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보상법 사각지대의 ‘하루살이’ 자영업자들

송윤경 기자
지난 9월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상가 건물이 텅 비어 있다.  / 연합뉴스

지난 9월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상가 건물이 텅 비어 있다. / 연합뉴스

경남 창원시에서 여행사를 운영해온 여모씨(32)는 이른바 ‘알바 뛰는 자영업자’ 중 한명이다. 코로나19로 여행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지난해 여름부터 화장품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여행사는 해외여행 전문이라 지난 20개월간 판매 실적은 전무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무실 임대료까지 내야 하니 매달 적자가 이어졌다. 폐업하면 소상공인 대출금을 일시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문 닫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딸이 어려운 형편에 놓이자 연로한 부모까지 일거리를 찾고 있다고 한다. 알바를 뛰어 각종 대출금의 이자를 내고 있는 여씨는 “오늘 하루라도 살자는 심정으로 버틴다”고 했다.

지난 9월 17일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소상공인 손실보상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코로나19 방역으로 초래된 자영업자들의 손실을 국가가 보상토록 하는 법령의 정비가 마무리된 것이다. 시행령엔 손실보상의 대상, 손실보상심의위원회 구성·운영 방안 등이 구체화됐다. 그러나 이번에 마련된 손실보상법은 여씨 같은 여행업계 자영업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손실보상법 시행령이 “영업장소 내에서 집합을 금지해 운영시간의 전부(집합금지) 또는 일부를 제한하는 조치(영업시간 제한)를 받아 경영상 심각한 손실이 발생한 경우”에만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즉 ‘집합금지’ 또는 ‘영업시간 제한’ 조치를 적용받지 않은 자영업자는 보상에서 제외된다.

지난 9월 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의 한 레스토랑이 폐업으로 헐려 가림막이 쳐져 있다.  / 연합뉴스

지난 9월 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의 한 레스토랑이 폐업으로 헐려 가림막이 쳐져 있다. / 연합뉴스

■“우리도 큰 타격 입었는데…”

정부가 코로나19 방역으로 손해를 본 업종을 좁게 해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새희망자금, 버팀목자금, 버팀목자금플러스, 희망회복자금 등 네 차례에 걸친 소상공인 지원금에서 여행업은 집합금지·제한 업종이 아닌 일반업종, 경영위기 업종으로 분류돼 가장 낮은 수준의 지원금이 배정됐다. 소상공인 대출 한도 역시 집합금지·제한 업종보다 낮게 책정됐다. 지난 1월 국민신문고 등에 글을 올려 이런 문제를 지적했던 여씨는 여행업이 손실보상 대상에서도 제외됐다는 소식에 “얘기를 해봐도 달라지는 게 없다”며 씁쓸해했다. 그는 “(신문고에 글을 올리자) 1주일 안에 담당자가 연락을 주겠다더니 지금까지도 답변이 없다”면서 “정부의 자영업자 보상 정책에 허점이 너무 많다”고 했다.

코로나19로 타격을 받고도 손실보상에서 제외되는 업종은 여행업뿐만이 아니다. 숙박업, 공연시설 운영업, 행사용 사진 촬영업 등 270여개 업종이 모두 배제된다. 이런 업종의 자영업자들은 사적모임 인원 제한, 면적당 수용인원 제한 등으로 타격을 입었지만 보상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지난 9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 마련된 자영업자 합동분향소에서 관계자가 국화꽃 등 물품을 정돈하고 있다.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근조 대한민국 소상공인·자영업자’라고 쓰인 영정 앞에 향을 피우거나 국화를 내려놓았다. /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9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 마련된 자영업자 합동분향소에서 관계자가 국화꽃 등 물품을 정돈하고 있다.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근조 대한민국 소상공인·자영업자’라고 쓰인 영정 앞에 향을 피우거나 국화를 내려놓았다. / 국회사진기자단

서울 신촌의 대학가에서 7년째 모텔을 운영하는 김모씨(39)의 경우 한달에 8000만~1억원 수준이던 매출이 코로나19 이후 3000만~4000만원으로 줄었다. 그의 모텔은 사적모임 인원 제한에 따른 신촌 상권 악화, 대학의 온라인 수업 영향을 복합적으로 받았다. 거리 두기 단계가 상향될 때는 ‘숙박 인원을 제한하라’는 내용의 공문도 받았다고 한다. 김씨는 “정원의 4분의 3만 손님을 받으라는 내용의 공문이 지자체에서 내려왔고, 공무원이 점검을 나오기도 했다”면서 “규제가 분명히 있었는데 이제 와서 정부가 ‘직접적 규제는 없었다’고 하니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직원이 6명(종사자 5인 초과)이라는 이유로 그간의 소상공인 지원금도 거의 받지 못했다. “재취업이 어려운 나이의 지긋한 직원들은 함께 일하려(고용을 유지하려) 애쓴” 것 때문에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 것이다. 김씨는 “정부가 옥죄기만 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지원 기준을 내세운다”며 답답해했다.

■한줌의 예산

손실보상금 액수가 적절하냐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보상금 산정방식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책정된 예산을 볼 때 ‘손실보상’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은 수준의 금액이 지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0월부터 지급될 손실보상(올 7~9월 손실분 보상) 예산은 1조263억원으로, 운영비를 제외한 예산은 1조원가량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분기에 한 번꼴로 지급된 소상공인 지원금 집행액보다 낮다.

손실보상법 사각지대의 ‘하루살이’ 자영업자들

그동안 네차례 지급된 소상공인지원금 집행액은 각각 새희망자금 2조8000억원, 버팀목자금 4조2000억원, 버팀목자금 플러스 4조8000억원, 희망회복자금(지난 8일 기준) 3조8000억원이었다. 1인당 평균 지원액은 대략 새희망자금 112만원, 버팀목자금 140만원, 버팀목자금 플러스 165만원, 희망회복자금 221만원이다. 4번의 지원금을 다 받았다 해도 640만원 수준이다.

경향신문은 <세도시 사장님 이야기>를 통해 프랑스 파리, 미국 애틀랜타, 캐나다 토론토, 일본 도쿄의 해외 교민 자영업자(식당 운영)들이 정부로부터 얼마만큼의 코로나19 보상금을 받았는지를 소개했다. 이들은 모두 지난 20개월간 1~2억원의 지원·보상을 받았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의 자영업자가 받은 지원금은 640만원(4번의 지원금 평균 지급액 합산) 수준이다. 한국의 자영업자 규모가 이들 국가의 2~4배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해도 격차가 매우 크다.

이토록 차이가 벌어진 가장 큰 이유는 재정지출 규모 때문이다. 올해 6월 발간된 국제통화기금의 ‘코로나19 재정 점검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코로나19 재정지출에 국내총생산(GDP)의 4.5%를 썼지만 일본·캐나다·프랑스·미국은 각각 16.5%, 15.9%, 9.6%, 25.4%를 투입했다. 한국은 국가부채 비율이 이들 국가의 절반조차 되지 않는데도 재정을 극도로 아낀 것이다.

올해 손실보상법 입법이 추진되면서 정부가 뒤늦게나마 충분한 보상에 나설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는 자영업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손실보상제 적용 기간을 올 7월 이후로 좁히고 집합금지·제한 이외 업종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예산 또한 앞선 지원금보다 낮게 책정됐다. 기대는 우려로 바뀌고 있다.

손실보상법을 두고 “세계적으로도 입법례를 찾기 힘든 매우 진일보한 사례”(중소벤처기업부)로 자찬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서 자영업자들은 “숨이 턱 막힌다”(여모씨)고 말한다. 손실보상법은 오는 10월 8일부터 시행된다. 보상금 산정방식은 이날 손실보상심의위 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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