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폭력 신변보호 중에도 살해…반복되는 스토킹범죄 정말 막으려면

조해람·이홍근 기자
이아름 기자

이아름 기자

데이트폭력으로 신변 보호를 받던 여성이 스토킹범죄로 숨진 사실이 알려지자 빈발하는 스토킹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건 당시 경찰이 스마트워치 위치정보를 잘못 파악해 신고지와 다른 곳으로 출동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피해자 보호를 위한 기술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전 연인을 스토킹하다 흉기로 살해하고 도주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A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A씨는 지난 19일 오전 11시30분쯤 서울 중구 한 오피스텔에서 전 연인 B씨를 살해하고 도주했다가 20일 대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긴급체포됐다.

B씨가 A씨의 스토킹을 신고한 지난 7일부터 분리 조치와 귀가길 동행·임시숙소 제공 등 보호조치를 받고 있었음에도 경찰은 범행을 막지 못했다. 사건은 다른 곳에서 지내던 B씨가 원래 살던 오피스텔에 잠시 들렀을 때 일어났다. A씨는 범행 후 서울 한 전철역에 피해자의 휴대전화와 옷가지를 버린 뒤 현금으로 택시를 잡아 탄 것으로 전해졌다.

데이트폭력 피해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을 살해하고 도주한 30대 남성이 하루 만에 경찰에 붙잡혀 20일 오후 서울 중부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데이트폭력 피해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을 살해하고 도주한 30대 남성이 하루 만에 경찰에 붙잡혀 20일 오후 서울 중부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사건 당시 A씨는 스마트워치를 통해 오전 11시29분과 33분 두 차례에 걸쳐 긴급호출을 했지만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으로 출동했다. 지난달부터 시범운영 중인 위성과 와이파이, 기지국 기반의 새 스마트워치 위치확인 시스템이 현장에 정착되지 않은 탓이다. 사건 당시 경찰서에는 해당 시스템을 구동할 업무용 앱이 설치된 휴대폰이 없었고, 경찰은 기지국만을 통하는 기존 112시스템을 활용했다.

유족은 경찰이 스토킹범죄 방지 대책을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B씨 유족은 지난 20일 경향신문에 “물리적으로 다치지 않으면 도와줄 수 없다는 식의 접근은 잘못된 것 같다. 스마트워치로 보호를 받아도, 법적으로 접근금지 조치가 내려져도 빈틈이 생기면 언제든 범행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촘촘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B씨 지인들에 따르면 A씨는 11개월 이상 B씨를 지속적으로 협박하거나 스토킹했고, 카드키를 훔쳐 무단침입을 하거나 흉기로 협박하는 등 심각한 괴롭힘을 계속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1일 “오차 범위가 큰 기지국 방식이 아니라 GPS 기능이 있는 스마트워치를 줄 수 없었는지, 법령상 불가능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트폭력 신변보호 대상자 A씨가 숨지기 전 가족들과 주고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로, ‘사랑하는 큰딸’로 저장돼 있는 A씨는 끝내 어머니의 부름에 응답하지 못했다. 유족 측 제공

데이트폭력 신변보호 대상자 A씨가 숨지기 전 가족들과 주고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로, ‘사랑하는 큰딸’로 저장돼 있는 A씨는 끝내 어머니의 부름에 응답하지 못했다. 유족 측 제공

스토킹범죄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18일 경찰청은 스토킹처벌법(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이 시행된 지난 10월21일 이후 한 달간 2774건의 스토킹 신고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하루 평균 103건 접수된 것으로, 올해 1월1일부터 10월20일까지 일평균 신고 24건보다 4.3배 급증한 수치이다. 지난 17일에도 한 남성이 서울 서초동 한 아파트에서 동거하던 여성을 살해하고 아파트 밖으로 던진 혐의로 체포됐다.

승 연구위원은 “스토킹은 자기의 사랑만 옳은 사랑이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굉장히 비이성적인 것이다. 단순히 분리 조치하는 것은 피해자를 절대적인 위험 상태에 노출시키는 것”이라며 “반복적인 스토킹이 일어났을 때에는 유치장 유치 등 강력한 잠정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 피해자 분리는 정확히 하고 가해자에 대해서는 단순한 자유 박탈적 처분이 아니라 망상 치료를 위한 의료적 처우가 개입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스토킹은 반복되면서 빠른 속도로 폭력성이 심해질 수 있다. 이 사건의 경우 1년 가량 위협이 있었지만 즉각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범죄 수준을 1부터 10까지라고 한다면 쫓아다니거나 모욕을 주는 등 3 수준의 범죄도 강력범죄의 예비적 징후로 생각할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범죄로 봐야 한다”고 했다. 또 “이별을 수용하지 못한 전 남편이나 전 남자친구에 의한 스토킹 살인이 사회 문제화돼야 한다”며 “보복성 심화가 명백해질 때는 정말 위험하다.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더 많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스토킹범죄 예방 조치는 여성이 쉼터로 가야 하고, 여성이 스마트워치를 가지는 등 여성을 관리대상으로 해왔다”며 “제재받아야 할 대상(가해자)을 제재하는 방식으로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가해자 휴대전화에 위치추적 앱을 설치하는 등 기술적으로 촘촘히 지원할 여지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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