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성기 모양 쿠키’가 ‘음란한 물건’?…“퀴어문화축제 트집 잡는 차별적 행정”읽음

오경민 기자

지난달 25일 서울시는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조직위)의 비영리법인 설립 허가 신청에 대해 불허가 처분을 통보했다. 세 가지 사유를 들었다.

2015년 6월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판매된 ‘보지쿠키’. 쥬나 리(활동명) 제공.

2015년 6월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판매된 ‘보지쿠키’. 쥬나 리(활동명) 제공.

첫째, 퍼레이드 등 퀴어축제 행사의 경우 일부 참여자의 과도한 노출로 경범죄처벌법 등 법령 위반 소지가 있다고 했다. 둘째, 퍼레이드 행사 중 운영부스에서 성기를 묘사한 제품을 판매하는 등 실정법 위반소지가 있는 행위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했다. 셋째, 매 행사시 반대단체 집회가 개최되는 등 사회적 갈등이 불거지고, 이에 따른 물리적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대규모 행정력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이 가운데 서울시가 제시한 두 번째 불허 사유를 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가 말한 ‘성기를 묘사한 제품’은 2015년 6월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 부스에서 판매된 ‘보지쿠키’와 ‘보지풀빵’ 등이다. 서울시는 이 제품들이 형법 243조의 ‘음화반포’와 244조의 ‘음화제조’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형법은 “음란한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을 ‘음화’로 규정하면서 이를 반포·판매 혹은 전시·상영한 자와 제조·소지·수입·수출한 자를 처벌한다고 돼 있다.

보지쿠키와 보지풀빵이 ‘음화’에 해당할까. 김범한 법무법인YK 변호사는 22일 “흔히 ‘야동’으로 불리는 포르노 영상 등 작품성, 예술성이 없는 것들이 음화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예술작품이나 구조물 등과 달리 해당 제품은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물품이기 때문에 조문을 덜 엄격하게 해석해 음화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조직위는 대법원의 판례를 들어 이 제품들이 음화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대법원은 2014년 여성의 엉덩이를 본떠 만든 남성용 자위기구에 대해 ‘음란한 물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음란’이란 사회통념상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을 뜻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어떠한 물건을 음란하다고 평가하려면 그 물건을 전체적으로 관찰하여 볼 때 단순히 저속하다는 느낌을 주는 정도를 넘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특정 성적 부위 등을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SNS에서는 ‘벌떡주’ 등 성기모양을 한 제품들이 버젓이 팔리는데 보키쿠키와 보지풀빵만 문제삼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이승한씨는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해당 제품이 실정법 위반이라면, 전국의 휴게소와 관광명소마다 가판에 즐비하게 늘어놓고 파는 ‘벌떡주’도 금지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여성 성기에 대해 터놓고 일상적으로 이야기 못하게 막고 그 명칭을 언급하거나 모양을 묘사하는 행위는 불경하고 음란한 것으로 터부시하면서 하늘을 향해 치켜세워진 남근은 상품의 디자인으로 차용해도 ‘해학’으로 용납된다”고 게시글을 남겼다.

서울시는 지난달 25일 위 세 가지 사유를 이유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의 ‘비영리 법인 신청’을 불허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제공.

서울시는 지난달 25일 위 세 가지 사유를 이유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의 ‘비영리 법인 신청’을 불허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제공.

보지쿠키를 만든 여성주의 시각예술공동체 언니모자에서 활동한 쥬나리(활동명)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해당 작품은 여성 성기가 포르노에서 소비되는 것처럼 음란한 것이 아니라 신체의 자연스러운 일부이자 사람마다 다른,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부위라는 것을 표현하는 작업이었다”며 “당시 축제에서 작품을 본 이들도 유쾌하고 즐겁게 소비했다. 여성 성기를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을 비판하려고 만든 작품을 음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블랙 코미디’”라고 했다. 언니모자는 여성성기와 관련한 색칠놀이책, 드로잉 등 작품활동도 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지난달 26일 “서울시가 종합적으로 판단한 근거라고 나열한 사유들은 사실관계 확인조차 되지 않은 성소수자 혐오세력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며 “성소수자와 조직위에 대한 명백한 차별적 행정”이라는 취지의 입장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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