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같았던 요양병원…지역 돌봄 받으니 여기가 천국”

이창준·김향미 기자

돌봄받는 사람도 ‘인권’이 있다

광주 광산구 우산동의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김경순씨(가명·69)가 대화 중 웃음을 짓고 있다. 김씨는 지난 1월부터 요양병원에서 퇴거해 광산구 지역사회 통합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다. 이창준 기자

광주 광산구 우산동의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김경순씨(가명·69)가 대화 중 웃음을 짓고 있다. 김씨는 지난 1월부터 요양병원에서 퇴거해 광산구 지역사회 통합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다. 이창준 기자

주치의 오고, 건강센터는 맞춤 케어
몸·마음 치유되니 ‘사는 것 같아’

요양병원·시설에 있는 노인들
“가족들이 돌봐줄 여력이 안 돼서”
60%가 비자발적으로 입소

김경순씨(69·가명)는 8년 전 어느 날 아침 몸을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고관절 탈구였다. 서울에 살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아들이 있는 광주로 온 지 8개월 만에 일이 터졌다. 그 길로 요양병원 생활이 시작됐다. 김씨는 “처음에 치매환자가 많은 요양병원에 갔고 병원생활이 힘들어서 엄청 울기도 했는데 한 1~2년 지내니 적응이 됐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의 요양생활은 점점 길어졌다. 나가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돌아갈 집이 없다는 현실에 힘들어졌다. 환자 여러 명이 지내는 공동병실에서 생활하다보니 소음이 심해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듣지 않으면 잠들 수 없는 밤이 지속됐다. 나가고 싶었다. 만 65세부터 기초연금이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퇴원 여부를 알아보려 해도 요양병원에서 “여기 더 계셔야 한다”고 만류했다. 김씨는 “그래도 ‘카’(보행 보조기)만 있으면 걸을 수 있으니까, 걷는 것만 불편했지 정신이 또렷하고 다른 데 괜찮으니까, 요양병원이 꼭 감옥 같았다”고 했다.

■요양병원을 나오자

지난달 30일 광주 광산구 우산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김씨는 올 1월 요양병원에서 나와 이곳,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케어안심주택’에 들어왔다고 했다. 집 안 문턱을 낮추고 미닫이문을 트고 넓히는 등 거동이 불편한 입주자가 생활할 수 있도록 LH가 리모델링한 곳이다. 김씨는 지난해 6월 광산구청 소속 의료급여 관리사와 만난 후 생활비·거처 등 ‘밖에서 살 준비’를 한 후 퇴원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이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요양병원에선 환자 수에 따라 건강보험에서 급여를 받기 때문에 환자의 이탈을 꺼렸다.

“제발 나가게 해달라고 했죠. 요양병원에서는 ‘엄마는 여기서 링거 맞고 누워 있어야 해’ 하면서 의료급여관리사를 못 만나게 해요. 문 앞에서 몰래 만나서 이렇게 나오게 됐는데, 나와보니까 여기가 천국이에요.”

지난해 여름 수급자로 선정된 김씨는 현재 기초연금과 생계급여를 포함해 한 달에 약 54만원을 받고 있다. 김씨는 혼자 살기에는 충분한 금액이라고 말했다. 걷기는 여전히 불편하고 보호자인 아들과 연락은 뜸해졌지만 김씨는 더 이상 일상이 두렵지 않다. 어려움이 생기면 언제든 도움을 청할 곳이 있어, 주변 사회와 ‘연결돼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매주 한 번씩 동네의원의 주치의가 집에 방문해 김씨의 건강을 살피고, 방문하지 못할 때는 ‘마을건강센터’에서 전화로 김씨의 건강을 체크한다. 매주 한 번씩 구청으로부터 도시락과 반찬 지원을 받고 있고, 요양병원 입원 당시 연을 맺은 요양보호사와도 꾸준히 연락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 건강관리 서비스를 지원하는 ‘건강매니저’에게 물리치료를 받던 것은 6개월 전 김씨가 “이제는 더 안 좋은 환자들 봐주라”며 고사하기까지 했다. 김씨는 “이제 잘 때 귀에 이어폰을 꽂지 않아도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에 빠져든다”며 “나와서 사니까 사는 것 같다”고 했다.

만성질환이나 장애가 있어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다수가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요양원)을 찾게 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양로원·요양원, 재가노인복지시설, 노인보호전문기관 등 전체 노인복지시설은 2020년 8만2544개, 입소 정원은 29만7167명에 달한다. 가족이 없는 경우가 있고, 가족이 간병에만 매달리다가는 생계·일상 유지가 어렵게 된다. 건강 상태가 비교적 양호해도 혼자 필수적 의료·복지서비스를 이용하는 데는 이동이나 정보 취득 등에 한계가 있다. 간병비를 포함한 요양병원비는 한 달에 100만원을 웃돌고, 요양시설도 수십만원대를 오간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의료급여 대상자에 선정되더라도 수급자가 요양병원 등에 입원하면 과잉치료를 받으며 의료기관 배만 불려주는 경우가 많다.

■돌봄받는 이의 인권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요양병원 노인인권 보호를 위한 인권교육에 관한 사항을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에 포함할 것을 복지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요양병원은 1560개에 달하고, 노인인권 모니터링 결과 환자 대상 신체 억제대 사용, 낙상·욕창 등 안전사고 발생, 입·퇴소 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나 알권리 제한, 종교의 자유 등에서의 인권침해 등이 광범위하게 조사됐다. ‘국민인권의식조사’(인권위, 2016년)에 따르면 교사·공무원·사회복지사의 80%가 인권교육을 받았다고 응답했지만 의료인은 38.9%만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환자 인권을 보호하는 법정 장치를 마련하라는 취지의 권고였다.

의료기관인 요양병원과 다른 노인생활시설에서도 학대 사례가 늘고 있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노인의료·복지시설 학대 발생 건수는 2016년 238건, 2017년 327건, 2018년 380건, 2019년 486건 등으로 매년 늘었다.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의 ‘노인권리기반 장기요양서비스 제도 개선방안 연구’(2018년)를 보면 노인의료복지시설 거주 800명 대상 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60%가 본인 의사에 반해 노인의료복지시설에 입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는 ‘가족들이 나를 돌볼 수 있는 여력이 없어서’(59.4%)가 가장 많았다.

요양병원·시설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복지부의 ‘2020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를 보면 2020년 한 해 노인학대가 인정된 사례는 6259건으로 전년(5243건) 대비 19.4% 늘었다. 학대가 발생한 장소는 가정 내가 5505건(88%)으로 가장 많고, 노인요양시설 등 생활시설 521건(8.3%), 노인복지관·경로당 이용시설 92건(1.5%), 기타 65건(1.0%), 공공장소 39건(0.6%), 요양병원을 포함한 병원 37건(0.6%) 순이었다. 학대 노인 10명 중 8명은 하나 이상의 질병을 앓고 있었고, 10명 중 1명은 하나 이상의 장애가 있었다.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는 해당 연구에서 “무조건적으로 좋은 시설, 최고의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보다는 개인의 익숙함과 편안함을 유지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노인의 인권 관점에서도 중요할 수 있다. 또한 이는 국내 노인복지법 개정의 주요 내용인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와도 궤를 같이하며 새로운 노인 돌봄의 형태로써 재가서비스의 확대가 그 대안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국내 장기요양 현실은 커뮤니티 케어가 단기간에 자리 잡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설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광주 광산구의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박대수씨(가명·49, 오른쪽)가 하반신 재활을 위한 통합돌봄 서비스 일환으로 매주 진행하는 작업치료를 받고 있다. 이창준 기자

광주 광산구의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박대수씨(가명·49, 오른쪽)가 하반신 재활을 위한 통합돌봄 서비스 일환으로 매주 진행하는 작업치료를 받고 있다. 이창준 기자

만성질환자·장애인 대상으로 한
광주 광산구의 ‘커뮤니티 케어’
맞춤형 주거·음식 지원과 함께
통합돌봄 성공적 운영 큰 역할

■내 집에서 돌봄받는 ‘커뮤니티 케어’

최근 중앙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커뮤니티 케어’ 제도를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입원 요인이 있는 중증환자가 아닌 만성질환자나 장애인들은 지역사회에서 일상을 누리면서 의료·복지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광산구는 기존 복지사업 외 마을형 통합돌봄사업 예산 1억원 등 1년에 2억원의 예산으로 우산동의 취약계층 200명에게 통합돌봄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금액만 놓고 보면 대상자 욕구에 맞는 충분한 돌봄을 제공하기 부족한 예산이지만, 주변 지역사회의 민간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오히려 지속 가능한 돌봄 공급체계를 만들 수 있었다.

광산구는 먼저 2019년 여름, 구청 공무원 146명이 3개월 동안 취약계층 3075가구를 전수조사해 대상자의 욕구를 직접 파악하며 통합돌봄의 토대를 마련했다. 구는 이를 바탕으로 LH와는 케어안심주택 리모델링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해 대상자들에게 맞춤형 주거를 지원했고, 농수산식품유통공사로부터는 남는 식자재 등을 지원받아 대상자별 맞춤 건강식(저염식 등) 도시락·반찬을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 ‘찾아가는 의료서비스’가 가능해진 것이 통합돌봄을 성공적으로 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광산구는 주민·시민단체·공직자 등이 참여한 광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조합원 820명)을 지난 8월 설립했다. 조합은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섭외해 통합돌봄 전담 1차 의료기관인 ‘우리동네의원’을 만들었고, 임대아파트 상가에 아파트 주민의 건강관리반 역할을 하는 마을건강센터도 설치했다. 의원은 오전에만 외래진료를 보고 오후에는 원장이 직접 ‘장애인 주치의’로서 돌봄 대상자 왕진을 다닌다. 마을건강센터에서는 간호사 출신 센터장과 케어매니저 등 3명이 돌봄 대상의 건강 전반을 관리하며, 10명의 간호조무사 출신 건강도우미는 물리치료 기계나 당뇨·혈압 체크기기 등을 가지고 다니며 대상에 맞는 서비스를 해준다.

박대수씨(49·가명)도 이 통합돌봄 대상자다. 박씨는 2014년 아파트 난간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전동휠체어가 없으면 거동을 할 수 없다. 4년 동안 자신을 간병하느라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본 박씨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가족들과 인연을 끊은 채 2018년 홀로 우산동 임대아파트로 들어왔다.

커뮤니티 케어가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전까지 박씨의 홀로서기는 녹록지 않았다. 주 2회 가사·간병 돌봄활동가가 집에 방문해 집안일을 돕는 것이 전부였다. 거동이 불편해 누워만 지내다보니 지난겨울 둔부에 욕창이 생겼고, 꼬리뼈가 다 보일 정도까지 상태가 심해졌다. 병원에 입원한 박씨는 비급여 의료비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한 달을 버티지 못한 채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집에 돌아왔다.

박씨가 건강을 되찾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 장애인 주치의가 박씨의 집을 직접 방문하면서부터다. 주치의가 매주 1회 박씨의 집을 방문해 건강 상태를 살핀 결과 3개월 만에 상처에 살이 전부 차올랐다. 의원에 소속된 작업치료사도 통합돌봄의 일환으로 주 1회 30분씩 박씨의 재활을 돕고 있다. 3개월가량 꾸준히 작업치료를 받은 결과 박씨는 두 다리를 혼자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광산구는 올해 동 단위로 시행한 통합돌봄서비스의 범위를 점차 늘려갈 계획이다. 현재 우산동에만 시범적으로 하고 있는 사업을 권역으로 넓혀 도시권역과 농촌권역을 분리해 각각 서비스를 확대 적용하는 식이다. 사업을 추진해온 이지영 광산구 복지팀장은 이처럼 지역사회 내에서 형성된 자체적인 돌봄 체계는 결국 ‘존엄한 죽음’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어르신들도 사실 요양병원에 가기 싫어하세요. 버림받는 것처럼 느끼시니까요. 내 집이 편하고 가족들이 보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가족을 만날 수도 없이 병원에서 그저 누워 있다 돌아가신다면 그게 얼마나 행복하지 않은 죽음인가요.”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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