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보면 ‘못살겠다’ 싶은데 농촌은 좋으니 바꿔야죠”…여성 청년들의 분투

문광호 기자

00씨가 곡성으로 간 까닭

전남 곡성에 정착한 청년들이 지난달 28일 숙소가 있는 곡성군 죽곡면 화양마을 논둑에 앉아 미소짓고 있다. 손지현씨, 민찬양 ‘청춘작당’ 대표, 박지혜씨(왼쪽부터)는 농촌 스타트업 ‘청춘작당’이 기획한 ‘100일 살기 프로젝트’에서 만났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전남 곡성에 정착한 청년들이 지난달 28일 숙소가 있는 곡성군 죽곡면 화양마을 논둑에 앉아 미소짓고 있다. 손지현씨, 민찬양 ‘청춘작당’ 대표, 박지혜씨(왼쪽부터)는 농촌 스타트업 ‘청춘작당’이 기획한 ‘100일 살기 프로젝트’에서 만났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대학 관두고 해외 가려던 지현씨
‘100일 살기 프로젝트’ 참여 후
농촌마을에 빠져 인생행로 바꿔

“2년 내내 같은 길을 매일 걷는데 질리지가 않는 거예요. 강은 계절마다 다르니까요. 도시보다 더디고 느리지만 그래서 좋아요. 나처럼 살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서울역을 출발한 지 2시간, 비좁은 열차에서 내리자 탁 트인 평야 너머로 정좌한 지리산이 낯선 이를 맞이했다. 전남 곡성이다. 자전거를 타고 느릿하게 일터로 향하는 농부 옆에서 곡성천이 천천히 섬진강 쪽으로 흘렀다.

[절반의 한국⑨]“성차별 보면 ‘못살겠다’ 싶은데 농촌은 좋으니 바꿔야죠”…여성 청년들의 분투

서울에서 나고 자란 손지현씨(27)는 곡성에 반해 2년째 살고 있다. 지역에서의 삶은 원래 선택지가 아니었다. 한국의 교육, 사회 시스템이 맞지 않아 대학을 그만두고 해외로 떠날 참이었다. 떠나기 전 휴양이나 할까 싶어 청년 협동조합 ‘청춘작당’에서 진행하는 ‘100일 살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 인생행로를 바꾸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농촌마을은 뜻밖에 그와 잘 맞았다. 100일 살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마을 축제 진행을 맡으며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이나 정을 쌓는 법을 배웠던 것 같아요.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이 도시와 전혀 다른데 그게 의외로 신선했어요.”

수도권이 돈과 사람을 빨아들이고 있지만,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귀농가구는 1만2489가구로 전년(1만1422가구)보다 1067가구(9.3%) 증가했다. 귀촌가구도 8.7% 증가했다. 예능 프로그램에 비치는 전원생활의 고즈넉함도 동경을 키운다.

하지만 도시인의 귀농·귀촌은 TV에 비친 것보다 더 ‘버라이어티’하다. 도시인들에게 그저 ‘한적한 전원’으로 비치는 농촌의 메커니즘은 의외로 복잡하다. 농산물을 수확하기까지 투입되는 시간과 노동력이 만만치 않고, 이웃과의 소통과 협업의 가치를 몸에 익히지 않으면 낭패하기 십상이다. 코로나19로 농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지난해를 빼면 귀농·귀촌 인구가 정체 상태를 면치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농촌에 안착하는 것은 도시 자영업의 성공만큼이나 쉽지 않다.

지역과 농촌이 도시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적지 않은 청년들이 이 실험에 나서고 있다. ‘여성이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기 위한 소리 없는 분투가 오늘도 이어진다. 여성이 살기 좋은 곳이라면 누구라도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다.

‘즐거운 소농’을 꿈꾸는 청년들

“도시와 다른 ‘관계맺음’이 신선
사람들과 소통·정 쌓는 법 배워”

“17세 때 아버지가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물으셨어요. 어떻게 답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밥값은 하라’며 논의 나락을 베라고 하셨어요. 콤바인 운전대를 처음 잡았어요. 해는 지고 달은 뜨고, 별은 있는데 메뚜기가 뺨따귀를 때리면서 뛰어다녀요. 그때 느꼈어요. ‘이런 삶도 괜찮겠구나’.”

전북 진안에서 나고 자란 9년차 농업인 이슬씨(31·활동명)는 ‘즐거운 소농(小農)’을 꿈꾼다. 농업인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농사일이 싫지 않았다. 20대 때 충남 홍성군 홍동에서 ‘지역 공동체와 살아가는’ 경험을 하고 귀향해 일을 시작했다. 지난달 7일 찾은 이슬씨 집 근처의 논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고, 밭에는 7년 전 심은 블루베리와 레인보 옥수수도 튼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야콘, 삼백초, 어성초도 “알아서 잘” 크고 있다. 이슬씨가 키워온 작물은 수백가지. 600가지가 넘어가며 세는 걸 포기했다. 상추도 종류만 40가지, 옥수수도 열댓가지를 심었다.

“감자도 수미, 두백이, 논감자, 눈빨개감자, 울릉도 홍감자…, 줄줄이 있는데 사람들은 몰라요. 작물마다 종류가 다양한데 그 차이를 모르고 먹으니 ‘농(農)’의 가치에 무감해지는 거죠.” 밭 한편에 지어진 농막 선반엔 손님이 오면 우려낼 허브들이 유리병에 담겨 있다. 집 안 벽은 마녀 문양의 흰색 발로 장식돼 있고, 바깥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 창틈으로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이슬씨는 2019년 농촌청년여성캠프에서 서와씨(27·활동명)를 만났다. 부산에서 태어나 줄곧 도시에 살아온 서와씨는 “나답게, 나를 잃지 않은 채 살고 싶어서” 경남 합천으로 귀농했다. “있는 게 별로 없어 오히려 무궁무진한 농촌을 내 색깔로 채우고 싶었어요.” 뜻 맞는 동료들이 늘어나자 그해부터 ‘마녀의 계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마녀(여성농민)’들이 계절별로 키운 작물들을 다품종 소량으로 꾸러미에 담아 판매하는 프로젝트다. 지난해엔 총 130여개의 꾸러미를 판매했다. 여름엔 노란쥬키니·비 온 뒤 막 캔 두백감자와 논감자·버터헤드상추, 초가을엔 양배추·양상추·브로콜리·풋고추, 가을엔 고구마·땅콩·당근·박하…. 구매자들은 해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작물을 맛볼 수 있다. “식탁이 잃어버린 계절을 돌려주는 것이 목표입니다.”

마녀의 계절은 수익보다 농업의 가치를 존중하는 이들과 소통하며 공감대를 늘려나가는 데 무게를 둔다. 판매자와 구매자의 거래 관계를 넘어 속 깊은 교류를 중시한다. 모임 애플리케이션(앱) ‘밴드’에 별도의 소통 공간도 마련했다.

구매자와의 소통은 귀농의 의미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서와씨는 “구매자로부터 ‘온 계절이 담긴 농산물 귀하게 잘 먹겠다’는 문자를 받으면 내 삶이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슬씨도 “ ‘뭐가 남는다고 그 짓거리 하냐’던 할머니가 후기를 보신 뒤에는 ‘글 안 올라왔냐’며 궁금해 찾아오시기도 한다”며 “할머니들은 평생 농사를 지었어도 한 번도 인정받아 본 일이 없음을 그제야 깨달았다”고 말했다.

‘소농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까.’ 귀농을 꿈꾸는 청년들이 품고 있는 물음이다. 일본의 생태운동가 시오미 나오키는 1995년 ‘반농반X’(반은 농사짓고 반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를 제안한 바 있다. 농업을 바탕에 두고 다양한 일을 펼치려는 ‘마녀의 계절’과도 닿는 부분이 있다. ‘2020 귀농어·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겸업 귀농인 비중이 31.4%에 달하는 만큼 허황한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기업농에 초점이 맞춰진 현재의 농업정책으로는 ‘소농적 삶’의 실천이 쉽지 않다. 이슬씨는 “시장에서 가격이 정해지는 방식으로 생활에 필요한 수익을 얻으려면 어쩔수 없이 농약을 쳐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농촌진흥청의 ‘농어업인 복지실태조사’를 보면 농업인들은 우선 필요한 정책 1위로 기초소득보장(30.4%)을 꼽았다. 돈 되는 작물만을 장려하는 풍토가 농업의 다양성을 해치고 있다는 우려와 연결된다. 최근 정부가 ‘소농직불금’을 도입한 것은 그나마 전향적인 움직임이다.

‘즐거운 소농생활’이 가능토록 하려면 정책의 철학이 바뀔 필요가 있다. 서와씨는 “기업농을 꿈꾸는 이들도 있지만, 다양한 가치를 품고 살아가는 청년들도 있다”며 “이들이 농촌에서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해야 청년들의 귀농·귀촌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싹트는 농촌 페미니즘

작년 귀농, 9% 늘어 1만2489가구
농촌여성캠프 등 네트워크 확산
시골의 성차별 문화 바로잡기 등
따로 또 함께 ‘소농적 삶’ 일궈가

“귀농하고 처음 마을회관에 갔는데 충격이었어요. 남자 들어가는 문이랑 여자 들어가는 문이 다른데 여자 쪽은 부엌으로 이어지고, 남자 쪽은 TV가 있는 거실로 이어져요. 막내라 쉴 새 없이 설거지만 하다 와야 했어요.”(귀촌 10년차 자정씨)

“할머니들은 쭈그려 앉아 계속 일하는데 할아버지들은 놀다가 밥상 차려지면 그제서야 와요. 농촌과 생태주의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었어요. 이런 걸 보면 ‘못 살겠다’ 싶은데 또 농촌은 좋으니까 살려면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귀촌 9년차 이리씨)

여성들이 귀농·귀촌을 망설이는 대표적인 이유가 농촌의 뿌리 깊은 성차별 문화다. 서울에서 공공미술 활동을 하다 전북 남원시로 내려온 자정씨(37·활동명)도, 지리산 둘레길 ‘공정여행’에 참가한 뒤 11년간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귀농한 이리씨(44·활동명)도 농촌이 강요하는 전통적인 성 역할은 감내하기 쉽지 않았다.

지역 여성주의 단체 ‘문화기획 달’이 2018년 6월 농촌 여성 1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89.5%가 농촌 성문화가 불평등하다고 답했다. ‘차별적인 성 역할 분담’(31.6%)을 가장 많이 꼽았다. ‘성희롱, 성추행 등 성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느냐’는 문항에 65.5%가 ‘그렇다’고 했다.

“할머니들은 저더러 서른이 지났는데 시집도 못 가고 애도 못 낳았다고 ‘설 지난 무수(무)’라고 해요. 무는 설이 지나면 쓸모가 없거든요. 바람 들어 국물도 못 내고, 채나물도 못해 먹는대요. 여자를 ‘결혼하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는’ 미완의 존재로 보는 거죠.”(이슬씨)

여성을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농촌사회의 묵은 편견이 차별을 낳는다. 귀농 여성은 물론 나고 자란 동네에서 줄곧 살아온 이슬씨 역시 비켜가기가 힘들다. 서울이라도 한번 가는 날엔 “숨이 턱턱 막히는, 영락없는 촌년”이지만 ‘지속 가능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농사를 짓겠다’고 했다가 동네 어른들로부터 “지랄하고 자빠졌다”는 핀잔을 들었다. 농림축산식품부 ‘2018 여성농업인 실태조사’에서 여성농업인의 81.1%가 자신의 지위가 ‘예전보다 높지만 여전히 남성보다 낮다’고 답했다.

여성농업 공동체 ‘마녀의 계절’의 이슬씨(오른쪽)와 서와씨가 지난달 10일 누런빛이 짙어져 가는 전북 진안군의 경작 논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슬씨는 농사일로 자립 가능하냐는 질문에 “논농사를 놓지 않는 한 밥 굶을 일은 없다”며 웃었다.    이슬씨 제공

여성농업 공동체 ‘마녀의 계절’의 이슬씨(오른쪽)와 서와씨가 지난달 10일 누런빛이 짙어져 가는 전북 진안군의 경작 논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슬씨는 농사일로 자립 가능하냐는 질문에 “논농사를 놓지 않는 한 밥 굶을 일은 없다”며 웃었다. 이슬씨 제공

농업, 의외로 초기 큰 투자 필요
“귀농 전 감당 가능 여부 고민을”

이리씨와 자정씨는 ‘문화기획 달’을 만든 달리씨(39·활동명)를 알게 되면서 농촌 문화를 바꿔나가는 활동을 함께 시작했다. 잡지 ‘지글스’(지리산에서 글 쓰는 여자들)를 만들어 지역 여성들의 목소리를 소개하고, 마을에서 포럼을 열어 농촌 여성들의 차별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숨죽여왔던 여성들은 호응했지만 반발도 컸다. “항의 전화와 비난을 많이 받고 나니 마을에서 위축됐어요. 도시와 달리 지역은 인간관계가 서로 얽혀 있어 어려움이 더 커요.”(자정씨)

‘농촌 페미니즘’이 처한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이들은 농사일을 일단 중단하고 남원 시내에서 디자인 제품 판매 겸 북카페인 ‘협동조합 마고’를 만들어 활동 중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남원살이’를 지속하는 동력은 뭘까. 자정씨는 든든한 동료들을 꼽는다. “취향과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과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에요.” 이리씨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예전처럼 일요일 점심때만 지나면 우울해지거나 하는 일은 없어요. 일이 좋고 합이 잘 맞는 동료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서울로 돌아가 경쟁에 치이며 살 생각은 없어요.”

경북 의성군에 귀농한 장소영씨가 지난달 14일 직접 재배한 사과대추 상자를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문광호 기자

경북 의성군에 귀농한 장소영씨가 지난달 14일 직접 재배한 사과대추 상자를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문광호 기자

“ ‘맥주도시 의성’을 만들 거예요”

“귀농 첫해 겨울엔 엄청 우울했어요. 1년 내내 하는 회사생활과 달리 농번기가 끝나고 농한기가 닥치니 왠지 봄이 다시 안 올 것만 같았어요. 15년 동안 사무직 일을 하느라 ‘농사 근육’도 없었죠. 농사를 지을 준비가 안 됐구나 하고 깨달았죠.”

귀농 4년차인 장소영씨(43)는 “하고픈 걸 하며 재미나게 살라”는 시어머니의 유언을 받들어 2018년 남편 김정원씨(43)와 고향인 경북 의성군으로 귀향했다. 세계일주 여행과 귀농 준비로 3년을 보낸 뒤 첫해 사과대추와 홉 농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맥주 원료인 홉은 경작 농가가 적어 도움말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초기 투자금액도 적지 않았다.

3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올해 첫 제품이 나왔다. 장씨는 “국산 홉이 많지 않아 의외로 찾는 분이 많다”며 “함께 일하고 싶다며 이력서를 보내는 분도 꽤 있다”고 했다. 사과대추도 곧잘 팔린다. 지난달 14일 작업장에서는 남편과 함께 사과대추 상자를 포장하는 장씨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사과대추를 크기별로 분류해 작은 상자 4개에 담은 뒤 이를 다시 큰 상자에 담는 작업이다.

기반은 어느 정도 잡혔지만 농업소득만으로는 지출을 100% 대지 못해 남편이 정보기술(IT) 업계 일을 겸하고 있다. 장씨는 “농업은 초기 투자가 의외로 큰 업종”이라며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 귀농하기 전에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발표된 통계청 ‘2020년 농가경제조사’에 따르면 2020년 농가소득은 평균 4503만원이었지만 농업소득은 1182만원(26.2%)에 불과했다. 농업외소득(36.9%), 공익직불제 등 이전소득(31.7%) 등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다.

장씨의 꿈은 의성을 국산 홉의 본고장, ‘맥주도시 의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자리가 잡히면 도시 청년들이 들어올 수도 있다. 장씨의 권유로 최근 의성에서 수제맥주 공방을 연 청년도 있다. 장씨는 이 공방에 국산 홉을 공급한다. 귀농 선배이자 의성 사람으로서 청년들이 지역에서 행복한 삶을 꾸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정착하지 않더라도 청년들이 이곳에 머물며 재충전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저희는 이곳에서 외갓집 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관계인구,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지자체, 앞다퉈 ‘한 달 살기’ 도입
정부, 80개 시군 98곳 선정 지원
도시청년들과 농촌마을의 만남
일시적 방문 넘어 지속적 관계

청년들 ‘미리 보는’ 귀농·귀촌
선택에 도움…마을에도 활기

농촌 스타트업 ‘청춘작당’은 전남 곡성군에서 ‘100일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도시민들이 귀촌에 앞서 미리 농촌생활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100일 동안 4~5명씩 팀을 나눠 농촌 매거진 제작, 농장 체험 프로그램 개발 등 프로젝트를 진행해 결과물을 마을 사람들과 공유한다. 민찬양 청춘작당 대표(27)는 “도시 청년들이 농촌에서 농사 말고도 재능을 살릴 기회가 있다는 것을, 마을은 ‘청년들이 들어오면 이런 좋은 일이 있구나’를 깨닫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첫해인 2019년에 30명이 1기로 참가해 6명이 곡성에 정착했고, 2기 23명 중 현재 8명이 남았다. 올해에는 100일 살기에 7명, 한 달 살기에 15명이 참가 중이다.

코로나19 이후 확산한 ‘한 달 살기’ 문화는 소멸위기에 놓인 지자체들이 앞다퉈 도입 중인 사업이다. 지역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주인구 못지않게 ‘관계인구’를 늘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관계인구는 일시적인 방문을 넘어 지역, 지역민들과 지속적으로 다양한 연계를 맺는 인구를 가리킨다. 전남이 2019년부터 곡성 등 17개 시·군에서 시작한 뒤 여타 자치단체로 확산됐다. 올 들어서는 농식품부가 전국 80개 시·군, 98곳을 선정해 지원에 나섰다.

청춘작당도 지난 1월 농식품부에 의해 대표적인 프로젝트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소개됐다. 민 대표는 먼저 귀촌한 친구들을 따라 곡성에 내려온 뒤 친구들이 겪은 시행착오에 착안해 청춘작당을 기획했다. “청년들은 의외로 농촌에서 일하려는 욕구가 있고, 지역도 청년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있는데,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어요.” 민 대표는 “프로그램을 시작한 뒤 지역에 활기가 돈다”며 “청소년들이 농촌을 ‘머물 수도 있는 공간’으로 느끼는 것 같아 좋다는 주민들도 있다”고 했다. 귀촌인들이 겪는 어려움 중 가장 큰 것은 ‘정보를 얻기 어렵다’(41.7%)는 점이다. 도시에선 집이나 일자리를 앱을 켜서 구할 수 있지만 지역은 정보들이 흩어져 있다. 이런 정보를 모으는 것도 청춘작당의 일이다.

지역민 연결 ‘관계인구’ 늘리기
지역 활성화할 대안으로 주목

청춘작당은 지난해 2월 곡성군의 지원으로 죽곡면 화양마을에 ‘청촌(靑村)’을 마련했다. 월 5만원만 내면 1년간 거주할 수 있는 청년 주거공간으로, 귀농·귀촌을 망설이는 청년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청촌의 청년들은 벽화를 그리거나 마을 보수작업 등을 하며 마을에 녹아들고 있다.

곡성은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고 유서 깊은 역사유적도 없다. 그런 곡성으로 향하는 청년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민 대표는 “어디서 사느냐보다 누구와 사느냐가 중요한데, 곡성에서 만들어진 관계가 청년들을 붙잡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시에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잖아요. 이곳엔 언제든 문을 두드리면 식재료쯤은 거저 내줄 이웃들이 있죠.”

“곡성의 100일은 뿌리를 내리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이에요혼자로 시작해 하나가 되어갈 때, 당신은 깨닫게 될 거예요사람 때문에 남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여기 곡성에서.”(청춘작당 홈페이지)

■특별취재팀
배문규·최민지(스포트라이트부)
박채영·문광호(사회부)


Today`s HOT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황폐해진 칸 유니스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