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장애인의 지역사회 생존기…‘탈시설’ 이후 3년 <희망의 기록>

민서영 기자
다큐멘터리 <그저 함께 살아간다는 것 - 희망의 기록>의 한 장면. 대구시립희망원에서 탈시설한 중증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민아영 감독 제공

다큐멘터리 <그저 함께 살아간다는 것 - 희망의 기록>의 한 장면. 대구시립희망원에서 탈시설한 중증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민아영 감독 제공

“이거 들고 ‘여기로 주세요’(라고 말하면 돼요)” 휠체어에 타고 있는 영희씨(가명)의 손목을 한 비장애인이 잡는다. 발달장애인인 영희씨가 직접 카드로 결제해 물건을 사게 돕는 것이다. 다른 비장애인은 영희씨가 천천히 카드를 줄 때까지 기다린다. “돈은 주기 싫나보다. 하하.” 기다리며 던진 농담에 분위기가 활짝 펴진다. 영희씨의 느릿느릿한 행동을 기다려주는 이 곳은 피자치즈와 새싹채소를 파는 한 마트이다. 영희씨가 직접 장 볼 것을 고르고 계산을 하기까지 활동지원사와 코디네이터, 마트 직원이 돕는다.

지난달 24일 국회 상영회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그저 함께 살아간다는 것 - 희망의 기록>(연출 민아영)은 중증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대구시립희망원(희망원) 산하 장애인 시설에서 평생을 살다 3년 전 지역사회로 나온 9명이 주인공이다.

2016년 희망원의 인권 유린과 운영비리가 드러나자 시민단체들은 폐쇄를 요구했고, 2018년 11월 이 시설은 폐쇄됐다. 시설에 수용돼있던 중증 발달장애인들의 거취가 논란이 됐다. 대구시는 이들을 다른 시설로 전원 조치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구의 장애인 단체들이 농성을 벌이며 반대해 ‘희망원 자립생활시범사업’이 시작됐다.

■‘무연고 최중증’ 장애인의 탈시설…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사람들

중증 장애인도 시설에서 나와 살 수 있을까. ‘무연고 최중증 장애인의 최초 탈시설’을 표방한 시범사업에 뛰어든 활동가들도 이 고민을 했다. 지난달 30일 기자와 만난 민아영 감독은 “옆에서 지켜보고 기록한 사람의 입장에서 누구도 이 사회에서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게 제일 힘들었다”고 했다. 장애인 야학 교사로 장애인 운동을 시작한 민 감독은 지난 3년간 중증 장애인 9명의 탈시설한 삶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2018년 대구시립희망원 산하 장애인거주시설 폐쇄 후 3년동안의 탈시설 과정을 영상으로 담은 민아영 다큐멘터리 감독 ./우철훈 선임기자

2018년 대구시립희망원 산하 장애인거주시설 폐쇄 후 3년동안의 탈시설 과정을 영상으로 담은 민아영 다큐멘터리 감독 ./우철훈 선임기자

이들이 언제, 어떻게 희망원에 들어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기록이 없다. 형제복지원의 경우처럼 1970·80년대에 강제로 수용됐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활동가들은 시설에서 40~50년을 살아온 이들을 ‘영희님’ ‘혜진님’ ‘진태님’이라고 불렀다. 언어로 의사소통이 힘든 이들을 위해 그림카드를 만들고 보조 의사소통 기구를 이용해 취향을 확인했다. 시장과 식당, 문방구 등에서 이들의 좋고 싫음은 더 분명히 드러났다. 진태씨(가명)는 ‘빨간 통’을 좋아하고 혜진씨(가명)는 ‘소리나는 것’을 좋아한다.

탈시설에서 시급한 문제는 건강이었다. 시설에서 복용한 약물은 ‘한 번에 끊으면 쇼크가 올 수도 있는’ 강도가 매우 높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활동가들은 약물을 조금씩 줄이며 신체적·정신적 반응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지역사회에서 사는 게 장애인들에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네!”

민 감독을 비롯한 활동가들이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지역사회에서 사는 게 장애인들에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하냐’는 것이었다. 활동가들이 3년 전 9명의 장애인을 처음 마주했을 때도 같은 고민을 했다. 민 감독은 “지역 사회가 이 사람들에게 너무 위험하지는 않을까,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았던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시설에서 나온 9명의 장애인은 대구시의 ‘자립생활주택’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대형 시설에 수용됐던 이들이 이젠 2명씩 한 집에, 각자 자기 방과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자립생활주택에서 장애인 9명 중 8명은 하루 24시간 일대일 활동 지원을 받는다. 활동 지원사, 주택 코디네이터와 함께 시장에 가 그날 먹을 메뉴를 고르기도 한다. 소리와 촉감을 좋아하는 혜진씨는 장애인 야학에서 난타를 배운다. 드라이브를 즐기는 진태씨는 종종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외출을 한다.

장밋빛 일상만 있는 건 아니다. ‘너무 시끄럽다’ ‘왜 굳이 여기서 살아야 하냐’는 이웃들의 민원이 자립생활주택 문 앞에 붙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활동가들은 직접 이웃에게 찾아가 장애인 입주자의 특성을 설명하고 바닥 매트 등 소음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한다. 이 때 비장애인 입주민과 장애인 입주민은 처음으로 서로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한다. 살면서 여러 번 마주치기 쉽지 않은 장애인이 ‘위층에 사는 이웃’이 되는 순간이다.

다큐멘터리 <그저 함께 살아간다는 것 - 희망의 기록>의 한 장면. 대구시립희망원에서 탈시설한 중증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민아영 감독 제공

다큐멘터리 <그저 함께 살아간다는 것 - 희망의 기록>의 한 장면. 대구시립희망원에서 탈시설한 중증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민아영 감독 제공

■계속 함께 살아갈 수 있으려면…“지역사회 자원 마련하고 탈시설 지원법 제정해야”

지난 3년은 ‘중증 장애인도 시설에서 나와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남은 질문은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이다. 민 감독은 “지역사회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너무 없다”며 “장애인 야학 정도가 다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뭔가를 같이 할 수 있는 접점이 있는 공간이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자립생활주택이 없는 지역도 있다. 어떤 지자체는 지원 인력의 인건비를 지원하지 않는다.

지자체와 민간 센터가 아무리 노력해도 국가 차원의 근거가 마련되지 않으면 ‘탈시설’은 어렵다. 장애인 단체들은 십수년 전부터 탈시설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탈시설 지원법’ 제정을 촉구해왔다. 지난해 12월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의당 장혜영 의원 등과 함께 발의한 탈시설 지원법은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민 감독은 3년 간 ‘나는 어떤 지원도 없이 살았나?’ ‘나는 혼자 오롯이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다고 한다. 답은 ‘NO’였다. 중증 장애인도 나와 살 수 있는 사회란 누구라도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이다. 민 감독은 “이 분들이 존엄하고 안전하게 자신의 일상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누구든 겪는 다른 사회 문제에서도 같이 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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