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만 보이던 발리의 가게들…우리가 몰라봤네, 그들의 생존 노력읽음

이숙명

이숙명의 ‘유유자적’

저녁을 먹으러 단골 식당에 갔다. ‘와룽 비치’라는 곳으로, 주인들 인심이 좋아 항상 개와 아이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무더운 한낮이면 동네 아이들이 식당 앞에서 해수욕을 하다가 조르르 달려와 샤워를 하거나 물을 얻어 마신다. 와룽 비치는 누사프니다에서 유일한 프리다이빙 업체가 사무실로 쓰는 곳이기도 하다. 말이 업체이지 코로나19 팬데믹이 이후로는 ‘가이’라는 얌전한 러시아 청년 혼자 운영을 하고 있다. 프리다이빙은 스쿠버다이빙과 달리 자기 숨으로 잠수하는 것이라 장비를 보관할 공간이나 관리 인력이 필요치 않다. 가이가 봇짐 부리는 곳이 곧 사무실이다. 그래도 엄연한 사업이니 제 나름 출퇴근 시간은 지키는 눈치다. 오전부터 저녁 8시까지, 언제 와룽 비치를 가든 가이가 있다.

누사프니다는 맛있는 식당이 극히 드물어서 ‘와룽 비치’처럼 입소문이 난 식당은 약속 없이 찾아가도 이민자들끼리 만나게 된다. 자연스레 누사프니다 주민들의 사랑방이 된 이곳은 얌전한 러시아 청년 ‘가이’가 운영하는 지역 유일 프리다이빙 업체의 사무실 역할도 한다.

누사프니다는 맛있는 식당이 극히 드물어서 ‘와룽 비치’처럼 입소문이 난 식당은 약속 없이 찾아가도 이민자들끼리 만나게 된다. 자연스레 누사프니다 주민들의 사랑방이 된 이곳은 얌전한 러시아 청년 ‘가이’가 운영하는 지역 유일 프리다이빙 업체의 사무실 역할도 한다.

와룽 비치는 누사프니다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해변 카페와 붙어 있다. 입구 주차장에서 예쁘게 차려입은 어린 여행자들은 옆집으로 가고, 섬생활 구력이 물씬 풍기는 허름한 사람들은 이쪽으로 온다. 옆집은 관광객이 타깃이다 보니 매일 라이브 공연도 하는데 와룽 비치에서 식사를 할 때면 그게 좀 괴롭다. 누사프니다 같은 시골에서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같은 존재가 한둘은 있기 마련이다. 이 섬의 홍반장은 ‘토니’라는 예명의 젊은이다. 작은 체구에 커다란 레게머리를 하고 다녀서 기억하기 쉽다. 외국인 자영업자가 ‘우리는 로컬들과 일합니다’라고 홍보 사진을 찍으면 반드시 토니가 모델로 등장한다. 아는 사람들만 알아보고 웃는다. “오, 토니가 여기도 있네.” 토니는 택시 운전도 한다. 술 마시고 파티하다가 늦잠을 자서 예약을 어기곤 하지만. 밴드는 토니의 또 다른 직업이다. 누사프니다에서 라이브 공연 간판을 내건 가게는 대부분 토니와 친구들을 고용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의 실력이 대단히 훌륭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연주곡 목록도 대여섯 개가 안 된다. 그걸 저녁 내내 돌려막기하지만 워낙 모든 노래가 똑같이 들리는 바람에 아무도 곡이 바뀌었는지 한 바퀴를 돌아 아까 곡이 다시 시작되었는지 눈치채지 못한다. 이웃 카페의 관광객들이 바다 풍경과 칵테일과 여행 기분에 취해 엉성한 생음악을 흘려들을 때, 와룽 비치에서 밥을 먹는 단골들은 “아이고 얘들아! 이게 음악이냐 고문이냐” 하면서 넌더리를 친다.

작은 섬에 다이빙숍 수십 곳 영업
최소한 자원으로 협력·공생 선택

시간·정성 쏟아내야 하는 자영업
이곳도 낭만과 전투적 생업 공존

외국 여행자들 발길 되살아나자
주민들 희망찬 대화…변화 느껴

‘일 하면서 자유롭게 산다’는 오해
이들도 하루하루가 노동으로 바빠
내면의 ‘동기’가 강한 사람들일 뿐

그날도 와룽 비치에는 늘 보던 사람들이 있었다. 가이는 이미 식사를 시작했다. 카탈루냐 출신 스쿠버다이버 데이비드는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면서 음정, 박자가 희미하게 바랜 옆집 올드팝 소리에 실소를 뿜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부두 근처에서 다이빙숍을 운영한다. 그는 유머감각이 좋고 따뜻한 사람인데 깡마른 몸과 날카로운 눈, 빠른 말투 때문에 꼬장꼬장한 인상을 풍긴다. 어딘지 모르게 “그냥 죽을 순 없다!”라는 결기 비슷한 것도 느껴진다. 관광객 대탈주가 벌어진 19개월 전 잠시 기운 빠진 목소리로 “6개월 버틸 돈밖에 없다”던 데이비드는 그 결기로 꿋꿋이 살아남았다. 스페인은 다이빙 인구가 많은지 누사프니다에서 프랑스인들과 더불어 가장 큰 고객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팬데믹 직전 그의 숍은 항상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예전에는 다이빙만 하면 끝이었는데 요즘은 손님들 데리고 파티도 가고 해변에서 바비큐도 구워준다니까! 한 푼이라도 쥐어짜기 위해 별짓을 다 하고 있어.”

몇 달 전 데이비드는 이런 말을 하며 웃었다. 그는 팬데믹 기간에도 외국인 체류자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마케팅을 강화하고 장기 코스를 위한 강의 매뉴얼을 만드는 등 분주하게 일을 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 자유기고와 출판으로 먹고사는 내게 글을 쓰는 게 ‘보이는 일’이라면 일견 빈둥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읽고 듣고 경험하며 미래에 글로 치환할 자료를 모으는 게 ‘보이지 않는 일’이다. 다이빙숍을 경영한다면 다이빙을 나가는 게 ‘보이는 일’이고 전 세계에서 24시간 밀어닥치는 고객의 문의에 답하는 것이나 마케팅, 정산, 장비 수리, 구매, 운송, 고용, 건물 관리, 온라인 시스템 관리 등이 ‘보이지 않는 일’이다. 해변 바비큐 파티도 그들에겐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보이지 않는 일’인 셈이다. ‘나는 다이빙이 좋으니까 동남아에 가게를 차려서 매일 다이빙을 할 테야’라는 마음으로 가게를 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일’에 치여 나가떨어지는 경우는 흔하다. ‘보이지 않는 일’에 소요한 시간을 간과하는 바람에 동업자끼리 “너는 왜 일을 안 하냐”고 싸우는 경우도 자주 본다. 자영업은 그 숱한 ‘보이지 않는 일’들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는 분야다. 데이비드는 한때 “현금이 들어오지 않으니까 일을 안 하는 것만 같아”라고 좌절했지만 그 순간에도 전투적으로 ‘보이지 않는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 결과 살아남아 긴 터널의 끝에 도달한 것이다.

누사프니다에서 유일한 프리다이빙업체 아프네아

누사프니다에서 유일한 프리다이빙업체 아프네아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워크인(walk-in, 예약 없이 지나가다가 들른)’ 손님이 두 명이나 왔어!”

프랑스 다이빙숍 주인 해리가 식당에 들어서며 데이비드에게 인사를 건넸다. 데이비드의 가게는 부두 근처라서 팬데믹 중에도 간혹 워크인 손님이 있었지만 해리의 가게는 산중턱이라 그런 일이 드물었다. 동남아 스쿠버다이빙 업계는 의외로 좁아서 이 가게 사장과 저 가게 사장이 예전에 함께 일했고, 그 가게 강사와 이 가게 강사가 사제지간이라는 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태국에서 함께 일한 데이비드와 해리는 그중에서도 유독 사이가 좋다. 그 관계가 팬데믹 기간 빛을 발했다. 어쩌다 예약하는 손님 한두 명을 받겠다고 보트 다이빙을 나가면 선장 임금이다 기름 값이다 해서 오히려 손실이 크기 때문에 팬데믹 기간에는 단체 손님만 받는 가게가 많았다. 물론 그걸로는 먹고살기 어렵다. 그러다 문을 닫은 가게가 여럿이다. 그런데 저 두 사람은 손님이 한 명만 예약을 해와도 다른 가게 보트에 실어 보내면 되기 때문에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작은 섬에 다이빙센터가 수십 군데니까 치열하게 경쟁을 할 것 같지만 이렇게 협력과 공생을 우위에 두는 그룹도 있다. 물론 다른 가게를 염탐하고 험담하고 시비거는 부류도 있다. 문 여는 식당도 몇 군데 없는데 저녁 먹으러 갔다 마주치면 서로 인사도 안 하는 관계가 허다하다. 여기에 권선징악은 없다. 평소라면 경쟁과 협력 중 뭐가 경제적으로 나은 전략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의 자원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는 연대가 나았다.

가이, 데이비드, 해리는 와룽 비치의 저녁 시간 고정 멤버다. 옛날 시트콤처럼 약속 없이도 시간이 되면 하나둘 모여든다. 오늘 그들은 달라진 섬 분위기에 대해 희망찬 대화를 나누었다.

인도네시아는 11월부터 외국인 입국자의 격리 기간을 조정했다. 10월까지는 백신을 다 맞았어도 4박5일간 정부 지정 호텔에 머물며 격리를 해야 했다. 그것이 백신 2차 접종 완료자에 한해 3일로 바뀐 거다. 한국의 코로나19 예방 격리는 해제 시간을 엄격히 정해두지만 자카르타는 그렇지 않다. 일반적인 호텔 체크아웃 시간에 격리면제서를 발급받고 나갈 수 있다. 2박3일간 호텔 격리를 한다고 해도 첫날 자정에 체크인하고 마지막 날 오전 7시에 체크아웃하면 사실상 격리는 31시간에 불과하다. 장거리 비행의 여독을 풀고 개운하게 여행을 시작하기 알맞은 시간이다. 인구가 2억7000만명 넘는 나라에서 11월 현재 일일 신규 감염자가 500명 이하고, 2박3일 격리의 효용도 미심쩍은데 그냥 다 풀어버리면 안 되나 의구심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섣불리 빗장을 풀려다가 몇 차례 감염률 폭증을 경험한 인도네시아 정부는 재개방에 신중하다. 아직 무비자 입국이 안 되고 발리 국제선 직항도 신청한 항공사가 없어 재개되지 않고 있다. 그렇더라도 관광업 정상화가 머지않았다는 기대를 갖기는 충분하다. 원래 발리는 ‘소셜비자’라 불리는 2개월 이상 6개월 이하 체류 가능 비자를 받아서 장기 여행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에게는 지금이 한산한 발리를 즐길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그 결과 누사프니다에도 외국인 자유여행자들이 돌아온 것이다.

“ ‘우리 가게는 예약이 꽉 찼으니까 저쪽 스페인 가게에 가보세요’라고 손님을 돌려세울 때가 곧 오겠지.”

해리가 농담을 했다.

“상상만 해도 좋네. 그런데 우리가 직업을 제대로 선택한 게 맞을까? 옆집 노래 소리를 들으니까 관광객 대상으로 해변 카페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저 모양으로 귀를 고문해도 손님이 북적북적하잖아.”

“그러게 말이야. 칵테일 만드는 게 폭발 걱정하며 나이트록스(Nitrox, 보통의 스쿠버다이빙용 공기보다 산소 함량이 높은 공기로 여러 장점이 있지만 취급이 까다롭다) 배합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은데.”

그들에게 해변 카페란 한국 직장인들의 통닭집과 비슷한 의미다. 그건 그것대로 쉽지 않을 걸 알지만 ‘내 일만 아니면 뭐든 재밌겠어’라는 심정을 토로하기 위한 상징이다. 하지만 그들의 농담은 곧 누사프니다에 출몰한 고래상어 이야기로 옮겨갔다. 고래상어는 성체가 18m까지 자라는, 가장 큰 해양생물 중 하나다. 성격은 매우 온순하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서 흔한 생물이 아니기 때문에 데이비드와 해리는 그것을 발견한 다이버들을 부러워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들은 다이빙과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일을 선택했고, 고객을 데리고 물속에 뛰어들어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게 해주었을 때 가장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자영업의 생사를 가른다 해도 그것이 직업의 본질은 아니다. 자기 직업의 본질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경쟁도 불황도 티 안 나는 자잘한 노동의 스트레스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발리에서 다이빙숍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자유롭게 산다’는 오해를 품는다. 하지만 어떤 분야든 생존자들은 그만한 노력을 하고 있다. 다만 이들은 노력에 필요한 동기가 유독 강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이 돈 되는 노동으로 다시 바빠져서 해변 카페를 차리자는 농담은 쑥 들어가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때까지 우리의 로컬 밴드가 연주곡을 두어 개는 늘려주기를 바라면서, 얼마 안 남은 고립의 날들 중 또 하루를 흘려보냈다. 아, 그러고 보면 토니와 친구들이야말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미안하지만 그들은 조금만 덜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다른 삶]‘자유’만 보이던 발리의 가게들…우리가 몰라봤네, 그들의 생존 노력

▶이숙명

영화잡지 ‘프리미어’, 패션지 ‘엘르’ ‘싱글즈’ 등에서 일했다. 27년차 프로 독거인으로서 <혼자서 완전하게>라는 책을 썼으며, 2017년 한국을 떠나며 짐정리를 하느라 고군분투한 얘기를 <사물의 중력>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현재 발리 인근 누사프니다에 살면서 가끔 글을 쓰고 요가와 스쿠버다이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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