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장 웬말이냐·대선 때문이냐"…노태우 국가장에 각계 반발

조해람 기자
서울광장에 설치된 전직 대통령 고 노태우씨의 국가장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지난 28일 노씨의 영전 앞에 헌화, 분향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서울광장에 설치된 전직 대통령 고 노태우씨의 국가장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지난 28일 노씨의 영전 앞에 헌화, 분향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지난 26일 별세한 전직 대통령 노태우씨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는 정부 결정에 대한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은 그가 군부독재 정권의 일원이었으며,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탄압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 등으로 국가장과 국립묘지 안치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연일 내고 있다. 국가가 특정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형식으로 노씨를 예우하는 정부의 결정이 부적절하다는 취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48개 단체와 201명은 지난 28일 오후 성명을 내고 “노씨에 대한 국가장 결정은 광주학살 피해자들의 상처를 헤집는 일일뿐 아니라 민주화항쟁의 의미를 짓밟는 일”이라며 “대선 득표를 위해 국가폭력 범죄자이자 쿠데타로 헌법을 유린한 범죄자를 국가장으로 결정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27일 전날 숙환으로 사망한 노씨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겠다고 밝혔다. 이 결정에 시민사회는 “역사에 대한 정확한 진상규명과 당사자의 사과 없이는 진정한 화해가 될 수 없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노씨 가족이 추후에 사과했지만 국가에 반역하고 시민들을 학살한 사실이 덮일 수 없다”(참여연대) 등의 반대 목소리를 냈다.

잇단 비판의 배경은 노씨가 군부독재 정권의 일원으로서 민주화운동 탄압에 앞장선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군인 출신인 노씨는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와 함께 군내 사조직 ‘하나회’에서 함께 활동했다. 그는 전씨가 주도한 12·12 쿠데타에 가담해 신군부 정권 창출에 큰 기여를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노씨는 ‘보통 사람’을 구호로 내세우며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대통령 재임기간 공안정국을 조성해 대학생 10여명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정권에 항거한 ‘분신 정국’이 이어졌다.

노씨와 전씨는 군사반란을 일으킨 혐의로 1995년 말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다. 1심 재판에서 전씨는 사형을, 노씨는 징역 22년6개월을 선고받았고 이후 대법원에서 전씨는 무기징역, 노씨는 징역 17년형이 확정됐다. 1997년 12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건의 등으로 두 사람을 사면했다.

12.12 및 5.18사건 1심 선고공판에서 재판자의 호명에 따라 들어와 피고인석에 선 전두환. 노태우. 경향신문 자료사진

12.12 및 5.18사건 1심 선고공판에서 재판자의 호명에 따라 들어와 피고인석에 선 전두환. 노태우.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정의당은 “80년 오월의 진상규명도, 사과도 없이 떠난 고인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한 정부의 결정은 부적절하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녹색당은 “국가장 결정은 국가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또 한 번의 국가폭력”이라며 “공동체를 위협하고 상처입힌 자를 추모하는 것이 국가가 하는 일이라면,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밝혔다.

민주정부를 계승한다는 문재인 정부가 노씨의 국가장을 결정한 것을 두고도 비판이 나온다. 임기 말 정치적 이유로 군부독재 세력에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노태우와 전두환의 차이가 종이 한 장 만큼도 안 되듯이 노태우의 국가장은 학살자 전두환의 국가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비판과 우려에 대해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28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전씨의 국가장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도 국가장 기간 동안 조기 게양과 분향소 설치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용섭 광주시장과 김용집 광주시의회 의장은 “고인은 우리나라 대통령이었고, 우리의 정서상 돌아가신 분을 애도하는 것이 도리이지만 우리 광주는 그럴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전남도, 전북도, 세종시가 조기를 게양하지 않기로 했고 울산시, 강원도, 충남도, 충북도, 경남도는 분향소를 설치하지 않겠다고 했다. 지자체가 국가장을 따르지 않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국가장에 반대하는 청원이 다수 올라왔다. 29일 오전 9시 기준 약 1만2000명의 동의를 얻은 국가장 반대 청원에서 청원인은 “사면됐다고 하지만 노씨는 전씨와 같이 12·12 군사쿠데타의 주역으로 반란 수괴이고, 광주 시민학살의 주범 중 하나”라며 “이러한 자를 국민의 세금으로,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했다.

5·18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이던 박남선씨가 노씨의 빈소를 조문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는 28일 “박씨는 유족회 회원이 아니며 (조문은) 유족들의 뜻과 전혀 무관한 개인 행동”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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