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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새해를 앞둔 지난 달 31일 서울시가 주최한 ‘보신각, 제야의 종’ 온라인 타종식 축하 무대에서 성소수자를 언급한 가사 내용이 삭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는 타 방송사에서 쓰인 음원을 그대로 사용했다며 “의도적으로 성소수자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사전 제작된 당일 축하무대에는 퓨전국악밴드 ‘훌’과 ‘서도밴드’, 댄스팀 ‘라치카’가 참여했다. 공연은 오후 11시40분부터 서울시 유튜브·페이스북은 물론 tbs교통방송, 지상파·케이블 방송사를 통해 송출됐다. 두 번째 순서로 소개된 라치카는 팝 스타 레이디 가가의 대표곡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에 맞춰 춤을 췄다. ‘본 디스 웨이’는 전 세계 퀴어 퍼레이드에서 주제가처럼 불리는 곡으로, 다양성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보신각, 제야의 종’ 온라인 타종식 축하무대에서 팝 스타 레이디 가가의 대표곡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라치카 . 유튜브 캡쳐

‘보신각, 제야의 종’ 온라인 타종식 축하무대에서 팝 스타 레이디 가가의 대표곡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라치카 . 유튜브 캡쳐

문제는 해당 노래 가사의 일부가 편집돼 방송됐다는 점이다. 4분20초이던 원곡은 2분 남짓으로 편집됐다. 일부 시민은 ‘No matter gay, straight, or bi, lesbian, transgender life. I’m on the right track baby(동성애자, 이성애자, 양성애자 상관없어. 레즈비언이나 트렌스젠더의 삶도, 난 올바른 길을 가고 있어)’ 등 성소수자를 언급한 가사 대부분이 삭제됐다고 지적했다.

자막 해석도 논란이 됐다. ‘Don’t be a drag, just be a queen’이란 후렴구가 ‘끌려다니지 말고 여왕이 되렴’으로 해석됐다. 자신의 성별이나 지위에 기대되는 모습과 반대로 자신을 꾸미는 퍼포먼스인 ‘드랙(drag)’을 중의적으로 뜻한 가사를 ‘끌려다니다’로 단순 직역해 ‘퀴어 서사’를 지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성소수자 A씨는 “새해를 앞두고 들뜬 상태에서 또 다시 차별과 배제를 마주했다”며 “인종 차별 반대에 대한 가사는 허락되고, 성소수자 지지를 언급한 가사는 왜 삭제돼야 했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고의적인 배제는 전혀 아니”라고 해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우선 곡 선정은 라치카 측에서 제안했다”며 “음원의 경우엔 외주업체가 라치카가 앞서 엠넷 방송사에서 썼던 걸 그대로 가져왔다.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라치카는 지난 10월 엠넷 예능 <스트릿우먼파이터>에서 같은 곡으로 무대를 꾸린 바 있다. 해당 방송 관계자는 “당시 공연 시간과 방송 심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음원 편집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손희정 대중문화평론가는 3일 “과거 레이디 가가 내한 당시에도 가사를 문제 삼아 공연 반대 운동이 일어나는 등 ‘본 디스 웨이’는 정치적 의미를 뗄 수 없는 곡”이라며 “엠넷 공연 당시 라치카는 퀴어 당사자들로 구성된 댄서들과 협업하는 등 곡이 가진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최 측이 이러한 메시지와 맥락을 삭제하고 퍼포먼스만 가져온 것이 문제”라며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그저 힙한 대중문화로만 소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심의 등을 이유로 성소수자 이야기가 대중매체에서 계속해서 배제되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 뿐만 아니라 배제하는 것 역시 차별의 한 단면”이라고 덧붙였다.


이유진 기자 yjleee@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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