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모어 조선어와 모국어인 일본어, 두 언어를 쓸 수밖에 없는 소수자

이길보라

코다의 눈으로 본 재일 조선인

2013년부터 실시된 일본의 고교무상화 정책에서 제외된 조선학교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과정을 담은 영화 <차별>(김지운·김도희 감독)의 한 장면. 2019년 3월14일 규슈조선고급학교 고교무상화 1심 소송 판결 당시 담당 변호사가 결과를 일본어와 조선어로 알리고 있다.  이스크라21 제공

2013년부터 실시된 일본의 고교무상화 정책에서 제외된 조선학교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과정을 담은 영화 <차별>(김지운·김도희 감독)의 한 장면. 2019년 3월14일 규슈조선고급학교 고교무상화 1심 소송 판결 당시 담당 변호사가 결과를 일본어와 조선어로 알리고 있다. 이스크라21 제공

재일 조선인 3세와 코다의 만남

입술 대신 수어로 말하고 사랑하고 슬퍼하는 농인 부모의 세상을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농인 부모의 자녀)의 시선으로 다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일본에서 상영했을 때의 일이다. 자신을 재일 조선인이라 소개한 관객이 말했다.

“이 영화는 정확하게 제 삶의 경험과도 만나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를 오가며 자란 나의 경험이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거주하게 된 이들과 어떻게 같다는 건가. 이 같은 반응을 보인 건 그뿐이 아니었다.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재일 조선인 역시 영화를 보며 크게 공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저는 재일 조선인 3세로 태어났어요. 자라고 보니 나라는 존재가 특별영주 자격으로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인 거예요. 학교에서는 조선어를 썼지만 바깥에서는 일본어를 썼죠.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 속에서 살았어요.”

그의 신분증은 특별영주자 증명서다. 국적란에는 대한민국(남한) 국적과 조선적, 두 가지 종류 중 하나를 표기할 수 있다. 일본 국적을 선택하면 일본인으로 귀화하게 된다. 그는 초·중·고등학교를 비롯해 대학교까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운영하는 조선학교를 다녔다.

“조선학교에서는 우리말과 한글, 역사를 가르쳐요. 일본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것이죠. 흔히들 ‘조선’이 북한을 뜻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말하는 조선은 해방 이전의 조선을 뜻해요. 남북이 분단되기 이전의 하나의 조선이자 민족적 의미의 조선이요.”

조선학교는 국어, 역사 등 민족교육을 위해 자발적으로 세운 국어강습소에서 유래했다. 초창기 자금난에 시달렸던 조선학교는 1957년 북한과 남한, 양쪽 국가에 경제적 지원을 요청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그러니까 북한만이 교육 원조비를 보낸다. 남한은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를 공식적인 학교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에 따라 학력도 인정되지 않고 경제적인 지원도 전무하다

미술작가로 활동하는 그는 조선적을 유지하면 사실상 무국적으로 분류되어 국가 간 출입이 어렵기에 남한 국적을 선택했다. 문제는 그가 선택한 남한에는 남성일 경우 필수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병역 의무가 있다는 거였다.

“조선인으로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조선화를 배우기 위해 실습차 평양에도 다녀왔어요. 이후 작가 활동을 하고 싶어 남한 국적을 선택해 서울에 갔는데 군대에 가야 하는 거예요. 재외국민 2세에 대한 제도가 최근에 바뀌었거든요. 그런데 저의 정체성은 남한이 아니라 재일 조선인이에요. 아시다시피 남한 군대에 가면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라는 사상 교육을 받아요. 저는 하나의 조선이 나의 민족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생각해요. 국경을 넘나들기 위해 국적을 선택했을 뿐인데 저의 민족 중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총을 겨눠야 하는 거예요.”

‘특별영주자’로 사는 재일 조선인
학교선 조선어·밖에선 일본어 쓰며
디아스포라로서 정체성 혼란 겪어

디아스포라(Diaspora·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 집단 또는 그 거주지를 가리키는 용어)로서의 정체성 혼란이 다시 시작되었다. 남한 군대에서 훈련받게 되면 정체성은 뿌리째 흔들릴 것이 자명했다. 어떤 이념이나 사상을 선호하여 국적을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일본으로 돌아왔다. 재일 조선인으로 태어났고 그저 자유롭게 국경을 오가고 싶을 뿐이었다.

민족적 의미로서의 ‘조선’

흥미로운 이야기였지만 어째서 나의 이야기와 맞닿는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 김지운·김도희 감독의 영화 <차별>(2021)을 보고 정확하게 내 경험과 일치한다고 느꼈다. 2013년부터 실시된 일본의 고교무상화 정책에서 제외된 조선학교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하게 되는데 그 여정을 좇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 주인공 중 한 명은 조선학교 출신이자 위 소송을 수임하는 김민관 변호사다. 그는 조선대학교를 졸업했지만 일본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학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학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공식 교육과정을 밟아야 했다. 그는 다시 한번 대학에 입학한다. 남들보다 한참 늦게 변호사가 된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다른 외국인학교나 국제학교는 공식적인 학교로 인정받아 재정지원을 받는 데 반해 조선학교가 제외된 건 조선인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조선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조선학교에서 편향된 이념과 사상 교육을 받을 거라 생각하지만 이들의 교육과정은 꽤나 순수하다. 우리 민족의 언어와 문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렇기에 민족의 독립과 통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운다.

일본 고교무상화 제외된 조선학교
정부 상대로 손배 소송하면서도
모어 아닌 일본어로 증명해 내야 해

조선학교 학생들은 법원 앞에서 손을 모아 재판 결과를 기다린다. 극영화라면 한 번쯤 극적으로 승소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법도 하지만 전국 각 지방법원에서 열린 소송마다 조선학교는 무참히 패소한다. 기껏해야 열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법원 앞에서 현실을 마주한다.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부정당한다.

영화에 따르면 현재 일본 내 조선학교는 60여개로 8000여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이 중 50% 이상이 남한 국적이며 나머지는 조선과 일본 국적이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 1910년대 이후 생존을 위해 혹은 강제로 일본에 건너간 조선인은 약 200만명에 이른다. 당시 조선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한다. 1945년 8월15일 해방 이후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은 약 60만명이었다. 1947년 일본은 식민지 국가의 국민이자 천황의 신민이었던 재일 조선인을 외국인으로 간주한다고 공표한다. 당시 한반도는 민족분단 대립 중이라 어떠한 국가도 없는 상황이었다. 재일 조선인들은 하는 수 없이 외국인 등록증에 국가가 아닌 민족적 의미로서의 ‘조선’을 기입한다. 이듬해인 1948년 남과 북은 둘로 갈라진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국가가 수립된다. 공식적으로 조선이라는 국가가 사라짐에 따라 재일 조선인은 국적을 상실한다. 난민이 된 셈이다.

모어와 국민을 만드는 장치로서의 모국어

무엇보다 인상 깊은 건 조선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김민관 변호사의 언어 그 자체다.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재일 조선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국민으로서의 적법한 권리를 주지 않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일본인’이라고 하는 야마토 민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법을 이해하고 그를 ‘일본어’라는 언어로 증명해야 한다. 언어적·민족적·문화적 소수자인 재일 조선인에게는 애초부터 불리한 게임이다.

나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수어를 배웠다. 농문화를 영위하며 살아가는 농인의 세계, 농사회는 내가 첫 번째로 속한 문화적 공동체였다. 그러나 집 밖은 달랐다.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청사회, 청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에서 그들의 문화를 배워야 했다. 그곳에서 수어는 언어로 분류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속에 농인과 농문화는 없었다. 부모는 언어적·문화적 소수자가 아닌 불쌍하고 하등한 장애인이었고 나는 그의 자녀였다. 나는 나를 설명할 언어를 가지지 못했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이자 청인 중심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의 모어와 농문화를 잊어야 했다.

재일 조선인 저술가이자 작가로서 디아스포라에 대한 질문을 던져온 서경식은 다나카 가쓰히코의 논의를 빌려 모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익혀 자신의 내부에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말이며 한번 익히면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근원의 말’”이고, 모국어란 자신이 국민으로서 속해 있는 국가인 모국의 국어라고 정의한다. 모국어는 “근대 국민국가에서 국가가 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구성원들에게 가르쳐 국민으로 만드는 장치로 기능”하며 “모어와 모국어가 일치하는 경우는 국가 내부의 언어 다수자들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어느 곳이든 모어와 모국어를 달리하는 언어적 소수자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일본 사회에서는 재일 조선인이, 한국 사회에서는 언어적 소수자인 한국 농인이 그에 해당한다.

자신의 의견을 한국어(모어)로 말하며 일본의 법을 공부하고 그 한계를 일본어(모국어)로 지적하는 주인공을 보며 나의 경험을 떠올린다. 농인 부모와 내가 지닌 언어적 소수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수어로 교육받고 농문화를 전수받을 수 있었다면 나의 정체성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언어를 해석하는 권력은 언제나 다수에게

비장애인 중심 사회서 살아남으려
모어와 농문화 잊어야 했던 내 삶과
일본 사회 속의 그들이 겹쳐 보였다

최근 BTS가 수어 안무와 함께 선보인 신곡 ‘퍼미션 투 댄스’가 미국 빌보드 차트를 휩쓸자 수어에 대한 관심 또한 전 세계적으로 높아졌다. 국내 언론 매체에서도 안무가 어떤 수어를 사용했는지 궁금해했다. 문제는 이에 대한 의견을 농인이 아니라 언어적 접근이 쉬운 청인 수어통역사나 청인 수어 아티스트에게 물은 것이다. 이들에게 수어는 모어가 아니다. 수어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고 농사회의 반응을 생생히 들려줄 수 있는 건 농인 당사자다.

최근 스스로를 수어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몇몇 청인이 매체에서 BTS의 수어 안무에 대해 잘못 설명하는 일이 있었다. 이는 수어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양산할 뿐 아니라 수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청인이 가로채는 행위다. 보다 못한 몇몇 농인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관리자에 의해 모든 댓글이 지워졌다. 언어적 소수자의 의견이 다수자에 의해 묵살당한 것이다. 농인은 수어가 주목받는 이 전례 없는 상황에서 다시 한번 타자화되고 주변화된다.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12) 모어 조선어와 모국어인 일본어, 두 언어를 쓸 수밖에 없는 소수자

서경식은 책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새롭게 도착한 공동체에서 소수자의 지위에 놓여 지식과 교양을 익힐 기회마저도 박탈당한 디아스포라에 대해 말하며 “곤란을 극복하고 언어를 쓸 수 있게 되더라도 그것을 해석하고 소비하는 권력은 언제나 다수가 쥐고 있다”고 쓴다. “그 호소가 다수자에게 편안한 것이라면 상대해주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차갑게 묵살해”버린다고 말이다.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라는 말 사이에 지워진 존재를 바라본다. 모어와 모국어 사이의 간격이 끝도 없이 벌어지고, 모국어가 가지는 권력이 그 어떤 모어의 것과 판이하게 다를 때 벌어지는 일들을 마주한다.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인 미국 시인 오드리 로드는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썼다. 나는 모어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모어와 모국어를 오가며 당신의 집을 무너뜨린다. 그건 재일 조선인 김민관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소수자라고 불리는 이들의 존재와 삶을 경유하여 국가, 민족, 언어, 문화의 경계를 흔든다. 단일민족국가라는 환상에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이길보라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12) 모어 조선어와 모국어인 일본어, 두 언어를 쓸 수밖에 없는 소수자

영화감독이자 작가이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고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 저서로는 <반짝이는 박수 소리> <우리는 코다입니다>(공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당신을 이어 말한다> 등이 있고, 연출한 영화로는 <로드스쿨러>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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