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가 국제분쟁 키운다

주영재 기자
11월 9일(현지시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회의장 무대 위에 시리아 난민 소녀를 상징하는 대형 인형 ‘리틀 아말’이 서 있다. AP연합뉴스

11월 9일(현지시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회의장 무대 위에 시리아 난민 소녀를 상징하는 대형 인형 ‘리틀 아말’이 서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1월 9일(현지시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6)가 열린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회의장 무대에 시리아 난민 소녀를 상징하는 높이 3.5m의 인형 ‘리틀 아말’이 올라섰다. 이 인형은 지난 7월 시리아·터키 국경을 출발해 그리스 등 유럽 여러 나라를 거쳐 종착지인 회의장에 도착했다. 약 8000㎞의 여정은 시리아 난민이 유럽에 이르는 길을 그대로 따랐다.

시리아 난민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은 내전이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독재에 대항한 민주화운동이 내전으로 비화해 10년 넘게 표류하면서 600만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 무시할 수 없는 또 다른 요인으로 기후변화가 꼽힌다. 2010년 여름 러시아를 강타한 폭염과 가뭄으로 밀 생산량이 줄자 러시아가 곡물 수출을 제한하면서 세계적으로 식량 가격이 폭등했다. 러시아 밀을 주로 수입하는 시리아에서도 밀가루 가격이 폭등하자 폭동이 일어났다. 여기에 오랜 권위주의 정부의 폭압과 ‘아랍의 봄’의 영향까지 더해지면서 반정부 봉기로 커졌고, 내전으로 이어졌다. 전쟁으로 피란길에 오른 사람들이 유럽으로 향하자 각국에서 난민 수용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극우 포퓰리즘이 부상하고, 난민 반대 여론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한 계기가 됐다.

■기후위기가 분쟁의 도화선 된다

이번 COP26에서 리틀 아말과 함께 주목받은 인물이 있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의 사이먼 코페 외교장관이다. 그는 허벅지까지 차오른 바닷물 속에서 COP26 화상연설을 녹화했다. 수몰 위기에 처한 자국의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서다. 인구 1만2000명의 투발루는 해수면 상승으로 9개 섬 중 2개 섬이 물에 잠겼고, 나머지 섬도 같은 위험에 처해 있다. 투발루의 해발고도는 2m 정도인데 매년 0.5㎝씩 물이 차오른다.

투발루의 사이먼 코페 외교장관이 11월 초 허벅지까지 닿는 바닷물에 들어가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6) 화상 연설을 녹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투발루의 사이먼 코페 외교장관이 11월 초 허벅지까지 닿는 바닷물에 들어가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6) 화상 연설을 녹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코페 장관은 “바닷물이 항상 차오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말뿐인 약속만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며 “‘기후 이동성’(climate mobility)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국가 주민들의 이주 권리가 기후 정의 차원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우리는 영토가 물에 잠겨 국민을 이주시켜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해양수역의 소유권과 국제법상 국가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법적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셜군도, 키리바시, 몰디브 등 다른 태평양의 섬나라들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기후변화를 일으킨 책임은 부유한 나라들에게 있지만, 피해는 대응할 수 있는 자원과 능력이 부족한 약소국이 입고 있다. 태평양의 섬나라들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0.03%만 차지하고, 아프리카 대륙에 속한 54개국은 전 세계 배출량의 4% 미만을 배출한다. 개발도상국들은 방파제를 세우거나 간척사업을 벌일 돈도, 기술도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국이 책임을 더 져야 한다는 요구는 COP26에서 강하게 나왔다.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를 보상하는 문제가 처음으로 의제에 올랐지만 미국과 유럽연합, 호주 등 선진국의 반발로 손실·피해 기금 설립은 무산됐다. 대신 빈곤국의 기후변화 대응 지원을 위해 2019년 200억달러(약 23조6000억원) 수준이던 기후변화 적응기금을 2025년까지 최소 두 배로 늘리겠다고 합의했다.

현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2100년 무렵 해수면은 1.1m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가 밀집한 해안가의 대도시와 농업이 이뤄지는 저지대가 바닷물에 잠기게 된다. 지난 30년간 해수면 상승의 영향을 받게 될 인구는 1억6000만명에서 2억6000만명으로 증가했고, 그중 90%가 빈곤국과 작은 섬나라 주민들이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해수면 상승으로 2050년 국토의 17%가 침수돼 2000만명이 집을 떠나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례 없는 규모의 가뭄과 폭염, 홍수 등으로 재정적 여력이 없는 빈곤국 주민들은 이미 고통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두 차례의 초대형 허리케인이 지나간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 중남미 국가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국경을 넘어 멕시코와 미국으로 향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충격을 국내에서 해결하지 못할 경우 국경을 넘는 기후난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은 지난 4월 2010년 이후 2150만명이 기후변화와 관련된 재난으로 실향민이 됐다고 발표했다. 미래 전망은 더 어둡다. 호주 싱크탱크 IEP는 2050년까지 기후변화로 최소 12억명이 실향민이 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식량생산 부족해질 때 진짜 재앙

기후변화와 재난의 악영향은 식량 불안정과 함께 기근, 주거 가능한 토지와 식수의 부족을 불러온다. 이는 기존에 존재하던 차별을 심화시키거나, 새로운 위험을 불러온다.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외국인 혐오, 정치·종교적 긴장 등의 요소와 결합하면 폭력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특임교수(전 국립기상과학원장)는 “러시아 가뭄이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시리아에서 내전의 원인이 됐고, 시간상으로 멀리 떨어진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에 난민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면서 “수억명의 사람이 살겠다고 남의 나라로 국경을 넘는 상황이 되면 결국 이 세상이 아수라장이 된다고 봐야 한다”고 우려했다.

기후변화가 식량생산에 일으킬 문제는 더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저지대가 침수되고, 아시아의 주요 강에 물을 공급하는 히말라야산맥의 빙하가 사라지면 식량생산에 타격을 줄 수 있다. 현재 곡물의 수요와 공급은 대체로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기후위기로 농업 생산이 감소할 경우 위기는 불가피하다.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협의체(IPCC)는 기후위기로 작물 수확량이 이번 세기에 10년마다 2%씩 감소하는 반면, 식량 수요는 2050년까지 10년마다 14%씩 늘어나 식량안보를 위협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기온이 1.5도 상승하면 식량 생산 변화로 고통을 받게 될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3500만명, 2도 상승하면 3억6200만명, 3도 상승하면 18억17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식량 자급률이 떨어지는 한국도 타격을 크게 받을 수 있다. 조천호 교수는 “2050년 100억명으로 인구가 20억명이 늘고, 중국과 베트남 등 개도국의 증가한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현재보다 60~70% 곡물생산이 늘어야 한다”면서 “현재의 균형상태에서 수요 공급이 불일치한 상태로 진입할 경우 한국이 그때도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가 국제분쟁 키운다

기후위기가 분쟁으로 악화하지 않으려면 피해를 입는 이들을 돕고, 도움으로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될 경우 새로운 보금자리로의 이주와 정착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조천호 교수는 기후난민이 생기는 건 결국 이 세상이 정의롭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인간의 탐욕이 기후변화로 나타나 세상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식량생산이 넘쳐나는 세상에서도 굶어죽는 사람이 생기는데 진짜 식량생산이 부족해지면 지옥이 될 것”이라면서도 “기후위기 속에서도 연대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난민, 법적 보호 첫발 떼나

기후변화로 인한 실향민이 모두 난민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기후난민이라는 말도 아직 국제법상 ‘난민’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국제법에 따른 난민의 정의는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의견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충분한 위험이 있어 자신의 나라를 떠나 국경을 넘은 사람이나 분쟁 혹은 일반화된 폭력사태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협약상의 정의를 떠나 기후변화가 인간의 생명과 자유 등 기본권을 위협할 경우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주목받는 사례로 ‘테이티오타 대 뉴질랜드’ 사건을 들 수 있다. 해수면 상승의 피해를 입은 키리바시의 테이티오타라는 이름의 남성이 뉴질랜드 정부에 ‘기후난민’으로 난민 지위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하고, 2015년 키리바시로 추방당했다. 그는 자신의 생명권이 침해됐다면서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UNHRC)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UNHCR은 지난해 1월 이 남성의 난민 지위 신청을 ‘임박한 위험에 처해 있지 않다’는 이유로 배척하면서도 기후변화와 자연재해를 피해온 사람이 본질적인 인권을 위협받을 경우 출신국가로 송환돼선 안 된다고 결정했다.

이번 결정을 두고 유엔난민기구는 “기후변화가 인간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고, 이에 따라 각 국가에 ‘강제송환금지의 원칙’ 의무를 환기시키고 있다”면서 “전 세계 실향민들에게 더 나은 보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진일보”라고 평가했다. 유엔난민기구는 기후변화로 국제적 보호를 구하는 사람이 난민으로 인정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유엔난민기구는 “기후변화 및 재난은 폭력사태, 분쟁, 혹은 박해와 결합해 실향 사태를 야기할 수 있으며, 기존에 존재하고 있던 박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면서 “기후변화 및 재난으로 인해 난민을 신청하는 사람은 1951년 난민협약에서 말하는 ‘박해를 받을 충분한 위험’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제법상의 강제송환금지 원칙과 생존권 측면에서도 이들을 보호할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난민 신청이 갑작스럽게 발생한 상황으로 이루어졌든지, 서서히 발생한 기후변화 및 재난으로 이루어졌든지, 각 국가는 이들이 공정하고 효율적인 난민신청절차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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