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주민의 외침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시간이 없어요!”읽음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모두에 평등한 주거권”

기후위기는 우리 사회의 공통된 위기이지만, 그 최전선에는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이들이 서 있다. 이들에게 기후위기는 하나의 위기가 아니라 n개의 위기다. 경향신문은 기후위기비상행동과 함께 9월24일 글로벌 기후파업, 25일 기후 집중행동의 날을 맞아 ‘기후위기 최전선, n개의 목소리’ 연재를 시작한다. 반 빈곤운동을 하는 활동가, 코로나 19 전담병동에서 일하는 의사, 초등학교 선생님, 대중교통 시민활동가, 여성, 청소년 등 11명의 다양한 주체들은 각자의 최전선에 대한 이야기를 보내왔다.

[기후위기 최전선 n개의 목소리①]쪽방촌 주민의 외침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시간이 없어요!”

2018년 무더웠던 여름 어느 날, 서울 용산구 동자동 9-19번지 쪽방 건물은 세탁기와 건조기 설치로 분주했다. 취약계층 폭염대책의 일환으로 서울시가 개소한 ‘돌다릿골 빨래터’였다. 기대에 부푼 주민이 땀에 젖은 옷가지를 모아 세탁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세탁기가 돌아가자 그 진동에 맞춰 낡은 쪽방의 벽과 천장이 함께 흔들렸다. 세탁기를 소화하기엔 너무나 낡은 건물이었다. 오래지 않아 안전상의 이유로 빨래터는 싱겁게 문을 닫았다.

벽과 지붕만 있다고 집은 아니다. 여름에는 천장에서 비가 내리고, 겨울엔 떠다놓은 물이 언다. 집 답지 못한 집에 사는 이들은 그야말로 맨 몸으로 기후위기를 살아내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턱없이 부족하다. 동자동 쪽방촌에 샤워실이 없는 건물은 53%, 평균 16~17명이 거주하는 건물 당 변기는 2.6개, 그 중 3분의 1은 재래식 화장실이다. 대다수 쪽방은 시설 개선 없이도 매년 월세가 오른다. 서울 지역 쪽방의 평균 월세는 2019년 기준 23만3000원. 평당 임대료로 따지면 서울 강남 주택보다 높은 금액이다.

서울 영등포 쪽방촌.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영등포 쪽방촌. 경향신문 자료사진

쪽방촌 주거환경개선과 임대료 안정화로 거주 안정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서울시 ‘저렴한 쪽방 임대지원 사업’으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운영되었던 동자동 새꿈하우스가 그 중 하나다. 그러나 효과는 미미했다. 운영 기간 동안 한 차례의 계약 연장 이후, 건물주의 계약 만료 통보로 주민은 모두 퇴거당했다. 임차인과 임대인의 권력관계가 심대히 차이나는 한국의 상황에서, 공공이 보유하는 것이 아닌 민간소유 건물에 서울시가 자금을 대는 사업 방식이 가진 한계 때문이었다. 사업 과정에서 주민 의견 개진이나 정보습득이 가능한 경로 또한 미비했다. 이따금 다른 쪽방 건물주들이 건물을 살만하게 고칠 것이란 통보를 해 올 때면 주민들은 불안했다. 리모델링은 방 빼라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안전하고 깨끗하게 바뀐 건물은 저렴한 주택이 필요한 사람들, 그 곳에서 계속 머무를 필요가 있는 이들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으로 바뀌었다.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기후위기비상행동 제공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기후위기비상행동 제공

최근 ‘리모델링’이란 단어가 여기저기 등장한다. 정부가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정책’에는 그린리모델링 사업과 제로에너지 빌딩에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계획이 포함됐다. ‘녹색’을 앞세운 개발 계획과 들뜬 전망이 경제지 지면에 발 빠르게 소개된다. 도시의 건축, 도시의 자동차를 바꾸자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바뀐 도시에는 누가 살게 될까. 주택 개선 없이 해마다 당연한 듯 집세는 오르고, 개발을 앞세운 강제퇴거는 지속되고, 리모델링을 빌미로 장사하던 가게에서 쫓겨나는 상인들이 여전하다. 이 현실을 역전하는 아이디어가 없다면 그린리모델링은 공급자에 대한 보조장치로 추락할 수 밖에 없다. 기후위기와 집은 뗄 수 없는 문제다.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주거권이 시작점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2021년 여름, 오세훈 서울시장이 폭염대책 점검차 서울 중구 양동 쪽방촌에 방문했다. 민간 재개발을 앞둔 양동은 출입구가 봉쇄된 건물로 을씨년스러웠다. 안전진단을 이유로 폐쇄한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개발을 앞두고 세입자 보상을 피하려는 소유주들의 전략이기도 했다. 천막으로 지어진 무더위 쉼터를 둘러본 서울시장은 곧장 서울시가 운영하는 저렴 쪽방으로 향했다. 그곳에 있던 주민이 말했다. “집주인이 12월이면 나가라고 합니다. 어디로 가야하나요?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없다는 말은 기후위기 대응에서도 항상 등장하지만 어떤 목소리들이 빠져있다. 기후운동의 대명제와 기후위기의 피해자로 불려온 이들 사이, 그 조급함의 정도는 너무 다르다. 가난한 이들, 쫓겨나는 이들의 목소리와 함께 보다 긴급하게, 보다 구체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해나가야 한다.

서울시장의 쪽방촌 폭염순회는 골목에 소방수를 뿌리며 마무리 되었다. 그리하여 쪽방촌의 온도는 몇 도가 낮아졌을까. 끝내 어떠한 답변도 받지 못한 쪽방 주민들의 머리 위로 열이 피어오른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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