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여성 임원 제로’ 대기업 주식 23조 있으면서…국민연금, 성비 불균형엔 ‘눈 감았다’읽음

오경민 기자
국민연금공단. 이준헌 기자

국민연금공단. 이준헌 기자

국내 주요 상장회사의 지분을 10% 가까이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주주총회 등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단 한 차례도 임원 성비 불균형 문제를 지적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내년 8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자본시장법에 따라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기업은 반드시 여성 임원을 두어야 함에도 주주이자 주요 투자자인 국민연금이 제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세계적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에 발걸음을 맞추고 나선 국민연금이 정작 지배구조와 사회적 책무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이 필수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성평등 문제에는 눈을 감고 있는 셈이다.

10일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은 올해 2월말 기준 국내 자산총액 2조원 이상 기업 가운데 여성 임원이 1명도 없는 67개 상장회사의 주식을 총 23조693억원 어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보유액은 기업당 평균 3443억원이며, 평균 지분율은 7.6%에 이른다. 이들 기업 가운데 2곳을 제외한 65곳은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갖고 있는 상태다.

이 같은 지분 보유 비중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해당 기업들의 경영진·이사회 구성에서의 성비 불균형 문제는 언급조차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국민연금은 정 의원의 질의에 대해 “(여성 임원이 전무한) 67개 기업의 주주총회 등에서 여성 대표성 확대와 관련한 문제를 지적한 바 없다”고 답했다.

[단독]‘여성 임원 제로’ 대기업 주식 23조 있으면서…국민연금, 성비 불균형엔 ‘눈 감았다’

국민연금 기금을 운용하는 논의 테이블에서도 여성은 거의 ‘실종’이나 다름 없는 상태다. 복지부에 따르면 국민연금 투자 전략을 논의하는 5개 위원회 중 4개 위원회(국민연금기금운용위·투자정책전문위·수탁자책임전문위·위험관리성과보상전문위)의 위촉 위원 가운데 여성은 ‘0명’이다. 5개 위원회 중 국민연금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에만 여성 위원이 4명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위촉 위원 46명 중 42명(91.3%)이 남성이었다.

이는 국민연금이 강조해 온 ESG 책임투자와도 배치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용진 국민연금 이사장은 지난 5월 발간한 <국민연금이 함께하는 ESG의 새로운 길>이란 저서에서 “ESG 관점에서 단순히 법에서 요구하는 여성 임원의 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해당 기업의 성적 평등을 지향하는 근본적인 정책 변화를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지난해 연차보고서에서 밝힌 국내주식 ESG 평가체계에 여성 임원 비율 등 성평등을 고려한 평가지표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내년 8월부터는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기업 이사회에는 특정 성별로만 이사 구성을 할 수 없는데도, 국민연금의 지배구조(G) 관련 ‘이사회 구성과 활동’ 평가지표에서 여성 이사 비율은 항목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다만 국민연금은 올해 말까지 기금을 투자하는 기업이 이사회 구성 시 성별 다양성을 준수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국민연금기금 투자기업의 이사회 구성·운영을 위한 안내서’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출처 <2020년 국민연금 기금 연차보고서>

출처 <2020년 국민연금 기금 연차보고서>

국내 기업의 ‘유리천장’ 문제는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다. 올해도 한국은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서 9년 연속 OECD 꼴찌를 기록했다. 여가부에 따르면 2021년 1분기 기준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상장사 2246개의 여성 임원수는 1668명으로, 전체 임원 3만2005명 중 5.2%에 불과했다. 국내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에서 여성 임원을 1명 이상 선임하도록 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내년 8월부터 본격 시행되지만 2021년 1분기 기준 여성 임원을 선임하지 않은 기업이 10곳 중 4곳(156곳 중 67곳·44.0%)에 달한다.

세계적으로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투명하고 윤리적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EGS 경영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여성 비중을 포함한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 또한 중요한 지표로 간주된다. 유럽연합(EU)는 회원국 기업 내 여성 이사 비율을 30~40%까지 끌어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2018년 “앞으로 여성 이사가 2명 미만인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정춘숙 의원은 “인구의 절반인 여성 소비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임원의 성비 다양성 확보, 성평등한 기업문화 개선 등을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며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에 있어 여성임원 비율 등 지배구조의 다양성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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