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그룹으로 바뀐 그린피스 활동가 “내가 딱 하고 싶었던 일”

김태훈 기자
9월 6일 서울 용산구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에서 그린피스 활동가 4인이 대담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9월 6일 서울 용산구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에서 그린피스 활동가 4인이 대담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2021년은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창립 50주년이면서 동시에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 설립 10주년이 되는 해다. 서울사무소는 전 세계 57개국 지역사무소 중 하나다. 통상 그린피스 하면 과격한 활동가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그린피스의 구성원들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이력을 가진 전문가 그룹으로 바뀌고 있다. 국제기구 출신도 있고, 대형언론사 출신도 있고, 아쿠아리움 출신도 있다. 심지어 공해산업을 영위하는 기업 출신과 공무원 출신들도 그린피스에서 일한다. 지난 9월 6일 서울 용산구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에서 이들이 그려가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장다울 정책전문위원, 정상훈 캠페이너, 김연하 캠페이너, 최태영 커뮤니케이션 오피서가 참석했다.

장다울 정책전문위원 / 이준헌 기자

장다울 정책전문위원 / 이준헌 기자

-각자 어떤 임무를 하고 있나.

장다울 정책전문위원(이하 장) “한국의 환경단체들에선 대부분 활동가라고 표현하지만 그린피스 내에는 다양한 직책이 있다. 우선 캠페인 단체다 보니 특정한 캠페인 이슈에 대해 전문성을 가지고 이끌어가는 ‘캠페이너’가 있다. 또 비폭력 직접행동을 담당하는 ‘액션 코디네이터’, 시민과 만나며 참여를 이끌어내는 분들, 모금을 담당하는 분들도 있다. 나는 캠페인 정책이나 전략을 짤 때 자문을 하고, 또 우리 캠페인 대상이 되는 입법부나 행정부, 주요 기업에 로비하는 정책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정상훈 캠페이너(이하 정) “기후 참정권 캠페인의 캠페이너를 맡고 있다. 정부나 국회에서 기후위기 정책이 수립되고 법제화될 수 있게, 더 나아가 선거에서도 기후위기 문제가 의제가 될 수 있게 하는 캠페인을 이끌고 있다.”

김연하 캠페이너(이하 김) “공해상의 해양보호구역 확대를 위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해양 캠페이너다.”

최태영 커뮤니케이션 오피서(이하 최) “탈원전 캠페인과 생물다양성 캠페인을 맡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오피서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데 사실 쉽게 말하자면 일반 기업의 홍보 업무랑 아주 비슷하다. 주로 언론매체를 통해 우리의 어젠다와 메시지를 대중에게 더 잘 전달할 방법을 찾는 일을 한다.”

-각자 다른 분야에서 전문적인 일을 하다 그린피스로 온 것으로 안다. 어떤 계기로 그린피스로 이직하게 됐나.

김 “그린피스 전에는 아쿠아리움 마케팅팀에서 일했다. 해양생물을 매일 가까이에서 접하고 이 생물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어 대중에 전달하는 마케팅 업무를 했다. 그곳이 해양동물을 구조·치료하는 기관이기도 해 서해·남해에서 상괭이가 그물에 걸렸다고 구조요청이 들어올 때도 많았다. 그때 해양생물팀이랑 같이 현장으로 출동해 구조하거나 데려와 치료한 뒤 방류하는 활동까지 진행한 적도 많았다. 이런 일련의 활동을 하면서 최전방에서 바다보호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그러던 중 그린피스 해양 캠페이너 직책을 발견하고 들어와 지금까지 오게 된 거다.”

최 “나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정도 대기업 화학회사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홍보라는 일이 한 집단과 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거라 이왕이면 내가 더 관심 있는 분야, 그러니까 이런 환경 분야에서 홍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 그린피스에 왔다. 사기업에 있을 때는 어느 순간부터 비슷한 경험이 계속 반복된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고, 세상과 교류한다는 느낌도 별로 들지 않더라. 그렇게 권태감이 들 무렵 마침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한다길래 ‘차라리 잘됐다, 지금이다’ 해서 이 기회에 좀더 넓은 세상으로 뛰어들어 진짜 원하는 걸 한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PR인의 교과서라 불리는 책을 보면 ‘PR인들은 자신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진실하다고 스스로 믿어야 한다’고 돼 있는데 내가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진실되게 홍보를 할 수 있겠더라.”

장 “대학생 때부터 환경운동에 참여했고 환경정책과 환경과학 쪽으로 유럽으로 유학도 갔다 왔다. 개발이 늦은 아시아가 자연과 전통문화를 덜 파괴하면서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는 쪽으로 뭔가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유엔에서 아시아 23개국에 지속가능한 교통시스템을 구축하는 프로젝트 연구원으로 한 2년 일한 적 있다. 그때 일했던 유엔 기구가 일본에 있었는데,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거다.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이제는 한국도 에너지 전환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에 들어왔는데 마침 그린피스가 그때 서울사무소를 냈다. 그때 시기가 맞지 않아서 다른 국제개발협력 싱크탱크에서 일하다가 2013년에 내가 관심 있었던 탈원전 캠페인 담당 직책에 모집공고가 나서 ‘이거는 내 길이다’ 하고 지원했다.”

정상훈 캠페이너 / 이준헌 기자

정상훈 캠페이너 / 이준헌 기자

정 “나는 진로를 놓고 본격적으로 고민할 무렵 기자를 할지 아니면 NGO 쪽으로 갈지 많이 고민했다. 솔직히 생계에 관한 부분도 걱정이 돼서 그때는 기자를 택해 한 7년 정도 일을 했다. 그러다 그 일이 나랑 안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둔 뒤 그냥 무작정 영어라도 공부하자 싶어 호주로 가 직업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 그 뒤 한국에 다시 돌아와 사업을 하면서 태풍 때문에 물에 잠기는 피해도 입어보고, 잠깐 지방 공기업에서도 일을 해봤다. 그러다 우연히 그린피스 모집공고를 보게 됐는데 딱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기회라 생각해 들어왔다. 실제로 들어와 해보니 일도 재미있더라.”

-그린피스의 캠페인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정부와 기업, 입법부 등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전 경력을 통해 쌓은 전문성이 이 캠페인 현장에서 도움이 되나.

장 “그린피스의 여러 캠페인은 정부나 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둬야 진행이 잘된다. 짧게라도 공무원 생활도 해봤고, 두뇌집단에 있으면서 아시아의 개도국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보기도 했다. 또 유엔에서는 다양한 조건에 처한 국가들이 하나의 공동 목표를 향해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도 지켜봤다. 우리 그린피스도 다른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목표가 있지 않나. 그 목표가 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그걸 이루려면 어떤 조건들이 맞아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과거 직장에서의 경험들, 그러니까 상충되는 이해관계 속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힘의 차이를 바꾸는 방법을 고민했던 게 그린피스에 와서 도움이 되고 있다.”

정 “기자는 취재원이 어떤 것을 필요로 하고, 나는 그에게서 어떻게 정보를 얻을 수가 있을지에 대한 전략적인 사고를 해야 하지 않나. 또 어떤 주제로 기사를 써야 대중한테 먹힐지, 아니면 내가 뭔가 바꿔야 할 주제에 대해 어떻게 사람들이 원하는 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을지 그런 고민을 항상 해야 하는 일이니까. 거기에다 라디오 방송과 인터넷 송고를 같이 하면서 순발력이 늘었던 점도 그린피스에서 일하는 데 많이 도움이 됐다.”

김연하 캠페이너/ 이준헌 기자

김연하 캠페이너/ 이준헌 기자

-한국이 시급하게 대처해야 할 환경문제를 제대로 대응하고 있지 못한 모습이 보이나.

김 “7월 동해 수온이 관측을 시작한 이래 23년 만에 최고 온도인 24.9도까지 올라갔다. 바다 수온이 높아지면 당연히 해양생태계 자체가 훼손된다. 어패류가 상하는 등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것을 섭취한 사람들도 A형 간염 같은 질병에 고생하게 된다. 이렇게 피해가 연이어지는 문제는 지구 전체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지상에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해양보호를 함께해야 하는 이유는 바다가 대기에 있는 열과 탄소를 흡수한 뒤 열을 순환시키는 작용을 돕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활동으로 20년 동안 발생한 탄소의 약 25%를 바다가 흡수할 정도니까. 그러니 바다가 건강하게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되면 우리가 사는 육지도 더 뜨겁게 달궈질 거다. 그런데 한국이 올해 초 해양환경종합계획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해상의 해양보호구역을 현재 9.2%에서 2030년까지 20%로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국제적인 목표 수준인 30%에는 미치지 못한다.”

최 “기후위기와 해양보호문제, 생물 다양성, 원전문제 등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환경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탄소중립을 외치는 건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 모두 많이 하고 있는데, 사실 그 내면을 보면 이미지만 챙기고 그냥 선언에만 그친 경우도 많다. 심지어 환경을 내세우면서 결과적으로는 환경을 해치는 경우도 친환경이라고 포장하기도 한다. 이런 왜곡을 구분해 내려면 시민이 환경문제에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또 팩트를 더 많이 알고 있어야 책임 있는 환경정책과 친환경 경영을 요구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에서는 그린피스가 상당히 급진적이고 과격하게 활동한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 “시민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은 든다. 우리가 지금 하는 얘기가 2050년까지 탄소배출 없는 탄소중립으로 가자는 건데, 아무 정보가 없는 사람들한테는 왜 갑자기 그렇게 해야 하냐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목표치는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서 기후위기가 극단적인 현상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내놓은 거다. 시민이 몰랐던 사실을 이제 우리가 계속 알려주는 것이다. 어쨌든 지속적으로 소통과 설득을 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장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에 누군가가 ‘미래에 어떤 감염병 문제가 생겨 전 국민이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써야 하고 자영업자들의 영업행위도 제한하고 9시 이후에는 3인 이상 못 모이게 하는 정책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했다면 다들 미쳤다고 했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그 상황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 기후위기는 코로나19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큰 위기다. 그러니까 이 위기가 위기로 다가오지 않는 상황 때문에 해결책마저 극단적이라고 보일 수도 있다. 사실 환경단체가 항상 고민하는 지점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이야기와 시민 또는 이해관계자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 사이 어느 지점에서 선을 그을지, 그게 되게 힘들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 이상 감축해야 한다고 우리도 공식적으로 얘기하고 있으나 사실 기후과학으로 보면 70~90% 이상을 줄여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역시 시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활동해야 하는 단체다 보니 협상을 해 얘기할 대상이 아닌데도 어느 정도는 타협해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태영 커뮤니케이션 오피 / 이준헌 기자

최태영 커뮤니케이션 오피 / 이준헌 기자

-환경을 지키는 사회적 가치에 더 중점을 두고 살아가는 환경단체에서의 삶이 개인적인 만족감도 더 높였는지 궁금하다.

최 “업무량은 기업에 있을 때보다 조금 더 늘었지만, 오히려 만족감은 더 높아졌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우리 회사가 공장을 증설했다는 보도자료를 내는 것보다 사회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게 더 매력적이니까. 그린피스에 와서 만들어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고 어떤 친구들은 연락도 하고 우리 활동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일상에서 변화를 체감할 수 있으니 만족감도 크다.”

김 “생애주기 중 어느 한 구간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린피스에서의 일도 감사하게 여긴다. 특히 바다 보호 메시지 활동에 시민이 참여해 힘을 보태주는 걸 보면 뿌듯하다.”

정 “예전 직장보다 업무문화도 수평적이고, 국제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일을 하니 보람도 느낄 수 있다. 사실 경제적으로는 좀 보수가 적을 순 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는 대신 내 가치관을 믿고 내 삶을 중심에 두면 그런 문제는 해결된다.”

장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늦게 창설된 편이다. 내게는 그린피스가 전문성과 만족감이 모두 조화를 이루는 정말 만족스러운 일터지만 한편으로는 언젠가 서울사무소가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그린피스에선 지역사무소를 환경문제에 미치는 우선순위를 고려해 문을 열기 때문이다. 한국의 환경문제가 해결돼 서울사무소가 아름다운 퇴장으로 사라지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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