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 쉼터가 재개발로 사라집니다"읽음

강은 기자
서울 영등포구청 앞에서 4일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이 신길2구역 재개발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꿀잠 쉼터 존치를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꿀잠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사회 공동체 공간이다.  한수빈 기자

서울 영등포구청 앞에서 4일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이 신길2구역 재개발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꿀잠 쉼터 존치를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꿀잠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사회 공동체 공간이다. 한수빈 기자

“이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김소연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장이 첫마디를 뗐다. 김 위원장은 “시민사회가 연대의 땀방울을 모아 ‘꿀잠’의 문을 열었고 많은 노동자가 이곳을 거쳐 갔지만, 그런 꿀잠이 재개발로 인해 위기를 맞게 됐다”고 했다.

2017년 서울 영등포구에 문을 연 비정규직노동자쉼터 ‘꿀잠’이 신길동 재개발로 사라질 상황에 처했다. 100여 단위의 개인과 단체가 모인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 꿀잠대책위’는 4일 서울 영등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꿀잠을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고 문중원 기수 유가족 오은주씨, 문정현 평화바람 신부 등이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12년 이상 해고 상태였다가 2018년 복직한 KTX 승무원 김승하씨도 9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현장을 찾았다.

꿀잠은 시민들 후원과 연인원 1000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2017년 지어진 국내 첫 비정규노동자 쉼터다. 장기투쟁으로 지친 비정규직 노동자와 해고노동자가 마음 편하게 쉬고 활동할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2015년 8월 처음 제안됐고, 2000여명의 시민이 모금에 참여해 7억6000여만원을 후원했다. 고 백기완 선생과 문정현 신부가 서각과 붓글씨 전시회를 열어 꿀잠 건립비에 보태기도 했다. 이렇게 2017년 8월19일 개소한 후 노동자뿐 아니라 청년단체 등의 숙박 및 공간대관 이용이 크게 늘었다. 꿀잠에 따르면 한 해 평균 이용자는 4000여명에 이른다.

꿀잠은 노동자를 떠나보낸 유가족들에게도 기댈 언덕이 됐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2018년 12월 아들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를 당해 서울대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됐으나 서울에 연고가 없어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는 옥탑방 딸린 5층 건물 꿀잠에 머물던 날을 잊지 못한다. 김씨는 “마치 친정집 같았고 따스하게 보호받는 느낌이었다”면서 “계속되는 투쟁에 만친창이가 돼 지쳐있는데 저녁 때가 되면 꿀잠에서 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고 문중원 기수의 아내 오은주씨도 “남편이 한국 마사회의 부당함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을 때, 100일간 힘든 투쟁 속에서도 꿀잠에서만큼은 지쳤던 몸과 마음이 잠시라도 쉴 수 있었다”고 했다.

꿀잠이 있는 신길2구역은 2009년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재개발추진위원회 활동에 진척이 없다가 지난해 3월 재개발조합이 설립됐다. 꿀잠 측은 “재개발조합과 영등포구청에 꿀잠 공간은 그 자체로 역사적 공간이기 때문에 존치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최근 재개발조합이 공시한 정비계획변경조치계획안에는 꿀잠의 의견이 반영돼 있지 않다. 영등포구청과 재개발조합이 어떤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아직 정비계획변경 최종안이 나온 것이 아니다”면서 “이후 진행될 주민공람과 주민설명회를 통해 꿀잠 측이 의견을 주면 확정된 안을 서울시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꿀잠 측이 신길 (재개발구역) 가운데에 있어 정비사업이 진행되면 존치가 어려울 수 있다”면서 “꿀잠 측 의견을 수용해 재개발조합이 별도의 부지를 마련해주는 식의 방안을 조합이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향티비 배너
Today`s HOT
젖소 복장으로 시위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 독일 고속도로에서 전복된 버스 아르헨티나 성모 기리는 종교 행렬 크로아티아에 전시된 초대형 부활절 달걀
훈련 지시하는 황선홍 임시 감독 불덩이 터지는 가자지구 라파
라마단 성월에 죽 나눠주는 봉사자들 코코넛 따는 원숭이 노동 착취 반대 시위
선박 충돌로 무너진 미국 볼티모어 다리 이스라엘 인질 석방 촉구하는 사람들 이강인·손흥민 합작골로 태국 3-0 완승 모스크바 테러 희생자 애도하는 시민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