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최전선, n개의 목소리(6)

기후의 위기가 보건의료의 위기

이승연 국립중앙의료원 간호사
[기후위기 최전선, n개의 목소리⑥]기후의 위기가 보건의료의 위기

2002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4년 에볼라, 2015년 메르스, 2019년 12월부터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 등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전염병의 주기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기후위기는 이런 감염병의 확산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위기는 보건의료의 위기이자 국민건강의 위기다. 나는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의 간호사로서 코로나19 의료현장에서 느낀 공포와 혼란, 그리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환자치료에 최선을 다하며 흘린 땀과 눈물 그리고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코로나19 초기에 감염에 대한 두려움도 컸고 효율적인 치료 체계를 잡아가는 데 시행착오와 어려움도 있었다. 확진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의료진들은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급히 현장에 투입되었다. 일반병실을 격리치료병실로 개조하였고 병원 내 격리구역, 준 격리구역, 청결구역으로 나누어 환자와 밀접 접촉하는 의료진들의 감염 및 지역사회로의 전파를 막기 위해 노력하였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전파경로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상태라 가족들에게 전파될까 우려하며 원내 휴게실에서 생활하는 의료진들도 있었다.

2020년 10월 이후 중증환자가 늘고 사망자 증가 폭이 빨라짐에 따라 중환자 병상을 확충하기 위해 병원 한 켠에 모듈형 음압 격리병동을 새로 짓었다. 애초 감염병 환자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지은 건물이기 때문에 격리구역이 정확하게 나뉘어져 있어 감염 전파를 막을 수 있고, 병실 안 CCTV를 설치하여 간호사 스테이션에서도 환자의 상태와 병실의 음압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었다. 코로나19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전파경로 및 질병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감염병 주기가 빨라지고 있는 현재의 추세를 감안하여 볼 때 감염병 전문병원을 세워 이후에는 혼란 없이 효율적으로 감염병 환자치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함을 실감하였다.

현재 더 큰 문제는 환자를 돌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여 의료진 소진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중환자실에는 기도 삽관을 한 상태로 진정제를 투여하고 있는 중증 환자들이 대부분이며 찰나의 순간에 환자의 상태가 안 좋아질 수 있기 때문에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 변화를 바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충분한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격리병동에는 한 구역당 5~6명의 간호사가 필요하지만 실제 3~4명의 간호사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 명의 간호사가 8시간 근무 중 4~5시간 이상 보호복을 입고 병실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근무 중 식사를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보호복을 벗고 나올 때는 힘이 들어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간호사가 많다. 그러다 견디지 못하고 사직을 하는 간호사가 생겨나고 남은 간호사들은 더 많은 시간 병실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코로나19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텨 온 지난 2년이다. 혼신을 다해 버텨 왔지만 이제 한계치에 다다랐다. 코로나19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인력을 충분히 확충해야 한다.

최근 감염병은 지역을 넘어 세계로 확산되고 있고 주기적으로 도래하고 있는 상황이다. WHO는 감염병의 70%가 동물과 사람 간에 서로 전파되는 병원체에 의한 ‘인수공통감염병’이라고 밝혔다. 인간은 문명화를 통해 가축을 길들이기 시작하여 질병을 공유하였고 천연두, 홍역 등이 동물과 사람의 접촉으로 발생한 질병의 예시이다. 야생동물이 가진 우리가 모르는 바이러스가 많은 이 시점에서 개발을 위한 무분별한 환경파괴로 인하여 야생동물들은 서식지를 잃고 인간과 접촉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과거 인류는 밀집되어 살지 않아 감염병의 전파 속도가 느렸던 반면, 현재 몇 십억 인구가 도시에 밀집되어 사는 도시화, 인구 과밀화와 같은 구조는 인류가 감염에 취약한 구조를 만들었고, 그렇게 코로나19는 몇 주만에 전 세계로 퍼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이러한 생태계 훼손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기후가 변하면서 기존에 없던 감염병이 늘어나는 등 기후위기가 보건의료의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 우리는 근본적인 감염병 치료체계를 세우기보다는 매번 임시방편으로 대응해오다가 코로나19를 통해 시행착오와 혼란을 겪게 되었다. 코로나19 의료현장에서 일하면서 방호복을 입지 않고 근무할 수 있었던 코로나 이전 환경의 소중함을, 그리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생활하던 일상의 소중함을 알았다. 지금이야말로 소중한 일상을 지키기 위한 골든타임이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또 다른 감염병에 대응하여 국가 차원의 연구와 안정적인 공공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한다면 효과적으로 감염병의 위험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코로나19 장기화와 이후 또 다른 감염병 확산에 맞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감염병 치료병상과 공공의료 확대와 인력 확충이 너무나 시급하다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공공의료의 강화는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는 길이며, 이는 곧 국민들의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호하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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