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곽에서 홀로 생존을 외치다

오경민·민서영·이두리 기자

밀려나고 작아지는 목소리

[단독][감염병 시대, 집회의 미래②]서울 외곽에서 홀로 생존을 외치다

시청·광화문·청와대·정부청사 등
집회의 본산 서울 도심 ‘조용’
광화문 집회, 코로나19 이후 90%↓

올해 집회 주최 전체 2위가 ‘개인’
규모도 99%가 ‘10인 미만’
작아지고 외곽으로 밀리는 추세

코로나19 대유행 사태로 대규모 집회의 본산이나 다름없던 서울 도심이 조용해졌다. 경찰과 지방자치단체가 방역수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이유 등으로 신청하는 집회를 건건이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집회가 일상처럼 존재했던 서울시청, 광화문, 청와대, 정부청사 부근에서 열리던 집회가 주된 금지 대상이 됐다.

집회 규모는 작아지는 흐름이 뚜렷하다. 2019년 전체 집회의 3%에 불과했던 ‘10인 미만’ 집회는 올 들어 그 비중이 99%까지 치솟았다. 서울 도처에서 생존권을 건 싸움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들을 대변할 목소리는 점점 도심에서 외곽으로 밀려나고 원자화되는 추세다.

17일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울경찰청에서 받은 ‘2019~2021 집회 신고 현황’을 분석한 결과, 최근 3년간 서울시에서 열린 집회는 1만3017건으로 집계됐다. 절반에 가까운 6279건이 2019년에 개최됐고, 2020년과 2021년 1~8월 열린 집회는 각각 3509건과 3229건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이전 월평균 523건이던 집회 건수가 코로나19 이후 월 348건으로 33.4% 감소한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나온 2020년 1월 이후 서울 도심과 주요 청사 인근 집회가 크게 감소했다. 하루 평균 2건을 기록했던 광화문 일대의 집회는 코로나19 이후 90%가량 줄었다. 이곳 집회는 2019년 675건, 2020년 93건, 2021년 1~8월 24건으로 감소 추세가 확연하다. 2019년 301건이던 시청 앞 집회 역시 2020년 17건, 2021년 1~8월 15건에 그쳤다.

[단독][감염병 시대, 집회의 미래②]서울 외곽에서 홀로 생존을 외치다

또 다른 ‘집회의 명당’들도 설 자리를 잃었다. 단체 민원이 많은 시·구의회 인근 집회는 2019년 19건이 열렸지만, 올해 들어서는 단 1건도 개최되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기관장 공관 앞은 88%, 정부청사 앞은 83%, 종로 일대는 74%, 서울역 일대는 71%, 청와대 앞은 70% 집회 개최 건수가 감소했다. 청계천 일대와 국가인권위원회 앞도 각각 65%, 63% 줄어들었다.

코로나19 와중에도 일부 정부기관에서는 집회가 늘어났다. 교육청 앞 집회는 2019년 37건에서 2020년 46건으로, 같은 기간 금융감독원 앞 집회는 19건에서 38건으로 집회 수가 증가했다. 고용노동청이나 세무서 부근에서도 증가 폭은 작았지만 비슷한 흐름이 관찰됐다.

주최자 유형별로는 개인이 신고한 집회 비중이 증가 추세다. 집회 신고자를 노점·상인단체, 노동조합, 보수단체, 시민단체, 이익단체 등 14개로 분류해보니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전체 집회에서 ‘개인’은 10.5%를 기록해 4번째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개인 신고 집회는 2020년 14.6%, 2021년 15.4%로 비중이 증가해 올해는 노동조합에 이어 2번째로 많았다. 보수단체는 2019년 969건의 집회를 개최한 반면 2020년에는 497건을 여는 데 그쳤다. 시민단체도 2019년 682건에서 2020년 298건으로 크게 줄었다. 올해 1~8월에도 보수단체는 376건, 시민단체는 361건의 집회를 개최하는 데 그쳐 코로나19 이전의 반토막 수준이 됐다.

집회는 줄어들고 있지만 거리에 나온 이들이 전면에 내건 키워드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년간 집회 명칭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생존권’이었다. 2019년 362건, 2020년 266건, 2021년 1~8월 221건의 생존권을 슬로건으로 내건 집회가 서울 곳곳에서 열렸다. 건설노동자, 철거민, 소상공인, 택시기사, 노점상인, 하도급 업체, 시각장애인 안마사, 타워크레인 조종사, 공인중개사, 레미콘 운송종사자 등이 집회를 통해 생존권을 지키겠다는 목소리를 냈다.

특정 연도에 눈에 띄는 키워드가 도드라지기도 했다. 2019년에는 집회 명칭에 ‘박근혜’를 쓴 사례가 251건, ‘대통령’은 231건, ‘대한민국’ 154건, ‘무죄 석방’ 143건, ‘태극기’ 124건 등이었다. “대한민국 수호”와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를 외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죄 석방을 주장하는 보수단체의 집회가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단체가 집회에서 자주 언급하는 ‘부정선거’ ‘대한민국’ ‘무죄 석방’ 등의 키워드는 2020년과 2021년에도 꾸준히 등장했다.

올해는 이전에 찾아보기 어려웠던 ‘미얀마’라는 키워드가 74건 등장했다. 한국에 체류하면서 고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미얀마인들이나 이들을 돕는 국내 시민단체들이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를 규탄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이 기후 행동과 등록금 반환 운동을 이끌면서 ‘대학생’이란 키워드도 74건 등장했다.

지난 3년간 최다 슬로건은 ‘생존’
소상공인·철거민·건설노동자 등
각계각층 생존권 사수 위해 거리로

‘평온’ ‘주택가’ ‘사생활’ 등이 집회 명칭에 포함된 것도 76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유엔빌리지 시민봉사회가 소집한 ‘주택가 사생활 평온 보장 촉구 집회’에 등장하는 단어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는 고급 빌라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집 앞에서 열리는 노조 등의 집회를 막기 위해 하청업체 사장·임원 등이 봉사회 명의로 이곳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동일한 장소에서 여러 건의 집회·시위를 신고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한 ‘집회 알박기’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전체 집회 건수는 예년의 3분의 2 수준으로 급감했지만, 소규모 집회는 폭증했다. 2019년 216건에 불과했던 10인 미만(1~9명) 집회는 2020년에는 912건으로 4배, 2021년 1~8월에는 3225건으로 15배가량 증가했다. 전체 집회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9년에는 3% 수준으로 미미했지만 2020년 25%, 2021년 99%를 차지했다.

반면 2019년 2491건 열린 10인 이상 99인 이하 집회는 2020년 1703건, 2021년 1~8월 4건으로 감소했다. 2019년 2199건이던 100명 이상 499명 이하 집회는 2020년 648건, 같은 기간 1373건이었던 500인 이상 집회는 246건이 됐다. 100명 이상 집회는 올 들어 1건도 열리지 않았는데, 이는 정부 조치에 따라 전면 금지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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