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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YOU(위드유)”, “WE CAN DO ANYTHING(위캔두애니싱)”, “#ME TOO(미투)” 2018년 봄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에는 이런 문구의 포스트잇이 붙었다. 졸업생들이 2012년 겪은 성폭력을 고발하자 재학생들이 호응한 ‘창문미투’였다. ‘더는 참지 않겠다’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소녀들은 거침이 없었다. 용화여고 이후 스쿨미투는 전국 100곳 남짓의 학교로 급격히 확산됐다. 한국의 학생인권사와 성평등사에 길이 남을 만한 스쿨미투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후 3년 6개월이 흘렀다. 지난 9월 30일 대법원은 용화여고의 성폭력 가해교사 A씨에 대한 징역 1년 6개월형을 확정했다. “그 교사 눈에는 띄지 마라”, “일 대 일 면담 때는 체육복 바지를 입고 가라”, “책으로 가슴을 가려라.” 성희롱·성추행으로 유명한 A씨를 두고 학생들은 서로에게 이런 조언을 해왔다고 한다. 학내 성폭력은 오랫동안 학생이 조심해야 할 문제로 치부돼왔고, 가해교사는 ‘변태’ 별명을 얻는 게 고작이었다. 졸업생들의 용기 덕분에 A씨의 행동은 비로소 ‘범죄’로 다뤄질 수 있었다.

용화여고 이후 스쿨미투는 전국 100곳 남짓의 학교로 급격히 확산됐다. 한국의 학생인권사와 성평등사에 길이 남을 만한 스쿨미투는 이렇게 시작됐다. 학교 내 성폭력을 뿌리뽑자는 마음으로 뭉쳐 3년 6개월간 웃음과 눈물, 탄식과 분노의 시간을 함께해온 오예진씨(26), 강한나씨(가명·26), 김파란씨(가명·21), 이다라씨(가명·21)를 지난 11월 6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송윤경 기자

용화여고 이후 스쿨미투는 전국 100곳 남짓의 학교로 급격히 확산됐다. 한국의 학생인권사와 성평등사에 길이 남을 만한 스쿨미투는 이렇게 시작됐다. 학교 내 성폭력을 뿌리뽑자는 마음으로 뭉쳐 3년 6개월간 웃음과 눈물, 탄식과 분노의 시간을 함께해온 오예진씨(26), 강한나씨(가명·26), 김파란씨(가명·21), 이다라씨(가명·21)를 지난 11월 6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송윤경 기자

학교 내 성폭력을 뿌리뽑자는 마음으로 뭉쳐 3년 6개월간 웃음과 눈물, 탄식과 분노의 시간을 함께해온 오예진씨(26), 강한나씨(가명·26), 김파란씨(가명·21), 이다라씨(가명·21)를 지난 11월 6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2018년 스쿨미투 당시 오예진씨와 강한나씨는 졸업생이었고 김파란씨와 이다라씨는 고3 재학생이었다. 자신의 몫을 완주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는 이들 네 사람에게 1300여일간 이어졌던 싸움의 의미와 한계에 대해 들었다.

“언니들의 용기, 우리가 힘 보태자”



-용화여고 졸업생·재학생들이 스쿨미투에 불을 붙인 과정을 시간순으로 돌아보려 합니다. 2018년 봄, 졸업생들이 실시한 학내 성폭력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한 것이 ‘용화여고 스쿨미투’의 시작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오예진 “당시 페이스북에 교사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미투’ 페이지가 있었어요. 동창생들 사이에서 ‘우리도 제보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 나왔습니다. 저희끼리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성폭력)에 대해 오래 얘기를 해왔었으니까요. 그런데 스쿨미투 페이지에 제보 글을 올리는 것 이상의 뭔가를 하고 싶었어요. 당시는 서지현 검사의 폭로에 이어 연극계에서도 고발의 목소리가 한창 터져나오던 때였는데요, ‘우리도 우리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게 해보자’ ‘가해자들에게 타격이 있게끔 행동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한달간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서 국민신문고와 교육청에 제보하고, 언론에도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했죠.”

당시 배포된 보도자료엔 ‘한달간의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 96명 가운데 41명이 특정 몇몇 교사들로부터 성폭력을 경험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때 가장 많이 지목된 교사가 지난 9월 30일 대법원 판결로 징역형이 확정된 A씨다.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는 이때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하기 위해 오씨가 주축이 돼 만든 단체다. 오씨는 “조직이 클 것 같지만 실은 오늘 모인 사람이 거의 전부”라고 했다.

2018년 졸업생들의 스쿨미투를 접한 용화여고 고3 재학생들이 창문에 “#WITH YOU(위드유)”, “WE CAN DO ANYTHING(위캔두애니싱)”, “#ME TOO(미투)” 포스트잇을 붙였다.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 제공

2018년 졸업생들의 스쿨미투를 접한 용화여고 고3 재학생들이 창문에 “#WITH YOU(위드유)”, “WE CAN DO ANYTHING(위캔두애니싱)”, “#ME TOO(미투)” 포스트잇을 붙였다.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 제공

-재학생들이 졸업생들의 미투를 지지하는 의미로 창문에 포스트잇을 붙인 건 보도 직후였지요.

김파란(2018년 당시 고3) “아침에 교실이 웅성웅성하더라고요. ‘인터넷에 노원 Y여고 스쿨미투 떴다’면서 친구들이 기사를 보여줬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그날 교육청에서 재학생 대상으로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를 했고요. 그날 오후에 친구가 포스트잇을 보여주면서 ‘우리 이거 붙이자’고 하더라고요. 졸업생 언니들이 용기를 냈는데, 우리가 힘이 돼주자는 얘길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친구 얘길 듣고 ‘완전 좋다’ 하면서, 바로 교실 들어가 ‘얘들아 포스트잇 있는 사람 줘봐’ 했죠. 미투를 지지하는 의미의 위드유 캠페인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그 친구가 알려줬어요. 그렇게 해서 저희는 4층에 ‘#위드유’를 붙이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이 친구(이다라)도 저희를 따라서 2층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더라고요. 그때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어요(웃음).”

이다라(2018년 당시 고3) “파란이가 포스트잇 붙이는 것을 보고 다가가 ‘너 멋있다’라고 했더니, ‘너도 붙여’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저는 또 다른 친구들이랑 ‘위캔두애니싱’을 붙였어요. 그날 교육청의 전수조사가 있었잖아요. 맨 처음 포스트잇 붙이는 걸 제안했던 친구는 전수조사가 끝나고 혹시 불안하거나 힘든 이가 있다면 힘이 돼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고 해요.”

“저희 의사를 표현하지도 못하나요”



-그후 용화여고 재학생들의 ‘창문미투’는 스쿨미투의 상징이 됐는데요, 졸업생들은 창문미투를 보고 어땠나요.

강한나 “코끝이 찡했던 기억이 나요. 저희는 후배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었거든요. 고3이고 입시를 앞두고 있으니 저희 행동을 싫어할 수도 있고…. 저희도 학교 다닐 때는 못 했기 때문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창문미투를 보고 안도감과 동시에 감동을 했어요. 후배들이 멋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정말 용기 있는 행동이었으니까.”

오예진 “나중에 기록을 봤는데 어떤 선생님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얘기하면서 ‘포스트잇 떼라’고 하니까 후배들이 조목조목 반박을 했더라고요.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용화여고 ‘창문미투’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가 있다. 졸업생들의 스쿨미투에 재학생들이 ‘위드유’ 등의 포스트잇으로 지지를 보낸 뒤 이 학교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러자 일부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포스트잇을 떼라고 압박했다. “우린 한솥밥 먹는 가족 같은 관계다, 부모님께 이런 일이 있어도 떠벌리고 다닐 거냐”는 교사도 있었고, “포스트잇 부착이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는 교사도 있었다. 당시 생활지도를 담당하던 한 교사는 이런 내용의 교내 방송을 했다 “사안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잘못된 의견을 표출하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3~4층에 붙인 포스트잇을 자발적으로 떼어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이 끝나고 몇몇 학생들은 포스트잇을 떼기 시작했고, 다른 학생들은 이를 제지했다. 이다라씨는 이때 친구들과 함께 방송을 한 교사를 찾아가 ‘맞장토론’을 펼친 기억이 생생하다.

“포스트잇을 떼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시면 좋겠어요.” “특정인을 지칭해서 붙인 게 아니고 그저 미투, 위드유, 위캔투애니싱을 붙인 것인데 문제가 되나요?” 학생들의 질문에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시기적으로 그렇잖아. (유죄가) 확정된 다음에 (포스트잇) 붙이고 운동하자.” 그러자 학생들이 반박했다. “지금까지 선생님들이 저희를 보호해주시지 않은 결과 이렇게 된 건데 저희 의사를 표현하지도 못하나요.” 질문세례가 이어지자 교사는 “강제로 뗀 게 아니고 너희들이 방송 듣고 자발적으로 뗀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아이들은 즉답했다. “그러면 저희가 자발적으로 다시 붙이면 되겠네요.” 다라씨가 기록한 이때의 ‘토론’을 끝으로 교사들은 더는 포스트잇을 거론하지 않았다.

다라씨는 동급생들과 포스트잇을 지켜낸 그날의 일을 두고 “어떻게 이렇게 뭉칠 수 있었을까 싶어서 신기했다”고 말한다. 창문미투 포스트잇은 그해 11월까지 7개월간 붙어 있었다고 한다.

📌[플랫]‘스쿨 미투’의 시작이 된 용화여고, 가해 교사 1심에서 실형 선고

📌‘스쿨미투’ 용화여고 전직 교사, 징역 1년 6월 확정

“진실 하나에 의지해 버텼다”



-졸업생들이 목소리를 낸 후 4개월 만인 2018년 8월에 학교가 18명의 교사에 대해 징계를 내렸습니다. 사립학교가 교육청의 징계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것은 처음이었다고요.

오예진 “학교가 교육청 징계안을 받아들일지 걱정이 많이 됐어요. 사립학교가 그런 적은 거의 없었다고 들었거든요. 징계위가 열리기 직전에,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스쿨미투 문화제’도 열었죠. 저희와 지금까지도 함께하고 있는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과 함께 주최한 문화제였어요. 학교를 압박하기 위해 문화제 말고도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스쿨미투 핀버튼을 만들어 배포하고 대자보도 만들어 붙이고…. 시민모임에선 학교 앞에서 릴레이 1인시위도 하셨고요.”

강한나 “그때가 스쿨미투가 시작되고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는데, 사실 저는 좀 지쳐 있었던 것 같아요. 지지와 응원도 많이 받았지만 차가운 시선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거든요. ‘왜 그렇게 열심히 해? 멋있다는 말에 취한 것 아냐?’ 같은 시선들이요. 저도 저 자신에게 여러 번 물어봤어요. 나는 이걸 왜 할까. 다른 바쁜 일이 많은데 이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정말 뭔가에 취해서 하고 있는 걸까.”

-스스로 답을 찾았나요.

강한나 “고민 끝에 다다른 결론이 있었어요. 득보다 실이 많은데도 스쿨미투 활동을 놓지 않았던 건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어요. (학교에서 겪은 성폭력은) 진실이라는 것. 그거 하나에 의지해 힘든 시기를 버텼던 것 같아요.”

-당시 교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이다라 “지지하는 분도 계셨고, 깎아내리는 분들도 계셨어요. 어느 선생님은 ‘법대로 처리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면서 격려해주셨는데, 나중에 그분도 ‘성폭력 방관’으로 징계를 받게 됐어요. 막상 당사자가 되고 나니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고.”

오예진 “저희를 두고 의심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희가 학교를 음해하려는 세력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고 배후에 전교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럼에도 진심으로 응원해준 분들도 계셨어요. 스쿨미투 문화제를 열기 위해 모금을 했는데, 젊은 여자 선생님들 네 분이 돈을 모아 전달해주셨어요.”

-징계를 받은 가해교사의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이다라 “‘누가 말했는지 나는 찾아낼 수 있다’는 발언을 한 교사가 있었어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학교를 떠난 교사도 있었는데, 이렇게 말했대요. ‘아빠가 잘못한 거 맞아.’ 학생들이 딸 같다면서 자신을 ‘아빠’로 지칭하는 교사였거든요.”

“경찰·교육청, 적극적이지 않았다”



용화여고 성폭력 사안은 빠르게 처리되는 듯했다. 교사 18명에 대한 교육청의 징계 요청을 용화여고는 2018년 8월 거의 대부분 수용했다. 졸업생들의 고발로 시작된 가해교사 A씨에 대한 수사도 그해 하반기에 마무리돼 가고 있었다. 그러나 2018년 12월 검찰이 A씨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리면서 형사처벌 불발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때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이 끊어질 뻔했던 물줄기를 다시 잇는 역할을 했다. 재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 8000여명의 연대서명을 받아 진정서를 접수하는 등 공론화에 다시 나선 것이다.

지난 9월 30일 대법원 정문 앞에서 열린 ‘용화여고 스쿨미투 대법원 선고 기자회견’에서 노원스쿨미투를 지지하는시민모임 최경숙 전 집행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30일 대법원 정문 앞에서 열린 ‘용화여고 스쿨미투 대법원 선고 기자회견’에서 노원스쿨미투를 지지하는시민모임 최경숙 전 집행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이듬해인 2019년 8월 재수사를 결정해 2020년 5월 A씨를 기소한다. 졸업생들이 목소리를 낸 지 약 2년 만이었다. 그리고 A씨의 징역형이 확정되기까지 1년이 더 걸렸다.

-주요 가해교사 A씨의 형사처벌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예진 “스쿨미투를 했던 2018년이 제가 대학교 졸업하던 해였어요. 취업준비를 하면서 이 활동을 이어왔는데, 너무 길어졌죠. 2018년 12월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했을 때는 황당했어요. 변호사님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범죄이기 때문에 실형이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셔서 당연히 그럴 줄 알았거든요.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어요. 여기서 그만두면, A씨가 소청심사를 통해 다시 교단에 돌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사와 재판이 길어지면서 고충이 컸을 것 같아요.

강한나 “경찰 수사 단계부터 답답함이 컸어요. 경찰에서 직접 수사를 하면 되는데 저희에게 ‘피해 진술할 사람을 찾아달라’고 하더라고요. 교육청이 용화여고에서 실시한 전수조사를 보면 될 텐데, 경찰은 ‘교육청에서 조사결과를 안 주고 있다’고 하고 교육청은 ‘경찰에서 요청하지 않는 이상 건네줄 수 없다’고 하고…. 다들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저희만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오예진 “저희 쪽엔 A씨의 피해자가 많았거든요. 다른 교사들의 피해자는 경찰이 다시 찾아야 했던 거죠. ‘학생들이 겁을 낼 수 있다’면서 저희에게 대신 찾아달라고 한 건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양한 방법이 있었을 텐데 저희에게 떠넘겼던 것 아닌가 싶어요. 결과적으로 A씨의 피해자 위주(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로 수사를 했고, 그 결과 A씨만 형사처벌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A씨가 법정에서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더라고요.

강한나 “‘막판 뒤집기’를 시도하려 했던 것 같아요. 징계 취소를 위해 소청심사를 신청하고 별도의 재판도 했거든요.”

오예진 “실제로 2018년 징계를 받았다가 취소된 분이 계세요. 현재 용화여고 교장선생님이죠. 성고충처리위원장을 맡고 있었음에도 성폭력을 신고하지 않은 잘못(신고의무 위반)으로 2018년에 경징계를 받은 분이었는데 징계취소 소송에서 ‘나는 몰랐다’는 주장을 해서 받아들여졌어요. A씨가 성희롱과 성추행으로 정말 유명했는데 그분의 ‘몰랐다’는 주장이 이해가 되지는 않아요. 그리고 아무리 징계가 취소됐어도 성폭력 사안에 책임이 있던 교사였는데 교장이 된 것도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강한나 “관리자들이 빠져나가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껴요. 저희가 고발한 A씨의 일은 2012년에 일어났는데, 당시 피해자 중 한명이 ‘강의평가’에 성폭력 사안을 적었다고 해요. 그후 아무 조치도 없었고, 오히려 이듬해 평가 때 ‘강의평가와 관련되지 않은 내용은 쓰지 말라’는 교내 방송이 나왔대요. 심지어 학부모가 학교에 전화해 항의한 적도 있었지만 별일 없이 지나갔어요. 그때 관리자급 교사들이 성폭력 사안을 제대로 처리했다면 어땠을까요.”

오예진 “지금 과연 많이 것이 바뀌었을까 돌아봐요. 교사에 의한 성폭력이 일어나도, 결국은 관리자급 교사들에게 가장 먼저 ‘보고’될 텐데 그들이 제대로 해결할 거라는 믿음이 별로 없어요. 과거의 방관과 침묵에 대해서 제대로 된 처벌이 없었잖아요.”

“3년 전 용기 잊히지 않아야”



스쿨미투가 없었다면 지금도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을 가해교사들이 형사처벌과 징계를 받았고, 일부는 교단을 떠났다. 이것을 이뤄내는 데 3년 6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네 사람은 아쉬운 것이 적지 않다. “교사의 성폭력이 용인되는 분위기와 여성혐오 문화를 바꾸고 싶었지만, 학교가 확실히 변했는지 잘 모르겠다”(오예진씨)는 점이 가장 답답하다.

지금의 용화여고는 3년 전의 창문미투·스쿨미투를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시민모임)’의 최경숙 활동가는 “용화여고 재학생들에게 가장 좋은 성평등교육 강사는 스쿨미투 운동을 했던 선배들일 것”이라며 “졸업생과 재학생 간 만남의 자리를 만들고 스쿨미투를 기억하는 나무도 심자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제안해봤지만,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2018년 11월 서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열린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학생회 날 스쿨미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11월 서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열린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학생회 날 스쿨미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스쿨미투에 대한 그간의 학교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오예진 “학교는 일부 가해자를 도려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 대응했고, 지금은 도려낸 것에 대한 얘길 안 함으로써 평화를 지키고 있는 듯해요. 2년 전 여성의날에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가 한국여성단체연합으로부터 성평등 디딤돌상을 받았어요. 그걸 학교에 놓아둘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학교에선 원치 않는 것 같아요. 재학생들이 창문에 포스트잇을 붙인 그 용기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을 텐데 답답하죠.”

강한나 “학교를 확실히 바꾸려면 제도가 정비돼야 할 것 같아요. 저희 경우에는 이례적으로 사립학교가 교육청의 징계요청을 받아들였잖아요. 앞으로는 반드시 받아들이도록 사립학교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봅니다. 나아가 관심이 커질 때만 ‘스쿨미투 의미를 새기자’고 할 것이 아니라 교내 권력형 성범죄에 집중하는 전담팀이 교육청·교육부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3년이 어떻게 기억될까요.

오예진 “단거리 달리기인 줄 알았는데 시작하고 보니 마라톤이었어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린 것에 의미를 두고 싶고요, 스쿨미투는 제 정체성의 일부가 될 것 같아요.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선택을 하게 될 텐데, 그때마다 지난 3년의 기억을 반추하게 될 것 같습니다.”

김파란 “고3 때 위드유 포스트잇을 붙일 때만 해도 이렇게 긴 호흡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어요. 처음엔 창문미투가 큰 주목을 받아 ‘뭐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긴 시간이 흐르면서 저조차 관심을 놓기도 했어요. 언니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강한나 “많은 관심을 받으며 시작했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기자회견을 하면 먼 곳에서 와주신 분들이 많아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죠. 물거품으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정말 노력했어요. 저에게 스쿨미투는 ‘성장통’이었어요. 힘든 순간이 많았기 때문에 이렇게 일상을 회복한 것이 스스로 기특합니다.”

“남은 달리기는 교육당국의 몫”



가해자 처벌은 용화여고 스쿨미투가 거둔 성과지만 ‘최종 목표’는 아니었다. 지난 3년 6개월간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가 지겹게 반복했던 말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학교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교를 바꾸기 위해서 모였다.” 이들이 원한 것은 교사의 성폭력을 용인하는 학교 문화를 뿌리뽑는 것, 즉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스쿨미투 그후 3년. 우리는 ‘성평등 학교’라는 스쿨미투의 목적지까지 달려가는 과정에서 ‘가해자 처벌’이라는 반환점을 돌았을 뿐이다.

그간 당사자들과 함께 싸워온 ‘시민모임’의 최경숙 활동가는 “이제 ‘남은 달리기’는 온전히 교육당국의 몫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스쿨미투가 터져나오자 교육부는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하고 성폭력 예방·성인지 감수성 향상 교육 등을 강화했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미미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최 활동가는 “스쿨미투로 확인된 성폭력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기 때문에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얘기가 2018년부터 나왔다”면서 “그런데 교육부는 최근에서야 전수조사 계획을 세웠다. 스쿨미투 이후 몇가지 제도개선이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대책 추진이 너무 느리고 소극적”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올해 말부터 전국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성폭력 피해·가해 경험을 묻는 전수조사를 실시해 내년 상반기에 발표한다. 실태파악 ‘착수’에만 3년이 걸린 셈이다.

변화의 속도는 느리다. 그럼에도 용화여고의 네 사람은 ‘희망’을 말했다. 지난 3년 6개월의 여정을 마친 이들이 시민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는 이랬다. ‘변화에 동참해달라.’ 그리고 그 시작은 “용기를 낸 피해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혹시 한국사회의 다른 시민들에게 스쿨미투와 관련해 부탁하고픈 것이 있을까요.

오예진 “피해자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성폭력 당한 게 뭐가 자랑이냐’ ‘남들은 가만히 있는데 유난스럽게 군다’는 인식이 있어요. 그런데 미투 피해자들은,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리고 그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보다는 그들이 뭘 바꾸려고 하는지에 대해 귀를 기울여주셨으면 해요. 그들이 말하는 변화에 손을 모아주신다면 피해자가 조금은 덜 외롭지 않을까요.”


송윤경 기자 kyung@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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