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한 스토킹을 당하다 살해된 서울 중구의 신변보호 여성은 사고 발생 전 최소 여섯 차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범행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있었지만 신변보호에 실패한 것이다.
22일 피해여성 A씨의 직장동료들에 따르면, A씨는 전 남자친구 B씨와 헤어진 이후 약 11개월간 흉기를 통한 지속적인 협박과 스토킹, 괴롭힘을 당해왔다. “다시 만나달라”는 요구였다. A씨는 부산에서 근무하던 지난해 말 B씨를 주거침입으로 경찰에 한 차례 신고했는데, 서울로 근무지를 옮긴 이후에도 스토킹은 지속됐다. 서울로 옮긴 이후 A씨가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며 경찰에 정식 신고한 것은 모두 5번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B씨에게 경고하고 돌려보내거나 추후에 조사를 진행하기로 하는 정도로 대응했다. 서울에서 첫 신고가 접수된 지난 6월26일에는 구두 경고를 하고 B씨를 돌려보냈다. A씨가 공식적으로 신변보호를 받게 된 지난 7일 이후에도 입건은 미뤄졌다. 경찰은 “피의자가 임의동행을 거부했다”며 “현행법상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피해자 보호에 주력했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B씨에 대한 조사 일정을 신변보호 이후 2주가량 지난 20일로 잡아놨고, B씨는 조사 예정일 하루 전인 19일 범행을 저질렀다.
신변보호 조치의 하나로 스마트워치가 지급됐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스마트워치 지급 이튿날인 9일 점심시간에 B씨는 A씨의 회사 인근에 나타났고, 해당 사실은 경찰에도 신고됐다. 하지만 경찰은 B씨에 대한 조사를 별도로 진행하지 않았다.
A씨는 당일 지인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너무 무서웠다”며 “수사관이 자꾸 증거를 달라고 한다. 증거가 없어 움직이지 않는 거 같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당일(9일) 오후 3시쯤 법원으로부터 A씨에게 100m 이내 접근금지, 정보통신 이용 접근근지 등의 ‘잠정조치’ 통보를 받아 관련 내용을 알려줬다”며 “피해자 진술이 우선이어서 (가해자 조사보다) 먼저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했다.
A씨의 직장동료들은 “법원으로부터 정보통신 이용 접근금지가 내려진 이후인 11일에도 B씨에게 전화가 와 수사관에게 말하기도 했다”며 “결국 A씨 스스로 B씨 번호를 수신차단했다”고 전했다.
사건 당일인 19일 오전 11시29분과 11시33분 A씨는 두 번에 걸쳐 긴급호출을 눌렀지만 경찰은 최초 신고 후 12분이 지나 현장에 도착했다. A씨가 이미 흉기에 찔린 뒤였다. 경찰은 신고자가 스마트워치로 호출한 위치값에 근거해 출동했다고 설명했지만, 신변보호 대상 지정 시 이미 주거지를 알고 있었던 만큼 초동조치가 좀 더 빨리 이뤄질 수 있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이 곧바로 A씨의 집으로 출동할 수는 없었냐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 부분이 가장 아픈 부분”이라며 “직원이 애초에 그런 조치(주거지 수색)를 취했으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 문성관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B씨에 대해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도망할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 조사에서 B씨는 범행 대부분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지난 21일 오후 11시쯤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살인 혐의로 조사를 받던 도중 혀를 깨물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지만 크게 다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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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희 기자 yu@khan.kr
데이트폭력의 피해자 대부분을 여성으로 전제하는 것은 ‘차별’일까.
— 플랫 (@flatflat38) November 22, 2021
젠더폭력에 대한 공식 통계가 없는 상황에선 이 주장을 정확하게 반박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언론 보도를 통해 '최소' 열흘에 한 명 꼴로 여성이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당한다는 추정만 가능할 뿐이다.https://t.co/ABSfXUcWv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