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 앞에 무릎꿇은 학부모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읽음

이하늬 기자

지난 15일 검정색 옷을 입은 학부모들이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옆으로는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학부모가 강력 반대한다” “절차무시! 지정취소! 철회하라!”라는 내용의 피켓이 나란히 놓였다. 학부모들은 앞서 지난 7일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보교육감이 이럴 줄은 몰랐네요.” 지난 7일 교육청 앞에서 만난 학부모 A씨의 말이다. A씨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정책을 지지해왔지만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미래학교) 사업으로 인해 실망해 기자회견까지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래학교 사업은 왜 이렇게 거센 학부모 반발에 직면하게 된걸까.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조화가 한 학교 앞에 줄 세워져있다. 독자 제공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조화가 한 학교 앞에 줄 세워져있다. 독자 제공

미래학교는 교육부가 올해부터 2025년까지 총 18조5000억원을 투입해 40년 이상 된 학교 건축물을 개축·리모델링하는 시설 개선 사업이다. 교육당국은 미래학교 사업을 통해 기존 ‘성냥곽’ 교실을 창작과 협업, 휴식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탈바꿈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업대상 학교를 발표한 지난 8월 초부터 서울 지역 일부 학교에서 반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공사 기간 동안 학생들이 머물러야할 모듈러교실(이동식 교실)이 안전하지 않으며 ‘다양한 활동’ ‘교수학습의 혁신’ 등의 설명이 ‘혁신학교’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와 교육청 앞으로 조화를 보냈다.

반발이 일자 교육청이 “미래학교는 혁신학교가 아니며 40년 이상된 건물보다 모듈러 교실이 훨씬 안전하고 쾌적하다”는 내용을 수 차례 밝히고 토론회를 여는 등 뒤늦은 소통 행보에 나섰다. 조희연 교육감은 “소통을 통해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면서도 “학교 안전은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며 사업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반발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교육청은 한 발 물러섰다. 지난 16일 교육청은 미래학교 지정 철회를 희망하는 9개 학교를 사업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고, 추가로 철회를 희망하는 학교에 대해서도 학부모 투표 등 의견수렴을 거쳐 지정 철회를 요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단순 시설 개선 사업이 ‘혁신학교’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결국은 일부 학교 지정 철회라는 상황까지 오게 된 데는 교육 당국의 안일함이 있다. 노후학교 시설 공사는 지역사회의 오랜 요구였고 정치인들 역시 서로 유치하려고 했던 사업이었기 때문에 지정된 학교들이 당연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 학부모들의 반발 이후 교육청 내부에서는 당황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사업 대상 학교를 선정하기 전에 학부모들과 소통하는 과정이 생략됐고, 특히 학군이나 부동산 문제에 예민한 서울의 특성도 고려되지 못했다. 미래학교 사업에 반대하는 학교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소위 학군이 좋다는 지역에 위치해있고, 해당 지역의 부동산 가격 역시 높은 편이다. 중학교 학부모 B씨는 “오래된 건물을 고친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찬성하지만 우리 아이가 이런 일을 겪을 줄 알았더라면 이 학교에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B씨는 아이를 해당 학교에 보내기 위해 ‘비싼 전세값’을 치렀다고도 말했다. 실제 미래학교와 관련된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곳은 서울이 유일하다.

교육청이 한 발 물러서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불통’ 논란은 일단락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불씨는 남아있다.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학교 중 정밀안전진단 결과 D등급이나 E등급이 나올 경우에는 개축이 불가피하다는 게 교육청 입장이기 때문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학생들 교육을 할 수는 없다”며 “충분히 소통해나가겠다”고 거듭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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