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재즈바는 다시 북적였고, 백신여권의 위력은 컸다

성우제

성우제의 ‘경계인’

올해 캐나다 추수감사절(Thanksgiving)은 10월11일(매년 10월 둘째주 월요일)이었다.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집에 모여 칠면조를 함께 굽는 날이 바로 이날이다. 이맘때면 날씨는 쌀쌀해지고 상가도 문을 닫아서 거리는 을씨년스럽다. 캐나다에 일가친척 하나 없는 나 같은 이민자들이 가장 쓸쓸해하는 날이기도 하다.

재즈 애호가로 가득 찬 몬트리올의 라이브 재즈바. 백신여권 제도를 시행하는 주에서 백신여권 소지자는 식당이나 재즈바에서 코로나19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식사와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재즈 애호가로 가득 찬 몬트리올의 라이브 재즈바. 백신여권 제도를 시행하는 주에서 백신여권 소지자는 식당이나 재즈바에서 코로나19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식사와 공연을 즐길 수 있다.

그래도 올해 추수감사절은 조금 색다르게 보낼 수 있었다. 가까이 살면서도 작년부터 보지 못했던 뉴욕의 누님 부부를 몬트리올에서 만나 3박4일을 함께 보냈다. 평소 같으면야 가게 때문에 연휴 사흘 동안만 여행했겠으나 매출이 좋지 않은 요즘에는 평일 하루 가게문을 닫아도 별반 문제될 것이 없었다.

재즈 음악을 좋아하는 누님 부부는 몬트리올의 라이브 재즈바를 예약해 달라고 부탁했다. 요즘 같은 시절에 재즈바가 정상 영업을 할지에 대해 의구심이 일었다. 토론토만 해도 9월22일 ‘백신여권 제도’(백신 2차 접종 확인서와 신분증을 제시해야 실내 식당·극장·헬스클럽 등에 출입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시행한 이후에야 식당이나 바들이 겨우 숨통을 틔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9월1일 퀘벡주가 캐나다에서 가장 먼저 백신여권을 도입했다고는 하지만 좁은 라이브 재즈바가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뉴욕 누님네와 보낸 추수감사절
작년과 달리 쓸쓸하지 않았다
몬트리올은 활기를 되찾았고
여행객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2차 접종 완료 확인서만 있으면
실내서 예전처럼 먹고 마실 수 있다
어느새 ‘위드 코로나’가 시작된 듯
코로나 시대의 한 장이 넘어간다

토론토만 해도 먹고 마시려고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식당과 술집들은 손님들이 한 자리 건너 띄엄띄엄 앉는 형편이다. 게다가 투명 칸막이를 설치한 곳이 대부분이다. 인구 1500만명인 온타리오주의 경우 백신 2차 접종률이 80%를 넘어섰지만(캐나다 전체 73%) 델타 변이의 확산으로 하루 확진자 수는 여전히 500명 안팎을 오르내린다. 그 500명 가운데 2차 백신 접종자 비율이 4분의 1에 이르러, 2차 접종까지 마쳤다 해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상황이다. 보건당국도 이 같은 점을 고려해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내년 초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온라인으로 검색해 몬트리올 다운타운에 있는 유명 재즈바를 찾았다. 온라인 예약을 받지 않아 공연 사흘 전에 전화를 했다. 토요일 저녁 두 번 공연 가운데 7시는 이미 매진되었고, 9시30분도 몇 자리 안 남았으니 바로 결정을 하라고 했다. 뜻밖이었다. 더군다나 토요일 낮에 확인 전화를 다시 할 터이니 전화번호를 남기라고 했다. 입장객 수를 대폭 줄여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금요일 아침, 몬트리올행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더니 예상치 않게 차가 많았다. 휴게소도 코로나19 시대 이전 못지않게 붐볐다. 몬트리올 도착 이튿날인 10월9일 토요일. 몬트리올 도심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점심시간이 채 되지 않은 오전 11시쯤인데도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몬트리올을 찾는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들른다는 ‘올드 몬트리올’은 더 붐볐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외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리를 지어 여행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고, 대형 관광버스가 즐비하게 늘어선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의 행색을 보아하니 나 같은 국내(또는 미국에서 온) 여행객이거나 몬트리올 시민들 같았다. 대형 관광버스가 안 보이는 대신 승용차 주차장들은 빈자리 찾기가 어려울 만큼 빼곡히 들어찼다.

몬트리올을 감싸고 흐르는 세인트로렌스 강가로 내려가도 붐비기는 마찬가지였다. 놀이공원의 원형 대관람차는 사람을 가득 채운 채 돌아갔고 집라인을 즐기는 사람들도 끊이지 않았다. 일명 ‘청룡열차’에서도 비명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세인트로렌스강을 오르내리며 1시간30분 동안 도시를 구경하는 배를 타기로 했다. 매표소 직원은 우리에게 백신여권을 보자고 했다. 우리 부부는 온타리오주에서 발급한 백신 2차 접종 확인서와 신분증을 제시했다. 뉴욕에서 온 누님 부부는 뉴욕에서 발급받은 확인서를 보여주었다. 작년 3월부터 ‘코비드 프런트라인’의 의료진으로 일해온 누님은 몇주 전에 맞은 백신 ‘부스터샷’ 증명서를 보여주었다. 자동차로 캐나다 국경을 넘어오면서부터 백신접종 확인서를 제시해온 누님 부부는 그 확인서를 신분증처럼 아예 목에 걸고 다녔다. 휴대폰에 다운로드받아서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간편해 보였다. 식당과 카페 등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실내 공간 어디를 가든 백신 2차 접종 확인서와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예외는 없었다.

배에 오른 다음에야 매표소에서 백신여권을 확인한 연유를 알게 되었다. 배에는 간단한 먹거리와 음료를 파는 식당이 있었다. 배에서 내려와 손님이 많아 보이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입구에서 백신여권을 보여주는 것이 시간이 걸리는 번거로운 일이기는 해도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식당에서는 손님들이 한 자리 건너 띄엄띄엄 앉는 것도 아니었다. 유리 칸막이도 없었다. 자리가 부족해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도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었다. 굳이 다른 점이라면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마스크를 끼고 다닌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예약했던 재즈바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렇게 확인 전화까지 하는 것을 보면 공연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거리에 나와 도시 구경을 하며 슬슬 걸어다녔다. 사람들은 오전보다 훨씬 많았다. 추수감사절 연휴 첫날인 토요일인 데다 날씨가 맑고 10월답지 않게 따뜻하기까지 해서 사람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 듯했다. 유명 관광지라고 해도, 코로나19 시국임을 감안하면 깜짝 놀랄 만한 인파였다. 나로서는 작년 봄 이래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오후에도 외지에서 온 단체 관광객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백신여권 제도를 도입한 이후, 그동안 하지 못한 여행을 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았다.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 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부러워하기만 했으나, 이제는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된 것 같았다.

저녁쯤 되니, 커피점이고 식당이고 간에 실내에 들어가면서 백신여권을 제시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재즈바를 찾아가는 중에 어느 골목에 들렀다. 젊은이들이 몰려서 가는 것을 보고 그냥 따라갔는데, 퀘벡 출신 가수 레너드 코언의 대형 초상화가 그려진 빌딩을 끼고 이른바 ‘먹자 골목’이 나타났다. 차 없는 거리였다. 거리 양편에 술집들이 말 그대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낮에 보았던 ‘올드 몬트리올’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실내에 앉든, 야외 파티오에 앉든 간에 술집들은 입구에서 손님들에게 백신여권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엄격하게 하는 까닭은,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업소는 벌금 1000달러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개인 위반자는 750달러). 이것은 절대 봐주거나 벌금을 깎아주는 법이 없는 경우(‘Zero Tolerance’라고 한다)에 해당되어 아무리 성가시고 시간이 걸려도 업소들은 규정을 준수한다. 규정을 지키는 것이 ‘남는 장사’이다. 손님을 가장한 단속반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는 이런 ‘암행 단속’이 일반화해 있다.

재즈바에 갔더니, 입장 요건이 더 엄격하다. 백신 접종 확인서와 신분증을 제시하는 것에 더해 개인 전화번호까지 적어야 했다. 혹시 이곳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나오면 전화를 해주겠다고 했다.

재즈바는 역시나 좁았다. 50명쯤 되는 사람들이 빈 자리 없이 거의 붙어앉다시피했다. 탁자 사이는 1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래, 실내외를 막론하고 나로서는 역시 처음 겪는 일이자 광경이었다. 놀랍게도 손님 중에 마스크를 쓴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불안해서 줄곧 마스크를 썼고 맥주를 마실 때만 잠깐씩 벗었다.

다음날인 추수감사절 당일에도 몬트리올의 명소로 꼽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관광지 식당은 추수감사절에도 문을 열었고, 어디가 되었든 북적였다. 푸틴으로 유명한 어느 식당은 문 바깥으로 30m쯤 줄이 이어졌다. 들어갈 때마다 백신여권을 철저하게 확인하는 것을 보면서, 실내에서 마스크를 벗은 채 밥을 먹고 술을 마셔도 이전처럼 불안하지 않았다.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백신 미접종자는 최소한 없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전날 재즈바에서 본 마스크 벗은 사람들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캐나다 퀘벡주를 시작으로 9월 들어 온타리오주,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매니토바주 등이 백신여권 제도를 잇달아 도입했다. 이 제도를 시행하는 주에서 백신 미접종자 혹은 거부자는 식당에서 밥도 먹지 못한다. 반면 우리처럼 백신여권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은 식당에서도, 재즈바에서도 코로나19 이전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식사와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캐나다는 연방정부와 주정부 차원에서 백신 미접종자와 안티백서들을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다. 토론토는 접종률 90%를 목표로, 미접종자들에게 전화와 문자메시지까지 퍼붓고 있다. 백신 반대 시위를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공무원이나 의료진이 백신 접종을 거부할 경우, 무급 휴직에 이어 해고까지 하겠다는 메시지가 연방정부와 주정부에서 잇달아 나오고 있다. 그 범주는 교사, 버스·지하철 운전기사, 은행원 등으로 계속 확대 중이다.

나로서는 백신여권 제도를 도입한 이후 처음으로 다른 도시 여행을 하고 보니, 백신여권의 위력이 의외로 크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위드 코로나’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고 있으나 실질적인 ‘위드 코로나 시대’로 자연스럽게 접어든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코로나19 시대의 한 장이 넘어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휴 마지막 날, 토론토로 돌아오는 고속도로는 한국의 추석 귀경길처럼 정체가 심했다. 최소한 고속도로는 코로나19 이전 시대로 돌아온 것 같았다.

▲성우제

[다른 삶]낯설지만 재즈바는 다시 북적였고, 백신여권의 위력은 컸다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6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등 단행본 5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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