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청각장애인’이 아닌 그저 ‘목소리가 다른 사람’이 아닐까

이길보라

마서스비니어드섬에서 태어났다면

청각장애인 박광은씨가 운행하는 ‘고요한 M’ 택시에서 승객이 손글씨를 입력하고 있다.  작가 제공·경향신문 자료사진

청각장애인 박광은씨가 운행하는 ‘고요한 M’ 택시에서 승객이 손글씨를 입력하고 있다. 작가 제공·경향신문 자료사진

눈앞에서 접촉 사고가 났다. 연말연시라 기분 낸다고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엄마는 주차 공간이 좁으니 먼저 내리라고 수어로 말했다. 나와 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챙겼다. 차에서 내려 문을 닫았다. 쾅, 하고 차가 움직였다. 엄마는 진동을 통해 몸으로 신호를 감지했다. 아차, 케이크를 들고 내리지 않은 걸 깨달았다. 황급히 문을 열었다. 상자를 향해 손을 뻗는데 갑자기 차가 움직였다. 동생과 나는 어어, 하고 동시에 소리쳤다. 엄마는 후방을 응시하며 차를 후진했다. 나는 소리를 지르는 대신 팔을 머리 위로 크게 움직였다. 여기 보라고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아닌 팔이나 몸을 크고 빠르게 움직여 신호를 주는 시각적 소통 방식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시선은 차 뒤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차 문이 열려 있는데 모르진 않을 거란 생각에 곧바로 달려가 차체를 두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대로 후진했다. 옆에 주차된 차량에 열린 문이 걸렸고 차체 외부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그제야 엄마는 진동을 느끼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봤다. 나와 동생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손을 거칠게 부딪치며 말했다.

1종 보통면허 취득에 도전했다
클러치·브레이크·액셀·페달…
어려운 용어, 낯선 상황에 진땀
동아줄 같았던 강사의 목소리

들리지 않는 엄마는
학과시험에 수차례 떨어지고
주행 내내 깜짝깜짝 놀라며
‘용케’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문 열려 있는데 왜 후진하냐고. 운전 못해, 왜? 바보냐고!”

사실 그건 내 잘못이었다. 엄마에게 신호도 주지 않고 차 문을 열었으니까. 엄마는 문이 닫히는 소리를 몸으로 감지하고 계획대로 후진했을 뿐이다. 나는 엄마의 운전 미숙을 탓하며 옆 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죄송해요, 저희 엄마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이라 실수를 했어요.”

남성중심 사회의 여성 운전자

운전면허를 늦게 땄다. 그동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운전학원 특유의 남성중심적인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커지고 미투 운동을 비롯한 페미니즘 운동이 확산되면서 이전보다는 다니기 낫다는 이야기를 듣고 면허를 따기로 했다.

먼저 교통안전교육을 이수하고 신체검사를 하고 필기시험이라고 부르는 학과시험을 치러야 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조작법과 주행에 대한 교육인 장내기능시험을 위한 교육을 받고 합격하면 도로주행교육을 이수하고 최종 시험을 보는 순서였다.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덜 스트레스를 받으며 면허를 딸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접수처 직원에게 여성 강사가 있는지 물었다. 여성은 운전을 잘하지 못한다는 성차별적인 인식이 있는 한국에서 어린 여성으로서 나이 많은 남성 강사에게 운전 교육을 받기보다는 여성 강사에게 받고 싶었다. 생물학적 성별이나 연령이 차별 행위나 혐오 발언의 가능성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 강사인 쪽이 마음 편하고 안전할 것 같았다. 그러나 여성 강사는 두 명뿐이었다. 예약이 꽉 차 있어 몇 주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별수 없이 남성 강사에게 교육받기로 했다.

장내기능시험을 위한 교육을 받는 날이었다. 강사는 자꾸만 반말을 하며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잘 모르니까 학원에 다니는 건데 그것도 모르냐며 자꾸 반말했다. 아무리 한국어에 존댓말과 반말이 있다지만 상호가 동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계를 넘나들어서는 안 된다. 교육이 끝나자마자 접수처로 달려갔다. 강사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서른한 살이 반말 들을 나이는 아니지 않냐며 불만사항을 토로했다. 직원은 나이에 상관없이 교육 중에 반말을 해서는 안 된다며 내용을 접수했다.

교체된 강사에게 교육을 다시 받았다. 좀 툴툴대긴 했지만 수강생에게 애정이 있는 강사였다.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수업을 이수했다. 도로주행을 할 때 다른 운전자를 향해 “운전 왜 저래? 보나 마나 아줌마 운전자일 것”이라고 말한 것만 빼면 괜찮았다. 그건 여성 혐오 발언이라며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여 싸워야 했지만 시동 걸고 기어 조정하고 깜빡이 켜고 좌우를 확인하며 목숨을 부지하느라고 미처 따지지 못했다.

‘고요한 M’ 택시는 청각장애인 기사가 운행하는 택시 서비스다. 기사가 택시 앞에서 ‘자립’이란 의미의 수어를 하고 있다.

‘고요한 M’ 택시는 청각장애인 기사가 운행하는 택시 서비스다. 기사가 택시 앞에서 ‘자립’이란 의미의 수어를 하고 있다.

비장애 남성중심사회의 여성 농인 운전자

트럭 모는 멋진 여자가 되기 위해 1종 보통면허 교육 과정을 신청했다. 기어를 바꿀 때마다 시동이 꺼질까 노심초사했다. 클러치와 브레이크, 액셀 페달의 위치도 헷갈리는데 기어 변속도 조정해야 한다니. 그 와중에 신호등도 확인해야 하고 길도 외워야 하고 차선도 바꿔야 했다. 능숙해지기에는 교육 시수가 짧았다. 4시간의 장내기능교육과 6시간의 도로주행교육을 받고 각각 시험을 치러야 했다.

해보니 쉽지 않았다. 용어도 어려웠고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보를 접수하고 처리하여 신속한 판단을 내려야 했다. 보조석에 앉은 강사가 목소리를 통해 주는 정보는 마치 생명을 구하는 동아줄 같았다. 여기서 차선을 변경해라, 속도를 조금 더 내라, 오르막길에서 시동을 꺼뜨리지 않으려면 클러치를 반쯤 밟은 상태로 액셀을 밟아라, 여기서 잠깐 멈춰라 등 청각을 통한 정보는 너무나 귀했다. 교육을 마치고 한숨 돌리며 차에서 내리는데 갑자기 엄마가 생각났다. 음성언어를 들을 수 없는 농인 엄마는 도대체 운전을 어떻게 배운 걸까?

어릴 적 엄마가 운전면허를 따겠다며 학과시험 기출 문제집을 여러 권 사서 집에 돌아왔던 적이 있다. 하루 종일 추위에 떨며 노점 장사를 한 엄마는 고단한 표정으로 책을 보다 말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나는 엄마 옆에 앉았다. 특수교육의 한계로 문자언어를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엄마는 종종 단어의 뜻을 물었다. 늘 그랬듯 영민하고 똑똑한 딸이 되어 수어로 쉽게 풀어 설명하려 했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아빠는 남들 다 합격하는 학과시험에 떨어졌다며 바보라고 놀렸다. 그러나 정말 어려웠다. 운전은 어른의 세계였고 엄마는 어른이었다. 어른들은 기출문제 몇 번 풀면 학과시험은 쉽게 합격한다고들 했다. 엄마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용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엄마는 학과시험에 몇 번이고 떨어졌다.

엄마에게 영상전화를 걸었다. 막상 운전해보니 쉽지 않다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운전을 배웠냐고 물었다. 엄마는 먼저 면허를 딴 아빠가 수어로 알려주면 좋았겠지만 자가 자동차로 연습하다 사고날까봐 그러지 못했다고, 가르쳐달라고 했지만 계속 짜증을 내서 학원에 등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운전학원 강사가 수어를 모르고 나는 음성언어를 할 수 없으니까 말이 통하지 않았어. 용어 같은 거 종이에 적어서 알려줬지. 단어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어. 모르겠지만 알았다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지. 무서웠어. 바보가 된 기분이었어.”

엄마는 시간표대로 교육을 이수해야 했다. 듣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단어를 풀어 설명한다거나 수어통역사가 대동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강사는 농인의 문해력을 고려하지 않고 기존 속도대로 교육했다. 이해하지 못하면 화를 냈다. 용어도 용어지만 도로주행 교육을 하면서 의사소통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다. 운전하면 앞을 보게 되는데 옆에 앉은 강사와 필담으로 어떻게 소통했는지 물었다.

“다리를 손으로 쳤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면 왼쪽 다리. 속도를 내야 하면 오른쪽 다리.”

엄마는 깜짝깜짝 놀라며 브레이크를 밟고 액셀을 밟으며 운전을 배웠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면허를 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그래도 용케 합격한 게 다행이지 않냐며 웃었다.

청각장애인은 1995년까지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없었다. 들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장애인 운전권을 위한 투쟁이 있었고 몇 차례의 법률 개정을 거쳐 현재 청각장애인은 대형면허와 특수면허를 제외한 1종 보통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 그러나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교육 방식과 문자언어 중심으로 작성된 시험은 음성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문자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농인에게는 여전히 문턱이 높다. 2019년 6월에야 도로교통공단은 학과시험 수어 동영상 학습용 교재를 개발하여 웹사이트를 통해 배포했다.

마서스비니어드섬 사람들이 마서즈 비니어드 섬의 수어를 시연하고 있다. 수어에도 사투리가 있으며 각 국가 및 지역의 사회·문화적 특성이 반영된다.

마서스비니어드섬 사람들이 마서즈 비니어드 섬의 수어를 시연하고 있다. 수어에도 사투리가 있으며 각 국가 및 지역의 사회·문화적 특성이 반영된다.

목소리가 다른 사람, 농인

유전적으로 청각장애인 많았던
미국의 마서스비니어드섬에선
‘들을 수 없음’은 장애가 아니었고
‘수어’는 모든 섬사람의 언어였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뭘까
비장애인 중심의 남성사회서
농인이자 여성으로서 살아온
엄마의 삶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 보스턴 남부에 있는 섬 마서스비니어드에는 유전적으로 청각장애인이 많았다. 19세기에 미국 전체 인구의 청각장애인 비율과 비교할 때 100배 높은 비율이었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보면 저주받은 섬 같겠지만 섬 사람들은 들리지 않음을 장애로 생각하지 않았다.

책 <마서즈 비니어드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한길사·2003)는 마서스비니어드에서 청각장애는 아주 평범한 것이었기에 모두가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제2외국어로 수어를 배웠다고 말한다. 한 노인은 농인을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이 책의 저자이자 의료인류학자인 노라 엘렌 그로스는 섬에서 살았던 노인을 찾아가 농인 이사야와 다비드를 기억하는지 묻는다. 노인은 그들은 아주 훌륭한 어부였다고 대답한다. 농인이 아니었냐고 묻자 그는 기억을 더듬으며 말한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고,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고 말이다. 청각장애 유전율이 높았던 섬에서 농인은 병리학적 관점의 청각장애인이 아니라 훌륭한 어부이자 사회구성원이었다. 들을 수 없음은 결여나 손상의 의미가 아닌, 다른 목소리가 된다.

마서스비니어드섬의 사례는 어떤 몸을 중심으로 세계를 설계할 것인지 묻는다. 무엇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가르는가. 농인을 말 못하는 장애인이 아닌 ‘목소리가 다른 사람’으로 호칭하는 사회를 상상한다. 엄마가 마서스비니어드섬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럼 운전은 어떻게 배웠을까.

뒤늦게 운전을 배우며 엄마를 떠올린다. 농인이자 여성으로 비장애인 남성중심 사회에서 살아온 엄마의 생을 가늠해본다.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

*‘청각장애인’은 병리학적 관점으로 청력과 평형기능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말하고, ‘농인’은 청각장애인 중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고 한국수어에 기반한 농문화를 영위하며 사는 사람을 뜻한다. ‘수어’는 ‘수화언어’를 줄인 말로 한국어와 영어와 같은 독립된 언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길보라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11) ‘청각장애인’이 아닌 그저 ‘목소리가 다른 사람’이 아닐까

영화감독이자 작가이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고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 저서로는 <반짝이는 박수 소리> <우리는 코다입니다>(공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당신을 이어 말한다> 등이 있고, 연출한 영화로는 <로드스쿨러>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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