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사각지대 외국인 가정…이주여성 남편에 체류자격 종속

조해람 기자
한 시민이 서울 이태원 한국 이슬람교 중앙성원 인근 무슬림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강윤중 기자

한 시민이 서울 이태원 한국 이슬람교 중앙성원 인근 무슬림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강윤중 기자

2019년 어느 날, 고려인 A씨의 고려인 남편 B씨가 행방불명됐다. A씨가 아무리 수소문해도 찾을 수 없었고 연락도 닿지 않았다. B씨의 배우자 자격(방문동거비자·F1)으로 체류 중이던 A씨에게 B씨의 증발은 ‘남편의 부재’ 이상이었다. B씨가 사라지면 신원보증을 해줄 사람이 없어 한국에 머무는 것이 불가능했다. 학교를 다니는 자녀가 있었다면 체류기간을 연장할 수 있겠지만 자녀는 미취학 상태였다. A씨를 상담한 시설 관계자는 “도저히 방법이 없어 출국 안내를 해줬다”며 “배우자와 혼인관계가 끝나도 체류와 취업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과 결혼해 국내에서 거주하는 이민자가 배우자의 비자에 체류자격이 종속돼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체류 자격을 잃을까봐 가정폭력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한 쪽이 사망하거나 혼인관계가 끝날 경우 어쩔 수 없이 출국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남서울이주여성상담소가 2일 ‘국내 외국인 간 가정폭력 피해 이주 여성들은 지금’이라는 주제로 연 온라인 집담회에서 소개된 내용이다.

한국인과 결혼한 이민자의 경우 출입국관리법과 국적법 등에 어느 정도 보호 대책이 마련돼 있다. 이들은 가정폭력을 이유로 수사나 재판 또는 구제절차가 진행 중일 때는 절차가 종료될 때까지 체류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배우자의 사망이나 실종 등으로 혼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경우나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경우에도 귀화 허가를 받는 게 가능하다.

가정폭력 사각지대 외국인 가정…이주여성 남편에 체류자격 종속

하지만 외국인과 결혼해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은 보호장치가 없다.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부부는 대개 한 쪽이 재외동포(F4) 또는 방문취업자(H2)의 자격으로 들어온다. 배우자는 방문동거(F1)나 동반(F3) 비자로 입국한다. 이 비자들은 매우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취업이 불가능하고 영주자격 신청도 할 수 없다. 또 매년 배우자의 신원보증이 필요해 배우자가 사망하거나 혼인관계가 끝난 경우 출국할 수밖에 없다. 소라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부센터장은 “한국은 가족동반을 허용하지 않아 결혼이민자가 아닌 (외국인) 배우자의 체류자격은 배우자에게 종속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종속적인 체류자격 때문에 방문동거 중인 배우자들이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려인 지원단체인 사단법인 너머의 김영숙 사무처장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대처할 수 없게 하거나 무력하게 만든다”며 “체류자격 때문에 남편의 정서학대를 견디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담소에서 결혼이민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한국보다 촘촘한 보호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캐나다는 이민 담당자가 가정폭력 여부를 판단해 최소 6개월의 임시거주 비자를 발급하고 노동 허가와 인도주의적 이민 신청 기회를 준다. 미국은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를 추방 우선 대상자에서 제외하는 연방법이 있고, 가정 내 주체류자의 신분에 관계없이 피해자가 신청할 수 있는 비자도 두고 있다.

이안지영 캐나다 톰슨리버스대 사회학과 교수는 “폭력 피해자의 권리는 법적 지위와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보장받아야 한다”며 “폭력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법적 지위뿐 아니라 일할 권리와 자녀의 아동으로서의 권리가 최우선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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