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손과 귀로 그림감상과 게임을···어둠 속에선 장애·비장애 경계가 없었다읽음

글·사진 이삭 기자

전국 공공기관 중 유일한 충북특수교육원 시각장애 체험실 가보니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충북특수교육원에 마련된 시각장애 체험실 내부 모습.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충북특수교육원에 마련된 시각장애 체험실 내부 모습.



“제 목소리 들리시죠? 왼쪽에 안전손잡이가 있어요. 한번 잡아보세요.”

지난 2일 충북 청주 청원구 오창읍 충북특수교육원에 마련된 시각장애 체험실에 들어서자 조보람 강사가 말했다. 암실로 만들어진 시각장애체험실 내부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안내에 따라 안전손잡이를 잡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우둘투둘한 뭔가가 손에 닿았다. “점자에요. 그림 1이라는 뜻인데, 오른손으로 안전손잡이 위 벽을 한번 만져보세요.” 조 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벽에는 평평한 그림이 아닌 입체감이 느껴질 수 있게 양각화된 그림이 붙어있었다. 어떤 그림인지 맞추기 위해 손가락에 신경을 집중했다. 손에서 직선과 곡선 등 다양한 도형이 느껴졌다. 어떤 그림인지 상상하려 애썼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수차례 그림을 만지다 뾰족한 귀와 커다랗고 동그란 콧구멍이 떠올랐다. 돼지였다.

체험실에서는 명화를 감상하는 방법도 평소와 달랐다. 익숙한 눈 대신 손과 귀를 사용해야 한다. 명화 옆에는 한글과 점자로 설명이 적혀있었다. 그림 왼쪽 아래 커다란 버튼을 누르니 안내음성이 흘러나왔다. “강아지가 세 마리가 누워있고, 나무 위에는 새 한쌍이 쉬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나비가 날아다닙니다.” 안내음성에 따라 그림을 천천히 만지며 감상했더니 머릿속에 이암의 <화조구자도>가 그려졌다. 시각장애인들이 촉각을 통해 그림을 감상할 수 있도록 <화조구자도> 속 강아지와 새, 나비, 나무 등 그림 속 모든 것들이 입체로 만들어져 있었다,

조 강사는 “시각장애 학생들은 촉각으로 별자리, 꽃, 동물 등 세상을 접하고 그림도 감상한다”며 “비장애학생들에게 이 같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체험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충북특수교육원에 마련된 시각장애 체험실 내부 모습.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충북특수교육원에 마련된 시각장애 체험실 내부 모습.

11월 운영을 시작한 체험실은 40.71㎡ 규모로, 비장애학생들이 시각장애를 체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 벽을 따라 안전손잡이를 설치했고, 바닥에는 이동 동선에 맞춰 점형과 선형 점자블록을 깔았다.

어둠 속에서 미로찾기와 오델로 등 보드게임과 윷놀이도 가능하다. 보드게임은 시각장애인이 즐길 수 있도록 제작된 오델로 게임 기구를 이용한다. 윷놀이는 윷가락 대신 각기 다른 모양과 각기 다른 숫자가 양각된 막대기를 사용한다. 막대기 세개를 뽑아 숫자를 합한 뒤 나오는 숫자 뒷자리에 따라 도·개·걸·윷·모가 결정된다. 음성해설로만 구성된 ‘베리어프리 영화’도 감상할 수 있다. 체험시간은 40여분 정도다. 충북지역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학생들이 체험할 수 있다.

지난달 18일 시범운영을 통해 특수교육원 특수교사들이 체험실에서 시각장애를 체험했고, 같은달 19일에는 청주 상봉초 3학년과 5학년 학생들이 다녀갔다. 매주 화요일 운영되는 이 체험실은 다음달에도 이미 4개 학교가 신청해 예약이 모두 마감되는 등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충북특수교육원에 마련된 시각장애 체험실에서 조보람 강사가 미로찾기 게임을 하고 있다.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충북특수교육원에 마련된 시각장애 체험실에서 조보람 강사가 미로찾기 게임을 하고 있다.

이 곳 시설은 조 강사가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만들었다. 조 강사는 시각장애 1급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시각장애 편의시설의 중요성을 쉽게 알려주기 위해 충북지역 특수교사들과 논의해 체험실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전국 공공기관 중 시각장애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은 이 곳이 유일하다. 충북특수교육원은 비장애학생들에게 시각장애학생들과 함께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체험실을 만들었다.

이옥순 충북특수교육원 원장은 “시각장애 체험실을 통해 장애인의 불편함을 체험하는 것을 넘어 시각장애인들도 그림감상 등 여가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비장애학생들이 알았으면 한다”며 “비장애학생과 장애학생이 서로 이해하며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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