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린 ‘전두환 군부’, 되살아난 ‘그날의 비극’읽음

김원진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향년 90세로 사망한 지난 11월 23일 서울 마포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돼 있다./박민규 선임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향년 90세로 사망한 지난 11월 23일 서울 마포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돼 있다./박민규 선임기자

독재자이자 학살자로 불린 전두환씨가 지난 11월 23일 사망했다. 향년 90세. 전씨는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로 집권했다. 이듬해 일어난 5·18민주화운동을 군대를 투입해 진압하면서 민간인 학살을 주도했다. 죽기 전까지 사과는 없었다.

1995년에는 반란수괴,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 등 혐의로 기소됐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한 판결이 확정됐다. 그해 12월 사면복권됐다. 현재 추징금 956억원이 미납 상태다.

폭력과 비리로 얼룩진 전두환씨의 삶을 사진으로 돌아봤다.

막 내린 ‘전두환 군부’, 되살아난 ‘그날의 비극’

노태우씨(왼쪽)와 전두환씨가 1996년 8월 26일 서울중앙지법 재판정에 기립해 있다. 이날 전두환씨는 사형, 노태우씨는 당시 징역형 최고형량이었던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12월 16일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전두환씨의 형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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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31일 전두환씨가 국회 5공비리 특별위원회와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연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발표문을 읽고 있다. 일방적인 변명만 늘어놓자 야당의원들이 거세게 항의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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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씨와 부인 이순자씨가 1988년 11월 23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집을 떠나 강원 설악산 백담사에 도착해 경내를 둘러보고 있다. 노태우 정부 출범 직후 전두환씨가 이끈 신군부 시절인 5공화국 비리와 5·18 진상조사 목소리가 커지면서 전두환씨가 백담사로 떠났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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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씨(왼쪽)와 전두환씨가 1987년 6월 10일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이날 노태우씨는 차기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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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1월 27일 삼청교육대 훈련으로 평생 몸속에 관을 삽입한 채 살아가야만 했던 피해자가 전두환씨 집 앞에서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삼청교육대는 전두환 신군부가 장악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든 이른바 ‘불량배 소탕계획’ 및 계엄포고령 13호를 근거로 만들어졌다. 이들은 근로봉사라는 이름으로 강제노동을 하거나 보호감호를 받아야 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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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1월 3일 “구속! 전두환 이순자 노태우 처단”이라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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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시민단체로 구성된 ‘5·18 역사 왜곡 저지 국민행동 준비위원회’ 120여명이 2013년 6월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씨 집을 항의 방문해 은닉재산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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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22일 경기도 안양교도소 앞에서 전두환 석방에 항의하는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회원들/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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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반란인 ‘12·12사태’ 이후 40년이 지난 2019년 12월 12일 광주민주화운동 단체 회원들이 전두환씨 구속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왼쪽 조형물은 전두환씨가 감옥에 갇힌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김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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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왼쪽), 김영삼(가운데) 전 대통령과 전두환씨가 2008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17대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전두환씨가 이끈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고문을 받았다.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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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씨가 1980년 9월 1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제11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전두환씨 바로 뒤에 최규하 전 대통령이 서 있다. 전두환씨는 최규하 전 대통령을 밀어내고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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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씨가 2013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전두환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를 지냈다. 청와대에 들어온 뒤 출세를 거듭해 1979년 3월 국군보안사령관에 임명됐다./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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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이회창 전 신한국당 총재,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가 전두환씨를 만나고 있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전두환씨의 집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눴다./연합뉴스, 경향신문 자료사진

막 내린 ‘전두환 군부’, 되살아난 ‘그날의 비극’

전두환씨가 2019년 3월 11일 광주지방법원에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왜 이래?”라고 말하고 있다. 전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이석우 기자

막 내린 ‘전두환 군부’, 되살아난 ‘그날의 비극’

2020년 11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 1심 선고 공판의 출석을 위해 전두환씨가 탑승했던 검은색 승용차가 밀가루와 계란으로 더럽혀졌다. 5·18민주화운동 단체 회원은 전두환씨가 이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을 받은 뒤 다른 차를 타고 광주지법을 빠져나가자 사죄를 요구하며 빈 차에 계란과 밀가루를 던졌다./우철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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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씨가 광주지법법원에 출석한 2019년 3월 11일 시민들이 법원 정문에서 피켓을 들고 전두환씨의 “전 재산은 29만원” 망언에 항의하고 있다./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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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4일 전두환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연세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있는 전두환씨의 부인 이순자씨(왼쪽)와 차남 전재용씨. 두 사람 모두 전두환씨의 비자금을 관리하거나 숨긴 혐의를 받아 사정당국의 수사를 받았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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