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누구여” “많이 먹어”···1년 9개월 만에 문 연 '어르신 무료급식소'읽음

류인하 기자

‘위드 코로나’ 첫날, 서초 노인종합복지관 가보니

2년여 만에 만나는 어르신들, 칸막이 너머 ‘안부’

“따뜻한 밥 오랜만” 반가움 속 “아직 조심” 불안감

위드코로나 첫날인 1일 서울 서초구 서초구립중앙노인종합복지관 ‘서리풀 시니어 레스토랑’에서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1년 9개월 만이다. 류인하 기자

위드코로나 첫날인 1일 서울 서초구 서초구립중앙노인종합복지관 ‘서리풀 시니어 레스토랑’에서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1년 9개월 만이다. 류인하 기자

식판을 내려놓은 박윤순 어르신(94)이 맞은 편을 향해 힘껏 손짓했다. “아이고, 누구여 이게?” 건너편에서 한창 식사 중이던 허추자 어르신(74)이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잘 먹어. 많이 먹어.” 주변과 인사를 마친 박 어르신은 그제야 단호박 스프에 렌틸콩밥을 말아 식사를 시작했다. 단호박 스프가 입에 맞았는지 두 그릇을 비웠다. 박 어르신은 서초동에 살다 양재동으로 이사한 뒤에도 이곳 서초구립중앙노인종합복지관을 이용하고 있다. 그는 이날도 버스를 갈아타고 이곳까지 찾아왔다.

‘위드 코로나’ 첫날인 1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서초구 서초구립중앙노인종합복지관 2층 ‘서리풀 시니어 레스토랑’이 오래간만에 식사 소리로 가득 찼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1년 9개월 만이다. 김다솔 팀장은 “지난해 8월 중순쯤 문을 열었다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보름 만에 문을 닫았다”면서 “직원들도, 찾아오시는 어르신들도 거의 2년 만에 서로 만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영양사와 복지담당직원들은 틈틈이 어르신들의 식사를 챙겼다. 김 팀장은 “단순히 식사제공만 하는 게 아니라 어르신들이 어떤 식사를 잘 드셨고, 얼마나 드셨는지 양을 체크하는 일도 함께 한다”고 말했다.

이날 식당에는 어르신 29명이 방문했다. 코로나19 백신접종을 하지 않았거나 접종완료 후 14일이 경과하지 않은 어르신은 이전과 동일하게 도시락으로 식사를 전달했다.

식사를 마친 허추자 어르신은 “‘이제 식당으로 나와 식사하면 된다’는 복지관 직원의 전화를 받았을 때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가벼운 화장도 하고 목에는 나뭇잎 장식이 달린 하얀 스카프도 둘렀다. 그는 “집에서 혼자 지낼 때는 꾸밀 일이 없었는데 바깥바람을 쐰다는 기분에 머리도 만지고 갖춰 입고 나왔다”고 했다. 이어 “음식하느라 고생하신 분들께 너무 고마워서 밥 한톨 남기지 않고 싹 다 비웠다”고 말했다.

위드코로나 첫날인 1일 서울 서초구 서초구립중앙노인종합복지관 ‘서리풀 시니어 레스토랑’을 찾은 어르신들이 식사를 받고 있다. 류인하 기자

위드코로나 첫날인 1일 서울 서초구 서초구립중앙노인종합복지관 ‘서리풀 시니어 레스토랑’을 찾은 어르신들이 식사를 받고 있다. 류인하 기자

이날 식당에 제일 먼저 도착한 70대 유모 어르신은 식사 후 4층에 마련된 탁구장에서 탁구를 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오래간만에 따뜻한 밥을 바로 먹으니 참 좋았다. 서울시내에서 여기 밥이 제일 맛있다”면서 엄지를 치켜들었다.

서초구는 결식우려가 있는 만 60세 이상 관내 저소득 어르신 701명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사업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거동이 가능한 321명의 어르신들이 주 5일 경로식당을 방문해 식사를 해왔지만, 코로나19 발생 이후 식당을 폐쇄하면서 배달 도시락만으로 식사를 대신 제공했다. 현기순씨는(65)는 “식사 핑계로 이렇게 외출을 하니 훨씬 몸이 가볍고 좋다”면서 “그래도 아직은 많이 조심해야할 때니 밥만 먹고 돌아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식사메뉴는 함박스테이크와 단호박스프, 렌틸콩밥, 콘샐러드 등으로 구성했다. 메뉴는 매일 바뀐다. 화요일에는 귀리밥과 청국장, 대구무조림, 치킨까스 등이 제공될 예정이다. 식사 준비는 영양사와 전문 조리사가 담당하고, 식당 정리 및 배식 등 급식도우미는 ‘서초구 사회서비스형 지역보듬이 사업단’에 참여 중인 어르신 10명이 맡았다. 김 팀장은 “서리풀 시니어 레스토랑 재개장에 앞서 어르신들을 선발해 보건증 발급 및 코로나19 선제검사, 직무교육 등을 마쳤으며, 오늘 처음 식당에 투입되셨다”고 말했다.

새롭게 단장한 ‘서리풀 시니어 레스토랑’을 찾은 어르신들이 식사를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간격을 두고 대기한다. 류인하 기자

새롭게 단장한 ‘서리풀 시니어 레스토랑’을 찾은 어르신들이 식사를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간격을 두고 대기한다. 류인하 기자

서초구는 경로식당 재개방에 앞서 구립으로 운영되는 양재·방배·서초중앙 노인종합복지관 3곳의 경로식당을 ‘서리풀 시니어 레스토랑’으로 리모델링했다.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곳이지만 어르신들이 대접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내부 인테리어를 고급 레스토랑처럼 꾸몄다. 칙칙했던 내부 시설은 밝은 식탁과 의자로 교체했다. 중앙에 집중돼 칙칙한 분위기를 냈던 조명도 밝은 색으로 바꿨다.

식기 역시 양식이 제공되는 날은 식판 대신 ‘양식접시’가 제공된다. 구 관계자는 “당초 어르신들 식기구를 모두 사기그릇으로 교체하려 했으나 음식을 담아 이동하기에는 무겁고, 깨질 위험이 높다는 어르신들의 의견을 반영해 대신 가벼운 식기로 전면 교체했다”고 말했다.

새롭게 단장한 서초구 ‘서리풀 시니어 레스토랑’ 내부전경. 칙칙했던 인테리어를 화사하게 바꿨다. 류인하 기자

새롭게 단장한 서초구 ‘서리풀 시니어 레스토랑’ 내부전경. 칙칙했던 인테리어를 화사하게 바꿨다. 류인하 기자

서초구 관계자는 “위드 코로나와 함께 어르신들이 다시 경로식당을 찾게 돼 반가움과 설렘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안한 점도 많다”면서 “방역수칙을 잘 지켜가면서 경로식당이 다시 문을 닫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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