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성평등 수준이 높은 사회에서 성평등 부처가 더 필요”

이주영·노도현 기자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각종 사회 문제의 원인을 ‘젠더 문제’로 연결시키며 여가부 존재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br />우철훈 선임기자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각종 사회 문제의 원인을 ‘젠더 문제’로 연결시키며 여가부 존재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성평등 수준이 높은 사회에서 오히려 성평등 부처가 더 필요합니다. 그 수준이 올라갈수록 성평등 민감성이 높아지고 필요한 대책이나 요구들이 많아지니까요.”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66·사진)은 ‘성차별이 상당부분 해소됐으니 여가부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어느 정치인과 생각이 정반대다. 여가부는 실질적 성평등 실현이라는 소임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할 부처가 아니라, 성평등한 사회일수록 역할이 커진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갖가지 이슈들은 여가부를 소환한다. 육해공군과 고위 공직자를 불문하고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 갈수록 진화하는 디지털성범죄, 여전히 공고한 유리천장과 코로나19로 여성에게 더 취약해진 노동시장, 학교와 가정을 떠난 청소년·한부모를 비롯한 지원 사각지대 등이 그렇다. 성평등 수준을 제대로 따져 보기도 전에 이 사회가 살펴야 할 여성·평등 의제는 차고 넘친다.

정 장관은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각종 사회문제의 원인을 ‘젠더 문제’로 연결시키며 여가부 존재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면서 “여가부가 정부 정책의 성평등 어젠다를 끌고 가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조직 위상이나 예산·인력 구조는 취약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자리·주거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젠더 문제에서 찾는 건 해법 안 돼”

정영애 여성가족부장관. 우철훈 선임기자

정영애 여성가족부장관. 우철훈 선임기자

법 개정 후 여가부 개입 여지 생긴
공공기관 내 발생 성폭력 사건들
“은폐되었던 일들 드러나게 될 것”

법 개정으로 여성가족부가 공공 부문 성폭력 사건에 정식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되고, 군 성폭력 사건 수사와 재판을 민간이 맡도록 한 변화를 두고는 “앞으로 훨씬 더 많은 부분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최근 정치권에서 성별 간 갈등을 조장하는 발언들이 쏟아지고 여가부 폐지 공약까지 나왔다. ‘이대남’(20대 남성) 표심이 주목을 받으면서 이런 경향은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심해질 것으로 보이는데.

“굉장히 뼈아프다. 여가부가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은데 ‘우리는 이런 것도 해요’ ‘그건 잘못된 정보예요’라고 끊임없이 사실관계를 바로잡으면서 에너지를 쏟는 건 낭비적이기도 하고 속상하다. 한편으로는 정당한 비판이라면 저희들이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군대나 주거, 일자리 같은 문제의 근본 원인이 젠더 문제일까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문제 제기를 할 만큼 절박하고 힘든 상황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원인을 잘 분석해서 풀어가야 해결할 수 있다. 핵심이 아닌 ‘젠더 갈등’으로 몰아가면서 여가부 자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맞지도 않고 대안이 될 수도 없다.”

- 여가부 업무를 한곳에 맡겨놓을 게 아니라 각 부처로 분산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나.

“뉴질랜드, 독일, 캐나다 등 전 세계 97개 국가에 장관급 여성·평등 부처 혹은 기구가 있다. 여성의식이 높은 사회일수록 여성정책의 필요성을 더 느낀다. 여성이 얼굴만 드러내도 매를 맞아야 하는 사회에 무슨 성평등 정책이 있겠나. ‘성평등 수준이 높은 사회에 왜 성평등 부처가 있느냐’고 할 게 아니다. 거꾸로 성평등 부처가 있어야 문제의식이 많아지고 할 일도 늘어난다. 성평등 수준이 올라갈수록 성평등 민감성이 높아지고 필요한 대책이나 요구들이 많으니 여성·평등 부처가 필요하다. 최근 한 언론에서 스웨덴 성평등부 차관을 인터뷰한 기사를 보니 ‘여성 폭력 피해자가 이렇게 많은데 왜 여성 성폭력(남성의 여성 대상 폭력)이라고 얘기하지 않느냐’고 하더라. 우리는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감대를 늘려가는 추세로, ‘젠더에 기반한 폭력’(Gender based violence)이라고 표현한다. 그 나라의 성평등 수준에 따라서 이 정도의 말은 할 수 있고, 이 정도의 부처가 있을 수 있고, 그 부처를 폐지하라는 소리를 계속 듣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

- 최근 여가부에서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사건이 일어난 공군·해군 현장점검을 벌인 결과 각종 조치가 부실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런 여가부의 움직임이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이제부터 한동안 피해자들이 참고 있었던 것, 신고했는데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던 것들이 훨씬 더 드러날 것 같다. 최근 군 내 성폭행 사건은 군사법원에서 다루지 않고 민간법원에서 다루는 법이 통과됐다. 예전처럼 그 안에서 상담하고 처리하고 판결하는 식으로 은폐되지 않을 것이다. 지난 7월 성폭력 방지법이 개정되면서 적어도 공공기관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면 여가부에 통보하도록 의무화됐다. 조직 내에서 조치가 잘됐는지, 피해자 보호가 됐는지, 재발 방지 방안이 마련됐는지 여가부가 확인하고 의견을 주는 일련의 과정을 만들었다. 일단 사건이 일어나면 여가부가 개입할 여지가 생긴 셈이다. 이런 과정들이 새로운 사건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 지난 4년간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은 청원이 ‘텔레그램 n번방’ 청원이었다. 여성을 겨냥한 강력 범죄가 잊힐 만하면 재발하고,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범죄도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범죄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장’이 열렸다. 온라인 그루밍, 메타버스에 의한 성폭력 등 범죄명을 외우는 게 너무 어려울 정도다. 예전에는 범죄가 한 사람을 표적으로 했다면 지금은 n번방처럼 피해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많고 자신이 피해자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제도적으로 대안을 마련하는 게 뒤따라가는 상황이긴 하지만 법을 개정해서 스토킹범죄, 아동·청소년 성범죄, 디지털성범죄에 관한 여러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최근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성범죄 사건에서 경찰이 청소년인 것처럼 위장해 수사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이같이 범부처가 협업해 피해를 줄이고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 여가부가 공개한 상장법인 성별 임원·임금 현황에서 보듯 여전히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 진출’이 주목받은 지 20년 넘게 지났는데 왜 여전할까.

“기본적으로 여성은 돌봄을 우선으로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있다. 결혼하지 않았는데도 면접에서 언제 결혼할 건지, 출산계획이 있는지 묻는다. 돌봄이 아닌 다른 이유로 경력이 단절됐는데 ‘애는 엄마가 키우는 게 좋지’라며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이 노동자로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맞벌이 가구에서도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더 많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증가하는 등 변화는 있었지만 갈 길이 멀다. 제도를 만들어도 여러 부분에서 효과적으로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의도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남성 육아휴직만 늘린다고 끝이 아니다. 여성의 고용상황도 좋아져야 하고, 가족 내 돌봄 문제도 평등해져야 하고, 직장 내에서 여성 노동자를 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여러 방면에서 제도적 강화가 필요하다.”

피해자 사라져가는 위안부 운동
연구소 중심으로 사료 보관 지원
일본 논리에 증거·기록으로 대응

- 현재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는 14명뿐이다. 향후 ‘피해자 할머니 없는 위안부 운동’ 시대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한다고 보나.

“최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를 찾아뵀는데 계속 누워만 계셨다. 의견을 내고 활동할 수 있는 분이 몇 분 안 계신다. 올해는 할머니들께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실 수 있도록 의료비나 생활지원을 하는 데 강조점을 뒀다. 여가부 산하 위안부문제연구소를 중심으로 민간 박물관·교육관·연구소와 협력해 사료들이 잘 보관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는 위안부 문제를 역사학, 여성학, 민족주의 등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정리해 국제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가 과거에 자신들이 인정하고 사죄했던 역사를 희석시키려고 하는 상황에서 국제적으로 역사적 사실에 잘 대응하는 데 좀 더 비중을 둬야 한다. 후속 세대를 위해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 작업을 제대로 해나가고, 엉뚱한 논리에 분명한 증거와 기록으로 대응하는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여가부 장관으로서 문재인 정부 4년 동안의 여성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는 걸 대통령 후보로서 공약만 제시한 게 아니라 국정철학의 중요한 기조로 삼고 추진해왔다고 본다. 초기에는 고위직에 여성 임명을 많이 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줄었다. 최근에도 (여성 장관 후보자를) 많이 찾은 건 분명하다. 다만 검증 기준이 많이 높아졌고, 다양한 경력과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데 성별만 보고 임명했다가 잘하지 못하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니까 줄어든 건 사실이다. 고위직 공무원이나 공공 부문에서는 여성 비율이 분명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께서 여성 참여 확대에 관심을 갖고, 폭력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도록 여러 차례 지시하시는 모습을 보면 기본적인 기조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밖에서 기대했던 것만큼 빨리빨리 결과가 나오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여가부는 성평등 어젠다 이끌고
문제 가시화·개선 요구에 힘써야

- 재임 동안 이것만큼은 꼭 이루고 가겠다는 부분이 있다면.

“각국에 여성·평등 업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부서가 있다는 건 각 부처에서 알아서 하라고 했을 때 잘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제를 느끼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있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알아서 하라고 하면 아무 문제가 없게 될 수도 있다.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말하고, 개선을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건 여가부의 존재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여가부가 자체 업무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성평등 어젠다를 끌고 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여가부의 조직이나 위상, 예산 이런 구조로 봤을 때는 취약한 상황이다. 남은 기간 동안 좀 더 많은 분들이 성평등 정책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다음 정부에서 여가부 폐지가 아니라 제대로 된 성주류화(모든 정책 추진 과정에서 성평등한 관점을 갖는 전략)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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