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밝혀지니 군대는 나를 정신병원에 가뒀다읽음

조해람 기자
군부대에서 ‘성소수자’임을 밝혔다가 정신병원에 갇혔던 시각예술 작가 강영훈씨가 15일 서울 서대문구 청년예술청 그레이룸에서 전시를 앞둔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1-09-15 / 이석우 기자

군부대에서 ‘성소수자’임을 밝혔다가 정신병원에 갇혔던 시각예술 작가 강영훈씨가 15일 서울 서대문구 청년예술청 그레이룸에서 전시를 앞둔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1-09-15 / 이석우 기자

“오후 10시, 취침 소등하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잡아.”

내무실 불이 꺼지면 성희롱과 괴롭힘이 시작됐다. 선임들은 그가 움직이지 못하게 팔다리를 잡았다.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말투가 부드러운 그를 선임들은 유독 괴롭혔다. 냉동만두 6봉지를 폭식시키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그를 간부가 불러 무슨 일인지 물었다. “당시엔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말을 못 했어요. 내가 남자답지 않아서 그런 일을 당한다고 자책할 때였죠.” 아버지를 대하듯 편안하게 말해보라고 간부는 말했다. 그는 간부가 자신을 보호해주리라 믿고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고백했다.

다음날 전 부대가 그 사실을 알았다.

■성소수자 밝히니 군 정신병원에…‘D.P’속 군대문화 성소수자에겐 더 가혹

2008년 이등병이었던 그는 지금 시각예술 작가로 활동 중인 강영훈(36·활동명 제람)이다. 군 복무 시절 성소수자임이 알려져 군 정신병원에 116일간 갇힌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부대에서 같은 고통을 겪은 성소수자 군인들의 증언을 편지 형식으로 세상에 드러내는 프로젝트다. 16일 서울 서대문구 청년예술청에서 전시를 연다는 그를 지난 14일 만났다.

“드라마 ‘D.P’가 나오고 군대 내 가혹행위가 조명되지만, 그동안 숱하게 있었는데 말 못할 뿐이었던 거죠.” 강씨의 눈에 군대는 ‘남성성’과 ‘계급’의 수직 구조로 세운 폭력적인 공간이다. 특히 “본인들의 기준과 구조에서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여성·성소수자에게 폭력은 고여든다. 성소수자임을 밝히기 전에도 선임들은 강씨에게 성희롱과 가혹행위를 저질렀다. 성적 지향이 드러난 뒤엔 성적 조롱과 희롱이 더 노골화됐다. 모두가 모인 아침 조회에서 공개적으로 조롱하기도 했다.

군부대에서 ‘성소수자’임을 밝혔다가 정신병원에 갇혔던 시각예술 작가 강영훈씨가 15일 서울 서대문구 청년예술청 그레이룸에서 전시를 앞둔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1-09-15 / 이석우 기자

군부대에서 ‘성소수자’임을 밝혔다가 정신병원에 갇혔던 시각예술 작가 강영훈씨가 15일 서울 서대문구 청년예술청 그레이룸에서 전시를 앞둔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1-09-15 / 이석우 기자

커밍아웃 후 더 힘들어하는 그에게 부대는 ‘독방’ 또는 ‘정신병원’이라는 선택지를 내밀었다. “1초도 부대에 있기 싫었다”는 강씨는 정신병원행을 택했지만 그곳도 가혹하긴 마찬가지였다. 강제 투약과 철창 면회가 이어졌고,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다. ‘부적합’ 판정을 받고 전역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정부와 군을 상대로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했다. 사회로 나와 몸담은 스타트업에도, 출판사에도 군대 문화는 깊게 뿌리내려 있었다. “작업을 계속 할수록 성소수자 자체가 (독립된)이슈라기보다는 군대식 계급문화와 왜곡된 구조가 문제라는 생각도 들어요.”

■만남어플로 성소수자 ‘색출’한 군대

가부장적 군대문화에 부딪힐수록 ‘목소리’가 간절해졌다. 임종을 앞둔 외할머니가 남긴 말이 그를 크게 흔들었다. 외할머니는 병상에서 자신이 제주 4·3 생존자라고, 70년만에 처음 고백했다. 모두 죽었는데 총알이 빗나가 혼자 살았다고 했다. “‘너는 네 삶에서 겪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로 받아들였어요.” 국내 미대와 영국 유학을 거쳤다. 집안이 부유하지는 않았으나 어머니는 “배운 것으로 사회에 기여하라”며 그를 지원했다.

2017년, 성소수자 만남 앱을 이용한 육군의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을 영국에서 온라인 뉴스로 접했다.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로 23명이 입건되고 9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동성 군인 간 성적 행위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6항’으로 걸었다. 강씨는 “나는 영국으로 탈출해 있었지만 모두가 경험할 수는 없는 행운이었다”며 “힘을 나눠주고, 작은 목소리라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표현한 폰트 ‘길벗체’. 비온뒤무지개재단 제공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표현한 폰트 ‘길벗체’. 비온뒤무지개재단 제공

인터뷰 내내 그는 ‘목소리’를 강조했다. 시각예술가지만 그의 작품엔 늘 ‘글’이 들어간다.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여섯 빛깔 무지개’를 본따 폰트 ‘길벗체’를 제작하기도 했다(관련기사▶‘흑백논리’의 세상에 새긴 ‘무지개빛’ 위로···‘길벗체’는 이렇게 태어났다). 처음엔 ‘내게 말을 거는’ 언어였던 예술이 차별에 신음하는 다른 이들을 모으는 ‘등대’가 됐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작품 <You come in, We come out-Letters from Asylum>도 편지를 통한 증언이 주를 이룬다. 군형법 92조6항을 근거로 감금·처벌 등을 당한 군인 6명의 증언을 모았다. 증언자들이 편지를 직접 적는 작업이 일종의 ‘치유’라고 했다.

■“Who Cares?”…“I Care”

다른 성소수자들처럼 그에게도 올해는 유독 힘든 해였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성소수자를 보지 않을 권리도 있다”고 말했다. 혐오 발언이 공적 영역에서 퍼졌다. 퀴어축제 활동가 김기홍씨, 성적 지향을 이유로 전역당한 변희수 하사 등이 세상을 등졌다. 김씨는 강씨의 지인이기도 했다. “저는 단단한 사람이고 제 성적 지향도 알려져 있는데, 그럼에도 악몽을 꿨어요. 공기 같은 혐오에 누구든 압박을 받고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강씨는 ‘보지 않을 권리’를 두고 “남을 시야에서 치워버리고 없는 것처럼 만드는 것은 가진 자들의 특권이지 권리가 아니다”라고 했다.

2017년 10월 제1회 제주퀴어문화축제에서 김기홍 공동조직위원장이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행진하고 있다. 제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 제공

2017년 10월 제1회 제주퀴어문화축제에서 김기홍 공동조직위원장이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행진하고 있다. 제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 제공

갈 길은 멀지만 그럴수록 지치지 않고 목소리를 내겠다고 그는 말한다. 지난해 제주도에서 연 전시에 온 미국인 할아버지를 기억한다. 전시 토크를 마치고 강씨를 찾아온 그는 사실 자신이 미국에서 유명한 동성애혐오자 그룹의 리더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강씨에게 “나는 곧 사라지겠지만 나같은 사람도 변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말하고 떠났다. 한 사람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계속 활동할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성소수자 차별을 다룬 강씨의 이번 프로젝트는 2018년 영국의 한 미술대학 강의실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공동체 이슈를 예술로 다루는 전공수업 발표였다. 한 교수가 “이미 영국에서는 다 지나간 얘기다. 누가 신경쓰겠나(Who cares?)”라고 물었다. “한국에선 현재진행형”이라고 답했지만 속으로는 주저앉을 뻔 했다. 그때 맨체스터 출신의 윌이 일어나며 “내가 신경쓴다(I care)”고 말했다. 버밍엄 출신 제이크와 웨일즈 출신 베카에 이어 강의실에 있던 학생 20여명이 같은 말을 하며 일어났다. 강씨의 프로젝트는 그날로부터 4년째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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