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손실보상금은 자영업자가 받는데···건물주가 웃는다읽음

조해람·강은 기자

참여연대 자영업 단체들, 업주 791명에 실태조사

절반 이상 “임대료 연체”…비쌀수록 더 오래 밀려

보상금 천만원 미만 35.3%…“임대료 분담제 필요”

지난 25일 오후 서울 은평구의 한 볼링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 25일 오후 서울 은평구의 한 볼링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권도현 기자

서울 은평구 3호선 연신내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면 눈앞에 5층 규모의 대형 상가건물이 나온다. 이 건물 3층엔 470평 규모, 15개 레인을 갖춘 볼링장이 있다. 지난 25일 오후 찾은 이곳에선 볼링장이면 으레 들리는 큰 음악과 볼링공이 레인에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볼링장의 ‘피크 타임’이 시작되는 오후 6시를 넘겼는데도 젊은 남성 3명으로 이뤄진 1팀만 들어와 볼링을 즐겼다.

“원래 이 시간에 70%는 차 있어야 하는데….” 볼링 선수 출신인 대표와 의기투합해 3년째 이 볼링장을 운영 중인 신재원 전무(62)가 레인을 둘러보며 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역시 30년 넘게 볼링계에 몸을 담았지만 업계가 이렇게까지 침체된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매출은 3분의 1도 건지기 어렵고, 유지 비용을 빼면 매달 수천만원씩 적자다. 볼링장은 저녁시간 이후가 주된 영업 시간인데 영업시간 제한 조치로 피해가 더 커졌다. 대표가 제2금융권부터 컨설팅업체, 지인들에게 백방으로 돈을 빌리는 모습을 보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깝다.

27일부터 ‘소상공인 손실보상금’ 신청과 지급이 시작된다는 뉴스를 듣고 그는 계산기를 두드려 봤다. 약 7000만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4차 유행이 시작된 8월부터 이달까지 3개월간 연체된 임대료만 9000여만원이다. 영업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돈은 모두 건물주의 돈이 될 것이다. 지난해 11월, 코로나19로 한창 힘들 때 임대료를 10% 올린 건물주다. 이 일대 부동산은 대부분 그의 것이다. “관리사무실에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는데 ‘계약서상 임대료를 올릴 수 있다’는 말만 들었어요. 영업이 그나마 풀렸을 때 올렸으면….”

[단독]손실보상금은 자영업자가 받는데···건물주가 웃는다

■자영업자 절반이 임대료 연체중…10명 중 6명은 “손실보상금보다 비싸요”

코로나19로 손실을 본 자영업자를 위해 27일부터 신청·지급이 시작되는 손실보상금이 사실상 건물주의 몫으로 가게 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손실보상보다 밀린 임대료가 더 많은 자영업자가 많다는 것이다. 코로나19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임대료를 정부와 임차인·임대인이 분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와 자영업 단체들이 지난 18일부터 25일까지 전국 중소상인·자영업자·실내체육시설 업주 791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실시한 ‘코로나19 손실보상 및 임대료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절반 이상(50.7%)이 임대료를 연체하고 있다. 3개월 이상 연체된 업체가 25.8%로 가장 많았다. 1개월 이상~3개월 미만이 16.1%, 1개월 미만 연체가 8.8%였다.

임대료는 비쌀수록 더 오래 밀렸다. 임대료를 연체한 업체의 월 평균 임대료는 약 708만6000원으로, 임대료 연체가 없는 업체(약 402만5000원)에 비해 43%가량 높았다. 월 평균 임대료는 3개월 이상 연체 업체의 경우 약 891만8000원, 1개월 이상 3개월 미만 연체 업체는 약 778만4000원, 1개월 미만 연체 업체는 약 455만5000원이었다.

그러나 전체 응답자 중 58.6%는 자신의 손실보상금이 1000만원 미만(35.3%)이거나 아예 한 푼도 받지 못할 것(23.3%)으로 내다봤다. 임대료가 연체된 업체만 본다면 상황은 더 심각했다. 손실보상 대상 기간인 지난 7~9월 3개월치 임대료 평균은 약 2126만원인데, 62.3%가 자신이 받을 손실보상금 예상액을 2000만원 미만으로 예상했다. 10명 중 6명이 받을 손실보상금은 전액 임대인에게 갈 것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자영업자 37.9%는 집합제한 기간 임대료 전부를 정부가 감면해줘야 한다고 응답했다. ‘70% 감면’은 12.4%, ‘50% 감면’은 28.4%로 나타났다. 가장 시급한 자영업자 지원대책으로는 ‘빠른 손실보상 집행’이 43.9%로 가장 높았고, 집합금지 및 제한조치 전면해제(24.7%), 임대료 분담 및 지원(19.3%), 추가적인 긴급대출(6.3%) 순이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손실보상 및 피해지원 대책을 시행하더라도 그 돈이 연체된 임대료 납부에 소요돼 손실보상 및 피해지원의 효과가 크게 반감된다”고 지적했다.

■목욕탕이 물을 끊었는데도 ‘임대료’는 줄일 수 없었다

코로나19를 맞아 허리띠를 꽉 졸라 맨 자영업자들에게 임대료는 아무리 노력해도 줄일 수 없는 ‘최후의 지출’이었다. 높은 비용도 문제지만 임대료와 관련된 전권이 건물주에게 있어서다. 서울 강남구에서 사우나를 운영하는 김모씨(60)에게도 임대료는 그런 문제였다. 25일 오전 찾은 이 사우나의 탕에는 목욕물이 한 방울도 없었다. 손님이 없어서 수도꼭지를 잠갔다고 했다.

줄일 수 있는 건 모두 줄였다. 고정 직원 3명은 아르바이트 1명이 됐고, 목욕용품은 3분의 1만 구비해둔다. 모을 수 있는 건 모두 모았다. 대출 1억을 받고 살던 방을 빼 보증금을 받았다. 자녀들의 보험을 깼다. “평생이 1년 반만에 모두 날아갔다”고 그는 말했다. 그럼에도 임대료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지난해 6~8월 밀린 임대료 3300만원도 겨우 갚은 그에게는 지금도 최근 두 달치의 임대료가 밀려 있다. 건물주는 코로나19 와중에 임대료를 5% 올리려 시도하기도 했다. 살고 있던 방까지 뺀 그는 이제 사우나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지난 25일 김씨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한 사우나의 목욕탕이 텅 비어 있다. 김씨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사우나에 손님이 끊기자 작년 10월부터 목욕탕에 손님이 올 때를 제외하고는 물을 채우지 않고 있다고 했다. 강은 기자

지난 25일 김씨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한 사우나의 목욕탕이 텅 비어 있다. 김씨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사우나에 손님이 끊기자 작년 10월부터 목욕탕에 손님이 올 때를 제외하고는 물을 채우지 않고 있다고 했다. 강은 기자

나라가 야속하다. “영업하면 벌금 때리겠다고만 하고, 내 재산을 지켜주나요?” 손실을 온전히 보상받을 것이라는 기대조차 접었다. 그는 정부가 건물주의 갑질 방지와 임대료 인하만이라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위기를 맞은 자영업자들이 비용을 줄일 때 끝까지 못 줄이는 게 임대료다. 건물주의 심기를 건드리면 재계약이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대로는 손실보상이 아니라 임대료보상”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나서서 임대료 동결 또는 분담을 논의할 때라고 말한다. 임대료가 자영업자들의 지출 중 가장 큰 고정비용인데다, 업종 또는 규모에 따라 지출 비용이 다른 데도 매출만을 기준으로 손실보상 기준을 세우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이 사무총장은 “이대로는 손실보상이 아니라 임대료보상이 된다. 코로나19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임대료 분담 또는 장사를 유지하는 게 손해가 될 경우 임대차계약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지호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사무국장은 “손실보상 기준을 총매출로만 잡으면 업종마다 원가율 등이 달라서 적절치 않다. 그러나 임대료 문제는 모든 자영업자들이 갖고 있는 공통분모”라며 “자영업자 개인 간 차이를 반영할 수 있는 지원은 임대료 분담 뿐이다. 임대인과 금융기관 등이 일정 비율로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 따라 코로나19 이후 국회에는 12개의 ‘임대료 멈춤법’(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집합금지·제한 기간 동안의 차임을 청구할 수 없거나 일부 금액만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다수이지만 대부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은평구의 한 볼링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 25일 오후 서울 은평구의 한 볼링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권도현 기자

팬데믹으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취약한 위기 분담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 사무총장은 “문제가 발생하면 ‘을’인 소상공인들만 오롯이 피해를 본다. 우리 사회의 고통분담 시스템이 그동안 전무했던 것”이라며 “고통 분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자영업자들은 발생한 손실의 80%만 보상을 받는데 건물주들은 아무런 노력 없이 100% 임대료를 받아간다. 손실보상제도의 취지에도, 사회정의에도 맞지 않는다”며 “일부 국가에서 적극적인 임대료 분담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임대료 멈춤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경향티비 배너
Today`s HOT
부활절 앞두고 분주한 남아공 초콜릿 공장 한 컷에 담긴 화산 분출과 오로라 바이든 자금모금행사에 등장한 오바마 미국 묻지마 칼부림 희생자 추모 행사
모스크바 테러 희생자 애도하는 시민들 황사로 뿌옇게 변한 네이멍구 거리
코코넛 따는 원숭이 노동 착취 반대 시위 젖소 복장으로 시위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
불덩이 터지는 가자지구 라파 크로아티아에 전시된 초대형 부활절 달걀 아르헨티나 성모 기리는 종교 행렬 독일 고속도로에서 전복된 버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