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노크 소리가…닫혔던 삶의 문 열었다읽음

글·사진 류인하 기자

위기의 중장년 1인 가구 찾아가는 ‘창동고시원’ 프로젝트

서울 도봉구 창5동 창동고시원 내부. 한쪽 벽면에 조경사업 참여자 모집을 알리는 도봉구 공문이 붙어 있다. 유은서 주무관이 고시원을 방문할 때마다 붙여놓는다. 류인하 기자

서울 도봉구 창5동 창동고시원 내부. 한쪽 벽면에 조경사업 참여자 모집을 알리는 도봉구 공문이 붙어 있다. 유은서 주무관이 고시원을 방문할 때마다 붙여놓는다. 류인하 기자

창동역 인근의 낡은 고시원
‘삶의 경계’ 1인 가구 40여 명
‘고(孤)-노크’ 사업 3개월째

서울 도봉구 창동역 2번 출구를 나와 200m가량을 걷다보면 ‘창동고시원’이 나온다. 소위 ‘역세권 고시원’이다. 창동고시원에는 3.3㎡(1평) 남짓한 60여개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창문이 있고 없고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평균 20만~25만원의 월세를 낸다. 20년 된 낡은 이 고시원에서 현재 4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지난 6월부터 도봉구청 직원 2명이 길게는 2주에 한 번씩, 짧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을 드나든다. 이들은 닫혀 있는 방문을 두드리고, 방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직접 만든 반찬이 든 도시락과 손편지도 전달한다. 도봉구가 시범 시행 중인 ‘고(孤)-노크’ 사업이다.

도봉구가 고시원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다. 중장년 1인 가구가 가장 취약한 상태가 되기 직전에 머무는 공간이 고시원이라서다. 16일 김종열 도봉구 복지정책과 주무관은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해보면 고시원이 얼마나 삶의 경계선에 있는 공간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창동고시원 프로젝트’는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사업이다.

“정신건강 문제로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대상자 대부분이 중장년 1인 가구입니다. 이들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거나 임대주택에 거주하기 직전 3개월 이상을 쪽방이나 고시원, 여인숙, 비닐하우스 등에서 거주합니다. 몸이 아프니 일을 할 수 없고, 혼자 방 안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키워나가죠. 중장년 1인 남성 가구들은 조기 발굴해 관리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개선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사업의 목표는 조기에 위기 1인 가구를 찾아내 기초생활수급자로 살더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나아가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데 있습니다.”(김종열 주무관)

공격적 행동·도움 거부하다
지속적 방문에 조금씩 변화
자립 의지·심리 치유 이끌어

다만 행정기관이 조기 개입을 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도 있다. 관공서나 공무원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있는 고시원 거주자들은 거친 말을 내뱉으며 대화를 거부하기 일쑤다. 공격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홍병호 창동고시원 원장은 “고시원에 밥이 있는데도 자꾸 라면만 끓여 드시는 분이 있어서 ‘도봉구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자’고 해도 ‘일용직 나가면 밥 사먹을 수 있다’며 끝내 거부한 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끈질긴 설득 끝에 고시원 거주자 10명이 지난 6월부터 ‘고-노크’ 사업에 동참했다. 도중에 2명이 고시원을 나가면서 현재는 8명을 대상으로 개인별 욕구조사, 정신건강 실태파악, 대상자별 복지서비스 연계 등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워하던 사람들이 점차 주무관들을 반기고 1~2시간씩 이야기를 터놓기 시작했다. 자립의지를 보이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2주에 한 번씩 전달하는 도시락에 직접 쓴 손편지를 남겨온 유은서 주무관은 이제 답장도 받고 있다. 도시락은 자살위험군이었다가 도봉구의 지원을 받아 자립하게 된 주민 2명이 직접 만든다. 손맛이 좋은 A씨(64)가 직접 김밥, 삼계탕, 양파장아찌, 나물, 짜장밥, 잡채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제공한다.

창동고시원에 살고 있는 유모씨(73)는 “몇 번 찾아오다 그만두겠지 했는데, 벌써 석 달째 이곳을 찾아와준다. 도시락도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진수성찬”이라며 “이제는 이 사람들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사람의 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고-노크’ 사업이 내년에도 계속될지 현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창동고시원 사람들의 변화는 조금씩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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