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때 집에 있으라지만···내 집은 ‘40도 가마솥’이었다

김한솔 기자

서울 강북·도봉·중랑구 44개동, 폭염 불평등 ‘상위 10%’

반지하·옥탑방 등 주거환경 열악…대부분 소득도 낮아

“여름 때 할 일 없으면 버스타고 시내 한 바퀴 돌아요”

기초생활수급자인 A씨가 사는 서울 중랑구의 옥탑방 전경. 외벽 절반은 벽돌로, 절반은 철판으로 덧대어져 있다. 철판으로 된 외벽은 비교적 선선한 날씨에서 쉽게 달궈졌다. 한수빈 기자

기초생활수급자인 A씨가 사는 서울 중랑구의 옥탑방 전경. 외벽 절반은 벽돌로, 절반은 철판으로 덧대어져 있다. 철판으로 된 외벽은 비교적 선선한 날씨에서 쉽게 달궈졌다. 한수빈 기자

‘폭염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외출 자제 등 안전관리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폭염 심화에 따라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외출을 자제하고’ ‘폭염 지속에 따라 무더위 시간대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폭염 때 행정안전부에서 보내는 재난안전문자에는 언제나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 있으라’는 당부가 있다. 올해 여름도 그렇게 지나갔다. 폭염 때 ‘물, 그늘, 휴식’이라는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 장시간 실외에 머무는 것은 분명 건강에 위험하다. 하지만 ‘실내’인 집에 있는 것도 그렇다면 어떨까.

259명. 최근 5년 간(2016~2020년) 서울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들 중, ‘집’에서 온열질환이 발생한 이들의 숫자다. 같은 기간 길가에서는 222명, 야외 작업장에서는 209명의 온열질환자들이 발생했다. 실외 못지 않게 많은 이들이 자신의 집에서 온열질환에 걸린 것이다. 집은 모두에게 가장 안전한 공간이어야 하지만, 누군가에겐 폭염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 바깥보다 위험한 장소가 된다. 폭염에 안전하지 않은 집들은 어느 지역에 몰려있고, 어떤 이들이 거주하고 있을까.

환경단체인 ㈔환경정의는 27일 발간한 ‘폭염 불평등 리포트’를 통해 이를 추정했다. 서울시 423개 행정동의 폭염일수와 에너지 효율이 낮은 단독 및 다세대·다가구 주택 비율, 노인, 기초생활수급가구 등 인구사회학적 지표를 종합 분석해 ‘폭염 불평등’ 점수를 환산했다. 불평등 점수가 높을수록 폭염에 취약한 계층도, 집도 더 많다.

자치구별 폭염 일수와 단독 및 다세대·다가구 주택 비율을 ‘폭염 부담’, 65세 이상 노령인구·독거노인·기초생활수급자·장애인 거주비율을 ‘인구사회적 취약 지표’로 설정해 계산한 ‘폭염 불평등 점수’의 분포도를 지도로 만든 것. 폭염 불평등 점수가 상위 10%에 속하는 곳은 강북구, 도봉구 등이다. 환경정의의 ‘폭염 불평등 리포트’ 갈무리.

자치구별 폭염 일수와 단독 및 다세대·다가구 주택 비율을 ‘폭염 부담’, 65세 이상 노령인구·독거노인·기초생활수급자·장애인 거주비율을 ‘인구사회적 취약 지표’로 설정해 계산한 ‘폭염 불평등 점수’의 분포도를 지도로 만든 것. 폭염 불평등 점수가 상위 10%에 속하는 곳은 강북구, 도봉구 등이다. 환경정의의 ‘폭염 불평등 리포트’ 갈무리.

■취약층이 폭염 취약한 집에 더 많이 산다

분석 결과 폭염 불평등 점수가 높은 상위 10%에는 강북구(송천동 등 6개 동)와 도봉구(창3동 등 6개 동), 중랑구(묵2동 등 5개 동) 등 44개 동들이 해당됐다. 가장 높은 폭염 불평등 점수는 77.4점이었는데, 70점 이상인 지역 10곳 중 3곳이 강북구 내 행정동이었고, 성북구와 동대문구 내 동들이 각 2곳씩 있었다.

이들 지역은 서울 서초구나 송파구, 강남구 등 동남부지역보다 상대적으로 ‘폭염 일수’가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효율이 낮은 단독·다세대 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이 많고, 폭염에 민감한 65세 이상 노령인구와 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 장애인 비율이 높았다.

A씨가 거주하는 옥탑방. 전기매트 하나를 펴자 방이 꽉 찬다. 벽 한쪽에 작은 벽걸이형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다. 작동은 하지만, 에어컨 가스 충전이 되지 않아 틀어도 시원하지 않다. 한수빈 기자

A씨가 거주하는 옥탑방. 전기매트 하나를 펴자 방이 꽉 찬다. 벽 한쪽에 작은 벽걸이형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다. 작동은 하지만, 에어컨 가스 충전이 되지 않아 틀어도 시원하지 않다. 한수빈 기자

서울 중랑구에 사는 A씨도 그런 사례다. 올해 67세인 A씨는 다세대 건물 옥탑에 산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다. A씨의 집이 있는 중랑구 면목3동은 폭염 불평등 상위 15% 안에 속한다.

그가 사는 옥탑은 중간에 확장된 듯 절반은 건물과 같은 소재인 붉은 벽돌로, 나머지 절반은 컨테이너 박스와 비슷한 철 소재로 돼있다. A씨와 만났던 9월 중순은 더위가 한 풀 꺾인 날의 오전이었는데도, 외벽은 햇빛을 받아 서서히 달궈지고 있었다. 철로 된 현관문의 절반은 반투명 유리였는데, 유리 하단에 커다란 금이 가 있었다. 살짝 치면 깨질 것 같은 유리에는 직접 붙인 듯한 테이프가 붙어있었다. 현관문을 열면 정면에는 바로 작은 부엌이, 부엌 바로 옆에는 화장실이 있다. 현관문 왼쪽을 보자 A씨가 거주하는 작은 방이 나왔다.

A씨의 방 안에서 돌고 있는 소형 선풍기. 크기가 워낙 작고 방문 바로 옆 현관에서 더운 바람이 들어와 시원하진 않다. 한수빈 기자

A씨의 방 안에서 돌고 있는 소형 선풍기. 크기가 워낙 작고 방문 바로 옆 현관에서 더운 바람이 들어와 시원하진 않다. 한수빈 기자

A씨가 사는 방은 언뜻 보면 냉방이 잘 갖춰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방은 전기매트 하나를 펴면 꽉 찰 정도로 작지만 냉풍기도 하나 있고, 한쪽 벽에는 벽걸이형 에어컨도 설치돼있다. “에어컨 틀어도 시원하진 않아요.” 이 에어컨은 A씨가 이사 온 2014년에 이미 설치돼 있었는데, 그는 에어컨 가스를 충전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가스를 넣어볼까 했는데, 만만치가 않아요. 가스 충전이라도 하고 싶은데, 충전하려면 기사가 와야 하잖아요. 그 비용이 몇 만원이라도 나는…. 지금 내는 월세가 20만원인데, 지난번에 집주인이 25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했어요.” 그는 여름이면 버스를 타고 다니며 소일한다. “할 일 없으면 버스 타고 서울 시내를 한 바퀴 돌아요. 버스가 시원하기도 하고, 지하철보다 편하잖아요. 환승해서 갈아타고, 그것 외에는 (하는 일) 없어요.”

■더워도 ‘괜찮다’고 했지만…폭염 때 집안 온도 ‘40도’

A씨는 인터뷰 내내 “여름이니까 덥지”라며, 폭염 때 옥탑방 내 온도에 대해서도 “그냥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겉보기와는 달리 단열이 잘 되는 편인 걸까.

“여름에 옥탑 온도가 38도 이상, 40도까지도 올라갔어요.” A씨의 생활지원사 B씨가 말했다. 그는 A씨와 같은 홀로 사는 노인의 안부를 확인하고, 복지관에서 오는 후원물품을 갖다주는 등 생활 전반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한다. A씨의 집에 설치돼 있는 사물인터넷(IoT)기기가 집안 온도를 측정하고, 움직임을 감지해 B씨에게 통보한다.

거울철 한파에 유리가 깨져버린 현관문. 한수빈 기자

거울철 한파에 유리가 깨져버린 현관문. 한수빈 기자

‘괜찮다’는 A씨 말과 달리, 그가 사는 옥탑은 이번 폭염에 B씨가 담당하는 10여명의 집 중 가장 더웠다. “옥탑에 선풍기가 있고, 옛날 에어컨도 하나 있지만 여름이면 엄청 더워요. 올 여름에 40도까지 올라갔어요. (제가 담당하는 집들 중) 그 어르신이 사시는 옥탑이 제일 더웠어요.” 여름철 B씨의 주요 업무는 혼자 사는 이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폭염 때는 거의 매일 전화해서 건강상태를 여쭤봐요. 폭염 때 위험하지만, 어르신 본인은 그렇게 위험하다는 생각을 잘 못하세요. ‘더우니까 여름이지, 더우면 씻지’라고 하시죠.”

반지하·옥탑처럼 세세하게 구분되진 않지만, A씨와 같은 노인들 중 많은 이들은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단독 및 다가구·다세대 가구에 거주하고 있다. 보고서는 “에너지효율이 가장 낮은 단독주택에 소득하위가구의 거주비율이 52.3%로 가장 높고, 노인 가구도 46%로 전국 전체 가구의 단독주택 거주비율(31%)보다 높다”며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에너지 효율이 낮은 주택에 더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실제 B씨가 담당하는 독거노인 14명 중 절반 이상은 폭염에 취약한 반지하나 옥탑에 거주하고 있었다. “반지하는 습도가 높아서 비가 오면 벽이 물에 젖고, 곰팡이가 피는 짐이 많아요. 절반은 에어컨이 없어요.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요금 걱정된다고 안 트는 분들이 많죠. 어르신들 대부분이 여름을 많이 힘겨워해요.”

서울 중랑구에 있는 C씨의 반지하 집. 신발이 놓여있는 현관 옆엔 하수도가 있어 장마 때면 물이 넘칠까 걱정이 된다. 이준헌 기자

서울 중랑구에 있는 C씨의 반지하 집. 신발이 놓여있는 현관 옆엔 하수도가 있어 장마 때면 물이 넘칠까 걱정이 된다. 이준헌 기자

■저소득 가구 많은 지역에 밀집된 노후 주택들

3인 가구인 C씨 역시 A씨와 같은 지역의 반지하에 거주하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그는 집에서 유일하게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만, 최근 파산 신청을 했다. 보고서는 “수도권의 지하, 반지하, 옥탑방 거주율은 저소득 가구가 6.4%로, 일반 가구보다 2배 높다”고 했다.

C씨가 사는 집은 다세대 건물의 반지하다. 건물 앞 계단을 내려가면 C씨의 집이 나온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작은 부엌이 있고, 2개의 방과 화장실 한 개가 나란히 붙어있다. C씨의 집은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지만 습기로 현관문 옆의 벽지는 들떠 있었다. 안방 천장에는 접착식 단열벽지가 붙어 있었다. “직접 붙였어요. 단열 목적보다 어디서 물이 샌 것 같아요. 천장이 합판으로 덮여있는데, 천장에서 나온 물이 나무를 적시고, 그 나무가 벽지를 적셔서 얼룩이 생겼어요. 곰팡이 생기면 안 좋으니까 직접 붙였죠.”

C씨는 가전제품설치 기사다. 에어컨 설치 및 수리 일을 오랫동안 했지만, 정작 그가 사는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실외기 둘 공간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에어컨 고치면서 다니다보니 열이 안 식어요. 기름값 아끼려고 차에서도 에어컨 잘 안 틀고요. 씻어도 조금 지나면 열이 올라오죠.”

C씨가 가족들과 함께 주로 생활하는 방 천장에 직접 붙인 단열벽지가 붙어있다. 이준헌 기자

C씨가 가족들과 함께 주로 생활하는 방 천장에 직접 붙인 단열벽지가 붙어있다. 이준헌 기자

C씨의 방문에 붙어있는 검은 먼지. 반지하인 그의 집은 환기가 잘 되지 않는다. 이준헌 기자

C씨의 방문에 붙어있는 검은 먼지. 반지하인 그의 집은 환기가 잘 되지 않는다. 이준헌 기자

가구평균소득이 낮은 지역에는 노후된 집들도 많다. 지난해 기준 서울시의 단독 및 다가구·다세대 주택 41만38동 중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은 48.8%(19만8550동)였는데, 노후 주택이 가장 많은 상위 10개 동 중 80%가 평균가구소득이 1~4분위인 지역에 있었다. C씨가 사는 지역도 포함됐다. 관악구 신림동이 노후주택 수가 가장 많았고, 강북 미아와 중랑구 면목동, 강북 수유동, 관악 봉천동 등이 다음 순이었다. 보고서는 “2015년 기준 반지하(지하), 옥탑방 가구가 가장 많은 곳은 관악구, 중랑구, 광진구 순이며, 총 가구 대비 비율은 중랑구(12.4%)가 가장 높다”고 밝혔다.

폭염 불평등 점수가 상위 10% 인 행정동이 있는 자치구별 1인당 전기 사용량 비교. 강북구는 도봉구와 더불어 해당되는 행정동 수는 가장 많았지만 1인당 전기 사용량은 가장 낮았다. 환경정의 ‘폭염 불평등 리포트’

폭염 불평등 점수가 상위 10% 인 행정동이 있는 자치구별 1인당 전기 사용량 비교. 강북구는 도봉구와 더불어 해당되는 행정동 수는 가장 많았지만 1인당 전기 사용량은 가장 낮았다. 환경정의 ‘폭염 불평등 리포트’

■불평등 점수 높은 동네 많은 강북구가 전기 사용량은 제일 적어

같은 서울에 산다고 해도 냉난방 시설이 잘 갖춰진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에어컨이 있으나 작동하지 않는 옥탑에 사는 A씨, 에어컨이 아예 없는 반지하에 사는 C씨가 받는 폭염 영향은 평등하지 않다. 이런 ‘불평등함’은 보고서 속 불평등 점수가 높은 곳과 낮은 곳에서의 1인당 전기 사용량에서도 나타났다. 폭염 불평등 점수 상위 10%인 동네가 가장 많은 강북구의 1인당 전기 사용량(7월 한 달 기준)은 122.4kWh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낮았다. 보고서는 “같은 폭염에도 취약지역의 전기사용량이 낮아 적정 냉방을 유지하지 못해 폭염 불평등이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며 “같은 서울 지역에서 온실가스 배출 책임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이 극한 기후로 인한 피해는 더 크게 나타나는 ‘기후 부정의’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고정근 연구활동가는 “지난 17년 간의 폭염 일수, 집의 유형, 인구사회학적 취약성이라는 세 가지 제한적인 지표를 토대로 분석이 진행됐다”며 “향후 폭염 취약성과 관련해 보다 정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이는 지역을 ‘스크리닝’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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