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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의 인문교양 뉴스레터 10월 27일자에 게재된 글입니다. 뉴스레터에는 해당 주제에 대해 추가로 읽을만한 책과 글 소개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편의 글로 하나의 깊은 영감을 드리는 <인스피아>(링크)를 구독해 주세요. 혹시 링크가 연결되지 않으면 괄호 안의 주소(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07426)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14일 세계식량기구WFP는 세계식량의 날(10월 16일)을 앞두고 “평균 기온이 2도 오르면 기아 인구가 2억명 늘어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월드비전 역시 “영양실조로 인한 사망자수가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수보다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기후위기와 코로나 때문에 심화된 불평등은 기아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주된 원인입니다.

미국의 곡창지대인 캘리포니아는 올해 이상 가뭄현상 등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왼쪽), 지난 3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체사코바 캠프에서 한 실향민이 냄비에 땅콩을 볶고 있는 모습. 분쟁국의 국민들은 배고픔·코로나·난민 생활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 로이터, 옥스팜

미국의 곡창지대인 캘리포니아는 올해 이상 가뭄현상 등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왼쪽), 지난 3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체사코바 캠프에서 한 실향민이 냄비에 땅콩을 볶고 있는 모습. 분쟁국의 국민들은 배고픔·코로나·난민 생활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 로이터, 옥스팜

어쩌면 기아 문제나 기후 위기는 우리에게 다소 멀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기후 위기의 위험을 경고하는 TV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왔지만 어찌보면 <투모로우> 등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기아 문제에 대해선 막연하게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를 연민하지만 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곤 하죠.

하지만 코로나가 불러온 기아와 식량문제는 ‘강 건너 불구경’일 수만은 없습니다. 단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식료품 가격이 요동치고 있고요.(링크) 지구촌 사회에선 부르키나파소에서 일어난 기근이 우리나라의 석유 가격에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아직까진 드러나지 않았으나 닥쳐올 후폭풍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직접적으로 ‘우리 밥상’에 영향을 주진 않더라도 여전히 우리가 연루된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번 레터에선 장 지글러의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와 폴 로버츠의 <식량의 종말>, 킴벌리 위어의 <알수록 정치적인 음식들>을 읽으며 지속가능한 밥상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합니다.

■‘동등한’ 경쟁이 불러온 굶주림 : 식품 경제망

가상의 ‘고구마 나라’와 ‘커피 나라’가 있다고 가정해봅니다. 각 나라는 이름답게 각각 고구마 생산과 커피 생산에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고구마 나라와 커피 나라가 각자 자기가 먹을 걸 생산하기보다는 각자 더 잘 생산할 수 있는 작물에 ‘올인’하고 서로 필요한만큼 사고판다면 윈윈이라고 할 수 있겠죠. 대체로 경제 교과서 등에서 말하는 자유무역과 관련된 설명입니다.

하지만 장 지글러는 책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에서 이같은 생각이 ‘환상’이라고 말합니다. 첫째, 현실에서 모든 나라들은 자본이나 기술력 등에서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으며 둘째, 코로나 같은 유사시에 교역이 중단될 수 있는데 고구마는 몰라도 커피를 밥 대신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초반 영국 자유당의 자유무역, 보호무역을 묘사한 포스터. ‘자유무역’이라고 쓰인 상점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있어 붐비지만(왼쪽) ‘보호무역’은 그렇지 않은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있다.

20세기 초반 영국 자유당의 자유무역, 보호무역을 묘사한 포스터. ‘자유무역’이라고 쓰인 상점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있어 붐비지만(왼쪽) ‘보호무역’은 그렇지 않은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있다.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는 선진국들의 이기적인 정책으로 인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삶의 터전과 먹거리를 잃어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책인데요. 스위스의 사회학자인 장 지글러는 전세계 기아, 난민 문제 해결에 큰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2000년부터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 자문위원을 맡아온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책입니다.

이 책은 빈곤과 기아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농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개발도상국들에선 여전히 농업 인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세계은행의 추산에 따르면 기아의 위험에 가장 심하게 노출된 사람들이 바로 농민인데, 전 세계에서 12억명 가량이 극단적 빈곤 속에 살고 있으며 이들 중 75%가 농촌에 거주합니다. 물론 여기서의 농민이란 트랙터를 몰고간 자리에 얌전히 탈곡된 벼들이 눕고 헬리콥터로 농약을 살포하는 미국 등 선진국의 대규모 기업농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남반구 농민들의 90%는 여전히 농기구라고는 쟁기와 큰 칼, 낫만을 사용할 뿐이다. 10억명이 넘는 농민들이 트랙터는 물론 밭갈이를 도와줄 견인용 가축 한마리 없이 맨손으로 농사를 짓는다[...]이들은 3천년 전에 이들의 조상들이 하던 방식 그대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만 의존하여 농사를 짓는다.”-장 지글러,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중(이하 동일)

저자에 따르면 이런 ‘원시적’ 농민들이 땅 1만㎡ 당 600㎏의 밀을 거둘 때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선진국 농민은 밀 1만㎏를 생산합니다. 게임이 되지 않는 수준이죠. 이들은 글로벌 유통대기업이 정한 납품 가격을 맞추기 위해 가까스로 장비와 종자들을 구입하지만 애초에 작물의 질이나 양이 형편없기 때문에 이윤을 내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더 많이 경작할수록 더 많이 빚지는 ‘트레드밀의 딜레마(러닝머신 위에서 아무리 빨리 달려도 결국 제자리 걸음이듯 더 많이 밭을 일궈도 손해인 현상)’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죠.

이어 저자가 아이티의 농업이 1980년대 이후 어떻게 무너져내렸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대목의 일부를 옮겨보겠습니다. 참고로 아이티는 우리처럼 쌀이 주식인 나라인데요. 아이티가 1980년대 IMF 구조조정을 두차례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보호관세가 30%에서 3%까지 떨어져 선진국의 막강한 수입 쌀들과 ‘공정한’ 경쟁을 하게 됐고 이 때문에 아이티에서 쌀 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습니다. 반면 선진국은 이를 통해 남아도는 곡식을 처리할 수 있었죠.

2021년 기준 아이티는 세계기아지수로 116개국 가운데 8위를 차지한 심각한 기아 위험 국가입니다.

“2000년대초부터 아이티 정부는 얼마 되지도 않는 수입의 80퍼센트를 식량 수입에 할애하고 있다. 국내 벼농사 기반의 붕괴는 대대적인 농촌인구의 도시 이동을 초래했다. 포르토프랭스를 비롯한 대도시 인구 과잉은 공공 서비스의 와해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아이티 사회 전체가 걷잡을 수 없이 붕괴되고 약화되었다[...]일반적으로 인구 900만의 아이티는 해마다 32만톤의 쌀을 소비한다. 2008년 세계시장에서 쌀 가격이 세배나 폭등하자 아이티 정부는 충분한 양의 식량을 수입하지 못했다. 그러자 시테 솔레이유 부근엔 기아가 맴돌게 되었다.”

이 밖에도 장 지글러는 자신이 유엔 식량조사관으로서 가난한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두눈으로 보았던 참상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영양이 부족한 아이들은 저항력이 부족해 입부터 얼굴 전체가 썩어가는 ‘노마’라는 병에 걸리는데 단돈 3유로만 있으면 완치가 가능하지만 치료시기를 놓친 아동 중 80%가 사망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시장의 법칙은 오로지 지불 능력이 뒷받침되는 요구만 충족시켜준다. 이 법칙은 식량이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일부러 모르는 척할 것을 강요한다.”

세계적인 농축산기업인 카길은 2009년 독점 지위를 활용해 단번에 사료값을 30~100%나 올렸습니다. 이들은 막강한 독점 장악력을 바탕으로 비료와 사료 값을 올리거나,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서 싼 값으로 먹거리를 마구 팔아 카메룬 원주민의 가금류 사육을 완전히 파산시키기도 했죠.

지난해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정부가 나눠주는 구호 물자를 받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 아이티 경제학자 Etzer Emile에 따르면 농업 부문이 아이티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에 불과하지만 전체 일자리의 절반은 농업에 몰려있다. 사진 로이터

지난해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정부가 나눠주는 구호 물자를 받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 아이티 경제학자 Etzer Emile에 따르면 농업 부문이 아이티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에 불과하지만 전체 일자리의 절반은 농업에 몰려있다. 사진 로이터

이런 장악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정확히 ‘지금’과 같은 상황 때문입니다. 코로나와 기후위기, 대기근 등이 겹치며 많은 나라들은 식량 부족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자국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가난한 나라에 대한 국제 원조를 줄이고, 먹거리 값은 오르는데 식량 자급이 불가능한 가난한 나라들은 한층 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13년 전의 ‘예언’ : 식품 안전망

이 식품 경제가 감당 못할 수위의 ‘사건’과 맞닥뜨린다면 현 시스템이 중단되고 선반과 진열대가 깨끗이 정리되는데 과연 며칠이나 걸릴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피해 양상은 인구가 밀집돼있고 정부 대책과 의료 시스템이 탄탄하지 못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가장 극심할 것이다 [...] 그 여파는 파국에 가까울 것이다. 소비자들이 공공장소에서 식사하기를 기피하므로 식당들도 문을 닫는다. 한편 식료품점은 적시 생산 공급망이 마비되고 트럭 운전수, 저장 시설 노동자 등 핵심 인력들이 직장에 나가길 거부하면서 선반에 물건을 갖출 수 없다.-폴 로버츠, <식량의 종말> 중(이하 동일)

이 글이 언제 쓰여진 글 같으신가요? 마치 꼭 코로나 이후 현재 상황을 묘사한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글이 실린 폴 로버츠의 <식량의 종말>은 2008년에 쓰여진 책입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단기간에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약속해준(듯한) 현재 세계의 먹거리 체계는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아주 작은 문제 하나로도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개발도상국의 기아 문제에 집중한 장 지글러의 책과는 달리 이 책은 주로 ‘먹거리 안전성’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선 선진국 국민들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데요. 대표적인 예로는 우선 조류독감이나 구제역, 광우병 등 공장식 축산 시스템으로부터 오는 바이러스 위험이 있습니다.

더 빨리, 더 많이 키워야 ‘이윤’이 남는 현재 축산 시스템에선 아무리 항생제를 투여하고 주의한다고 해도 감염의 위험성은 상존합니다. 유엔의 조류독감 대책 책임자 데이빗 나바로는 “사람들은 테러나 자연재해를 예방하는 데는 그렇게 돈을 퍼부으면서 왜 동물 유발 질병을 막는 일에는 그렇게 인색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탄하기도 했는데요. 저자는 이에 대해 간단한 해답을 내립니다. 그건 기업에게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점령자(대장균)를 막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다. 소에게 옥수수를 적게 주고 건초를 더 먹이면 소를 도살장에 옮기기 전 공급망 초기단계부터 대장균을 현저히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도살장 주인들은 값비싼 변화를 택할 동기가 없었다.”

농축산업 생산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인근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어마어마합니다. 땅에 뿌려진 질소 영양제가 비가 오면 질산염으로 바뀌어 하천의 산소를 빨아들이고 물고기가 죽어나가는 영향을 미치는데요. 아이오와주의 한 지역에선 한해에 막대한 돈을 들여 농업으로 방출된 질산염을 거르는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제초제와 축산 농가에서 나오는 오물, 악취가 먹는 물과 공기를 오염시켜 인근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앞서 서두에서 인용했던 글에서 이어지는 부분을 마저 옮겨보겠습니다. 조류독감 등 각종 먹거리 관련 질병에 대해 ‘앞으로 기술이 발전할테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고 장담하는 낙관론자들을 향해 저자가 외치는 부분인데요. 제가 밑줄을 두세번씩 그으며 정말이지 깜짝 놀랐던 부분입니다.

(그들은) 생산 시스템을 현대화하고 차단 방역을 개선하는 데 시간을 투자할 수록, 조류 독감이라는 탄환을 완전히 피해갈 수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놓치고 있는 현실은, 실상 조류독감은 현대 식품 시스템을 뒤흔들 수 있는 무수한 탄환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갈수록 전반적으로 유연성과 복원력을 상실하고 있는 이 시스템은 아무리 차단방역 분야를 개선해도 유가 급등, 기상 이변, 새로운 작물 질환, 주요 대수층의 감소 등으로 붕괴를 낳을 거대한 충격에 휩싸일 수 있다 [...] 매해 전염병을 피해 백신을 비축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우리에게 닥칠 위험의 가지 수가 늘어났다는 뜻이다. 기후변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해충공격이나 홍수, 가뭄 등 대형 흉작의 위험도 커진다. 위험 요인이 늘 수록 적어도 이 ‘탄환’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이 급소를 찌를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다.

■선의가 의도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어릴 때 읽은 동화책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난한 청년 화가가 매일 빵집에 들러 가장 값싸고 딱딱한 빵을 사갔습니다. 목탄화 그림을 지울 때 지우개 대신으로 쓸 용도였죠. 이를 불쌍하게 여긴 빵집 주인이 어느날 청년에게 같은 값을 받고서 버터크림이 든 빵을 주었고, 이로 인해 화가의 그림은 온통 버터크림 범벅이 되고 맙니다.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가-세계 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다만 그 움직임이 항상 올바른 결과로 이어지진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주의해서 최선의 결과를 고민해야 합니다.

킴벌리 위어가 쓴 <알수록 정치적인 음식>은 먹거리를 둘러싼 복잡한 역사와 정치적 지형을 그려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주의 깊게 보았던 부분은 ‘버터크림빵의 선의’가 ‘버터범벅 그림’으로 바뀌게 되는 지점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정부의 농업보조금은 2차 대전 이후 소규모 농부들을 지원하고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대대적으로 지급되었는데요. 이후 미국에서 작은 농부들이 급격하게 몰락하고, 냉전 이후 세계적 다툼을 위해 식품을 무기로 쓰게 되면서 일부 글로벌대기업의 이익을 보장하고 가난한 나라의 식량 자립을 막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얘기가 아닙니다. 지난해 미국 농장주 수입의 무려 40%는 정부보조금에서 나왔고, 지난 반세기 중 가장 높은 순소득이 기대된다고 합니다.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미국 정부가 농부들에게 지급한 보조금의 총액을 도표화한 것.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 USDA(CATO 연구소 자료에서 재인용)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미국 정부가 농부들에게 지급한 보조금의 총액을 도표화한 것.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 USDA(CATO 연구소 자료에서 재인용)

또 한 예로 몸에 좋지 않은 가공식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설탕세’나 ‘트윙키 세금’이 있을 수 있는데요. 이는 비만을 유도하는 가공식품들의 가격을 올려 소비를 낮추는,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보통 싸구려 음식은 주로 저소득층이 먹기 때문에 저소득층에 과도한 부담을 지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죠. 영양을 개선하긴 커녕 엥겔지수를 높이는 효과를 낳기도 합니다.

건강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려면 가공되고 이미 조리된 음식 위주로 할 때보다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비용도 많이 든다(고칼로리 식단 비용은 하루에 3.52달러에 불과하지만 저칼로리 식단을 준비하려면 하루에 36.32달러가 든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은 설탕을 입힌 시리얼과 흰 빵, 라멘, 아메리칸 치즈, 지방질을 덜 제거한 육류처럼 값싸고 칼로리 함량이 많은 음식으로 시장바구니를 채운다. 과일과 채소 혹은 통곡물 음식은 거의 사지 않는데, 이런 음식들은 칼로리 함량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더 많은 조리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킴벌리 위어, <알수록 정치적인 음식>

‘우리 지역에서 난 농산물을 먹자!’는 취지의 로커보어 운동1) 역시 역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기후가 적합하지 않은 영국에서 굳이 바나나를 키워 먹는 것보다 차라리 지구 건너편의 ‘적합한’ 기후에서 키워진 바나나를 운송해와서 먹는 것이 낫다는 것인데요. 또한 선진국들의 로커보어 운동이 결과적으로 농산물 수출에 의존하는 개발도상국가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예전에 읽은 글 중 “영국에서 소비되는 식품이 이동하는 총 거리가 약 300억마일로 추산되는데, 그중 48%가 음식을 집으로 가져오는(마트 등에서 사오는) 소비자에게서 발생했다”는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인스피아] 코로나 위기와 밥상 : 너무나도 정치적인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주목한 부분은 기후위기가 개발도상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부분이었는데요. 과거 쓰나미가 스리랑카의 시나몬 숲을 쓸어버리고, 2011년 태국에서 벌레의 습격으로 인해 코코넛 농사를 망쳤을 때 농부들은 선진국의 농부들에 비해 굉장히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왜냐면 자연재해에 대비한 보험이나 간접 보조금 시스템을 비교적 잘 갖추고 있는 선진국과는 달리 개발도상국에선 기후위기가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요. 실제로 인도 인구의 5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지만 8500만가구 가운데 자연재해보험에 가입한 가구는 2500만에 불과하다고 합니다(2011년 기준).

이는 현재진행형의 문제입니다. 실제로 최근 코로나에 겹친 전세계적인 기후위기로 인해 예멘,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의 국가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전세계에 ‘공평’하게 오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짊어져야 하는 리스크는 공평하지 않습니다.

■맺음말

코로나라는 ‘대사건’은 이 세계에 커다란 물음표를 던졌습니다.

먹거리는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고,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이 누군지를 말해준다는 유명한 말이 있죠. 코로나가 불러온 먹거리에 대한 의문이 ‘위드 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가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먹거리는 실제로 농업 문제 뿐 아니라 경제 정의, 기후와 환경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으니까요.

국제 구호기구 옥스팜은 올초 ‘불평등 바이러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의 전례없는 지원으로 전염병이 시작된지 9개월만에 상위 1000명의 억만장자들은 잃어버린 부를 모두 회복했을 뿐 아니라 외려 총 자산이 3.4조달러나 증가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엔 억만장자가 자산을 위기 이전으로 돌리는데 5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반면 같은기간 수억명의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일자리마저 잃고 죽음의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올해 10월 초 장 지글러가 UN Today와 진행한 인터뷰 가운데 일부를 옮기며 오늘 레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글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에 대해 책임이 있다”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코로나 이후 2억5000만명이 식량 불안정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기아 상황은 터무니 없는 범죄입니다[...]우리 각자는 굶주림으로 인해 죽어가는 모든 어린이들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많은 국가가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이웃을 거지로 만드는 정책(beggar-thy-neighborliness·근린궁핍화 정책)’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향신문의 인문교양 뉴스레터 10월 27일자에 게재된 글입니다. 뉴스레터에는 해당 주제에 대해 추가로 읽을만한 책과 글 소개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편의 글로 하나의 깊은 영감을 드리는 <인스피아>(링크)를 구독해 주세요. 혹시 링크가 연결되지 않으면 괄호 안의 주소(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07426)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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