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에도 없는 존재로 산다는 것…“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수술요건 폐지하라”

강은 기자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16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 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트렌스젠더 성별정정 수술요건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16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 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트렌스젠더 성별정정 수술요건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떨리는 마음으로 판사님을 만나뵙게 됐지만 뜻하지 않은 모습에 당황했습니다. 심문 시작하자마자 부모님 동의서는 왜 받질 못했는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남자로 대우 해주는지 등 무분별한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제 아내에게 제가 이런 사람인 줄 알고도 만나냐며 무례할 말을 (했고) 당연히 (결과는) 기각이었습니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가 16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진정서에 인용된 40대 트랜스남성 A씨의 말이다. A씨는 2019년 4월 성별정정 허가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했으나 재판부는 박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정확한 기각 사유도 알려주지 않았다. 외부성기 형성 수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성소수자부모모임 등 6개 트랜스젠더 인권단체는 이날 “트랜스젠더 성별정정에 수술요건을 두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자기결정권,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대법원장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대법원 예규에 성별정정 허가 신청 시 수술확인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규정을 삭제하고, 성별정정 시 인권침해 질문이 없도록 제도를 개선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 성별정정 절차는 200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성별정정을 허용 결정한 이후 마련된 대법원 예규(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에 담긴 요건에 따라 진행된다. 해당 예규는 ‘생식능력 제거’, ‘외부성기 형성수술’ 등 엄격한 허가기준을 정해 논란이 이어졌다. 이에 법원은 지난해 2월 ‘허가기준 및 조사사항’으로 정한 부분을 ‘참고사항’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여전히 다수 법원은 외부성기수술 및 생식능력제거를 성별정정의 허가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진정접수 전 기자회견에서 “신체 침습적이고 고비용의 수술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은 수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성별정정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성별정정 절차상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백소윤 변호사는 “성별정정 사건은 ‘비송사건’으로 처리돼 사건에 관한 기록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며 “성별정정 신청 절차가 마련된 지 15년이 지난 상황에서 국가는 (성별정정 신청 건수 및 인용률) 통계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백 변호사는 “법관의 성역할 고정관념에 따른 모욕적 질문을 받는 등 수모를 겪어도 문제제기할 방법이 없다”면서 “이성교제나 성관계 유무, 입는 속옷을 묻는 상황까지 발생한다”고 했다.

인권위가 올해 초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를 보면, 트랜스젠더 591명 중 성별 정정을 완료한 사람은 8%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86%는 의료 비용, 건강 부담 등 이유로 정정을 시도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17일 개봉하는 성소수자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의 주인공 나비(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명)는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한국사회 트랜스젠더들이 언제까지 판사로부터 모욕적인 질문과 부당한 훈계를 들어야 하냐”면서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사법부로부터 침해받는 일이 더는 없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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