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확대, 주민참여가 답이다

주영재 기자

단순 보상 넘어 에너지 시민 300만명 육성 목표로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이 조합원 출자금으로 경기도 안산시 정수장 지붕을 임대해 설치한 태양광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 주영재 기자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이 조합원 출자금으로 경기도 안산시 정수장 지붕을 임대해 설치한 태양광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 주영재 기자

“아무리 좋은 사업도 지역민과 이야기하면서 같이 가야 한다. 설명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하더라도 주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그런 과정들이 여의치 않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지난해 12월 17일 전남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익공유 방식의 태양광발전 사업을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지역 자원으로 얻은 이익을 주민과 함께 누리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 보급에 속도를 내야 하지만 입지 조건이나 비용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태양광과 풍력발전 시설은 농어촌에 들어서고 있다. 지역주민과의 소통에 소홀하거나 주민을 참여시키는 노력이 없다면 재생에너지 확대는 상당 기간 지체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단순 보상이 아니라 지역주민이 발전사업에 자기 돈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주민참여를 이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상을 받으면 단기적으로는 발전시설이 마을에 들어오는 걸 용인할 수 있지만, 적극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지지하는 동력이 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무늬만 주민참여를 넘어서려면

재생에너지 개발 과정에서 주민수용성을 높여야 하는 건 우리만 안고 있는 과제는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외지 자본이 불쑥 들어와 발전시설을 지으면서 마을의 경관을 해치고, 심지어 땅을 빌려 농사를 짓던 농민이 쫓겨난다면 누가 반기겠는가. 그래서 재생에너지 선진국은 주민수용성을 높이려고 주민이 투자에 참여할 기회를 확대했다. 다양한 유무형의 상생방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익공유를 추구했다. 재생에너지 개발에 지역주민이 투자하면 개발이익이 지역 안에서 순환되고, 주민소득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도시를 중심으로 에너지협동조합이 설립돼 공공부지의 옥상 등에 태양광발전소 등을 설치하고 있다. 정부는 2016년 이후 주민참여형 개발에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는 발전량 1000㎾h당 1REC를 받아 이를 재생에너지 사용을 인정받아야 하는 기업이나 일정량을 의무구매해야 하는 발전소에 판매한다. 이때 가중치를 받으면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다. 2020년 10월 주민참여 가중치로 발생한 수익은 지역주민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이익공유의 제도적인 근거도 마련했다.

REC가중치는 주민참여율에 따라 달라진다. 지분 10% 이상에 전체 사업비의 2% 이상을 주민이 참여할 경우 최종 가중치에 0.1을, 지분의 20% 이상에 전체 사업비의 4% 이상을 주민이 투자할 경우 0.2를 더해준다. 단 태양광인 경우 500㎾ 이상, 풍력은 3000㎾ 이상이어야 한다. 협동조합의 경우 자금력이 부족해 500㎾ 이상의 발전소를 설치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2018년부터 채권과 펀드 같은 간접투자도 허용했다. 그 결과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는 2018년 1건, 2019년 6건에서 2020년 15건으로 크게 늘었고, 발전 규모도 커져 2㎿ 이상인 단지는 22건 중 9곳에 달했다.

주민참여 사업이 양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개선해야 할 점들도 많다. 우선 주민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사업자가 주민 대신 돈을 내거나 정책자금을 주민참여 몫으로 내세워 실질적인 주민참여로 보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익공유로 추진한 신안군의 안좌도 스마트팜앤쏠라시티의 경우 사업비 2826억원 중 113억원(4%)을 군·민 협동조합 명의로 대출해 충당했다. 사업자가 발전시설을 담보로 제공하고 이자와 원금을 갚아 주민의 금전적인 부담은 없다. 주민들은 1만원을 내면 연간 40만원에서 240만원 정도의 배당을 20년간 받는데 투자자라고 보긴 어렵다.

주민참여로 완성했다는 새만금 육상태양광 1구역도 실질적인 주민참여 비율은 미미하다. 총사업비 1575억원 중 주민참여 투자금은 4%인 64억원인데 1억원을 빼면 모두 에너지공단의 정책자금이다. 정책자금으로 반경 1㎞ 이내 취약계층 주민들에게 채권을 발행하고 연간 7%의 배당금을 준다. 선한 정책이지만 주민참여라는 제도의 취지와는 맞지 않다. 새만금개발청 관계자는 “발전설비를 혐오시설로 생각하고, 불편하게 볼 수 있어 보상차원에서 지원한 것”이라면서 “전례가 없는 사업이고 초창기라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처음 설계하고, 사업자와 주민들이 협의한 대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익공유는 개발이익을 지역주민에게 돌려준다는 장점이 크다. 다만 주민이 보상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재생에너지 발전을 지지하고, 나아가 직접 참여하는 ‘에너지 시민’으로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주민 사이에서도 이익공유에 따른 배당금을 발전소로 마을 경관이 훼손되고, 송·변전소 시설이 들어오는 걸 감수하는 데 따른 보상이라고 보는 여론이 강하다. 자기 돈을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발전소와 얽힌 이해관계가 없다. 발전소나 송·변전 시설을 여전히 혐오시설로 바라본다.

무늬만 주민참여를 넘어서려면 조합이 출자한 돈으로 발전시설에 투자하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안좌면 협동조합은 장기적으로는 조합 자체의 발전사업을 추진할 생각이다. 박두훈 안좌면 신재생에너지 주민·군 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지금은 초기라 자기자본이 없지만 이익금의 일부를 적립하고 있어 2~3년이 지나면 자체 발전사업을 할 사업비를 모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태양광발전소 청소용역 사업도 시작해 조합의 수익성을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확대, 주민참여가 답이다

■주민참여 지역 제한 유연하게 적용해야

주민참여 제도상의 허점도 있다. 사업규모가 클 경우 주민참여로 인정되는 발전소 중앙부 1㎞ 이내 주민만으로는 가중치를 받기 위한 주민참여 사업비를 모집하기 어렵다. 새만금 육상태양광 1구역은 주민참여비율을 10%로 잡고 있다. 1㎞ 이내의 주민참여로 4%를 채웠고, 남은 6%를 전라북도와 군산·김제·부안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펀드로 조성할 계획이었는데 난관을 만났다. 자본시장법상 공모펀드에 참여하는 대상에 지역 제한을 둘 수 없어서다. 새만금개발청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은 펀드나 채권을 조성할 때 지역을 제한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입장이라 현재 협의 중이다”면서 “펀드 모집에 지역 제한을 두면 특혜라는 시각도 있고, 한편에선 저 멀리 있어 발전시설과는 아무런 영향도 관계도 없는데 돈만 투자하는 걸 과연 공평하다고 볼 수 있느냐고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 입장에선 전북지역 사람이 주로 영향을 받는 거라 전북지역이 아닌 전국으로 넓힐 경우 (주민참여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주민참여 대상에 지역 제한을 둘 수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사업 규모가 커지면 지역 제한 범위를 유연하게 확대할 수도 있어야 한다. 강원도 철원군의 한 태양광발전 사업은 (법 위반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철원군 주민의 펀드 참여를 추진했는데 투자금이 모이지 않아 대부분의 자금을 서울 혹은 수도권 거주자가 투자해 이익을 가져갔다. 지역의 주민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인센티브 재원이 지역이 아닌 서울과 수도권 투자자들에게 간 것이다. 철원군의 경우 20~30㎿의 상당한 규모라 사업지 반경 1㎞가 아니라 좀더 큰 단위로 참여의 범위를 넓혔다면 서울·수도권이 아닌 인근 지역 내에서도 투자금을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풍력발전의 경우 1㎿ 설비당 60억원 정도가 소요된다. 8.2GW인 신안 해상풍력처럼 대규모일 경우 조단위로 투자비가 든다. 이 경우 주민참여 지역을 좁게 제한하면 주민참여 가중치에 필요한 최소 투자비를 모으기 어렵다. 김윤성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대규모 사업을 할 때와 소규모 사업을 할 때 이익공유 형태가 달라야 한다”면서 “반경 수㎞ 안으로만 대상을 제한할 경우 수십억~수백억원이 드는 지분참여 조건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에 기초지자체로 확대하거나 도 전체로 확대하자는 요구가 나온다”고 말했다. 주민참여 비중을 높일수록 그에 비례해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는 형태로 제도를 바꿀 필요도 있다. 현행 주민참여 인센티브 제도는 총사업비의 4%, 그리고 자기자본의 20% 이상이면 최대치의 인센티브를 받아 발전사업자들은 그 이상의 비율로 주민참여를 확대할 유인이 없다.

투자금이 부족한 지역주민을 지원하는 금융제도 마련도 필요하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사업을 할 경우 80~90%까지 융자가 가능한데 나머지 10~20%는 자기자본으로 마련해야 한다. 지역에선 이 자본금을 갖추는 게 쉽지 않다. 충남 홍성군 원천마을 에너지자립마을 위원장이자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인 이도헌 농업회사법인 성우 대표는 정책금융이나 금융투자자가 상환주나 전환우선주 등으로 투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 대표는 “대부분의 정책자금은 저리 융자인데 지역주민은 자본이 없어 투자를 못 하니 저리융자의 이익은 사업자에게 다 간다”면서 “벤처의 초기자본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상환우선주 제도를 만들었듯이 농민이 주도할 경우 자본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매출이나 채권구조를 만들고 수익이 나면 주민이 이를 상환해서 발전소를 지역이 소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동체의 수혜 범위를 넓혀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원한다면 제도운영을 개선해야 한다. 김윤성 책임연구원은 “이익공유는 자발적이어야 하고 절차적으로도 투명하고 민주적이어야 한다”며 “사업자가 기부금을 조성할 때도 임의로 집행하는 게 아니라 외부기관에 집행을 위탁하고 지역주민이 공모하면 선정기준과 집행내역 등을 모두 공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사업자와 주민대표단, 지자체 관계자가 만나 회의할 때 유튜브로 생중계할 정도로 투명한 절차를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REC 가중치를 받기 위해 5명 이상의 주민이 참여해야 하는데 주소지만 있는 지인들로 채우고 실제 주민들은 모르는 채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며 악용 사례 점검 필요성도 언급했다.


지난해 12월 22일 전북 군산시 새만금 1구역 현장에서 열린 새만금 육상태양광 발전사업 준공식에 참석한 주요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국토교통부 제공

지난해 12월 22일 전북 군산시 새만금 1구역 현장에서 열린 새만금 육상태양광 발전사업 준공식에 참석한 주요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국토교통부 제공

■에너지협동조합 300개 설립한다

시민참여 이익공유 모델은 덴마크와 독일 등 유럽이 재생에너지 선진국이 된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덴마크는 전체 재생에너지 중 약 60%가 시민이 직접 투자한 발전소다. 네덜란드의 경우 2018년 74.5㎿의 태양광발전과 159㎿의 풍력발전을 시민주도의 에너지 프로젝트로 만들었다. 영국은 해상풍력발전을 시민주도로 많이 확충했는데 스코틀랜드를 포함해 249㎿의 발전용량을 시민이 소유하고 있다. 에너지협동조합은 이익의 극대화보다는 지역사회 재투자와 지역사회 서비스 제공에 방점을 둔다. 일례로 벨기에의 에너지협동조합 ‘에코파워’는 이익 배당의 상한선을 6%로 제한하고 남은 이익금은 재투자한다.

독일은 2016년 기준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의 약 42%(약 51GW)를 시민과 농민이 소유하고 있다. 4대 전력회사의 소유량은 5.4%에 불과하다. 시민의 자발적인 투자금액은 약 160조원에 이른다. 약 1750개의 시민주도 에너지 사업과 약 855개의 에너지협동조합에 속한 18만명의 시민이 이뤄낸 결실이다. 독일은 약 800만명의 국민이 재생에너지 투자로 이익을 얻고 있다. 스스로 투자자가 돼서 공부하고 학습하고, 토의하는 숙의민주주의를 거치면서 에너지 시민으로 성장해 에너지 전환을 이끄는 주체가 됐다.

덴마크와 독일 등에서 주민참여 재생에너지 사업이 활발한 데는 제도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유럽은 재생에너지 사업에 주민들이 주도해 투자하면 초기 투자금과 투자 수익에 대한 소득 공제 등 세제 혜택을 준다. 우리도 조세특례제한법에서 초기 스타트업 엔젤 투자 시 투자금액 규모에 따라 차등화된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데 비슷하게 재생에너지에 시민이 투자하면 그 투자 수익의 배당과 이자에 소득 공제를 제공해야 한다.

유럽연합도 전체로 보면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소유한 주민들은 많지 않다. 앞으로 빠르게 늘어 2050년이 되면 절반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도 주민참여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이 확대될 여지는 충분하다. 이미 여러 협동조합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업이나 국가만 탄소중립을 할 게 아니라 시민도 자기가 쓰는 전기는 스스로 생산하자는 ‘RE100 시민클럽’이라는 운동이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중이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현재 25개 발전소, 2800㎾의 발전용량을 보유하고 있다. 연간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370만㎾h로 4140t의 탄소 절감 효과를 보인다. 조합원은 1200명 정도인데 재생에너지 발전에 참여하면서 관심이 생겨 직접 태양광 설치 기능사 자격증을 딴 조합원도 있다. 탄소와 미세먼지 배출의 근원지인 인근 영흥화력발전소를 없애는 게 조합의 목표다. 이창수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상임이사는 “영흥화력이든 영광의 한빛원전이든 장거리 송전으로 오는데 여기서 2GW만큼 생산하면 그만큼 송전철탑을 추가 설치할 필요가 없다”면서 “130만원을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면 4인 가족 전기료는 재생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상임이사는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회장도 맡고 있다. 연합회의 목표는 2030년까지 전국에 300개 협동조합, 1조합당 1만명씩 300만 조합원을 모으는 것이다. 이 상임이사는 “안산시 지붕의 99%에 아직 태양광을 안 깔았다”며 “우선 공공부지는 의무적으로 시민참여형 협동조합에 빌려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확실한 신뢰만 갖는다면 시민이 돈은 더 많기 때문에 대규모 사업도 협동조합으로 추진할 수 있다”면서 “시혜적으로 보상받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투자해 수익을 나누는 의미가 더 크고 미래는 그렇게 가야 할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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