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낮 12시11분.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앞에서 배달 라이더 허진호씨(가명·32)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넘어졌다. 갑자기 유턴하는 차량을 피하려다 균형을 잃으면서 벌어진 사고였다. 다행히 차량과 충돌은 없었고 넘어지는 과정에서 바닥에 부딪히면서 허씨는 찰과상을 입었다. 오토바이에 실린 배달통에 담겨있던 음식은 길바닥에 쏟아졌다. 처음 겪는 사고에 경황이 없었던 허씨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대로 도로에 주저 앉았다. 그 사이 유턴 차량은 그대로 주행하며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막막했던 허씨 주변으로 시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가장 먼저 그에게 다가온 시민은 “괜찮으세요? 119 불러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또 다른 시민은 바닥에 떨어진 허씨의 안경을 주워 건넸다. 그러는 사이 다른 시민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음식들을 챙겨 보행로로 옮기기 시작했다.
음식을 옮기던 한 시민은 허씨에게 ‘잠시 앉아 있으라’며 일단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마침 사고 현장 인근을 지나던 다른 배달 라이더는 유턴 차량을 쫓아갔다. 그는 차량 운전자에게 ‘사고가 났는데 왜 자리를 뜨느냐’고 따졌고, 유턴 차량은 이내 사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사고 현장 인근에 있던 택시 기사는 허씨에게 “사고 순간을 찍은 블랙박스 영상이 있으니 걱정 말라”며 안심시켰다.
불과 2~3분 사이 허씨 주변으로 10여명의 시민이 모여들었다. 어떤 이는 “어떻게 된 거냐. 그냥 넘어진 거냐, 혹시 차량에 부딪힌 건 아니냐”라고 물어보는가 하면 누군가는 “꼭 산재 처리를 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허씨는 시민들에게 연신 “감사합니다. 부러진 데 없어서 괜찮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사고 이후 시민들이 달려와 허씨를 챙기는 모습은 헬멧에 붙어있던 액션캠에 고스란히 담겼다.
허씨의 사고는 현재 서울 강남경찰서가 조사 중이다. 과실 여부도 따져야 하고, 본인의 치료도 받아야 하고 아직 해결해야 할 것이 많지만 허씨는 “이번 사고로 얻은 것이 많다”고 했다.
“그냥 사고가 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많은 분들이 와서 도와주셨어요. 안절부절하면서 저 대신 목격자를 확보려던 분도 있었고.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계속 물어봐 주신 분, 또 블랙박스 영상을 선뜻 건네주신 택시 기사님, 유턴 차량 쫓아가지 말라고 말해준 라이더님. 모두 너무나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허씨는 평소 배달 라이더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고 상처받았던 마음이 치유됐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온라인 공간은 배달 라이더 사고 소식이 알려질 때마다 피해자인 배달 라이더에 대한 혐오 목소리로 뒤덮인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는 걸 허씨는 알게 됐다.
“배달 라이더 기사에 달린 댓글과 현실은 달랐어요. 일상에서 만나는 분들, 실은 모두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됐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