 대학에 가지 못했다. 오빠가 의대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는 광주의 한 제조업 회사에서 경리로 일했다. 외국에서 손님이 오니 술자리에 참석해 접대를 하라는 지시를 듣고 2년 만에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길로 서울로 올라와 커피숍 서빙, 경양식집 카운터 등을 거치며 닥치는 대로 일했다.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가 어려워질 때쯤 손씨는 ‘월급쟁이’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당시 청소노동을 하던 지인의 소개로 지금 직장에 취직했다. 손씨는 “50이 넘으면 여성노동자들이 갈 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임금 상승기에 찾아오는 경력단절, 재취업까진 8년



여성 3명 중 1명은 경력단절을 경험한다. 2019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경력단절여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들이 경력단절 이후 다시 일자리를 얻기까지는 평균 7.8년이 걸린다. 경력단절 후 첫 일자리 월 임금은 평균 191만5000원으로 경력단절 전 218만5000원보다 12%가량 줄어든다. 한창 임금이 상승할 시기에 8년가량의 경력단절을 겪으면서 오히려 8년 전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엄마보다 더 배워도, 경력단절 없어도… 딸의 임금차별은 그대로였다[플랫]

1976년생 A씨(45)는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기 전까지 새마을금고에서 6년간 일했다. 2003년 결혼 후 아이를 낳고는 5년간 일을 쉬었다. 2008년에는 다섯 살 된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한 대형 아웃렛에서 계산대 업무를 시작했다. 매니저 등을 거치며 6년 가까이 일했지만 협력업체 소속이라 발전이 없다고 느껴 그만뒀다. 그는 2016년부터 한 대형마트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일한다. 주 5일 하루 7시간을 일한 후 세후 140만원가량의 월급을 손에 쥔다. 그는 “아무리 오래 다녀도 월급이 똑같고, 정규직이 아니라 진급이 없다”고 말했다.

증권사에 다니는 1982년생 김모씨(39)는 경력단절 없이 계속 일해왔다. 김씨는 첫 직장을 “남자가 여자를 부리는 회사”였다고 표현했다. 그는 “상사들은 다 남자이고 사원들은 남녀가 섞여 있었다. 회식 자리에서 항상 상무 옆에 여자를 앉히는 등 후진적 문화가 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네 번 이직했다. 지금 직장이 다섯 번째인 김씨는 어린이집이 마지막 이직의 주요한 요인이었다고 했다. 그는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다. 사내 어린이집이 있으면 연봉을 올리는 것 이상의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네 번째 직장까지 비정규직이었던 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정규직이 됐다. 적당한 시기에 육아휴직을 사용할 계획이다.

경력단절 전에도… “같은 ‘스펙’이면 무조건 남자가 뽑혔다”



김창환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력단절 이전 여성은 차별받지 않는가> 논문에서 경력단절을 겪기 이전인 대학 졸업 직후의 여성 청년들도 차별에 따른 임금격차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논문에 따르면 군복무로 인한 연령 격차 외에 다른 인적 자본의 차이가 없는 대학 졸업 2년 이내의 20대 대졸 여성노동자의 소득은 남성에 비해 19.8% 적다. 같은 대학에서 같은 분야를 전공했는데도 나타난 차이다.

논문은 이 차이를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차별이라고 봤다. 김 교수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차별이 만연한 상태에서 여성의 경력단절 완화에 중점을 둔 정책은 한계가 있다”며 여성 경력단절뿐 아니라 노동시장 진입 초기의 여성에 대한 차별까지 시정하려는 정책개발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성차별이 먼 일이라고 느꼈던 1993년생 B씨(28)는 취업준비를 하면서 성차별을 비로소 실감했다. 여자 동기들은 1년 이상 취업준비를 해도 취직이 어려운데, 남자동기들은 한 학기 만에 대기업에 척척 들어갔다. “남녀가 똑같은 스펙이면 무조건 남자가 뽑혔다”고 그는 말했다. 2019년 대기업에 취직한 B씨는 입사 동기들 사이에서도 여성과 남성 간 확연한 ‘스펙 차이’를 느꼈다.

그는 “남자 동기들은 토익 성적이 900점을 넘는 사람이 없었고, 외국어 자격증도 없었다”며 “여자 동기들은 외국어를 원어민처럼 하고, 대학도 소위 서울 유명대를 나왔다”고 했다. B씨의 직장에서는 높은 직급의 여자 선배를 찾아보기 어렵다. 여자 부장은 단 한 명도 없고, 차장만 한 명 있다. B씨는 유일한 여성 차장에게 회사가 매년 임신 계획을 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B씨는 “내가 일을 못해서 승진을 못할 수는 있어도 여자라서 승진할 수 없는 회사는 다니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엄마보다 더 배웠어도, 세대불문 차별 쳇바퀴



91년 11월 18일자 경향신문 생활그림판에 올라온 성별 대학진학률. 중장년층은 여자라는 이유로 대학에 가지 못했다.

91년 11월 18일자 경향신문 생활그림판에 올라온 성별 대학진학률. 중장년층은 여자라는 이유로 대학에 가지 못했다.

전 연령에 걸쳐 여성은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다. 중장년층은 여자라는 이유로 대학에 못 가고, 임신·출산 때문에 경력이 단절되면서 점점 더 ‘질 낮은 일자리’로 이동했다. 불안정 노동의 비율이 높고, 임금은 낮고, 노동강도는 높은 일자리들이다. 성별을 제외하고는 취업시장에서 남성보다 더 우월한 조건을 갖췄다는 경력단절 이전의 20대, 30대 초반 여성들도 성별임금격차를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을 개선하지 않고, 일·가정 양립 정책의 실현을 이뤄내지 못하면 유능한 여성 청년들도 앞서 중장년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점점 질 낮은 일자리로 수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점점 더 교육수준이 높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있음에도 10년 전에 비해 성별임금격차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김영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들은 노동시장 진입단계부터 차별을 겪고 있다. 경력단절 요인만 봐도 돌봄부담 외에 애초에 일하던 일자리가 저임금이고 열악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울고 싶은데 뺨 맞는 격’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것”이라며 “열악한 일자리로 여성들을 내모는 노동시장의 여성차별 자체를 교정하지 않으면 성별임금격차 고착화는 풀 수 없는 과제”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송현숙 논설위원 song@khan.kr
오경민 사회부 기자 5km@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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