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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아이의 이름은 ‘미명’이다. 김미명, 박미명이어서가 아니라 공식적인 이름이 없기 때문에 성명 미상, 미명이다.

아이는 신체 일부에 선천적 장애가 있다. 태어난 지 3년이 지났지만 보육원은 미명이의 장애인 등록 및 서비스 신청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법과 제도에서 미명이는 ‘없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미명이는 생후 출생부모가 즉각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여태껏 ‘이름 없음’, ‘주민등록번호 없음’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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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 지어준 이름이 있지만 공식 문서상 이 이름은 어디까지나 ‘가명’이다. “아무리 우리가 이름을 불러도, 지금 세상에 없는 애죠. 이렇게 이쁜 아이가 왜 세상에 없다는 건지…. 지원을 해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 때 너무 속상합니다.” 이 아이를 돌보는 김지희 선생님(가명)의 말이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



미명이처럼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아동복지시설에 간 아동은 2년간 146명으로 파악됐다. 2021년 4월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가 발표한 ‘전국 출생신고 실태조사’를 보면, 2019년 74명, 2020년 72명의 출생미등록 아동이 발견됐다. 네트워크가 전국 251개 아동복지시설과 69개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에 일일이 설문을 돌려 파악한 결과다.

문제는 미등록, 즉 법과 행정의 바깥에 존재하는 특성상 정확히 몇명인지조차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조사를 진행한 김희진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위원회)는 “조사에 포함하지 않은 그룹홈, 미신고시설이나 가정에 있는 경우까지 감안하면 실제 출생미등록 아동이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조차 추정일 뿐 현황과 실태는 아무도 모른다. 단적인 예로, 2021년 12월 30일에도 출생신고가 안 된 채 살아온 23세, 21세, 14세 세 자매가 제주에서 발견됐다. 자료가 없기에 다만 출생미등록 아이가 처한 삶을 간접적으로 가늠해볼 뿐이다. 네트워크 조사에 따르면 아동학대로 신고, 접수된 사례 중 출생미등록 아동의 수는 3년간 178명이었다.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지점에서 모든 문제가 파생된다. 파악이 안 되니 적절한 지원을 할 수가 없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아이 명의의 통장을 개설할 수 없기 때문에 보건복지부 아동 후원 사업인 디딤씨앗통장이나 아동수당 등 기본적인 사회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상생지원금에서도 원천적으로 제외된다. 장애신청도 하지 못한다.

김지희 선생님은 “출생미등록 상태였던 아이가 다섯 살이 돼서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아이사랑포털에 등록조차 되지 않아 막막했다. 이 아이들은 결연 후원을 해주고 싶다는 분들이 있어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구청에서 아이를 시설에 맡기며 부여한 ‘관리번호’가 있긴 하지만, 이 번호는 말 그대로 행정상 ‘관리’를 위한 분류체계일 뿐 아이에게 뭔가를 가져다주진 않는다. 최소한으로 기본 국가예방접종 같은 것을 해줄 뿐이다.

출생미등록 아동도 학교에 ‘입학’할 수는 있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은 “초등학교의 장에게 입학을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교육부가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주민등록말소, 무호적, 불법체류 아동은 거주지 학구 초등학교장에게 입학 신청이 가능하고, 거주 사실이 확인된 미취학 아동의 입학을 허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여느 의무취학 대상자처럼 예비소집 통보가 오지는 않지만 입학은 가능하다.

하지만 고완석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옹호팀장은 “입학은 했지만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보험가입이 되지 않아 현장학습 같은 체험활동에서 제외된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아동 명의의 통장을 통해 지원되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없다는 점은 학교에 다녀도 마찬가지다. 고완석 팀장은 “출생미등록 아동은 ‘세상에 있지만 행정적으로는 없는 존재’다. 이 때문에 기본적인 건강권, 교육권, 사회보장 및 사회복지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어른들의 사정’이라는 이유



자신의 출생 사실을 국가에 알리기 싫어 출생신고를 피하는 ‘아동’은 없다. 출생신고가 제때 되지 않는 것은 전부 ‘어른들의 사정’ 때문이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꺼리는 경우는 혼외자이거나 미혼모일 때, 부모가 적절한 지원과 안내를 받지 못했을 때 등으로 복잡다단하다.

특히 혼외자일 경우 친생자 추정에 따라 이혼 후 300일 이내 출산한 아이는 전남편의 아이가 되기 때문에, 전남편 아이로 올리는 것이 싫어서, 혹은 전남편이 받아주지 않아 출생신고를 못 하기도 한다. 굿네이버스가 파악한 실제 사례를 보면, 화장실에서 출산한 미혼모가 출생신고를 거부한 경우, 가정에서 출산한 친모가 지적능력이 다소 부족해 특별한 사유 없이 아이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 등이 존재한다.

세상에 있지만 행정엔 없는 '미명이'[플랫]

이를 고려해 출생신고의 1순위 의무자인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자녀의 복지가 위태롭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직권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가족관계등록법이 개정됐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권인숙 민주당 의원이 2021년 11월 17개 광역시도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16~2021년 10월 지자체장 직권으로 출생신고한 사례는 10건에 불과하다. 검찰청은 출생신고 자료를 별도로 작성·관리하지 않아 제출이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직권 출생신고를 진행해보려던 이들은 지자체와 검찰의 ‘부담’을 접했다. 민원을 염려해 부모, 특히 엄마가 누군지 알 수 있는 경우엔 ‘최대한 엄마를 설득해 출생신고하라’는 대응이 흔했다. 고완석 팀장은 “지자체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직권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계속해서 생모를 설득하라고만 하는 사례, 검사 또한 ‘엄마를 인지하는 경우 직권으로 할 수 없다’고만 답변하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희 선생님은 “혼외자의 출생신고 사실을 알게 된 아빠가 ‘내 애가 아닌데 왜 너희 마음대로 내 밑에 넣어’라는 민원을 넣기도 한다. 애초에 출생신고를 할 부모였으면 진작 했을 것이기 때문에 출생 당시를 놓치고 나면 그다음 출생신고를 하게 할 방법은 없다고 본다”고 했다.

부모의 소재지를 찾아내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오히려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기아) 출생신고까지 걸리는 시간이 더 짧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김희진 변호사는 “기아 출생신고의 경우 평균 2~3개월이 걸렸으나 친생부모 출생신고, 검사 출생신고 등은 1년 이상이 걸린 경우도 있다”며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면 아이 본인이 바로 성본 창설하고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아이의 존재 자체가 확인되고 부모가 누군지 안다면, 공공의 직권으로 하게끔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출생통보제가 대안이 될까



그사이 아이는 큰다. ‘어른들의 사정’으로 아이들이 미등록 존재가 되는 폐단을 막기 위해 법무부는 2021년 6월 출생통보제 도입(가족관계등록법 개정)을 입법 예고했다. 출생이 있었던 의료기관이 지자체에 직접 출생정보를 통보하거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출생정보를 보내는 규정을 신설하고, 출생미등록 아이가 발견될 경우 지자체장이 직권 신고하게끔 하는 내용이 골자다. 출생통보제가 시행된다면 병원 출산이 99.5%를 차지하는 만큼 최소한 병원에서 태어나는 아이만이라도 출생등록을 보장할 수 있다.

이를 두고 김희진 변호사는 “태어난 아이의 존재를 공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는 마련됐다는 점에서 한 발 나아갔지만, 결국 현재와 유사한 지자체의 직권 신고 규정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려면 시스템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반면 의료계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왔다.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출산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여성들이 병원 출산을 더 꺼릴 수 있다”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이어 박 대변인은 “분만을 다루는 산부인과가 점점 사라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행정적 부담까지 부과하면 분만을 더 기피할 수도 있다. 아울러 개인정보를 다뤄야 한다는 점, 원치 않는 출생통보에 대한 항의까지 병원으로 향하리라는 점 등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소라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임상교수는 최근 권인숙 의원실 연구용역으로 펴낸 ‘아동의 출생등록 될 권리의 실태와 제도개선방안’ 보고서에서 반대를 완화할 대안으로 의사 등 분만에 관여한 자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아동의 출생을 통보하고, 그다음 심평원에서 지자체에 출생증명서를 송부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소라미 교수는 “심평원과 병원 간 전산시스템은 이미 깔려 있으니 이를 활용해 병원 쪽 부담을 덜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밖에 출생통보제가 포괄하지 못하는 ‘나 홀로 출산’을 비롯해 미혼모·미혼부의 사후적인 친자확인 및 출생신고 절차를 용이하게 해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지희 선생님은 무엇보다도 ‘현재’ 출생미등록 상태인 아이들을 위한 대책을 강조했다. 그는 “시설 입장에선 부모 정보를 알아낼 수도 없고, 알게 된다 하더라도 추적할 수도 없다. 지자체의 법적 책임을 명확하게 정해 이들이 민원을 무서워하지 않고 빨리 처리해주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에 주목한다면



복잡한 논의와 이해관계자의 갑론을박을 다 제쳐놓고 보면, 핵심은 단순하다. ‘출생신고될 권리’를 아동의 권리로 인정하고 보장하느냐 마느냐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대법원이 지난해 6월 내린 판결이 주목받는다. 당시 대법원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에 대해 국가가 출생신고를 받아주지 않거나 그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려 출생신고를 받아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가 발생한다면 이는 그 아동으로부터 사회적 신분을 취득할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및 아동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남성이 중국 출신 여성과의 사실혼에서 낳은 자녀의 출생신고를 하려 했으나 서류 미비로 반려된 이후, 가정법원을 거쳐 친생자출생의 신고를 하고자 신청한 사건에 대한 판결이다.

대법원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를 가진다”며 “(이 권리는) ‘법 앞에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로서 모든 기본권 보장의 전제가 되는 기본권이므로 법률로써도 이를 제한하거나 침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소라미 교수는 “헌법을 비롯해 실정법에 ‘출생등록될 권리’가 명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법원이 유엔 권고 같은 부분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판결문에 남긴 것이다. 출생등록될 권리를 아동의 기본권으로서 명시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라는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외 유관기관에서도 지속적으로 보편적 출생등록제 내지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권고해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에 이어 2021년 1월에도 출생통보제 도입을 재차 촉구했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출생등록은 모든 형태의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발달 수준에 맞는 적절한 교육을 받을 권리,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아동인권의 시작”이라며 “출생통보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2011년부터 유엔 산하 여러 위원회는 여덟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에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을 권한 바 있다.

‘언제까지 어른들 때문에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이 피해를 봐야 하는가.’ 위 판결과 권고가 공유하는 문제의식은 같다. 수년간 출생등록 업무를 해온 마한얼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최근 출생신고 절차로 문제를 겪고 있는 한 아동으로부터 “어른들이 잘못했는데 왜 책임은 내가 다 지냐”는 말을 들었다. 온갖 서류에 복잡한 법적 절차를 아동이 혼자서 감당하다 보니 나온 말이다. 이 아동은 “나 여기 살고 있는데, 나를 증명하는 서류 하나 만드는 게 왜 이렇게 어렵냐”고도 했다.

마 변호사는 “단순히 등록된 사람으로 지원을 받고 말고보다 결국 ‘내가 누구인가’의 문제가 더 크다. 출생신고 없이, 등록 없이 산다는 건 평생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이 남는 문제”라고 전했다. 그의 말이다. “임시 관리번호로도 예방 접종할 수 있죠. 학교장 허가를 받으면 학교도 갈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출생신고 자체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의 근원적 정체성 문제는 해소되지 않습니다. 살아 있음에도 존재에 대한 의문과 고민을 평생 갖는다면 과연 그것을 존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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