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공정위 퇴직자의 고백 “부당 단가인하 보고서, ‘수필작가’ 통해 싹 바꿔”

김찬호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에서 26년간 근무하다 퇴직한 이상협씨가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에서 26년간 근무하다 퇴직한 이상협씨가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대형업체들의 각종 불공정행위를 시정함으로써 중소 하도급업체의 발전 기반을 확보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스스로 밝히고 있는 주요기능 중 일부다. 대기업 중심의 수직적 경제를 운영하는 한국에서 하도급법을 소관법령으로 둔 공정위는 특별하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소상공인들에게 최후의 보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오히려 ‘대기업의 갑질 도우미’로 변질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불투명하고 미심쩍은 처리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상협씨는 공정위에서 26년간 일하다 2017년 퇴직했다. 공정위를 떠난 지 4년이 지났지만, 그는 일관되게 대기업 갑질에 대한 공정위의 부적절한 처리를 문제 삼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2010년 처음 제기된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와 일광정밀 간의 불공정 하도급 사건이다. 부당 단가인하, 일명 ‘돌려치기’ 사건에 대한 공정위의 처리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다. 최근 <공정위의 인디언 기우제>라는 책까지 내며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 그를 경향신문에서 만났다.

-공정위에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근무했나.

“1991년부터 2017년까지 근무했다. 정년보다 1년 먼저 명예퇴직했다. 퇴직은 기획관리실에서 했다. 그 직전에는 하도급 신고사건을 조사하는 부서에서 조사관으로 일했다.”

-공정위 조사관은 어떤 역할을 하나.

“사건이 접수되면 조사를 하고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정되면 ‘심사보고서’를 작성한다. 검찰이 작성하는 ‘공소장’과 유사하다. 일종의 ‘유죄보고서’다. 심사보고서는 위원회로 상정된다. 법원에 기소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심의위원회가 꾸려지고 사건을 심의해 판결을 내린다. 일단 위원회에 상정되면 양 당사자에게 통보되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알게 된다. 그러니 사건 무마는 위원회에 상정하지 않고 심사관(국장) 단계에서 이뤄진다. 사건을 심의종료 등으로 끝내는 것이다. 이 경우 ‘검토보고서’를 작성하고 국장이 전결해 끝낸다.”

-만도 대 일광정밀 사건을 처음 맡은 것은 언제인가.

“2013년 11월 일광정밀이 만도를 세 번째로 신고했다. 내게 사건이 배당됐고, 이때 처음 내용을 살펴봤다.”

-사건의 쟁점은 무엇이었나.

“만도가 일광정밀에 부당 하도급을 했다는 것인데 쟁점은 총 세가지다. 첫째는 부품개발비 미지급, 둘째는 부품을 운송하는 데 사용하는 ‘팔레트’ 제작비용 미지급, 셋째가 부당 단가인하다. 이미 두 번의 신고가 있었는데 두 번째 신고는 부당 단가인하에 대한 증거도 충실했고 논리도 좋았다. 하지만 개발비, 팔레트 비용 문제만 검토해 심의종료됐다. 중요한 부당 단가인하 부분은 아예 검토대상에서 빠졌다. 증거를 은폐했다고 할 수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개발비나 팔레트비가 지불되지 않은 것은 왜인가.

“업계 관행이다. 자동차 업계의 경우 원청과 벤더(협력업체) 간 수직관계가 강하다. 최고 윗단계부터 지급하지 않으니 그 아래로 줄줄이 주지 않는 것이다. 일종의 착취 구조다. 그런데 국내 한 자동차 기업의 1차 벤더로 있는 일본계 기업을 조사한 적이 있다. 이 일본계 기업은 2차 벤더에게 개발비나 팔레트비를 지불하고 있었다. ‘당신들도 원청에 못 받으면서 왜 주느냐’고 물어보니 ‘우리가 주지 않으면 2차 벤더가 어려워진다. 상생해야 한다’고 하더라.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공정위나 민사재판 모두 개발비, 팔레트비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공정위는 검토보고서에서 만도와 신고인의 주장이 상충해 판단이 어렵다고 했다. 신고사건은 당연히 사건당사자 간 주장이 다르다. 대질심문, 현장조사 등을 통해 밝혀내야 한다. 그런데 공정위는 1·2차 신고 때 대질심문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공정위가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민사재판은 한계가 명확하다. 신고 당사자가 억울한 일에 대한 증거를 모두 제시해야 한다. 원청만 갖고 주지 않는 증거도 많다.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판사들은 하도급 관계를 민사적 시각으로 본다. 기업 간 관계를 수직이 아닌 수평적 관계로 본다는 것이다. 불공정 합의가 있어도 원청이 하청에게 강제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26년간 근무하다 퇴직한 이상협씨가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에서 26년간 근무하다 퇴직한 이상협씨가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3차 신고를 접수받고 조사를 했나.

“부당 단가인하 부분에 대해서만 했다. 처음에는 상관인 A과장이 2차례 신고로 종결된 사건이니 더 이상 조사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개발비나 팔레트비를 제외한 부당 단가인하만 한다고 했다.”

-조사 시작 후에도 압력행사가 있었나.

“신고사건과는 별개로 만도에 대한 직권조사가 있었다. 검찰에서 하는 기획수사 같은 것이다. 현장조사에서 만도 스스로 ‘더 이상 단가인하를 할 수 없다’고 인정한 증거자료 등을 확보했다. 위에서 여전히 ‘증거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료를 다 가져가버린 적도 있다. 이런 식으로 사건을 무마하고 덮어도 문제가 안 된다. 검토보고서도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대상이지만 실제로는 공개하지 않는다. ‘업무 투명성을 위해서 안 준다’고 해버리면 그만이다.”

-확보한 증거는 어떤 것인가.

“만도 측에서 일광정밀과 동종업종의 부품단가를 토대로 계산한 자료다. 일광정밀이 납품한 부품이 시장단가보다 15% 정도 가격이 낮다는 내용이다. 이 자료들을 토대로 나도 계산해보니 실질적으로는 30% 정도 가격이 낮았다. 자동차 업계는 원청에서 하도급 기업 재무구조 등을 수시로 파악한다. 일광정밀이 제출한 자료가 거짓 자료라고 보기 어렵다. 당시 만도도 이 계산서를 반박하지 않았다.”

일광정밀 측이 만도에 납품한 부품의 원가계산표 . 이상협씨 제공

일광정밀 측이 만도에 납품한 부품의 원가계산표 . 이상협씨 제공

-그럼에도 사건이 무마됐나.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A과장에게 B국장이 압력을 넣은 것이라 짐작한다. 만도가 속한 한라그룹에는 공정위 출신 C씨가 있었다. 계속 사건 조사를 방해하니 한 번은 A과장에게 ‘대체 누가 사건 조사를 못 하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 사건 관련해 B국장에게 자주 전화가 온다’고 했다. 만도 현장조사 때 C씨가 B국장한테 자주 전화한다는 직원의 말을 들은 바 있다. 사건 관련해서도 연락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실제로 2018년 검찰은 공정위 재취업 비리사건으로 C씨에 대해 수사한 적이 있다. 당시 참고인으로 검찰에 나가 이 내용을 증언했다.”

-3차 신고의 심사보고서가 최종적으로 작성되기는 했나.

“심사보고서 작성이 완료될 무렵 인사이동이 있었다. A과장 후임으로 D과장이 왔다. 한 부분만 고쳐 위원회로 올리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이후 인사발령이 나서 나도 다른 부서로 옮겼다. 그런데 내 후임으로 온 E사무관이 해당 보고서를 폐기하고 심의종료해 버렸다. 공정위가 사건을 덮을 때 사용하는 전형적 방식이 동원된 것이다. 이를 쉽게 설명하면, 공정위가 사건을 덮을 때면 기존 심사보고서를 수정하거나 검토보고서를 작성할 일명 ‘수필작가’가 등장한다. 공정위에 오래 다닌 사람들이라면 ‘사건 무마 전공자’라고 해서 몇명쯤 찍을 수 있을 정도다. 정기 인사발령으로 기존 담당자를 교체하고 수필작가를 투입한다. 이들이 보고서를 수정하거나 재작성해 올리면 국장이 전결 처리하고 사건은 끝난다. 이 사건도 같다. E사무관은 내게 ‘왜 만도에게 이런 자료를 요구했나, 무리한 것 아니냐’며 조사과정을 추궁했다. 그러더니 검토보고서를 새로 작성해 국장 전결을 받고 사건을 심의종료했다.”

어느 공정위 퇴직자의 고백 “부당 단가인하 보고서, ‘수필작가’ 통해 싹 바꿔”

-구체적으로 심사보고서가 어떻게 바뀐 것인가.

“만도와 일광정밀이 수직적 관계라는 것이 싹 빠졌다. 일광정밀은 만도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80% 이상이었다. 강제관계를 판단하는 중요 증거다. ‘더 이상 단가를 인하할 수 없다’는 부분도 빠졌다. 일광정밀이 보낸 원가계산서, 경영난으로 직원들을 해고한 것. 운영자금을 대출한 것 모두 만도의 감액행위를 파악할 수 있는 정황증거인데 다 빠졌다. 딱 하나 남은 것은 만도에서 시장단가보다 15% 정도 낮다고 인정한 것뿐이었다.”

-신고자가 이의 제기를 할 방법이 없나.

“국회가 나서도 어쩔 수 없었다. 실제로 의원실을 통해 공정위에 사건 관련 질의와 자료를 요청했지만 ‘내부 검토 중’이라거나 ‘공정위가 사건과 관련해 수집한 자료, 관련 법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26년을 공정위에 다니며 이런 식으로 해서 문제가 된 것을 본 적이 없다. 자연스럽게 덮인다.”

-이 문제로 책까지 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첫째는 공정위가 개혁됐으면 했다. 공정위가 사건을 덮으면 중소기업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 국가경제의 큰 손해가 될 수도 있다. 지금처럼 사건에 대한 실질적 견제가 없다는 것도 개선해야 한다. 공정위에 같은 사건이 재신고 되면 청와대 민정실로 통보가 가도록만 해도 바뀔 수 있다. 보는 눈이 있으면 지금처럼 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는 명예회복이다. 퇴사한 후에도 공정위 몇몇 후배들이 ‘사건도 안 되는 것을 억지로 조사했다’는 식으로 말한다고 들었다. 부당 단가인하를 밝혀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평가를 받을 이유가 없다.”

-27년 동안 근무하며 사건 관련해 징계받은 적 있나.

“없다. 징계 협박은 있었다. 만도에 대한 현장조사 시 로펌에 있는 후배변호사와 점심을 함께한 적이 있다. 만도 측에서 직권조사 사건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으면 국회에 알려 징계를 받게 할 것이라고 전해들었다. 그래서 징계받겠다고 했다. 그 이후 연락이 없었고, 징계를 받은 사실도 없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후배들에게 농담 삼아 ‘너희들은 큰 사건 보면 묻어라. 절대 파내려고 하지 마라. 파낼 수도 없고, 당신들만 골병든다. 그 본보기가 나다’라고 말했다. 지금과 같은 행위가 지속되면 공정위가 존속할 이유가 없다. 내 주장은 간단하다. 만도 대 일광정밀 사건에서 확보한 증거를 모두 공개하고 내가 작성한 심사보고서, E사무관이 작성한 심사보고서도 함께 공개하자. 그리고 전문가들 평가를 받아보자. 누가 조사를 잘못했는지 금방 밝혀질 것이다.”


Today`s HOT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황폐해진 칸 유니스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