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소멸 메타버스(3)

새로운 문화 될까, 메타버스 집회 가보니

유명종 PD

“메타버스 집회가 물리적으로 먼 국제 이슈에서 현지인들과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죠.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홍콩의 송환법 반대, 기후위기 같은 문제에서 말이에요. 전 세계인이 메타버스 공간에 자신의 아바타를 보내서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을 표현하고 목소리도 낼 수 있지 않을까요.”

게임이나 소비 등을 위한 것이라고만 인식됐던 가상공간은 메타버스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기능이 확장되고 있다. 출근하고 일하며, 친구를 사귀고 이제는 집회도 열린다. 문화연대가 지난 7월 타투 합법화를 촉구하는 집회, ‘내눈썹이불법이라니’를 국내 처음으로 메타버스에서 개최한 데 이어 민주노총도 지난 17일 청년노동자집회를 메타버스에서 진행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감염병 확산 우려에 따라 도심 등지에 모여 이뤄지는 ‘현실 집회’가 제한되자 대안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메타버스는 집회의 ‘뉴노멀’이 될 수 있을까.

[경계의 소멸①] ‘부캐’로 메타버스 행성을 오가며 돈 버는 크리에이터의 등장

[경계의 소멸②] 지하철 대신 네트워크를 타고 출근합니다

지난 17일 제페토 앱의 메타버스 공간에서 열린 민주노총 청년노동자집회 화면. 아바타들이 집회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다. / 유명종PD yoopd@khan.kr

지난 17일 제페토 앱의 메타버스 공간에서 열린 민주노총 청년노동자집회 화면. 아바타들이 집회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다. / 유명종PD yoopd@khan.kr

지난 17일 제페토 앱의 메타버스 공간에서 열린 민주노총 청년노동자집회에 참석하기 전 아바타에 조끼와 빨간 머리 띠, 피켓을 장착하고 있다. / 유명종PD yoopd@khan.kr

지난 17일 제페토 앱의 메타버스 공간에서 열린 민주노총 청년노동자집회에 참석하기 전 아바타에 조끼와 빨간 머리 띠, 피켓을 장착하고 있다. / 유명종PD yoopd@khan.kr

민주노총 청년노동자집회는 제페토 앱의 메타버스 공간에서 진행됐다. 아바타에 노동조합 조끼를 입히고 빨간 머리띠를 두른 후 피켓을 장착한 뒤 앱에 접속하자 같은 조끼와 머리띠를 두른 아바타들이 보였다. 집회 장소로 이동하는 길에는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부스, 산재로 사망한 청년노동자를 애도하는 추모 공간 등이 마련돼 있었다. 집회가 열리는 무대 앞에선 노래에 맞춰 아바타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최승혁 공무원노조 청년위원장은 이날 집에서 집회에 참가했다. “그동안 집회에 한 번도 나오지 못했던 조합원들도 부담감 없이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합니다. 오프라인 집회라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쑥스러울 수도 있을 텐데 다들 적극적으로 행동하더라고요. 집회는 현실에서와 똑같이 민중의례를 시작으로 선언문을 낭독하고 구호도 외치며 다 같이 행진도 했죠.”

지난 7월 16일 티슈 오피스‘ 히든오더’ 앱에서 열린 ‘내눈썹이불법이라니’ 집회 / 제공 ‘티슈 오피스 Tissue Office’

지난 7월 16일 티슈 오피스‘ 히든오더’ 앱에서 열린 ‘내눈썹이불법이라니’ 집회 / 제공 ‘티슈 오피스 Tissue Office’

지난 7월 16일 티슈 오피스 ‘히든오더’ 앱에서 열린 ‘내눈썹이불법이라니’ 집회. 참가자들이 집회를 마치고 아바타를 이용해 행진하고 있다 / 제공 ‘티슈 오피스 Tissue Office’

지난 7월 16일 티슈 오피스 ‘히든오더’ 앱에서 열린 ‘내눈썹이불법이라니’ 집회. 참가자들이 집회를 마치고 아바타를 이용해 행진하고 있다 / 제공 ‘티슈 오피스 Tissue Office’

메타버스 집회 기획 담당자들은 물리적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만족한다는 입장이다. ‘내눈썹이불법이라니’ 집회를 기획한 신영은 문화연대 활동가는 “코로나19로 인한 여러 가지 시도 중에 하나”라며 “‘유튜브’나 ‘줌’으로 집회를 할 때도 ‘일방향적’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메타버스에선 참가자 아바타들이 같은 아이템을 장착했고 ‘점프’ 등의 동작들을 통해 ‘참여하고 있다’는 인상을 느낌을 더 받았다”고 말했다. 청년노동자집회를 기획한 연미림 민주노총 청년사업실장은 “쓰레기가 발생하거나 교통정체를 유발하는 등의 잡음 없이 깔끔하게 집회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면하지 않는 집회의 한계는 분명하다. 집회 참가 아바타들과 인터뷰를 할 때도 목소리가 울리거나 끊겨서 소통이 원활하진 않았다. 제페토의 경우 최대 참가자가 16명까지여서 그룹을 나눠 집회를 진행하기도 한다. 신영은 활동가는 “현장 집회는 이슈가 터지면 당장 내일이라도 열 수 있는데 메타버스 집회는 기술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며 “비용과 시간이 현장 집회보다 많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한 민주노총 간부는 메타버스 공간에서 길을 잃어 일곱 살 조카의 도움으로 집회 장소를 찾아갈 수 있었다고 했다. 기기 사용에 대한 지식과 모바일이나 컴퓨터 사용 환경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접근성에 문제도 있다.

이장희 창원대 법학과 교수는 현장에서 오감을 통해 서로 느끼고 공감할 기회를 마련하는 집회의 취지를 메타버스가 완벽하게 구현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의사를 전달하거나 ‘사람들이 모였다’는 수준에 집회로 그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집회는 보통 항의하는 대상이 보이고 들리는 가까운 곳에서 이루어지죠. 메타버스는 대상과 상관없이 동떨어진 곳에서 열리다 보니까 참여하지 않으면 듣지 못하게 돼버립니다.”

특히 이 교수는 “사람들이 만나지 않는 집회가 일상화되고 고착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타버스 집회는 오프라인 집회의 보완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연미림 청년사업실장 역시 “오프라인 집회를 대체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광화문이나 청와대 앞이 아닌 메타버스 공간이 ‘과연 위력적인가’라는 부분에선 의문이 들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참가해 언론에 보도되고 여론이 형성된다면 같은 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시대 변화에 맞춰 더 많은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방법이 다양화됐으면 좋겠습니다.”

메타버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활동은 경향신문 유튜브 채널 <이런 경향> ‘경계의 소멸 메타버스 시리즈’ 를 통해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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