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목소리’마저 표로 읽는 정치권

민서영 기자
배인규 신남성연대 대표와 유튜버 ‘시둥이’ 등이 이수정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고 있다.  신남성연대 유튜브 캡처

배인규 신남성연대 대표와 유튜버 ‘시둥이’ 등이 이수정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고 있다. 신남성연대 유튜브 캡처

이수정 선대위원장 퇴진 요구
여가부 홍보 연예인 조롱 등
여성 혐오 일삼는 단체 두고
정치권 ‘청년 표심’으로 수용

효능감 경험은 또 혐오 낳아
“페미 대 안티페미 싸움 아닌
일부 돈벌이 유튜버들 폭력”

안티페미니즘 세력이 대선 정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이 ‘표’를 무기로 여론을 압박하면 ‘20대 남성’의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권이 여기에 호응하거나 손을 드는 식이다. 한국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힘겹게 쌓아온 성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무분별한 ‘표의 논리’에 휩쓸려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들의 여성혐오적 인식이나 표현이 마치 20대 남성의 전체 여론과 정서를 대표하는 것처럼 과대 포장돼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안티페미니즘 세력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 온라인상에서 주로 활동했다. 그러던 이들이 최근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자 거리로 나섰다. 요구하는 것도 ‘남녀 역차별 해소’와 같은 추상적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특정 사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관철시키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수정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성혐오성 유튜브 채널 ‘시둥이’의 송시인씨와 그의 남편인 배인규 신남성연대 대표는 지난 4일 청년 100여명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변질된 페미니즘을 옹호하며 정치권을 물들이려 하는 이 교수의 해임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는 내용이다.

국민의힘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집회가 시작된 지 10여분 만에 유상범 의원과 서일준 의원 등 당직자들이 당사 밖으로 나와 이들을 만났다. 유 의원은 이들에게 “국민의힘이 20~30대 청년의 목소리를 무시한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죄송하다. 정권을 잡는다면 여러분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당이라는 점을 인식해주길 바란다”는 취지로 말했다.

신남성연대는 지난달 13일에도 서울지하철 신촌역 인근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집회에서 가수 전효성씨가 여가부 홍보 영상에 출연해 “데이트폭력은 가해자의 잘못”이라고 했다는 이유로 전씨의 노출 사진을 높이 띄워 조롱했다. 구독자가 41만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 ‘신 남성연대’는 이 같은 안티페미니즘 집회를 매번 촬영해 유튜브에 올린다. 페미니스트 교수의 학교 앞으로 가 마이크를 들고 성적 모욕을 가하고, 그 장면을 다시 유튜브에 올리는 식이다.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현상은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의 싸움이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인에 대한 폭력을 자행하면서 돈을 버는 이들이 어떻게 혐오를 기반으로 거대한 수익을 얻는가’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현장에서 보면 이들은 (집회를 하는 여성단체를 향해) 심한 욕설을 하거나 개인에 대한 공공연한 모욕을 하고, 몇몇 여성단체 활동가들은 유튜브에 얼굴이 드러나고 신상이 공개돼 피해를 입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여성혐오적 언사에 정치권이 응답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정치권의 호응이 이들에게 ‘효능감’을 주고 세력 과시를 돕는다는 것이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GS편의점 집게손가락’ 사태 등 안티페미니즘의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정치인들이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이들을 더 압박하면 자신들의 욕구가 관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긴 것”이라면서 “그런 자신들의 세력과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기 위해 외부에서 그런 퍼포먼스들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2030 청년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과대대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 대표는 “이수정 교수라는 합리적인 여성 정책가조차 페미니스트라고 공격하는 집단에게 (국민의힘이) 청년이라는 기호를 부여했다”고 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언론에서 이들을 과대하게 조명해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권 대표도 “그들이 내는 성명이나 행동을 언론이 계속 홍보하고 정치인들이 그걸 수용해 그들의 목소리가 과대대표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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