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소장 혼자 492명 보는 ‘의료사막’···“시골 살아 죽으면 안 되잖나”

박채영 기자

OO씨가 서울에 살았더라면

지난달 7일 경남 함양군 함양초등학교 4학년 3반 학생들이 교실 칠판에 ‘우리 지역에 생겼으면 하는 시설’을 적고 있다. 큰 병원, 영화관, 워터파크 등이  쓰여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지난달 7일 경남 함양군 함양초등학교 4학년 3반 학생들이 교실 칠판에 ‘우리 지역에 생겼으면 하는 시설’을 적고 있다. 큰 병원, 영화관, 워터파크 등이 쓰여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속초 살던 알코올의존증 50대는
폐쇄병동 있던 병원 없어지며
관리·치료 골든타임 놓쳐 사망

81.5㎞. 강원도 속초에서 살던 조모씨(57)가 갑자기 쓰러진 뒤 이송된 춘천 병원까지의 직선거리다. 알코올의존증을 앓던 조씨는 몸상태가 나빠지면 자진해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곤 했다. 속초 유일의 정신과 폐쇄병동이었다. 그 정신병동이 2년 전 폐쇄된 것이 조씨의 운명을 갈랐다.

조씨는 지난해 11월 오전 8시쯤 자신이 살던 빌라 계단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외상성뇌출혈로 이송된 시내 병원에선 감당할 수술이 아니었다. 외지에 사는 누나가 강릉의 병원에 연락했지만 ‘수술이 밀려 있다’며 거절당했고, 결국 7시간이 지난 오후 3시에야 춘천의 병원에 도착했다. ‘골든타임’을 한참 넘긴 시각이었다.

조씨는 두 차례 수술로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다 지난 1월 춘천의 요양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서울에서 살았다면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정신병동이 문을 안 닫았으면 처음부터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술을 드시지 않으셨을 테니까요.” 조씨의 조카가 말했다.

“아파도 대도시에서 아파야 하냐”는 지방 주민들의 한탄은 이제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다. 강원도의 인구 10만명당 치료 가능 사망률(2019년 기준)은 46.73명으로 가장 낮은 서울(36.36)보다 30%가 높았다. 치료 가능 사망률은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비율이다.

한국의 경우 공공병상 비율이 9.7%(2019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최하위다. 나머지 90%에 가까운 민간병상은 수도권과 대도시에 몰려 있다. 민간병원 위주의 한국의 의료체계에서 의료서비스는 인구가 많고 돈이 되는 수도권으로 쏠린다. 지방의료의 ‘사막화’는 주민들의 삶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큰 병원’이 소원인 함양 아이들

아이마다 가족 등 아팠던 경험
놀이공원보다 병원 간절하게 해
응급의료 취약지 전국에 97곳
그중 90곳이 비수도권에 있어

경남 함양군의 산모들은 한 시간 걸리는 진주로 원정진료, 원정출산을 가야 한다. 정모씨(30)도 올해 8월 진주에서 아이를 낳았다. 함양군 보건소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지만 보건소에서는 정밀 검사도, 분만도 불가능하다.

“임신 초기에는 직접 운전을 해서 다녔는데 임박해서는 버스로 다녔어요. 배뭉침이나 출혈이 있을 때도 진주까지 가야 했어요.”

함양군은 국립중앙의료원이 응급의료취약지로 분류한 97개 지자체(2020년 기준) 중 한 곳이다. 97곳 중 90곳이 물론 비수도권이다. 함양은 분만·인공신장실·소아청소년과 취약지이기도 하다. 인구 3만8000여명의 함양에서 지난해 태어난 아이는 105명. 첫째를 낳으면 100만원, 둘째는 200만원, 셋째를 낳으면 100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줄 정도로 군이 출산을 챙기지만 정작 아이를 받을 산부인과가 없다.

전국 250개 시·군·구 중 산부인과가 전무한 곳은 함양 등 23곳으로 모두 비수도권이다. 특히 농어촌에서 분만 가능 산부인과가 급격히 줄고 있다. 의료수요가 적어 운영이 힘들기 때문이다. “밤낮으로 대기해야 하는 분만실은 간호사 2~3명이 3교대를 해야 하니 최소 6명은 있어야 합니다. 의사도 2명 이상 필요한 데다 분만장과 신생아실도 갖춰야 하니 민간병원은 유지하기가 어려워요.”(고경심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 이사)

“함양 참 좋아요. 죽기 전에 함양 숲은 다 한번씩 가봐야 한다잖아요.” 김화자씨(66)에게 함양은 산이 좋은 고향이지만 투석병원이 없어 불편한 곳이었다. 김씨는 올해 9월 함양에 투석병원이 생기기 전까지 10년간 매주 사흘씩 진주와 거창으로 투석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버스로 오가기가 고되 나중엔 신장병 환자 몇명과 카풀을 해 승용차로 다녔다.

의료취약지에서 겪는 불편은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함양초등학교 4학년 3반 학생 23명은 지난 7월 학급회의에서 ‘함양에 생겼으면 하는 시설’에 대해 의견을 모아 군수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꼽은 것은 놀이공원도, 워터파크도 아닌 ‘큰 병원’(11명)이었다.

지난달 7일 아이들을 만나 물어보니 그럴 만한 사연들이 있었다. “어릴 적 폐렴을 앓았는데 밤중에 엄마가 차를 몰고 진주의 큰 병원까지 간 적이 있어요.”(다연이) “할아버지가 나무를 자르시다가 다쳐 동네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 괜찮다고 해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새벽에 다시 아프셔서 진주까지 가서 수술을 받았어요.”(나연이) 아이들이 바라는 ‘큰 병원’은 왜 없는 걸까.

“서울 월급의 2배 줘도 의사 안 오려 해”

응급실 갖춘 병원 함양에 한 곳
산모들은 1시간 넘게 ‘원정진료’
의사·간호사, 월급 2배 줘도 꺼려

함양성심병원은 함양에서 응급실을 갖춘 유일한 병원급 의료기관이다. 지방 병원으로는 드물게 인력과 설비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의료 인력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함양 사람들은 아프면 병원을 찾아 진주나 창원, 멀리는 부산, 대구까지 가요. 시골 병원은 의료수요가 적어 운영이 어렵고, 그러다 보니 시설·인력 투자도 안 되죠. 무엇보다 의사, 간호사 구하기가 어려워요. 자녀 교육이나 생활여건 때문에 근무를 기피하니 서울보다 월급을 2배 이상 줘야 해요.”(정형주 원장)

함양성심병원은 지난달 소아청소년과를 개설했다. 이제 다연이 같은 아이들이 진주까지 가지 않아도 되지만 병원 운영을 생각하면 만만한 결정이 아니다. 함양은 면적(725㎢)이 서울(605㎢)보다 넓지만, 인구는 서울의 0.4%에 불과하다. 이 병원은 2017년 간호사 수를 못 채워 응급의료기관 지정이 취소됐다가 정 원장이 2018년 병원을 인수하면서 되살려놨다.

“응급실을 24시간 가동하는 게 쉽진 않지만, 누구는 서울에 살아서 좋은 서비스 받는데 누구는 시골 살아서 죽으면 안 되잖아요.” 정 원장은 지방 병원이 감당할 수 있도록 지역차등 의료수가제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환자·업무 다양, 일당백 보건진료소장

“소장 이것 좀 낫어줘(치료해줘).” 지난 8월17일 전북 무주군 안성면 공진리 주고마을에 사는 강씨 할아버지(87)는 마을 방문을 나온 박도순 공진보건진료소장과 마주치자 옷 소매를 붙잡고 팔에 난 붉은 반점을 가리켰다. 복용하는 약이 많아 약독이 오른 것이다. 함양에서 덕유산을 넘어가면 닿는 무주군(인구 2만3764명)도 인구소멸 위험지역이자 의료취약지다.

박 소장이 근무하는 안성면 공진리는 무주에서도 벽촌이라 병원은 고사하고 상비약 파는 편의점이나 마트도 없다. 버스도 뜸해 생필품을 싣고 다니는 ‘골고루차(만물트럭)’에 의존한다. 트럭 운행이 코로나19 이후에는 더 뜸해지면서 박 소장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장을 대신 봐주기도 한다.

■진료소장 혼자 492명 보는 ‘의료사막’…“시골 살아 죽으면 안 되잖나”

보건진료소는 간호사 1명이 소장을 맡아 진료와 보건교육은 물론 가정방문도 도맡는다. 박 소장이 맡은 5개 마을 492명 중 45.9%(226명)가 65세 이상(2020년 기준) 고령자다. 진료실 벽 현황판에는 주민 492명 중 고혈압 102명, 고지혈증 23명, 당뇨 27명, 암 17명, 치매 5명이라고 적혀 있었다. 주민들이 찾는 약 종류는 다양하지만 보건진료소가 처방할 수 있는 약은 한정돼 있다. 구할 수 없으면 외지로 나가야 한다. 그 수고로움을 익히 아는 박 소장은 “그 약은 처방할 수 없다”고 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병원은 멀고 아픈 이는 많다보니 ‘가슴 철렁’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가슴이 답답하다는 분에게 소화제를 한두번 처방했는데 차도가 없어 병원에 꼭 가시라고 의뢰서를 써드렸죠. 병원에 갔더니 관상동맥협착증, 자칫하면 심장마비도 올 수 있는 병이었어요. 심장질환 병원은 광역시에나 있는데 노인들은 혼자 움직이기 어려워 외지의 자녀들이 모시고 가야 해요. 병원 가는 일 자체가 쉽지 않으니 치료가 늦어질 수밖에요.” 무주 보건진료소 5곳을 돌며 30년을 일해온 박 소장은 “농산어촌이 도심에서 점점 원심분리되고 있다”고 말한다. 수익이 나지 않으니 민간병원이 들어올 리 없고, 진료공백을 메울 공공의료도 점점 시장논리를 따르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했다.

지역 ‘의료사막화’, 공공의료 확충이 해법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큰 격차’
서울 종로 16명, 경북 영양 0.7명

수도권과 비수도권 의료격차, 지역의 ‘의료사막화’는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2019년 기준 1000명당 의사 수는 서울이 3.1명인 반면 경북은 1.4명으로 전국 평균(2.0명)을 밑돈다. 서울 종로구는 16.27명인데 경북 영양군은 0.72명으로 22배 차이다. 지역 간 의료 격차는 결국 공공의료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공공의료 확대를 공언했지만, 4년이 넘도록 시설 확충도, 의료인력 확보도 답보상태다. 재정당국의 ‘효율성 잣대’, 의사들의 반발을 돌파하지 못한 탓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정부는 지난해 7월 의대정원 확대 계획을 내놨다. 의대 정원을 2022학년부터 매년 400명씩 10년간 4000명 늘리고, 이 중 3000명은 의사면허 취득 후 10년간 지역에서 의무 근무토록 한다는 계획이었다. 의대정원은 2000년 의사들의 의약분업 반대 파업을 계기로 10%가량 감축돼 2006년부터 3058명으로 동결됐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가 파업 등 실력행사에 나서자 물러섰다. 코로나19 위기 속에 진료공백을 버틸 수 없었던 정부는 지난해 9월 의대정원 확대를 ‘의정협의체’에서 재논의하기로 했다. 의정협의체는 지난 2월 7차 회의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 지역의사 충원을 위한 의대정원 확대는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의료인력 확충은 고사하고 현재 의료인력 운영도 수도권 편향이다. 2022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은 수도권이 33.5%, 비수도권 66.5%이지만, 병원별 인턴 모집인원은 거꾸로 수도권 병원이 55%가량(2021년도 인턴 1차·2차)으로 비수도권을 앞질렀다. 이유가 있다. 병원별 전공의 정원은 ‘수련환경평가위원회’가 정하는데 위원 13명을 구성하는 교수 혹은 병원장 9명 중 8명이 수도권 병원 소속이다. 나머지 1명도 수도권에 근접한 충남 천안의 병원 소속이다. 지방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의사결정 구조다.

정백근 경상대 의대 교수는 “젊은 의사들은 보통 전공의 때 결혼도 하고 인간관계도 구축하는데 이 시절을 수도권에서 보내게 되면 지역에 갈 유인이 사라진다”고 했다.

지역 의료인력 확충을 위해 지역에 설립된 의대이지만, 정작 학생 교육은 서울에서 하는 편법도 시정되지 않는다. 울산의 유일한 의과대학인 울산대 의대는 예과 1학년 이후의 교육을 서울아산병원에서 받는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서 교육받은 울산대 의대생 중 7.0%(2020년 4월 기준)만이 울산에서 근무한다. 지역에 의대 정원을 배정한 의미가 없는 셈이다.

재정당국의 ‘효율성 잣대’ 버려야

문재인 정부, 공공의료 확대 공언
기재부 ‘효율’ 논리·의사 반발에
시설 확충·인력 확보 ‘답보 상태’
공공병원 신축 결정은 3곳뿐

의료인력 확대를 재추진하지 않는 한 지역의료 부족은 해소될 수 없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지난해 정부가 의사파업에 굴하지 말았어야 했다. 전 국민의 건강권이 걸린 문제를 정부와 의사가 결정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의대정원 확대가 당장 어렵다면 의대 설립을 먼저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남은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의대가 없는 곳이다. 목포대와 순천대, 순천·목포시는 지난 6월 의과대학 설립을 요구하는 공동건의문을 정부와 여당에 제출한 바 있다.

공공성을 강화하려면 공공병원 확충 계획도 현행보다 대폭 늘어나야 한다. 정부는 2018년부터 전국을 70개 지역으로 나눠 역량 있는 병원이 없는 지역에 공공병원을 건립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올해 6월 발표한 ‘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을 보면 2025년까지 신·증축하기로 한 20곳 중 새롭게 짓는 것은 서부산의료원, 대전의료원, 진주권 공공병원 등 3곳뿐이다. 우석균 대표는 “적어도 70개 중진료권마다 300병상 이상 규모의 공공병원이 한 곳씩은 있어야 한다”며 “정부의 계획은 규모도 적고, 속도도 느리다”고 지적했다.

나백주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공공병원의 예비타당성 통과를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에 빗댄다. “공공병원을 짓자고 하면 기획재정부는 ‘민간병원이 있는데 왜 공공병원을 짓느냐’는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지역의료를 ‘효율성 잣대’로 재는 재정당국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공공의료 확충은 기대난망이다. 한국 사회가 전문가(의사)와 테크노크라트들이 쳐놓은 장벽을 넘지 못한다면 지역의료의 미래는 없다.

일본, 지역별 자치의대 학생 선발
지정 의료기관서 9년 의무 근무
71%가 연한 끝나도 지역에 남아

일본에서는 지역의료인력 확보를 위해 47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이 공동으로 설립한 ‘자치의대’가 도도부현별로 2~3명의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졸업 후에는 공립병원 중심으로 9년간 지자체가 지정한 의료기관에서 일하도록 한다. 2005년 일본 총무성이 1986년 이후 졸업생 1728명을 추적한 결과 전국 평균 70.9%가 의무연한이 지난 후에도 지역에 머물렀다. 이런 제도를 한국이라고 도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인구도, 병원도 수도권으로 쏠리는 한국 사회,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헌법(36조 3항)의 ‘건강권’은 수도권에서만 통하는 권리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지난 7월 한국을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했다는 뉴스는 함양의 아이들에게 그저 ‘다른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절반의 한국④]진료소장 혼자 492명 보는 ‘의료사막’···“시골 살아 죽으면 안 되잖나”


응급 환자용 슈퍼카. 제작: 이제석 광고연구소 ⓒ www.jeski.org

응급 환자용 슈퍼카. 제작: 이제석 광고연구소 ⓒ www.jeski.org


※‘이제석 광고연구소’가 경향신문 창간 기획 ‘절반의 한국’과 함께 합니다. 연구소가 제작한 공익광고가 기획 기사의 메시지를 한층 선명하게 할 것입니다.


■특별취재팀 배문규·최민지(스포트라이트부)박채영·문광호(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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