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고는 포화 상태인데…여전히 '잡음' 심한 사립고 특수학급 설치

민서영 기자
지난 15일 서울시교육청이 한영고를 비롯한 사립고 4곳과 공립고 1곳에 특수학급을 새로 설치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서울 강동구의 한영고등학교 교문에 특수학급 설치의 정상적인 협의 절차와 준비과정을 요구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페이스북

지난 15일 서울시교육청이 한영고를 비롯한 사립고 4곳과 공립고 1곳에 특수학급을 새로 설치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서울 강동구의 한영고등학교 교문에 특수학급 설치의 정상적인 협의 절차와 준비과정을 요구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페이스북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관내 사립고 4곳과 공립고 1곳에 특수학급을 새로 설치하겠다고 밝히자 일부 사립학교가 협의 절차 등을 문제삼으며 반발하고 있다. 특수학급 신설을 둘러싼 논란 자체가 장애 학생의 교육권 침해와 차별·배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강동구의 한영고는 지난 달 20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2022학년도 특수학급설치 지정에 대한 종합의견’에서 “교육감은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시행령에서 사립학교에 특수교육 대상자 위탁 교육을 위해 매 학년도가 시작되기 10개월 전까지 교육 여건과 인원, 기간 등에 관해 학교장과 협의하도록 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영고는 한영고, 한영외고, 한영중, 한영유치원 등 재단 소속 4개 학교가 시설을 공유해 교육공간이 협소한 점, 교내 전반에 턱이 많고 엘리베이터가 없어 장애 학생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점을 들어 특수학급을 당장 설치할 수 없다고 했다. 학교 측은 ‘한영 학교 안전 및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특수학급의 정상적인 협의 절차를 요구한다’는 플래카드를 교문에 걸기도 했다.

한영고 홈페이지에 게시된 ‘한영 학교안전 및 비상대책위원회’의 특수학급 설치 관련 공개질의. 한영고 홈페이지

한영고 홈페이지에 게시된 ‘한영 학교안전 및 비상대책위원회’의 특수학급 설치 관련 공개질의. 한영고 홈페이지

서울시교육청은 통상적인 절차를 따랐다고 반박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지난 달 2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11월 초에 특수학급 관련한 공문을 보냈고 이후 학교에 방문해 관련 안내를 했다”며 “특수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위탁 교육을 하기 위해선 10개월 전까지 협의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저희는 (특수교육을) 위탁 교육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에 법률 자문을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시설 미비 문제에 대해선 “협의가 된 후엔 시설 지원을 다 해준다”면서 “사립학교의 경우 공립학교에 비해 시설이 열악한 경우가 있는 걸 감안해 학생 배정을 한다. 한영고의 경우에도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이동에 불편이 없는 장애 학생 4명을 배정했다”고 했다.

특수교육 대상자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국·공립고의 정원은 포화 상태이다. 전국 특수학급의 91.8%가 국·공립고에 있다. 서울에서 학생 정원(유치원 4명, 초·중학교 6명, 고등학교 7명)을 초과하는 ‘과밀지원’ 학교는 23개교에 달한다. 특수학급이 설치된 전체 95개교 중 11개교만 사립고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미 대부분의 공립고는 설치할 대로 다 설치한 상태이고 학생 수가 늘어나다 보니 사립고 설치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영고 관계자는 “특수교육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라며 “준비가 안 돼 있는데 학생들을 받아 분쟁이 일어나면 학생들 가슴에 못을 박는 것 아니냐. 확실히 준비가 된 상황에서 2023년에 특수학급을 설치하자는 얘기”라고 했다. 특수학급을 위한 교실이 준비 안 돼 있는 상황에서 법정 시설을 구축하기에 2개월의 시간은 너무 짧다는 것이다. 이어 “사립고는 교육청의 지휘·감독이 아닌 관리·감독을 받는 기관인데 정상적인 협의 절차 없이 학생 배정까지 끝내버렸다”며 “교육감에 공개 질의를 넣었는데 아직 답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교문에 플래카드를 걸고 홈페이지에 공개 질의를 올리는 식의 대응이 장애 학생과 학부모에게 상처를 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3 장애인 자녀를 둔 홍윤희씨(48)는 한영고 교문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고 ‘피가 거꾸로 솟는 줄’ 알았다고 했다. 홍씨는 2일 “이렇게 공개적으로 플래카드를 걸어놓는 것은 지역 주민들에게 ‘장애 학생과 학부모들은 우리의 일원이 아니고 협상의 대상이다’라는 식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며 “이미 그 학교에 다니고 있는 장애 학생들도 있는데 그 학생들이 이걸 보면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 싶었다”고 했다. 학교 측이 꾸린 ‘한영 학교 안전 비대위’라는 명칭에 대해서도 “학교 측에선 장애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지만 장애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장애 학생이 학교 안전에 저해가 된다는 식의 편견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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