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강호’를 아시나요?…골목 ‘만화방’의 기억

이두리 기자
16일 광진구 자양동 만화방 ‘만화사랑’ 책장에 만화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이두리 기자

16일 광진구 자양동 만화방 ‘만화사랑’ 책장에 만화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이두리 기자

28년째 대서사시를 이어가고 있는 <열혈강호>부터 2018년 드라마로 각색된 웹툰 <내 ID는 강남미인> 단행본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만화책과 장르소설이 책장마다 가득한 곳. 8000원을 내면 온종일 낡은 소파에 파묻힐 수 있는 곳. 매대에 놓인 초코바 상자가 “나의 자유는 1000원에 4개씩”이라 말을 거는 곳. ‘만화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 4800개에 달했던 전국 만화책임대업(만화방, 만화카페, 서적대여) 사업체는 2019년 2500개로 줄었다. 이 중 만화방과 만화카페를 포함하는 만화임대 사업체 수는 2019년 704개인데, 해당 연도에 대형 프랜차이즈 만화카페 수가 200개가 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개인이 운영하는 영세 만화방은 전국에 500개도 남지 않은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16일 기자와 만난 만화방 ‘만화의 성’ 사장 이모씨(71)는 “매일 신간은 들어오는데 손님은 안 들어오고, 좁은 서가에 늘어나는 건 책뿐”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후 매출이 3분의 1로 떨어졌다. “책을 쌓아놓을 데도 없고, 독자도 없고. 일간 만화는 매일 폐휴지로 버려요.”

이곳의 8년 단골인 박창균씨(64)는 이씨가 잠시 외출한 사이 카운터를 대신 봐 주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전 핸드폰으론 거의 안 봐요. 나처럼 나이 든 사람은 모바일 결제를 할 줄 모르니까. 그리고 여긴 저렴한 가격에 온종일 있어도 되고.” 20대 초반이던 1980년대부터 장르소설을 탐독했다는 박씨는 “만화방은 이제 내 안방 같다”면서도 “지금은 다들 모바일로 보니까 만화방이 없어지는 건 당연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성동구 금호동에서 15년째 도서대여점 ‘북클럽’을 운영 중인 60대 조모씨는 “요즘엔 다 웹툰, 웹소설로 나오니까, 그게 출판이 돼도 인터넷으로 이미 다 본 거니까 대여해가는 사람이 적다”고 말했다.작은 가게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만화책과 소설책의 위치를 조씨는 달달 외우고 있다. “손님들마다 좋아하는 장르가 다르니까, 취향에 맞춰서 책 골라주는 게 내 의무죠.” 중학생 때부터 조씨의 도서대여점을 드나들던 손님은 직장인이 된 지금도 책을 빌리러 오지만, 이제 이곳을 찾는 10대 손님은 없다.

웹 시장에 집중된 한국 만화산업이 악순환을 일으킨다는 지적도 있다. 광진구 자양동에서 6년째 만화방 ‘만화사랑’을 운영 중인 장시복씨(43)는 “전에는 신간 구입비로 한 달에 200만원씩 썼었는데, 이제는 많아봤자 70만원 쓴다”고 말했다. 만화책 출판량 자체가 줄었다는 것이다. 장씨는 “볼 게 있어야 손님들도 올 텐데, 신간 자체가 줄어든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만화책 신간 발행 부수는 2018년 785만부에서 2019년 669만부, 2020년에는 567만부로 꾸준히 줄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관계자는 21일 “코로나 이후 사람들이 서점에 잘 안 가기도 하고, 마니아들만 찾는 만화방 등 만화책 전문점의 수요가 줄어들어서 신간 출간이 지연된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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