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불임금 어떻게 받죠?…이리저리 치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박채영 기자
체불임금 어떻게 받죠?…이리저리 치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태국 국적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A씨(44)와 B씨(44)는 2016년 11월부터 2019년 4월까지 경기도의 한 플라스틱 재활용품 공장에서 일했다. 그러나 공장 대표 C씨는 두 사람에게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주고 연차수당도 지급하지 않았다. A씨와 B씨는 각각 1800만원과 2600만원의 임금·연차수당·퇴직금 등을 받지 못했다며 C씨를 고용노동부 경기고용노동지청에 고소했다.

문제는 조사 과정에서 발생했다. A씨 부부는 노동청 조사를 받을 때 C씨와 마주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체불임금 조사 과정에서 사업주가 앙심을 품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경찰에 신고해 체포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거나 본국으로 추방되면 체불임금을 허공에 날려야 한다.

그러나 노동청 근로감독관은 A씨 부부에게 C씨와의 대질조사를 제안했다. C씨가 근로계약서와 임금대장을 쓰지 않아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A씨 부부는 “한계가 있어도 분리조사를 하겠다”고 했고, 근로감독관은 이를 수용해 A씨 부부에게 지난달 12일 노동청에 출석하라고 했다.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는 ‘감독관은 신고인이 분리조사를 요청하는 경우 당사자를 서로 다른 시간에 출석하도록 해서 분리해 조사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조사 당일 A씨 부부는 노동청 사무실 복도에는 C씨와 마주쳤다. 통역인이 “분리조사를 해달라고 했는데 저 사람이 왜 와 있냐”고 항의하자 근로감독관은 “조사는 따로 할 것”이라고 대꾸했다. 또다른 근로감독관은 “지금 나가면 사건을 종결할 것”이라고 했지만 A씨 부부는 C씨에게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걱정에 자리를 피했다. 노동청은 A씨 부부 일행이 떠난 후 통역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조사 시간을 다르게 했는데 C씨가 일찍 왔다. 조사 날짜를 다시 잡자”고 했다.

A씨 부부 측은 국민신문고에 근로감독관 교체와 징계를 요구하는 민원을 제출했다. 노동청은 지난달 30일 “고소인 측에서 피고소인과 분리해 조사 받기를 원해 각각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피고소인이 임의로 갑작스럽게 방문해 고소인과 대면하는 상황이 발행했다. 죄송한 말씀을 전한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A씨 부부의 감독관 교체 요구에는 “교체해야 하는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했다”고 선을 그었다.

A씨 부부를 대리하는 장혜진 노무사는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법을 위반한 것은 사용자인데, 노동청에서는 ‘양쪽 의견이 갈린다’면서 의무가 아닌데도 처음부터 대질조사를 시키는 일이 빈번하다. 이주노동자는 체불임금을 받으려다가 출입국사무소에 잡혀갈까봐 노동청에 신고도 못한다”고 말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은 공무원이 직무 수행 중 미등록 외국인을 발견하면 출입국사무소에 알리도록 돼 있다.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은 미등록 외국인이 폭행과 성범죄 등 범죄피해나 인권침해 상황에 처해 피해구제가 필요한 경우를 통보의무 예외 사례로 두고 있는데 여기에 임금체불 등 근로기준법 위반 피해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주민센터 친구’의 센터장인 조영관 변호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임금체불 과정에서 잡혀갈 수도 있다는 걱정에 신고를 꺼리고, 사업주는 이를 악용한다”면서 “임금체불을 신고한 외국인에 대해서는 체류 단속 과정에서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Today`s HOT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사해 근처 사막에 있는 탄도미사일 잔해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구의 날 맞아 쓰레기 줍는 봉사자들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한국에 1-0으로 패한 일본 폭우 내린 중국 광둥성 교내에 시위 텐트 친 컬럼비아대학 학생들 황폐해진 칸 유니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