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스마트폰 앱에서 주문 콜이 울렸다. 한노아씨(32)는 헬멧을 쓰고 스쿠터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달 26일 노아씨는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집에서 가까운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일을 시작했다.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받아 3km쯤 떨어진 신림동 한 빌라에 배달하는 것이 첫 주문이었다.
“배달기삽니다.” 계단 오르는 걸음이 분주했다. “안녕히 계세요.” 돌아서며 다음 주문을 확인했다. 노아씨는 이날 세 시간이 조금 안 되는 동안 순댓국, 피자, 스테이크, 치킨 등 8건의 배달을 처리했다. 숨을 돌리려 헬멧을 벗자,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배달하는 내내 노아씨의 품에는 분신처럼 중형필름카메라(마미야7)가 걸려 있었다.
다음날 오전 배달을 마친 노아씨가 강남구 선릉역으로 향했다. 전날 오토바이 배달에 나섰다가 화물차에 치어 숨진 노동자의 추모공간이 지하철역 출구 앞에 마련돼 있었다. 사고 오토바이 주변으로 국화꽃과 술병들이 놓였다. 노아씨는 잠시 예를 갖춘 뒤 카메라를 들었다.
배달가다 내려 헌화하거나, 신호 대기 중에 추모공간을 바라보는 라이더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그는 깊이 주시했고, 신중하게 셔터를 눌렀다. 오가는 시민들이 애도의 마음을 전했지만, 일부 조롱 섞인 말을 툭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노아씨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한노아씨는 광고, 행사 등 상업사진을 찍는 작가다. “코로나 이후 일거리가 많이 줄었어요. 4월부터 배달노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생계와 사진작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라고 했다. 배달노동자가 되고 ‘배달의 삶’이 새롭게 보였다. “지금 시대상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고, 그래서 기록을 하게 됐습니다.” 노아씨는 “소명 같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과 일 사이에 한 컷 한 컷 질문하듯 사진을 찍었다. 최첨단 인공지능(AI)시스템이 바꿔놓은 배달 풍경을 수동카메라로 찍고 필름을 직접 현상·인화하는 아날로그방식으로 작업했다. “더 무겁게 책임을 지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자세”였다.
앞서 노아씨는 배달해서 모은 돈을 모두 털어, 사진전 <오니고 On y Go>를 열었다. ‘오니고’는 불어와 영어를 합친 조어로 ‘가즈아’ 정도의 뜻이다. 대표작 중에 배달통에 “모든 상황 죄송합니다”라고 매직으로 쓴 손 글씨 사진은 배달노동자에 대한 따가운 시선과 그럼에도 어찌할 수 없는 시스템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AI의 지시를 기다리는 라이더, 스쿠터 거울에 비친 채 멀어져가는 서울의 아파트 등 청년노동자이자 작가인 노아씨의 시선이 오롯이 담겨있다.
사진은 모두 흑백이다. “배달원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개별성이 배제된 존재,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사회의 시선을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노아씨는 배달라이더 속으로 깊이 들어간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헬멧과 마스크를 벗은 고유한 개인들을 기록할 계획이다.
“(배달은)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을 보게 될 지 설레게 하는 일”이라던 노아씨는 요 며칠 연이은 오토바이 사망사고와 극심해진 ‘라이더 혐오’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진작가이자 배달노동자인 한노아씨는 다시 스쿠터에 오른다. 시대에 질문을 던지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면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배달’ 없이 이 시대를 설명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