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부샤 교수 “협동조합, 경제위기에 강하다”

김서영 기자
12월 3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 참가를 위해 방한한 마리 부샤 교수를 만났다. 이상윤 성공회대 교수가 통역을 맡았다. / 이준헌 기자

12월 3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 참가를 위해 방한한 마리 부샤 교수를 만났다. 이상윤 성공회대 교수가 통역을 맡았다. / 이준헌 기자

금전적 영리를 넘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이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진다면 어떨까.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사회적경제는 ‘구성원 간 협력·자조를 바탕으로 재화·용역의 생산 및 판매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민간의 모든 경제적 활동’(한국사회적경제진흥원)을 의미한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을 100대 국정과제로 내세웠지만, 관련 법안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최근 한국에서 열린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4년 만에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경제 기업이 2만개에서 3만1000개로 증가했다”며 “한국은 농번기에 서로 일손을 덜어주던 두레·품앗이 같은 협동을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해 온 전통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회 참석을 위해 한국에 방문한 마리 J. 부샤 교수를 지난 12월 3일 만났다. 그는 캐나다 퀘벡대학 몬트리올 캠퍼스 교수로, 사회적경제 분야를 통계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연구해왔다. 사회적경제를 통계로 측정하고 평가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을 담은 연구서 <사회적경제의 힘: 통계 방법론과 해외 사례들>(공저)도 한국에 번역 출간됐다. 퀘벡은 사회적경제가 가장 발전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한국의 사회적경제, 협동조합 활동가나 연구자들의 단골 견학지역이기도 하다. 그에게 사회적경제 통계의 의의와 필요성과 더불어 사회적경제가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힘에 관해 들었다. 마리 부샤 교수는 “한국과 퀘벡이 상호협력해 서로 배우고 알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12월 3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 참가를 위해 방한한 마리 부샤 교수를 만났다. 이상윤 성공회대 교수가 통역을 맡았다. / 이준헌 기자

12월 3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 참가를 위해 방한한 마리 부샤 교수를 만났다. 이상윤 성공회대 교수가 통역을 맡았다. / 이준헌 기자

-사회적경제에 관한 통계는 왜 필요한가. 어디에 사용되는가.

“정책 계획을 더 잘하기 위해선 숫자가 필요하다. 사회적경제 통계라는 것이 왜 필요하냐면, 사회적경제 분야가 얼마나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지 측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공공의 자원, 세금으로 집행이 되는 부분도 있다. 공공영역에서는 어떤 자원이 얼마나 투입돼 얼마나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측정해야지만 더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경제에 대한 통계가 필요하다.”

-사회적경제의 통계를 내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업 통계, 경제 통계를 내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가.

“사회적경제 통계가 다른 영역과 다른 점은, 일반 경제(기업) 통계는 대부분 수익 본위다. 특히 투자자를 위해 그렇다. 사회적경제나 협동조합은 기본적으로 사람중심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단순히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계지표도 사람 중심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 협동조합을 통해 얼마나 자기효능감이 높아졌느냐와 같은 감정적인 지표도 본다. 일반 기업이었다면 투자 대비 효용 같은 것을 보겠지만 사회적경제 통계에서는 사회복지적인 것도 다룬다.”

-사회적경제 통계를 낼 때 어려움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통계를 위한 기준이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그 자체를 정의하지 않는다. 사회적경제 부문 통계가 따로 없기 때문에 국가 통계에서 사회적경제 부분을 찾아 들어가야 하는 점이 힘들다. 어떤 조직이 진짜로 사회적경제 조직인지 알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회적경제 자체가 굉장히 다양하고 다양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지표로서 뭔가를 콕 집어 표준화하는 일이 어려운 편이다.

또 다른 어려움은 그들이 무엇을 생산하는지 측정하는 것이다. 일반 통계는 얼마나 많은 돈과 가치가 생산되는가, 얼마나 많은 직원이 있는가를 다루지만, 사회적경제를 위한 통계는 또 다른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존엄성, 사회적 안정성, 지역사회와의 결합 등은 기존의 통계에서 잘 측정이 안 된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용했는가’처럼 더 정교하게 질문을 해야 한다.”

-제도적으로 사회적경제 통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 뒷받침할 방법은 없나.

“조직 분류 차원에서 보자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비영리NGO 등을 별도의 분류를 통해 등록하는 것이다. 또한 직업설문이나 가계조사에서도 ‘협동조합에 가입돼 있는가’란 질문을 넣는다면 유용하다. 즉 우선 사회적경제 부문을 정의하는 제도가 있어야 하고, 질문지를 보내 구체적인 걸 파악하는 것이다. 사회적경제 조직의 정의와 범위가 법안에 있어야 우리가 알 수 있다. 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퀘벡을 예로 들면, 퀘벡에는 사회적경제 관련 법이 있고 어떻게 그 분야를 통계화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이 있다.”

-사회적경제, 협동조합의 강점은 무엇인가.

“협동조합은 기본적인 철학이 사람 중심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에 관심이 있다. 일반 기업과 달리 투자자에 의해 결정이 되지도 않으며, 배당금을 줄 필요도 없다. 자본이 조합원의 소유이기 때문에 경제위기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조합원들은 지분이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조합원이 아닌 자가 이익을 가져갈 우려도 없다. 역사적으로 예를 들면 2008년에 많은 사업체가 무너졌지만 같은 규모라면 협동조합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컸다. 재정구조가 이익중심적이 아니고 내부지향적이기 때문에 더 탄력성이 있다.”

-코로나19 위기에도 사회적경제가 도움이 된 사례를 소개해달라.

“내가 속한 대학에 학생조합 네트워크가 있다. 학생조합이 노동자협동조합에서 마스크를 사와 멤버들에게 e메일을 보냈다. 이전에 학생이었던 사람들과 교수 등 수천명에게 노동자협동조합에서 마스크를 살 수 있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그 노동자들은 할 일이 늘어나고 우리는 마스크를 구했다. 서로서로 네트워크로 연결이 됐던 덕에 마스크를 구할 수 있었다. 협동조합의 원칙 중 ‘조직 간의 협동’이 유용하게 작동한 사례다. 또 다른 예로, 공동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면 배달노동자협동조합이 와서 음식을 노숙인들에게 가져다줬다. 노숙인들이 코로나19 기간에 길에 사람이 없어 구걸도 할 수 없었던 상황에 정부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때, 사회적경제가 즉각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관료제가 할 수 없는 일을 협동조합이 했다. 협동조합은 새로운 수요가 있을 때 가용한 자원을 즉시 동원할 수 있다는 민간의 강점이 있다.”

12월 3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 참가를 위해 방한한 마리 부샤 교수를 만났다. 이상윤 성공회대 교수가 통역을 맡았다. / 이준헌 기자

12월 3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 참가를 위해 방한한 마리 부샤 교수를 만났다. 이상윤 성공회대 교수가 통역을 맡았다. / 이준헌 기자

-협동조합은 민주주의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단순히 멤버십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협동조합인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의 조합원과 코스트코 회원과의 차이점은 협동조합의 경우 투표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협동조합은 1인 1표, 매년 모여 위원회를 선출하고 투표로 중요한 것을 결정한다. 내가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 교육을 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민주적 절차를 경험하고, 이전에 민주적 경험을 해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조합에서 민주주의를 직접 실천함으로써 배운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지역기반 훈련인 것이다. 민주주의 철학을 가장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은 민주주의에 기여한다. 경제의 관점에서 봐도 민주적이다. 협동조합에서는 나의 무지함을 이용하지도 않고 과다한 비용을 책정하지도 않기 때문에 공정하고 정당한 가격을 지불할 수 있다. 일반 기업의 상품에서는 소비자가 상품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가격이 책정됐는지 믿기가 어렵지만, 협동조합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을) 믿을 수 있다. 나를 위한 경제, 나에 의한 경제란 점에서 경제민주주의, 민주적 경제다. 시민사회가 우리를 위한 경제를 만든다는 측면에서는 정의롭다.”

-사회적경제는 정부 정책에는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정부가 독단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면 비효율적이고 잘 작동하지 않는 반면 시민사회에서 협동조합이 조직화돼 있으면 정책을 펼치는 데도 효과적이다. 지역 단위와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퀘벡에서는 한 부서가 주정부와 사회적경제 분야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를 통해 각각의 사회적경제가 어떤 분야에 특화돼 있는지 알 수 있다. 만약 아이 돌봄이 필요하다면 각각 다른 지역에 어떻게 돌봄을 지원할지 정부가 파악할 수 있다. 원래대로라면 코로나19로 시설이 폐쇄됐을 때 육아협동조합이 다 실패했어야 한다. 하지만 퀘벡 정부는 협동조합의 사회적 유용성을 고려해 존속할 수 있도록 보조를 해준다. 정부가 모든 걸 다 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육아협동조합을 존재하게 해주는 것, 그래서 필요한 사람들이 언제든지 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주정부의 정책이다. 폭력 피해자 긴급 전화도 마찬가지다. 존재하는 그 자체에 의의가 있기 때문에 전화가 오지 않더라도 폐쇄하지 않는다. 퀘벡에서는 이렇듯 정부와 조합이 협력해 사회문제를 보살핀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에 더 강하다.”

-사회적경제를 뒷받침할 사회적 조건은 무엇인가.

“사회적경제, 협동조합은 꽃이 피듯이 자연적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인프라가 필요하다. 그 인프라는 보통은 아래에서부터 올라온다. 사회적경제를 위해 필요한 인프라는 교육·훈련, 리서치·지식교환 그리고 재정이다. 이중 재정을 보면, 조합의 소유권이 조합원들에게 나눠져 있다는 것을 기존의 재정 제도가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어려움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은행은 담보를 잡아 대출을 해주는데, 협동조합은 민주적이다 보니까 누가 주인인지 몰라 누구를 대상으로 채무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협동조합 입장에선 자금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사회적경제의 특성을 이해하는 특화된 재정 시스템이 필요하다. 일단 사업을 하면 (자체적으로) 지속가능한데, 시작을 위해선 투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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