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의 명절은 올해도 힘들다...기혼여성 55.8% “추석 스트레스”읽음

문광호 기자
‘82년생 김지영’의 명절은 올해도 힘들다...기혼여성 55.8% “추석 스트레스”

김지영씨와 정대현씨의 어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을 부치고, 튀김을 튀기고, 갈비를 찌고, 송편을 빚고, 중간중간 밥을 차렸다. 가족들은 막 만들어진 명절 음식들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중략) “자기 가족 먹이려고 음식 하는 게 뭐가 고생이야? 명절이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음식 만들고, 먹고, 그러는 재미지.” 그리고 어머니는 갑자기 김지영씨에게 물었다. “얘, 너 힘들었니?”

2016년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일부다. 이 책이 나온 지 5년이 지난 올해도 명절을 맞는 기혼 여성의 사정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고 1984년생 김모씨(37)는 말했다. 김씨는 지난 2월 설 명절에도 “힘들었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김씨는 “머리로는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행동을 하려고 하면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들이 모이면 사람이 많으니 누군가는 밥을 차려야 하지 않나. 시어머니는 ‘들어가서 쉬어라’라고 말은 하지만 남자들은 자연스레 빠지고 결국 어머니 혼자 밥을 하게 되는 상황이 되니 마음이 편치 않게 되는 거다”라고 말했다.

83년생 박모씨(38)가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도 비슷하다. 미혼여성인 박씨는 “‘나는 안 할거야’라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며 “결혼해 시댁에 가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고들 하더라. 며느리가 대접받는 세상이 올지 모르겠다. 구조적인 문제는 변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 출간 이후 5년이 지난 올해, 추석을 앞두고 여성들은 ‘명절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고 있을까. 경향신문이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에 의뢰해 지난달 24일부터 27일까지 직장인 30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여성들이 느끼는 명절 가사노동 부담과 스트레스는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남성과의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추석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한 여성(47.0%)은 남성(32.9%)보다 14.1%포인트 더 많았다. 특히 기혼자의 경우 스트레스를 받는 여성(55.8%)이 남성(30.2%)보다 25.7%포인트 더 많았다. 4년 전인 2017년 1월 설날을 앞두고 ‘사람인’이 성인남녀 96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한 여성이 62.3%로 남성(44.2%)보다 18.1%포인트 더 많았다. 코로나19 유행으로 명절 가족모임을 건너뛰는 경우가 생기면서 남녀 공히 명절 스트레스가 줄어들었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남녀 격차는 더 커진 것이다.

추석에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로 기혼여성은 ‘시댁 식구들 대하기 부담스러워서’(38.6%·복수응답)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용돈, 선물 등 많은 지출이 걱정돼서’ 33.7%, ‘음식 준비 등이 힘들어서’ 28.9% 등 순이었다. 기혼여성이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으로 지목한 대상은 시부모(41.1%), 시누이 등 시댁 식구(28.5%), 배우자(28.0%) 순이었다. 반면 기혼남성은 ‘용돈, 선물 등 많은 지출이 걱정돼서’(32.7%), ‘코로나19 거리 두기 수칙을 위반하는 것 같아서’(30.7%), ‘처가 식구들 대하기 부담스러워서’(24.8%) 등을 스트레스 이유로 들었다. ‘음식 준비 등이 힘들어서’라고 응답한 기혼남성은 7.9%에 불과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전히 여성들이 명절 스트레스를 더 받는 건 쉽게 바뀌지 않는 규범 때문”이라며 “규범은 따를 때는 부담을 주고 따르지 않으면 죄책감이 생기게 한다”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82년생 김지영’이 굉장히 많은 영향을 끼쳤고 여성들의 의식도 많이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지역 공동체의 축제였던 명절의 의미를 되살려 가족 모두가 노동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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