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어 ‘불행한 난민’

글·사진 유선희 기자

난민 인정 못 받아 전전긍긍

코로나에 지인들도 못 만나

올해에도 ‘쓸쓸한 추석연휴’

예멘인 난민신청자 나세르(왼쪽)와 앙골라 출신 루렌도 부부가 22일 오전 함께 점심을 먹고 있다. 유선희 기자

예멘인 난민신청자 나세르(왼쪽)와 앙골라 출신 루렌도 부부가 22일 오전 함께 점심을 먹고 있다. 유선희 기자

“사람들은 다 행복해보이는데 저만 불행한 것 같아요. 제 미래가 너무 어둡게 느껴져서 올해 추석연휴는 더 힘들었어요. 한국에서 쫓겨나게 될까봐 너무 불안해요.” 예멘 출신 난민신청자 나세르(35)는 22일 이번 추석연휴를 보낸 소회를 이렇게 전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오전 난민 지원 비정부기구(NGO)인 한국디아코니아의 홍주민 대표가 운영하는 경기 수원시의 한 케밥집에서 나세르, 앙골라 출신 난민신청자 루렌도(49) 부부를 만나 추석연휴를 어떻게 보냈는지 들어봤다.

2017년 한국에 온 나세르는 4년째 불안정한 신분으로 살고 있다. 올 추석연휴는 유난히 더 가혹했다. 외국인등록증도 없이 3개월마다 기한을 연장하는 ‘출국기한유예 허가 통지서’에 기대어 사는 탓이다. 이 기간에는 일자리를 얻는 것이 불법이어서 생계활동도 할 수 없다. 그는 현재 지인 집에 얹혀산다.

그는 “인천에 예멘인 친구들이 많은데 코로나19로 그마저도 모일 수 없어 더 외로웠다”고 했다. 외로움을 덜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부모님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는 것밖에 없었다.

나세르는 출생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반정부 시위를 하다 예멘으로 송환됐다. 예멘의 후티 반군 휘하에서 군사훈련을 받다가 도주해 찾은 곳이 한국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로 박해받을 공포’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행정소송을 진행했지만 변호사와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항소 기회마저 잃었다. 지난달 말 난민 재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287일간 공항로비에 갇혀 지내다 2019년 10월부터 경기 안산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살고 있는 루렌도가족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쓸쓸한 추석연휴를 보냈다. 아내 보베떼(41)는 “주변에 고마운 분들이 많아 작게나마 초대하고 싶었지만 못했다”고 했다.

보베떼는 “공항에서의 삶과 비교해 저희는 자유롭게 잘 지내고 있다. 벌이가 넉넉하지 않지만 남편이 지난해 12월부터 가구공장에서 일하고 있고, 4남매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면서도 “아직 난민 신청이 이뤄지지 않아 과연 한국에 정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이어 “난민심사를 위한 인터뷰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했다”며 “(난민심사 일정이) 코로나19로 계속 연기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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